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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98)화 (98/228)
  • 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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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어두컴컴한 공간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던전 안의 이상한 데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뒤늦게 기억이 떠올라 깜짝 놀랐다. 그 제물, 제물거리던 이상한 몬스터는? 용순이는? 그리고…….

    백시후는 어떻게 됐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어둡게만 보였던 주변이 조금은 밝아진 것처럼 보였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어딘가의 창고 안 같았다.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이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이 안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라?’

    밖으로 나갈 문을 찾기 위해 벽을 더듬거리며 가고 있었는데, 무언가가 발에 걸렸다. 시선을 밑으로 떨어트려 사방으로 뻗친 무언가를 쳐다봤다. 잘 보이지 않아서 눈에 힘을 줘야 했다.

    ‘……족쇄?’

    족쇄와 쇠사슬. 그렇게 보였다. 게다가 군데군데 이상한 자국도 보이는 것 같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어.’

    중얼거렸으나 입 밖으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약간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언젠가 비슷한 느낌을 느꼈던 것 같은데. 멍한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주춤거리며 커다란 쇠사슬에서 벗어났다.

    ‘문이다.’

    그냥 깊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눈앞에 보이는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은 이미 반쯤 열려 있었다. 누군가가 여기서 나가고 문을 닫지 않은 건가.

    끼이익.

    ‘……?’

    그런데, 내가 열기도 전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 앞에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누가 연 건 아니다. 보아하니 오래된 것 같은 낡은 철문인데, 반쯤 열려 있던 것 때문에 절로 움직인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다행인 일이다. 문이 두꺼워서 잘 열리지 않았으면 꽤 힘들었을 것 같은데. 나는 곧바로 열려 있는 철문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창고 안을 보고 짐작했지만, 밖도 만만치 않게 어두웠다. 한밤중이었다. 하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창고 안보다는 나은 게, 그나마 커다란 달이 달빛을 뿌려 주변이 조금이나마 더 잘 보였다.

    ‘어…….’

    눈을 한 번 깜박인 나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훑어보았다.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한층 더 심해졌다.

    왜냐하면 창고 밖으로 나온 내 주위에는 쓰러진 사람들로 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퍽, 퍽.

    무언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소리가 창고 밖을 나왔을 때부터 귀를 울리고 있었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

    웬 어린아이가 성인 남성의 머리를 커다란 돌로 내리찍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비쩍 마른 몸으로 돌을 들고 있는 아이의 가느다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돌을 내리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남자의 머리를 퍽, 하고 돌로 내리칠 때마다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욱…….’

    그 모습을 보던 나는 토기가 치밀어 올라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입을 벌렸지만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괴롭기만 했다.

    머릿속은 혼란만 가득했다. 대체 이게 뭐지. 무슨 상황이지.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너무 놀라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바싹 얼어붙어 있던 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어느새 멈췄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기묘한 정적이 주변에 내려앉았다.

    ‘……!’

    얼굴을 들자 새카만 눈과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도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고작 어린아이의 눈인데, 왜인지 소름이 돋았다. 방금 저 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얼굴에 튄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새빨간 피가 달빛을 받아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이는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게 생김새가 익숙했다. 나는 아이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언가가 옭아맨 듯 몸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아이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하지만 말소리가 들린 건 아이 쪽이 아니었다.

    “재밌네.”

    ‘……!’

    내 뒤쪽에서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긴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어 한쪽 어깨에 늘어트린 남자가 피식 웃으며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나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의 시선은 곧장 아이를 향해 있었다.

    설마 내가 보이지 않는 건가? 대체 이게…….

    얼떨떨해하는 사이,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가 나를 지나쳤다. 그리고 주저앉아 있는 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놈은 왜 직접 죽였어?”

    “…….”

    아이는 피에 젖은 돌을 든 채 남자를 올려다봤다. 묘하게 즐거운 기색을 품은 남자의 물음에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흉흉한 눈으로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순간 나는 창고 안에서 봤던 족쇄와 쇠사슬을 떠올렸다.

    설마 그건, 짐승 같은 걸 잡으려고 놔둔 게 아니라, 저 아이를 붙잡아 두려고 썼던 거였나? 창고 안에 저 아이를 가둬 두려고…….

    하지만 대체 왜? 저렇게 비쩍 마른 아이를 굳이 왜 창고에 가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저 아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혼자 쇠사슬을 끊고 창고에서 탈출해서, 이 많은 성인 남자를 죽일 수 있었을까.

    아니, 남자의 머리를 돌로 내리치는 광경을 봤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머리는 더 이상 생각하는 걸 멈추고 말았다. 정말이지 도무지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말 안 해?”

    “…….”

    “곤란한데. 이 작업장 부근은 이제 다 정리할 거라서 말이야.”

    말을 거는 남자의 뒤로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위협적으로 서 있었다. 한눈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게, 예사롭지 않은 자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들도 내가 보이지 않는 듯, 나에게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너 여기 빚 대신 팔려 왔다며? 장기 다 빼낸 애새끼 시체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애새끼 장기 빼내려고 한 놈들 시체가 한 무더기라. 진짜 웃기네. 하하.”

    “…….”

    남자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을씨년스러운 곳에 쨍하니 울려 퍼졌다. 이런 분위기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남자치고 높은 톤의 미성이 유독 귀에 박혔다.

    “그냥 처리하기엔 영 아까운데.”

    ‘……처리?’

    남자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기겁했다. 처리라니. 이 작은 아이를 죽이기라도 한단 말인가.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나는 아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

    아이는 여전히 지독하게 말이 없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변함없이 흉흉했다. 피로 젖은 돌을 움켜잡고 있는 모양새가, 자신의 처리를 운운하는 남자를 향해 금방이라도 휘두를 모양새였다. 그리고 남자의 뒤에 있는 자들도 그런 낌새를 느꼈는지, 아이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만.”

    남자의 한마디에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마치 훈련을 잘 받은 병사들 같았다. 남자는 뒤에 선 자들이 귀찮다는 듯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아이를 내려다봤다.

    “하여간, 말 안 듣는 개는 딱 질색이야.”

    지긋지긋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린 남자가 아이의 얼굴을 꽤 유심히 들여다봤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유쾌해 보이는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너, 얼굴도 꽤 마음에 드는구나.”

    “…….”

    “너 정도면 좋은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겠어.”

    히죽, 웃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를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역할? 무슨 드라마 배우 캐스팅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말들을 주르륵 내뱉는 남자가 상당히 기괴해 보였다.

    하지만 남자의 말을 들으니, 나 역시 아이의 얼굴을 더욱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저 그 흉흉한 눈과 머리를 내리찍는 돌에 정신이 팔려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한 탓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달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 유일하게 있는 가로등 하나가 그 얼굴을 유독 밝게 비추고 있었다.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백시후?’

    음울한 얼굴은 누군가를 무척 닮아 있었다. 바로 백시후였다. 창백한 얼굴에 맺혀 있는 핏방울들이 끔찍하게도 잘 어울렸다.

    그 순간, 아이의 얼굴이 내가 선 쪽을 바라보았다. 곧 그의 얼굴이 작게 일그러졌다. 마치 네가 왜 여기 있냐고 하는 듯이.

    ‘……이진.’

    누군가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나는 그저 두 눈을 깜박이며 서 있었다.

    ‘……한이진!’

    동시에 노호와 같은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놀라며 깜박이던 눈을 부릅떴다.

    “헉……!”

    방금 본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듯,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바로 미로 안의 그 이상한 공간이었다. 나는 꽉 붙들고 있는 백시후의 손을 쳐다봤다.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한이진.”

    “아…… 응, 아니, 네.”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방금 본 게 대체 뭐지? 어지러운 머릿속을 느끼며 불에 타는 듯 뜨거운 손을 움찔거렸다.

    아무리 보조 스킬을 써서라고 해도, 너무 뜨거운데. 아니, 손뿐만이 아니고 온몸이 뜨거운 것 같다. 인상을 찡그리며 앞을 쳐다봤다. 보조 스킬 덕분에 백시후의 능력치가 올랐는지, 패시브 스킬이 무사히 발동한 것 같았다.

    아스……가르드…… 놈들…….

    그때,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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