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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99)화 (99/228)

99화

아스가르드? 북유럽 신화의 신들이 사는 곳? 뜬금없이 그 말이 왜 나오지? 무슨 이벤트 같은 건가?

이 소설이 워낙 북유럽 신화에서 이름이나 지명을 많이 따 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몬스터가 저렇게 이상한 말을 줄줄 내뱉는 건 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소설에서 나오지 않은 구역이니, 이상한 일만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한껏 뜨거워진 손을 놓고 백시후에게 말했다.

“스킬 걸었으니까, 어서 싸워요!”

“…….”

“빨리!”

백시후의 새카만 눈이 나를 향했다. 그러자 잠깐 환상 속에서 봤던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백시후를 닮았던 어린아이, 그리고 남자. 나는 그 영상을 애써 지우려 노력했다.

그냥 보조 스킬을 쓰면서 이상한 걸 본 것뿐이다. 그 아이가 백시후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단 쪽을 공격하는 백시후를 뒤에서 쳐다봤다.

“삐이!”

“……용순아?”

“삐이이!”

그때, 용순이가 갑자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내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시끄럽게 울어 댔다. 왜인지 잔뜩 불안해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백시후는 제단을 점령한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쾅! 콰광!

“윽……!”

백시후의 능력치가 올라갔는데도 결판이 쉽게 나지 않는다. 싸움이 더욱 격렬해져 갔다.

“용순아, 이리 와……!”

“삐이!”

소리쳤으나, 용순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체 왜 저러는 건지. 백시후와 같이 저 정체불명의 몬스터와 싸울 셈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제단 쪽으로 적극적으로 가려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마치…….

곧 뭔가가 다가올 거라고 생각해서 경계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그걸 깨달은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총을 꽉 잡았다.

끼기, 끼기긱.

하지만 수상한 소리는 이상한 데서 들려왔다. 놀란 얼굴로 위를 올려다봤다. 머리 위를 온통 가로막은 천장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로 안에서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게 무슨……!”

“삐이이!”

콰드득. 콰득.

결국 균열이 생긴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경악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부서진 천장의 파편이 머리 위로 떨어지려는 걸 보고 고개를 돌렸다.

“용순아! 백시후!”

하지만 싸우고 있는 백시후에게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용순이 역시 계속 내 쪽을 쳐다보질 않았다.

“윽……!”

제기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눈앞을 새까맣게 만들며 덮쳐 오는 파편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꽉 감았다. 방어 아이템이 있다고 해도, B급인 몸으로 저렇게 큰 파편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쇄애애액.

“……?”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무언가가 순식간에 내 몸을 낚아챘다. 곧 다가올 충격에 질끈 감았던 눈을 크게 뜨자, 내 몸은 공중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파편이 미로를 부수는 게 보였다.

쾅, 콰과광!

“어…….”

날카로운 발톱이 내 어깨를 꽉 붙잡고 있었다. 그게 좀 아팠지만, 파편에 깔려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감격한 얼굴로 외쳤다.

“용식아……!”

“꺄우!”

용식이가 열심히 날갯짓하며 날아다녔다. 역시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 예쁜 것.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용식이는 나를 잡은 채 무너지는 천장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멀쩡한 천장이 왜……. 그리고 용식이는 어디서 온 거지? 설마 저 천장이 무너지면서 같이 온 건가? 그러면 설마 저곳의 천장은…….

“저기랑 무스펠헤임 던전이 이어져 있었던 거야?”

“꺄!”

“헐…….”

작게 물어보는 목소리에 맞다고 하는 듯 용식이가 소리쳤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천장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단단한 돌의 파편과 모래를 쳐다봤다.

이 숨겨진 구역이 무스펠헤임 던전의 사막 아래에 있었다니. 그래서 구덩이에 빠지면서 이쪽으로 올 수 있었던 건가.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에 멍하니 무스펠헤임 던전과 구역 일부분이 합쳐지는 걸 보고 있었다.

[무스펠헤임-SS207. 숨겨진 구역, ‘불의 영역’이 일시적으로 일반 공개 지역으로 전환됩니다.]

[무스펠헤임-SS207. 지역 통합으로 인해 보스 몬스터가 변경됩니다.]

“보스 몬스터……?”

시스템 음성을 듣고 있던 나는 보스 몬스터라는 말에 놀라며 천장에서 계속 쏟아지는 모래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래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균열이 일어난 천장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샌드웜?”

하지만 보통 샌드웜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확연히 크기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머리만 겨우 보이는데도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입을 벌리자 수많은 가시가 그 안에 박혀 있었다. 거대한 몬스터의 옆에 상태 창이 작게 떴다.

「샌드웜 킹

등급: ??

레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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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드웜 킹!

소설에서는 무스펠헤임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달랐다. 게다가 SS급도 아니었다. 이곳, 불의 영역이 일반 지역으로 전환되면서 전혀 다른 몬스터가 보스몹이 된 것이다.

“케에에엑!”

“으아악!”

「시스템 SS-207.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복주머니(B)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상태 이상 ‘공황’의 영향을 받습니다.」

「매끄러운 혀(C)의 효과가 약해집니다.」

「상태 이상 ‘공황’의 영향을 받습니다」

「고양이의 움직임(C)이 무력화됩니다.」

다짜고짜 내지른 보스 몬스터의 상태 이상 공격에 나는 무력하게 당했다. 물론 봉인 당해도 별 볼 일 없는 패시브 스킬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빴다. 귀도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말이다.

“윽…….”

인상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보스 몬스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나? 용식이만 사막에서 떨어진 건가?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샌드웜 킹이 미로가 있던 지역을 짓밟고 어딘가를 향해 성난 몸짓으로 입을 벌렸다.

화르륵!

“……!”

순도 높은 불꽃이 샌드웜 킹에게 달려들었다. 멀리서 봐도 불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성유빈이었다. 설마 혼자서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성유빈의 옆에서 싸우고 있는 강유현이 보였다.

주인공 강유현과 히로인인 성유빈. 이건 할 만한 싸움이었다. 굳이 진한 스킨십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에게 손만 살짝 닿는다면 SS급의 보스 몬스터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용식아! 저쪽으로…….”

가 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왜인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입이 다물어졌다. 이곳, 숨겨진 구역에 입장하면서부터 느꼈던 이상하고 꺼림직한 기분이 다시 스멀스멀 몰려들었다.

“……!”

아니나 다를까, 아래를 내려다보니 미로가 있던 부근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부근으로 검붉은 기운이 무너진 벽돌과 모래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백시후가 싸웠던 그 이상한 몬스터, 역시 죽지 않은 건가? 파편이 저렇게 떨어졌는데도 멀쩡하다니. 아니, 오히려 아까 전보다 기운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샌드웜 킹이 있는 곳과 기묘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곳을 번갈아 쳐다봤다.

어쩌지? 역시 보스 몬스터를 먼저 쓰러트려야 하나. 그래야 던전 클리어가 되고 포털이 열릴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서둘러 강유현과 성유빈이 있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하지만 왜인지 미로가 있던 쪽에 더 시선이 갔다. 그곳에 백시후와 용순이도 묻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둘 다 S급 이상이라 파편에 충격받진 않았을 테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어라?”

아지랑이가 핀 곳을 보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아까까진 수상한 검붉은 기운만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곳에 누군가가 파편을 헤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 환영 같던 몬스터가 본체를 드러낸 건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쪽을 더 자세히 응시했다.

“백시후……?”

하지만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바로 백시후였다. 어둠 속성인 백시후의 주변에는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붉은 기운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그 몬스터의 기색이 느껴졌다. 설마 저 녀석…….

“용식아! 저쪽으로 가자!”

“꺄우…….”

용식이 역시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그다지 내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한 번 더 재촉하자 마지못해 날개를 파닥거렸다. 나와 용식이는 백시후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하아…….”

뜨거운 숨이 내뱉어졌다. 온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마치 나을 수 없는 열병을 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열 따위는 그가 능력자로 각성하고 난 뒤엔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어차피 병든 개새끼처럼 앓아누워도 누구 하나 살가운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백시후는 이를 악물었다. 뇌까지 타 버릴 것 같은 열기가 그를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저 우뚝 서서 밭은 숨을 내쉬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 그냥 재가 되어 버릴까.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백시후!”

“……!”

“정신 차려, 백시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소리치고 있었다. 백시후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흔들리는 시야로 누군가의 모습이 한가득 들어왔다. 백시후가 눈을 깜박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이진.”

한숨처럼 목소리가 작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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