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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19)화 (119/228)
  • 119화

    도결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온몸을 떨면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도결아! 정신 차려!”

    “싫어…… 윽, 저리 가……!”

    “한도결!”

    “싫어……!”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당황하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유현과 연승원은 어느새 멀리 떨어져 있었다. 특히 연승원은 곧 쓰러질 것 같은 걸 강유현이 붙잡아 주고 있었다. 도결이가 지금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쉬이, 괜찮아. 형이 옆에 있잖아.”

    “흐윽…….”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도결이를 달래며 걸어갔다. 도결이의 방을 안내해 줄 연승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우선은 내 방으로 들어갔다.

    탁.

    방 안에 들어가 둘만 있게 되자 도결이는 나를 꽉 끌어안고 벌벌 떨기만 했다. 더 이상 헛소리 같은 건 하지 않지만, 왜인지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나는 일단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결이의 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곧 훌쩍거리는 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결아, 이제 좀 괜찮아?”

    “……으응.”

    문득 도결이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펑펑 울었었는데, 지금 얼굴도 만만치 않게 엉망이었다.

    “자, 흥.”

    “흐응……!”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도결이의 얼굴을 닦아 주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방 한구석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삐익!”

    “……용순이?”

    용순이 역시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와 싸웠던 여파로 깊게 잠들었었는데, 나와 용식이보다 먼저 깨어나 숙소로 옮겨졌다고 들었다. 용순이는 용식이와 다르게 폭주하지도 않고 의젓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동한 얼굴로 용순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친 데는 다 나은 거야?”

    “삑! 삐익!”

    “소환수로 삼자마자 위험하게 보스 몬스터랑 싸우게 하고……. 내가 주인 될 자격이 없구나.”

    “삐이익!”

    한숨을 푹 내쉬자, 내 손바닥 위에 올라온 용순이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마치 내 말에 아니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 같았다. 용식이도 그렇고, 용순이도 아마 몬스터였다면 한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되었을 무시무시한 용종인데 소환수가 되었다고 이렇게 온순하게 구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에이, 알 게 뭐야. 이렇게 살갑게 구는데. 마음껏 귀여워해 줘야지. 손을 들어 용순이의 머리와 턱을 긁어 주자 ‘삐이, 삑!’ 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질렀다.

    “……걔는 누구야?”

    “아.”

    어느새 진정된 도결이가 나와 용순이를 보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나는 얼른 도결이에게 다가가 손바닥 위에 올린 용순이를 내밀었다.

    “이번에 던전에서 만났어. 형 소환수야. 이름은 용순이.”

    “용순이……. 여자애야?”

    “그런가 봐.”

    사실은 확신할 수 없지만, 용순이가 그때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맞겠지.

    지금 생각하니 이름을 너무 대충 지어 줬던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이름을 다시…….

    “우와아, 얘는 용종인데 도마뱀 같네. 너무 귀엽다! 용식이 동생 생겼네? 이름도 완전 찰떡이야.”

    “…….”

    ……다시 정할 필요는 없으려나. 나는 도결이의 흥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삐익! 삐이익! 삑!”

    “응? 뭐라고?”

    “삐이!”

    용순이는 용식이보다 친화력이 훨씬 좋은 것 같았다. 백시후에게는 날카롭게 굴었지만, 그건 백시후였으니까.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친근하게 구는 성격인 것 같았다. 지금도 작고 어린 도결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니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얘는 용종인데 사람이랑 잘 지내고 싶나 보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음…….”

    도결이의 물음에 나는 신음을 내뱉었다. 용식이는 분명 알에서 부화했었고, 용순이 역시 불의 영역에서 막 알에서 깨어난 모습으로 만났었다.

    그런데 용식이는 얼마 가지 않아 성체로 진화했었고, 용순이 역시 갑자기 성체로 변했었지. 용종은 다 그러는 게 당연한 일인가? 고개를 갸웃하며 용순이와 놀고 있는 도결이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간지러워.”

    “삐이익!”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흐뭇한 얼굴로 도결이와 용순이가 노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한창 놀고 난 후 둘 다 지쳤고, 용순이는 고롱거리며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용식이의 우리 옆에 잠자리를 마련해 용순이를 눕히고 다시 돌아왔다. 얼굴이 잔뜩 상기된 도결이에게 오렌지 주스를 주며 물었다.

    “도결아, 아깐 왜 그런 거야?”

    “…….”

    “형한테 말해 줄 수 있어?”

    잠시 머뭇거리던 도결이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게…….”

    망설이면서 도결이가 누군가를 말했다.

    “그 사람……한테서 보인 게 너무 무서웠어.”

    “그 사람?”

    오늘 도결이가 만난 사람은 한정적이었다. 내가 옆에 있을 때 만난 사람은 연승원, 이든, 강수현, 그리고…….

    강유현.

    마지막에 마주친 건 분명 강유현이었다. 나는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그 사람한테 뭐가 보였는데?”

    “그건…….”

    안색이 다시금 창백하게 질린 도결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도결이에게 더 말할 필요 없다고 말하며 다독거렸다.

    설마하니 강유현이 애한테 일부러 뭘 했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둘이 마주치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제야 원작의 설정이 뒤늦게 떠올랐다.

    강유현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속이 멀쩡하지 않았다. 그는 지옥 같은 곳에서 300년이 넘게 떠돌아다녔으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 미쳤을 텐데, 주인공 버프로 겨우 버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도결이가 능력으로 그 일부를 들여다보고 말았구나. 어린 도결이가 감당하기에는 끔찍한 기억들이었을 텐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새하얗게 질려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설에서는 강유현과 도결이가 마주칠 일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원작에선 도결이는 자기가 각성했다는 것도 모르고…….

    “네 방을 봐야 하는데, 어쩔 수 없네. 기왕 이렇게 된 거, 형 방에서 놀다 가.”

    “으응.”

    애써 우울한 기분을 떨쳐 내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던 도결이도 그제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게임 할래?”

    “응!”

    지하의 게임 센터와 강수현의 방 말고도, 내 방에도 역시 게임기가 몇 개 있었다. 대부분은 빌려 온 거지만, 마침 도결이가 놀 만한 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임을 시작하자 도결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

    “후우…….”

    게임에 심취했던 도결이는 낮의 훈련이 피곤했는지 용순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이따가 깨워서 저녁밥을 먹이고 제 방에 들여보내 줘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잠깐 방 밖으로 나갔다. 거실 쪽으로 가니 소파에 앉아 있던 연승원이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네, 면목 없습니다.”

    “아뇨. 바쁘실 텐데 제가 더 죄송하죠.”

    연승원은 도결이가 패닉에 빠지면서 사용한 능력의 영향으로 충격을 받아 계속 이곳에서 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안색이 나빠 보였다. 정신적인 문제는 힐이나 포션으로 치유할 수가 없으니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한도결 능력자에게 방을 안내해야 했는데…….”

    “어딘지 알려 주시면 제가 데려갈게요.”

    “그럼, 염치 불고하고…….”

    다행히 도결이의 방은 내 방에서 멀지 않아서 위치를 익히는 데 어렵지 않았다. 정말로 딱 내 방 옆이었으니까 말이다. 도결이가 좋아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연승원을 배웅했다. 그는 계속 나에게 미안해했지만, 오히려 나는 연승원의 시체 같은 얼굴을 보며 미안함을 느꼈다.

    이 일이 곧 박윤성의 귀에 들어가게 되겠지. 숙소의 문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나 때문인가?”

    “헉, 깜짝이야.”

    문을 닫고 뒤를 돌아보니 강유현이 서 있었다. 기척도 없이 오니까 깜짝 놀랐다.

    그런데 방금 강유현이 뭐라고 말했지? ‘나 때문인가?’라고……? 그렇게 말한 게 맞나?

    미심쩍은 눈으로 강유현을 보다가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어, 그게…….”

    도결이가 쓰러졌던 게 따지고 보면 강유현 때문……인 건가?

    하지만 그걸 강유현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엄연히 말하자면 무언가 더 복합적인 문제였다.

    강유현은 도결이에게 영향을 줄 생각이 없었을 터였다. 원작에서 강유현의 문제가 터진 건 소설의 중반쯤부터였다. 내가 한창 읽었던 부분에서 강유현의 멘탈이 왕창 털려 오서현 원장에게 상담을 받게 됐었지.

    “…….”

    도결이가 강유현을 볼 때마다 이렇게 겁에 질리면 같이 숙소에서 지내기 힘들어질 텐데. 아마 집 주인인 강유현이 나갈 수는 없고, 도결이가 다른 숙소에서 지내게 되겠지. 나와 같은 숙소에서 지낸다고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왜인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할 테니.”

    “……뭐?”

    강유현의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해결한다고? 어떻게?

    그는 지금까지 도결이만큼 예민한 정신계 능력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소설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미 터지고 터진 멘탈을 꾹꾹 눌러 참느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던 그가 폭발하고 나서야 다른 등장인물들도 그의 속사정을 알게 되었으니까.

    소설에서도 마땅히 방법이 없어서 오서현 원장의 도움을 받았던 건데, 대체 어떻게 해결한다는 걸까.

    의심쩍은 느낌이 들어 그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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