121화
경악한 눈으로 심단테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 뻔뻔한 놈은 그저 실실 웃으며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저 자식이 뭐라고 그랬더라. 임시 빙의? 그럼 내가 또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고 있다는 건가? 이런 뭣 같은…….
“어때요? 대단하죠? 임시라서 얼마 못 가긴 했지만 벌써 이렇게나 연구했다니까요? 지정한 대상의 몸에 영혼을 빙의시킨다는 게 얼마나…….”
“야, 이 빌어먹을 놈아!”
“으악!”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뿌듯한 얼굴로 주절대는 심단테의 멱살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런데 이 몸은 척 보기에도 비실비실하더니, 팔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서 오히려 멱살을 잡은 내가 더 휘청거렸다. 한이진의 몸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가느다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워워, 진정해요.”
“진정……하게 생겼어? 어? 이게 무슨……!”
“그 몸, 주인이 깊게 잠들긴 했지만 격하게 움직이면 위험하다니까요.”
“뭐?”
갑자기 일어나서 그런지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빈혈기까지 있는 몸인가. 왜 이렇게 약해?
게다가 이 몸에선 각성자의 힘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한이진의 몸도 처음에는 동기화가 되지 않아서 능력은커녕 상태 창도 불러내지 못해서 고생했었지만, 이 몸은 그때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한이진의 몸은 처음 빙의했을 때부터 묘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이 몸은 그렇지 않았다. 안이 텅 비어 있는 느낌. 내가 꽤 오래 각성자의 몸에 빙의했기 때문에 더 비교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 몸…… 설마 비각성자냐?”
“잘 아시네요.”
씩 웃은 심단테가 비틀거리는 내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 살살 달래듯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자자,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일단 좀 앉으시죠.”
“젠장.”
하는 수 없이 깨어났을 때 누워 있었던 침상 위에 다시 걸터앉았다. 옆에서는 예의 그 수상한 기계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사실 각성자의 몸은 저항이 심한 편이라서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실험하며 올라가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새끼…… 낮은 등급 능력자들만 노린 이유가 있었군.”
“헤헷, 들켰나요?”
“하아…….”
심단테는 빙의 실험을 하기 위해 한이진처럼 낮은 등급의 능력자들에게 등급을 올려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기계를 팔아 댔다. 그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군. 그냥 쉽게 사기 치려고 낮은 등급 능력자들을 노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고등급 능력자의 몸은 실험하기 적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기계가 강유현 몸에 작동한다고 생각해 봐. 아마 씨알도 안 먹힐걸. 그 자식 정신력 스탯도 맥스일 텐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래도 이제 아시겠죠? 제가 그동안 놀고 있기만 하지 않았다고요. 한이진 능력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가 얼마나 열심히…….”
“약속은 무슨, 네놈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실험이잖아. 나는 불행하게 거기에 말려든 거고.”
“헤, 헤헷.”
정곡을 찔린 심단테는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그 낯짝을 보던 나는 다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추우니까 입을 것 좀 줘 봐.”
“넵.”
한이진의 몸에 처음 빙의했을 때처럼 상의 탈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각성자의 몸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기가 너무 추워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추위 때문에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심단테가 얼른 셔츠를 찾아 나에게 걸쳐 주었다.
“여기가 네 실험실이냐?”
“네, 뭐. 수많은 실험실 중 하나죠.”
“수많은…….”
대체 이 새끼는 얼마나 많은 불법적인 실험을 하는 중일까. 능력자들은 기계로 사기 쳐서 몰래 실험한다고 쳐도, 비각성자를 데리고 실험하는 건 명백한 범죄 아닌가? 생체 실험이잖아, 이거.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심단테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절대 납치하거나 감금한 거 아니거든요? 엄연히 허락도 받고, 계약서도 제대로 쓰고……. 뭐, 국가나 협회에서 승인한 실험은 아니긴 하지만요.”
“불법 맞잖아. 미친놈아.”
“하하, 그렇긴 하죠.”
“하아…….”
더 이상 이 정신 나간 놈이랑 말해 봤자 의미가 없다. 내 볼일이나 보고 돌아가야지. 근데 이거 한이진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또다시 미심쩍은 눈으로 노려보자 심단테가 얼른 입을 열었다.
“왜요?”
“나 한이진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 맞아?”
“당연하죠. 좌표가 찍혀 있으니까요.”
“……그럼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건?”
“그건 안 되죠.”
“하아…….”
역시 그건 아직 무리인가. 좌표를 알아야 한다는 건, 한이진이 빙의한 진짜 내 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오신 김에 구경 좀 하실래요?”
“음…….”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심단테가 나를 쳐다봤다. 마치 높은 분의 컨펌을 받는 연구원 같은 모양새라 느낌이 좀 이상했다. 내가 무슨 지원금을 보태 주는 것도 아닌데 VIP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머리를 긁적이다가 심단테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뭔데요?”
심단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심단테를 추궁했다.
“너 라우페이 길드에도 물건 파냐?”
“아, 하하…….”
사실 물어볼 것도 없이 확정적인 일이지만, 그래도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심단테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졌다.
“아니, 그게 말이죠. 제가 굳이 거기에 팔고 싶어서 팔고 있는 건 아니고…….”
“이 사회의 해악 같은 자식아.”
“해악이라니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것들과 개발한 아이템들이 얼마나 세상에 도움이…….”
“그거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심단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내가 임시로 머물고 있는 몸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 죽으셨잖아요?”
“개자식아!”
버럭, 큰 소리를 치며 화를 내자 심단테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어딘가 과장된 몸짓이라 더 화가 날 뿐이었다. 죽일 듯이 노려보자 심단테는 이번에도 한껏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가 만든 아이템이 워낙 뛰어나서 어쩔 수가 없어요. 그리고 거기에 납품 안 하면 제 목숨도 위험하다고요.”
“라우페이 길드 마스터가 네 위치도 알아?”
“아직 들키진 않았는데 조만간 들키지 않을까 싶고…….”
“확실한 게 하나도 없잖아. 너 다 거짓말하는 거지?”
“아하하, 제가 언제 한이진 능력자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
눈이 마주치자 심단테의 웃음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와, 연구고 뭐고 진짜 죽여 버리고 싶다. 이 새끼를 처단하는 게 그냥 세상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심단테가 슬금슬금 다시 다가왔다.
“자자, 고갱님.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요. 제가 이번에 만든 역작을 특별히 한이진 능력자에게는 공짜로 드릴 테니…….”
“S급 이상만 받는다.”
“아…… 하하…….”
입꼬리를 위로 올린 채 굳어 버린 심단테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이, 아무리 저라고 해도 만드는 것마다 S급이 뜨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 그럼 앞으로 협력 안 한다.”
“흑흑, 너무해요.”
휙, 고개를 돌리며 딴 곳을 쳐다보자 심단테가 가증스럽게도 우는소리를 냈다. 속으로 연거푸 한숨을 내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S급.”
“네…….”
마지못해 대답한 심단테가 기운 없는 얼굴로 안내했다. 계속 위잉,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기계를 무심한 눈으로 한 번 훑고 실험실을 나갔다.
***
“여기가 제가 주로 아이템을 만드는 작업실입니다!”
뿌듯한 얼굴로 심단테가 외쳤다. 그러나 나는 의외로 평범한 작업실의 모습에 심드렁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업실에 오는 동안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이 넓은 곳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관리를 해 주고 있는 것처럼 잘 정리된 작업실의 풍경이 더욱더 미심쩍게 보였다. 혼자서는 관리할 수 없는 공간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너 혼자냐? 다른 사람들은?”
“아, 이쪽은 저 아니면 들어오지 못해요. 보안 문제도 있고.”
“헐, 진짜?”
그럼 이 녀석 혼자 작업실을 정리한다고? 이렇게 깔끔하게?
놀란 나머지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자 심단테가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증스러운 새끼 같으니.
“근데 이건 뭐냐?”
“아! 역시, 우리 고갱님이 안목이 높으시다니까.”
특이하게 생긴 아이템을 집어 들자, 심단테가 마치 호객 행위를 열렬히 하는 장사꾼처럼 다가와 설명을 주륵 늘어놓았다.
“그건 말이죠. 제 신작입니다. 무려 S급 아이템! 이름하여 ‘가죽 장화도 끓이면 먹을 수 있다!’ 온갖 재료로 풍성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키트라구요. 이거 하나 던전에 들고 가면 음식 걱정은 노노! 심지어 용종의 비늘도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존나 구려.”
“구리다뇨!”
상처받았다는 듯이 깽깽거리는 심단테의 말을 흘려들으며 아이템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인벤토리 용량이 부족해도 만일을 대비해 비상식량을 넣어 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이렇게 쓸데없는 물건이 S급이라니, 진심으로 쓸데없다.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찾고 있던 게 떡하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