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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05)화 (105/228)
  • 105화

    “안 돼……!”

    해송하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느릿하게 보였다. 그가 눈을 한 번 깜박이는 것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마치 망가진 기계에서 나오는 것 같은 전파음이 귀를 어지럽혔다.

    [……주요 인물…… 확인. 보호…… 발동.]

    ‘뭐……?’

    드문드문 들리는 기계음은 시스템 음성과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시스템 음성은 무뚝뚝하고 낮은 여성의 음성이었는데, 방금 들었던 음성은 남자가 속삭이는 목소리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자 눈앞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파악!

    “윽……!”

    “으앗.”

    모래를 헤치고 튀어나온 것들이 백시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백시후도 검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났다.

    “쮸쮸!”

    “캬앙! 캬아앙!”

    “……!”

    라티가 길게 우는 소리에 호응하듯 고양이가 우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모래 속에서 뛰쳐나온 수십의 여우들이 백시후를 공격하고 있었다.

    “사막여우……?”

    큰 귀와 작은 몸, 캬랑거리는 높은 톤의 울음소리. 사막여우가 분명했다. 난데없이 등장해 우리를 돕는 사막여우들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몬스터 열람이 되는 걸 보면 생김새가 어떻든 던전 안의 몬스터들이 분명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튀어나와서 우리를 돕다니. 나만큼이나 놀라서 멍하니 있는 해송하의 옆모습을 흘끗 쳐다봤다. 그러다가 방금 봤던 해송하의 상태 창이 떠올랐다.

    ‘칭호: 동물의 사랑을 받는 자(S)’

    “…….”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도움을 받는구나. 방금 들었던 이상한 시스템 음성도 그렇고, 당황스러운 일투성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선 살고 봐야지. 나처럼 멍해 있던 해송하를 잡아끌며 외쳤다.

    “일단 빨리 도망가요!”

    “아, 네, 네!”

    해송하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강수현이 쓰러져 있던 이든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이든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든이 좀비처럼 비척비척 일어났다.

    “너 괜찮…… 으악!”

    “…….”

    말도 없이 일어난 이든이 갑자기 능력을 썼다. 그리고 나를 휙 들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강수현은 해송하를 어깨에 둘러메고 뒤쫓아 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강수현이 이든에게 뭔가 한 거 같은데…….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우선은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할 것 같아 얌전히 있었다.

    “근데 지금…… 혹시 공대 쪽으로 가는 건가요?”

    “네…… 아무래도?”

    “어…….”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 공대밖에 없으니, 강수현이 아까부터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강수현이 나를 보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해송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게, 그러고 보니 공대가 지금…….”

    “왜요?”

    겁에 질린 다람쥐처럼 몸을 움츠리는 모습에서 익숙한 불안함을 느꼈다. 이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제대로 된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해송하는 그런 내 불안을 완벽하게 확신시켜 주었다.

    “공대가 지금 위험해요!”

    “…….”

    왜, 또. 거긴 또 무슨 일인데! 욱신거리는 목만큼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

    해송하는, 그러니까 지역이 통합되었을 때부터 내가 있는 곳을 탐지했다고 한다. 왜인지 내가 있는 곳에 높은 확률로 변경된 보스 몬스터가 있을 것 같다고…….

    뭔가 트러블 메이커 취급받은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넘어가고, 줄줄이 늘어놓는 해송하의 말을 들었다.

    강수현과 상의하려고 했는데, 찾아보니 강수현은 그때 이미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아마 날 탐지한 강수현이 이든과 함께 멋대로 공대에서 이탈한 거겠지. 강수현이 먼저 말할 성격은 안 되고, 이든 놈이 꼬신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혼자 남겨진 해송하는 슬슬 공대의 눈치만 보았다. 공대장인 서하준의 상태가 또 이상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게’ 공대를 덮쳤다. 원래 무스펠헤임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사막의 지배자 ‘듄 센티피드.’ 듣기로는 거대한 지네 모습의 몬스터라고 했던가. 해송하의 말을 듣고 내 얼굴은 왈칵 일그러졌다.

    “그놈은 자기 구역에서 안 나온다면서요?”

    “네, 저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하아…….”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우선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목에다가 부어 버렸다. 해송하의 얘기를 듣는 사이 목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일단 그쪽으로 계속 가죠. 슬슬 저도 스킬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괜찮으시겠어요?”

    “형, 괜찮겠어요?”

    해송하와 강수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죽을 것 같아도 스킬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선은 곧 쓰러질 것 같은 이든에게 스킬을 쓰려고 손을 뻗었다.

    “안 괜찮아도 해야…… 제길.”

    하지만 이든에게 손이 닿기도 전에 머리가 핑 돌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 바람에 빈혈이 온 것 같았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빙빙 도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그쪽은 괜찮아요. 제가 스킬 걸었으니 당분간은 안 쓰러질 거예요.”

    “아…… 그래?”

    강수현이 무뚝뚝하게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휙휙 지나치는 풍경을 보다가 앞을 쳐다봤다. 희뿌연 모래 너머로 새카만 무언가가 보였다. 하늘까지 닿을 듯 길게 뻗은 가시들이 멀리서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저건가?”

    마침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는지, 몬스터의 정보가 옆에 작게 떴다.

    「듄 센티피드(사막의 지배자)

    등급: ??

    레벨: ??

    ?? ?? ?? ??, ?? ?? ??」

    “전투 부대의 S급 능력자님 말로는 듄 센티피드는 S급으로 뜬다고 했었어요.”

    “아, 그렇구나.”

    어차피 나에게는 S급이든 SS급이든 죄다 물음표로만 보였다.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공대가 싸우는 걸 쳐다봤다. 아직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전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 보스 몬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예 S급인 만큼 남아 있는 공대 인원으로는 막기 힘든 것 같았다.

    스킬을 걸어 줄 만한 사람이 누가 있더라. 지끈거리는 머리로 생각했다. 이왕이면 S급에게 걸어 줘야 효과가 클 텐데. 서하준은 아직도 상태가 이상하다고 했고…….

    전투 스킬을 가진 S급이라. 강유현과 성유빈이 빠지니까 확실히 전력에 문제가 생긴다. 그동안은 주인공이나 히로인만 있으면 일이 다 해결될 거라고 속 편하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생각이 너무 안이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이제 소설과 이야기 흐름이 너무 달라졌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앞에는 전 보스 몬스터, 그리고 뒤에는 보스 몬스터 못지않게 위협적인 백시후가 있다.

    ‘우선 공대를 도와서 저 지네를 쓰러트리자.’

    그렇게 다짐하자마자 공대의 상태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악!”

    “방어막! 방어 스킬 왜 안 써!”

    “씨발! 지금 뭐 하냐고!”

    “…….”

    엉망진창이었다. 세(Sæ) 던전을 지휘했던 프레이야 길드와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였다. 아무리 서하준이 지휘를 못 하는 상황이라도 S급 정예 몬스터 하나에 이렇게까지 쩔쩔맨다고? 어이없는 눈으로 훑다가 전투 부대 앞에서 싸우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어? 저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이건호라고 했었나? 분명 올라운더라고 했던 거 같은데, 비록 등급은 B급밖에 안 된다고 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꽤 센스가 좋다. 다른 S급 능력자들보다 치고 빠지는 것도 잘하고 스킬을 쓰는 것도 능숙했다.

    조금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능력자들은 공대의 지휘를 따르는 게 익숙했다. 그래서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버거워서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 사람은 다르다. 올라운더지만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적당히 쓸 수 있는 부품 취급을 당하며 살아왔으니, 눈치껏 싸우는 게 익숙한 거다. 나는 그가 있는 쪽을 보다가 강수현을 불렀다.

    “수현아!”

    “네, 형.”

    “저 사람한테 가자.”

    “누구요?”

    “저기 갈색 머리.”

    눈치 좋은 강수현은 내가 가리키는 쪽을 정확하게 쳐다봤다. 이건호를 보는 강수현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스킬을 써 주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강수현을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옷소매를 잡아당기자 강수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가요.”

    “해송하 능력자, 이든이랑 여기 있어요!”

    “아, 네.”

    해송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수현은 나를 데리고 순식간에 격전지 안으로 들어갔다. 곧 지네에게서 잠시 떨어져 숨을 몰아쉬는 이건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건호 능력자!”

    “어? 한이진 능력자.”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말할게요. 보조 스킬 걸어 드릴게요.”

    “저한테요?”

    이건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등급이 낮은 자신에게 스킬을 건다고 하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같은 B급에게는 스킬을 걸어 본 적이 없어서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네, 다른 사람들보다 이건호 능력자가 전투에 능숙한 것 같아서요.”

    “아…….”

    고개를 기울이던 이건호가 초토화되는 주변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상큼한 어조로 말했다.

    “그거 재밌겠네요.”

    조금 낮은 음성이 나른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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