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조심해!”
콰르릉,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쇠구슬이 무수히 많이 떨어져 내렸다. 공대의 능력자들은 그 구슬에 몸이 닿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조그마한 쇠구슬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기 때문이었다.
“부 마스터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으아아악!”
이성을 잃은 서하준이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온갖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공대는 순식간에 혼비백산이 되었다. 지금은 서하준을 막을 수 있는 능력자가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전투원들 중에선 S급이 없었고, 그마저도 수가 적었다. 지원팀의 능력자들은 다수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폭주한 S급의 전투계 능력자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비켜요!”
그때, 공대 사람들을 제치고 나선 건 강유현의 동생인 강수현이었다.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지금은 땀에 젖어 제법 진한 색을 띠고 있었다.
“어서 나와요! 가까이 있지 말고!”
“하지만…….”
끝까지 서하준의 주변에서 맴돌던 능력자가 울상을 지었다. 아마도 티르 길드의 길드원일 것이다. 서하준을 저리도 챙기는 걸 보면.
강수현은 인상을 구기며 속으로 혀를 찼다. 방해가 되는 길드원을 최대한 멀리 보내고 난 뒤, 폭주하고 있는 서하준을 노려봤다.
그의 전투 스킬은 S급치고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제일 등급이 높은 건, 쇠구슬처럼 생긴 작은 폭탄을 만들어 터트리는 스킬이었다. 구슬이 작고 위력이 크지 않아서 애매한 스킬이었는데, 폭주하면서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니 이것도 꽤 위협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젠장.”
쿵, 쿵, 쿠궁.
산발적인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대로 가다간 공대가 전멸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서하준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윽, 야…… 고딩!”
“…….”
정신을 잃고 있었던 이든이 비틀거리며 강수현에게 다가왔다. 이든은 연신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이진이는?”
“…….”
“이진이는 어디 있어?”
한이진을 찾는 이든을 보며 강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든은 기력이 다한 후 정신을 잃어서 한이진이 빌런들에게 납치당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공대의 상황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한이진만을 찾았다. 그리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하…… 여기 없어요.”
“그럼 어디 있는데?”
“……그쪽은 지금 공대 상황이 안 보여요?”
“…….”
이든은 무심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하늘에서는 웬 작은 구슬이 비처럼 내리고, 사람들은 그걸 피해 다녔다. 공대 가운데에서 눈을 까뒤집고 있는 남자가 원흉인 것 같은데,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놈의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패시브 스킬 때문인지 다가가기가 까다로워 아무도 폭주하고 있는 능력자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쩌라고.
“알 게 뭐야.”
“…….”
냉담한 말에 강수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강수현은 깨달았다.
아, 이 사람 빌런이었지.
“난 여기 한이진 지키러 왔어. 그게 다야.”
그에게는 한이진 말고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참으로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에 비하면 강수현은, 자신은…….
‘너도 서하준 막으러 가!’
스스로를 내던지며 외치는 한이진의 말에 강수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심했다. 좋아하는 사람도 지키지 못하면서. S급으로 각성했을 때 주변에서는 자신을 한껏 떠받들어 줬다. SS급인 형에, 동생은 S급으로 각성했다고. 하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무력한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더 절망스러운 건, 자신은 그때 명백하게 망설였다는 것이었다. 한이진의 목숨과 다수의 목숨을 저도 모르게 저울질한 것이었다.
“야, 너는 한이진 어디 있는지 알지?”
“…….”
오직 한 사람에게만 맹목적인 이든이 부러울 정도였다. 그는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굴었다. 강수현이 한이진의 위치를 탐지해 찾아내서 알려 준다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에서 떠날 터였다.
“전 같이 못 가요.”
“누가 같이 가 달래? 넌 저 미친놈이나 말려.”
“……조심해요. 이진 형은 지금…… 윽!”
공대원으로 위장했던 빌런에게 납치당한 데다가 백시후까지 상대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려 했지만, 또다시 한차례 쏟아지는 쇠구슬에 말이 끊겼다.
“아, 젠장.”
바람 능력을 가진 이든에게 이까짓 쇠구슬을 피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구슬을 모두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물며 한이진에게 빨리 가기 위해서는 하늘을 날아야 하는데, 이렇게 공중에 퍼져 있다면 비행에도 방해가 될 게 뻔했다.
“야, 내가 도와줄 테니 저 새끼 빨리 어떻게든 해.”
“뭘…… 어쩌려구요?”
이든과 다르게 쇠구슬을 간신히 피한 강수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자 이든이 바람 능력을 이용해 쇠구슬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이거 모아서 저 새끼한테 쏘려고.”
“……!”
“틈이 생길 때 바로 날려 줄 테니, 그때 어떻게 좀 해 봐라.”
“……좋아요.”
서하준에게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정신계 능력으로 그를 잠잠하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조금 무리한 작전이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강수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넓게 펼친 이든의 두 손 앞에 작은 쇠구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쇠구슬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미세한 간격을 두고 모으는 건 고도의 컨트롤이 필요한 일이었다. 비록 A급이지만 엄청난 능력이었다.
이런 사람이 빌런이었다니. 그것도 빌런 짓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겼던 실력자였다. 강수현은 새삼 그 사실을 상기했다.
“지금!”
“……!”
이든은 외치자마자 모아 놓은 쇠구슬을 서하준을 향해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강수현의 몸도 공중으로 휙 떠올랐다.
“잠깐……!”
적어도 폭발이 좀 잠잠해진 다음 보내지 않을까 했는데, 이든은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강수현을 냅다 던져 버렸다.
‘시발!’
평소 잘 하지 않는 욕을 속으로 외치며 강수현의 몸이 공중을 빠르게 날았다. 로켓처럼 쏘아져 날아가 폭발이 일어난 곳에 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윽……!”
“크악……!”
“……!”
그리고 누군가와 부딪쳤다. 이성을 잃은 서하준이었다.
강수현의 정신계 스킬 중 하나인 상태 이상 스킬은 명령만으로도 상대방의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소리를 머리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에게만 가능했다.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서하준에게는 멀리서 스킬을 써 봤자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스킬을 걸기 위해서는 이렇게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 있어야 했다. 게다가 한이진의 보조 스킬을 받았으니, 어쩌면 자신의 스킬이 이성을 잃은 서하준에게 통할지도 몰랐다.
【멈춰! 서하준!】
“으……!”
【멈추라고!】
“끄억…….”
크게 떠진 서하준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대로 그의 몸이 서서히 무너졌다. 동시에 공대에 쏟아지던 쇠구슬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땅바닥 위에 풀썩 쓰러진 서하준을 차갑게 바라보던 강수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폭주한 능력자를 이렇게 잠재우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죽이거나, 죽을 정도로 몰아붙여야 겨우 폭주가 멈추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폭주한 능력자를 즉결 처분하는 각성자 법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공대에는 서하준을 죽일 수 있는 능력자가 없었다. 강수현은 보조 스킬로 자신의 능력치가 올랐던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공대는 서하준의 폭주로 전멸했을 것이다.
“야, 다 된 거지?”
“…….”
그리고 역시 그에 휩쓸려 죽을 뻔했을 남자는 멍청해 보일 정도로 환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마치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개새끼 같은 얼굴이었다.
“네.”
“그럼 빨리 이진이 위치 알려 줘.”
“…….”
재촉하지 않아도, 강수현은 서하준이 쓰러지자마자 한이진의 위치를 탐지하고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스크롤을 꺼낸 강수현이 그곳에 한이진의 좌표를 입력했다.
“여기요.”
“뭐야, 넌 안 가?”
“……지금 공대를 이끌 사람이 없잖아요.”
“흠…….”
엉망이 된 공대를 수습하고, 서둘러 포털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강수현은 어두운 얼굴로 이든의 시선을 피했다.
“뭐, 그래라. 이진이는 내가 알아서 데려갈 테니까.”
“……네.”
아이템을 받아 든 이든은 홀가분한 몸짓으로 공대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강수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달리 이든은 지켜야 할 사람이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 강수현과 이든의 차이는 고작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 하나뿐인 차이는 많은 것을 달라지게 했다. 강수현은 두 주먹을 꼭 쥐고 공대로 돌아갔다. 폭발이 일어난 사막에는 매캐한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