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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08)화 (108/228)
  • 108화

    촤르륵!

    은색으로 반짝이는 쇠사슬이 곧장 강수현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러다가 강수현 주변의 무언가에 가로막혀 파지직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패시브 스킬!

    강수현도 내 보조 스킬을 받아서 패시브 스킬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나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야, 저 새끼도 스킬 받았어?”

    그사이 또 깜찍한 짓을 했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빌런 놈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 뭐야?”

    “이건호.”

    “시발,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윽!”

    “말이 많네.”

    사슬이 더욱 심하게 몸을 옥죄었다. 나에게서 아픈 신음이 터져 나오자 미친놈은 더욱 즐거워 보이는 기색을 띠었다.

    “젠장……!”

    아무리 내 보조 스킬을 받았다고 해도, B급 능력자가 이 정도까지 강하다고? 이놈은 강수현과 용식이의 협공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수족 같은 쇠사슬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공격을 모두 막아 냈다. 게다가 정신력까지 높은지 강수현의 스킬도 먹히지 않았다.

    “너 이 새끼…… 등급 속이고 던전 들어왔지?”

    “하하.”

    B급 능력자라는 건 분명 거짓말이었을 거다. 라우페이 길드라면 헌터 자격증을 위조했거나, 아니면 진짜 이건호라는 이름의 헌터를 죽여서 빼앗았겠지. 이쪽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었다. 협회에서 발급하는 헌터 자격증은 쉽게 위조하지 못하니까. 불법 아이템으로 이놈이 모습을 바꾼 것도 설명이 된다.

    “그래도 올라운더라는 건 진짠데?”

    “그건 보면 알아, 씹새끼야!”

    “흠.”

    내 욕설에 빌런 놈은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이 녀석이 올라운더라는 건 진짜다. 등급을 속였을 뿐이지. 게다가 지금은 내 보조 스킬로 등급까지 올라간 올라운더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완전히 내 손으로 호랑이를 키운 격이었다.

    “아직은 기분이 좋으니까 봐줄게.”

    “윽……!”

    “아, 씨발.”

    계속된 공격에 빌런 놈이 눈살을 찌푸렸다. 점점 더 그에게서 흉흉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공대에서 이 빌런을 막을 전투 능력자는 없고, 공격을 막기 급급하기만 하다. 보조 스킬을 받은 강수현의 능력으로는 이놈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여.”

    “……!”

    “강유현이 오길 기다리는 거지?”

    “큭…….”

    촤르륵,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었다. 몸을 타고 올라온 사슬이 목을 감쌌다.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이제 슬슬 시작할까.”

    “뭐……를…….”

    “후후.”

    탁, 하고 빌런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뭐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런 스킬을 가진 능력자가 소설에서 나왔었나? 라우페이 길드에서, 백시후 말고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능력자……. 나는 경악한 얼굴로 빌런을 쳐다봤다.

    “너…… 에반이냐?”

    “뭐?”

    “에반 리……?”

    “…….”

    라우페이 길드의 마스터, 라이수의 심복 중 하나.

    왜 이제야 생각한 걸까. 올라운더의 빌런이라면 그놈 하나뿐인데.

    에반 리. 백시후가 조용히 미친놈이라면, 에반은 그냥 미친놈이다. 소설에서는 그를 그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부분에서는 에반이 등장하지 않았다. 소문만 무성한 폭력적인 빌런이라고 서술되었는데, 지나가듯이 올라운더라는 특이한 이력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빌런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스쳐 지나가듯이 읽었던 서술을 기억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에반을 알아본 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에반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큭.”

    “너 뭐야?”

    목을 옥죈 쇠사슬이 더욱 팽팽하게 당겨졌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그리고 그 순간, 공대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으아악!”

    “뭐, 뭐야?”

    공대는 난리가 났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괴로운 것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으…….”

    ‘서……하준?’

    티르 길드의 부 마스터, 서하준. 그가 침을 질질 흘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서 다시 한번 거세게 폭발이 일어났다.

    쾅! 콰광!

    “피해!”

    “젠장, 힐러들 보호해!”

    “지원팀 물러나!”

    서하준은 상태가 좋지 않아 지원팀 근처에서 대기 중이었기 때문에 폭발로 인한 피해는 지원팀 사람들에게 크게 나타났다. 멀리서 일어나는 폭발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구슬 능력자……!’

    그곳에는 아직 어린 나이의 힐러인 구슬이 있었다. 대왕 지네와 에반의 위협에도 지원팀은 그나마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사했었는데.

    갑자기 폭주를 일으킨 서하준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구덩이에 빠졌던 때부터, 그때부터 이상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전부터. 나는 고개를 돌려 웃고 있는 에반을 노려봤다.

    “너…… 이 새끼!”

    “하하!”

    서하준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반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대를 전멸시키고 싶은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저렇게 난리 치는 건 서하준의 의지가 아니었다. 이 빌런 놈이 전부터 서하준에게 스킬을 걸었을 것이다.

    나를 구하려던 공대원들은 서하준을 막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내 보조 스킬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저 수많은 지원팀의 능력자들을 외면하면서까지 나를 구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나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형……!”

    “너도 서하준 막으러 가!”

    “하지만…….”

    그러니 강수현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강수현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없어졌다.

    “이만 가 볼까?”

    “윽…….”

    “발버둥 치지 마. 보조 스킬 쓰는 건 팔다리가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아냐?”

    “…….”

    쇠사슬이 이번에는 팔다리를 동시에 옥죄며 파고들었다. 이미 백시후에게 팔다리 하나씩 자를 거라는 협박을 수도 없이 받았기 때문인지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또 그러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상태로 나는 질질 끌려갔다.

    “캬아아!”

    ‘용……식…….’

    멀리서 용식이가 우는 소리와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대로 목이 졸려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무스펠헤임-S207의 보스 몬스터 ‘샌드웜 킹’을 처치하였습니다.]

    [무스펠헤임-S207를 최초로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불의 세계를 제패한 자(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무스펠헤임-S207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담담한 시스템 음성이 주변에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샌드웜 킹의 거대한 시체가 사라지고, 그 주변에 새파란 포털이 열렸다.

    “후, 끝났군요.”

    성유빈이 지친 음성으로 말했다. 보조 스킬을 받았지만 S급인 그녀에게 SS급 보스 몬스터인 샌드웜 킹은 여전히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세(Sæ) 던전의 보스 몬스터도 이렇지 않았는데, 아마 샌드웜 킹이 훨씬 더 스킬 숙련도가 높은 보스 몬스터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여기서 공대가 오길 기다릴까요?”

    “…….”

    “강유현 능력자?”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리는 강유현을 성유빈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삐이! 삐이익!”

    “어…….”

    전투를 함께한 거대한 용종이 콧김을 쉭 내뿜었다. 성유빈은 잠시 당황하며 붉은 몸체의 용종을 응시했다. 용, 이라기보다는 도마뱀이 커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이진과 함께 극적으로 등장했던 용종은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것 같았다.

    “너도…… 소환수인가?”

    “삑!”

    “한이진 능력자의?”

    “삐익!”

    맞다고 하는 듯 소리 높여 우는 용순이를 보며 성유빈이 신기해했다. 그 어렵다는 용종 소환수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길들이다니. 역시 한이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대 쪽으로 가 봐야겠습니다.”

    “네?”

    강유현의 나직한 말에 성유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포털은 이쪽에 열려 있으니, 공대가 오기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이쪽에서 애써 찾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강유현이 이어서 하는 말에 성유빈은 안색을 굳혔다.

    “한이진이 어디론가 계속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이진 능력자가……?”

    “네.”

    고개를 끄덕인 강유현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성유빈도 그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성유빈 능력자는 이곳에 계십시오.”

    “왜…….”

    “포털은 누가 지킵니까.”

    “…….”

    성유빈이 흠칫하며 뒤쪽에 열린 포털을 흘끗 쳐다봤다. 새파란 빛이 일렁이는 포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터였다. 만약 시간 내에 포털을 타지 않으면 던전 안에 갇히고 만다.

    던전을 클리어했는데도 던전 안에 갇힌다면, 정말 불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던전 안에 갇힌 사람들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리셋된 던전 안에서 그들의 모습을 찾지 못했었으니까.

    게다가 생각해 보니 공대의 상황도 조금 이상했었다. 서하준, 그놈이 또 무슨 짓을 해서 공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성유빈은 강유현의 말대로 그를 공대 쪽에 보내고, 자신이 포털을 지키고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그러죠.”

    무뚝뚝하게 대답한 강유현이 곧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성유빈은 붉은 용종 소환수와 함께 포털 앞에 서서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왠지 모를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성유빈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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