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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18)화 (118/228)
  • 118화

    “응, 그래.”

    “와아!”

    도결이는 마치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하긴, 도결이는 억울하게 몇 년이나 병원에 갇혀 있다시피 했고, 이제 겨우 퇴원해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기대하고 있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하나뿐인 형과 단둘이 오순도순 살 수 없다는 건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 도결이도 S급 능력자라 이거야. 설마 무슨 일 있겠어?

    “가기 전에 용식이도 데리고 가자.”

    “응!”

    고개를 끄덕인 도결이가 내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대로 훈련실을 빠져나가 용식이가 있는 병실에 들러 우리를 들고나왔다.

    병동을 나오는 순간부터, 도결이는 마치 낯선 걸 보듯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병실과 상담실, 그리고 훈련실. 가끔 산책하러 나오는 것 말고는 지금까지 밖에 나온 적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도결이는 각성한 후 몸이 아파 밖에 잘 나오지 못했고, 이곳에 온 뒤로는 능력을 컨트롤하기 위해 훈련에만 전념했다. 나는 신기해하는 도결이를 다독이며 계속 걸어갔다.

    “자, 이쪽이야.”

    “아, 응!”

    병동과 길드 본관은 같은 부지 안에 있지만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 안에 타자 도결이는 이것마저 신기하다는 듯이 내부를 둘러보았다. 작은 머리통이 연신 휙휙 돌아갔다.

    짜식, 처음 타 보는 티 내기는. 나도 처음 탈 때 이랬으려나.

    “…….”

    커다란 리무진은 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곧 오딘 길드 본관 앞에 도착했다.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리무진에 도결이가 또 한 번 감탄한 후,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오셨습니까.”

    연승원이 무뚝뚝한 얼굴로 도결이와 나를 맞이했다.

    “한도결 능력자의 방 준비가 끝났습니다. 보시고 추가로 변경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

    사무적으로 내뱉는 연승원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도결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 형이랑 같은 방 쓰는 거 아니야?”

    “뭐?”

    순간 놀라서 사레가 들릴 뻔했다. 가던 길마저 멈추고 도결이를 내려다봤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네가 나이가 몇인데.”

    “…….”

    “방은 따로 써야지.”

    그러자 도결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난 당연한 얘기를 한 것뿐인데, 왜인지 내가 나쁜 말을 해서 괴롭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감한 눈으로 도결이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바로 옆방이니까, 응? 심심하면 형 방에 놀러 와.”

    옆방, 옆방인 건 맞지? 그런 눈으로 슬쩍 연승원을 보자, 눈치 빠른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래, 그리고 네 방에 게임기도 많아. 아마 이 형은 생각도 안 날 거다.”

    또다시 ‘그렇지?’ 하는 눈으로 연승원 쪽을 슬쩍 보자, 그가 이번에도 기계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내 요청 사항을 잘 들어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도결이를 다독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최상층의 워프 포털 앞에서 도결이는 또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아. 그냥 문 같은 거야.”

    “으, 응.”

    도결이도 이제 능력자로 살기 위해서는 포털 타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주 스킬이 모두 정신계인 도결이는 되도록 던전 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말이다.

    확, 하고 파란 불빛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나는 이번에도 가슴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애써 억눌렀다. 반면에 도결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얘는 멀미 같은 거 안 하나 보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진아!”

    “이…….”

    불쑥 튀어나온 누군가가 나를 확 끌어안았다. 언뜻 스친 분홍색 머리카락을 보고 이든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처박아서 마저 말할 수가 없었다.

    숨,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항의하는 마음을 담아 이든의 어깨를 손으로 팍팍 쳤다. 그러자 이든이 놀라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외쳤다.

    “이진아, 괜찮아?”

    “하…….”

    아주 괜찮았는데, 너 때문에 안 괜찮아졌다. 욕을 하는 대신, 부족한 산소를 채우려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나를 살피던 이든의 얼굴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어? 이진이가…….”

    “……?”

    “이진이가, 둘이야…….”

    “아.”

    이든은 이제야 내 옆에 있는 도결이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깨를 잡고 있는 이든의 손을 툭 쳐서 떨어트리고, 도결이를 내 옆에 데려왔다.

    “내 동생. 도결이.”

    “…….”

    동생이라는 말에 이든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나와 도결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너무 놀라는 거 아닌가? 물론 한이진과 도결이가 놀라울 정도로 닮긴 했지만 말이다. 나도 처음 봤을 땐 꽤 놀랐었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다가 도결이를 쳐다봤다.

    “도결아, 얘는 이든이고…….”

    “A급 바람 능력자. 볼 거 없네.”

    “……응?”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방금 도결이가 말한 게 맞나? 의아하게 바라보자, 도결이가 얼굴을 구기며 이든을 향해 짧게 말했다.

    “저리 꺼져.”

    “어어……?”

    이든이 갑자기 어색한 몸짓으로 뒤를 돌았다. 그리고 숙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내가 깜짝 놀라며 도결이를 불렀다.

    “도결아!”

    “……칫.”

    내가 소리치자 도결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든이 숙소 쪽으로 걸어가다가 우뚝 섰다. 곧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도결아, 사람한테 함부로 능력 쓰면 안 된다고 했잖아.”

    “…….”

    내 말에 도결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곤란했다. 옆에 연승원도 있는데, 자칫 도결이가 능력을 함부로 쓴다고 박윤성에게 보고라도 한다면 곤란해질 터였다.

    “도결아.”

    “……!”

    조금 엄한 느낌이 들도록 목소리를 낮추자, 도결이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고집스럽게 딴 곳을 보더니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 저 꼬맹이가 능력 쓴 거야?”

    이든이 당황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는 아직도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애가 아직 능력을 잘 다룰 줄 모르네. 하하.”

    나는 재빠르게 실수인 척 위장했다. 도결이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만 땀을 뻘뻘 흘리며 이든에게 말했다.

    “실수……라고?”

    “우리 도결이가 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

    이든은 명백하게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결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능력을 썼으니까 말이다.

    정말 얘가 왜 이러지. 아직 숙소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문제를 일으키다니. 당황한 얼굴로 서 있자, 멀찍이서 지켜보던 연승원이 가까이 다가왔다.

    “일단 들어가시죠.”

    “아, 네.”

    그는 이걸 사소한 일로 치부한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아니, 원래 무표정한 얼굴이라 정확히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입을 비죽 내밀고 있는 도결이를 데리고 숙소로 걸어갔다. 형식적인 대문을 지나 정원을 지나치고, 연승원이 정중하게 열어 준 현관문을 지나쳤다.

    “……형.”

    “수현아.”

    이든과 달리 강수현은 숙소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거실 한가운데서 나와 도결이를 맞이했다. 왜인지 안절부절못하며 거실을 돌아다니던 그는 나를 보자 재빨리 다가왔다.

    “몸은 괜찮아요? 입원 오래 했잖아요.”

    “괜찮아. 아주 멀쩡해.”

    “정말로…… 응?”

    강수현 역시 이든처럼 도결이를 뒤늦게 발견했다. 아무래도 도결이 키가 작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S급 능력자들은 하나같이 거인처럼 키가 크니까 말이다.

    도결이는 묘하게 경계심 어린 얼굴로 내 뒤에 숨어 있다시피 했다. 강수현을 보는 도결이의 얼굴이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그리고 강수현도 그런 도결이를 한동안 빤히 내려다봤다.

    “와, 형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네요.”

    “그치? 도결이야. 도결아, 인사해야지.”

    “…….”

    도결이의 어깨를 잡고 은근슬쩍 힘을 주었는데, 이 녀석이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껏 버텼다. 뭐지. 도결이 녀석 이제 S급으로 각성했다고 힘도 좀 세진 건가.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하하, 우리 도결이가 수줍음이 좀 많아서…….”

    “아하…….”

    강수현과 도결이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도결이를 쳐다봤다. 얘가 이든에게 한 것처럼 굴면 큰일인데.

    하지만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결이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강수현도 정신계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 게다가 이든과 다르게 S급 능력자다. 아마 도결이가 작정하지 않는 이상 강수현에게 능력을 쓰는 건 힘들 것 같았다.

    “한도결 능력자의 방은 이쪽입니다.”

    연승원이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결이를 데리고 걸어갔다. 아무래도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떨어트려 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그런데 걸어가던 도중 우리는 중간에 우뚝 멈춰 섰다. 의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도결이는 그를 보자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강유현.”

    “…….”

    “너도 돌아와 있었던 거야?”

    강유현은 보조 스킬을 두 번이나 받았던 충격으로 부작용이 전보다 더 세게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 못지않게 병원 입원이 길어졌다고 들었는데, 보아하니 비슷하게 퇴원한 것 같았다.

    “형…….”

    “도결아?”

    그때, 도결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음을 흘리며 몸을 숙였다.

    “윽…….”

    “……도결아!”

    나는 깜짝 놀라며 쓰러지는 도결이의 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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