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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97)화 (97/228)

97화

“뭘…… 어쩌려고?”

“…….”

내 물음에 백시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겨누며 제단 쪽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상하게 열람이 되지 않지만, 저건 분명 몬스터일 것이다. 그것도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물론 다른 몬스터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역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마주쳐서는 안 되는 존재와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정말 모르겠지만, 그만큼 강한 몬스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고의 흐름이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한쪽 손을 까닥거리며 백시후의 등을 응시했다.

보조 스킬을 쓸까? 하지만 개박하는 지속 시간이 짧은 탓에 저 몬스터가 보스몹이 아니라면 더 난감해질 것이다. 조금만 더 상황을 보고 스킬을 쓸지 결정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갑작스럽게 스킬 대상자와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급하게 보조 스킬을 쓰려다가 사달이 나는 때도 있었다. 나는 쉽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제물…….

“큭……!”

“백시후!”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수상한 몬스터가 백시후를 향해 뜨거운 불을 내뿜었다. 검붉은 화염이 넘실거리며 백시후의 몸을 집어삼켰다. 뒤에 서 있어도 느껴지는 흉흉한 기운에 몸이 움찔거렸다.

이상했다. 백시후의 패시브 스킬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백시후는 너무나도 무력하게 공격받았다. 설마 패시브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건가? 그러면 저 몬스터가 정말로 이 구역의 보스몹?

더는 길게 생각하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백시후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으윽……!”

살갗이 타들어 가는 아픔에 이를 악물었다. 더듬거리며 백시후의 손을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검을 꼭 잡고 있는 백시후의 손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정신 차리라고, 이 S급아!

속으로 외쳤다. 우선 개박하 스킬로 백시후의 패시브 스킬을 정상적으로 발동시켜야 했다. 꽉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어……?”

그러나 왜인지 눈앞이 아득해져 갔다. 점점 뜨거운 불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새카맣게 변했다.

‘제길…….’

움직여지지 않는 입술로 겨우 중얼거렸다. 속절없이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의 사이에 감돌고 있었다.

성유빈은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노려봤다.

강유현. 자신의 유일한 가족과 함께 게이트 사고에 휘말렸던 1세대 각성자. 그리고 뻔뻔한 얼굴로 혼자 살아 돌아온 남자. 애써 잊고 있었던 분노가 성유빈의 몸을 활활 태웠다.

서울에 처음 열렸던 재앙과도 같았던 게이트 사태로 성유빈 역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아니, 모두 잃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시신은 확인했지만, 오빠인 성윤재는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게이트 사고에 휘말린 사람들이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게 죽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어, 오빠 역시 그렇게 죽었겠구나 싶었다.

고작 고등학생이었던 성유빈으로서는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시 게이트 사태로 죽은 사람은 수천 명이었고, 실종자는 그보다 더 많았다. 실종자는 단순히 시신을 찾지 못한 것뿐, 나중엔 실종자 가족들 대부분은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5년 후, 게이트 사태에 휘말린 실종자 중 한 명이 기적적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SS급으로 각성한 채로 말이다. 겨우 게이트 사태를 수습하고, 길드의 힘을 키워 각 지역에 발생한 던전을 안정시켰던 정부는 강유현의 존재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가 서울에 처음 열렸던 게이트의 생존자라는 것도 관심에 한몫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300여 명의 실종자는 모두 정식적으로 사망 처리가 되었다. 그중에는 성유빈의 오빠인 성윤재도 있었다.

그때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처음에는 헛된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강유현이 돌아왔으니, 다른 사람도 돌아오지 않을까. 사실 시신을 찾지 못한 오빠는 강유현처럼 게이트 안에서 살아 있었고, 곧 그도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감동적인 재회를 하게 될 거라는 헛된 희망 회로를 돌렸다.

-저를 제외한 능력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건 게이트 안에서 함께 했던 능력자들의 목록입니다.

그 목록에 제 오빠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 성유빈은 일말의 기대가 모두 사라졌음을 느꼈다. 허탈함을 느꼈고, 제 유일한 가족이 두 번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분명 살아 있었다. 성유빈이 죽었다고 생각한 그때에도, 강유현과 게이트 안에서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성유빈은 그런 생각이 들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은 분노와 원망이었다. 혼자 살아 돌아온 강유현이 마치 오빠를 죽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혼자 돌아온 거냐고, 그렇게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곧 그런 분노마저도 성유빈은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능력자로 각성한 후,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격한 감정이 억지로 억눌러질 때가 있었다. 파괴적인 불의 능력은 감정이 격해지면 덩달아 폭주할 위험이 높아지기에, 항상 의식적으로도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했다. 성유빈이 항상 대외적으로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강유현, 그와 제대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게이트 안에서 300년이 넘게 떠돌았다는 그의 얼굴은 자신보다 더 표정이 죽어 있었다. 방금 자신이 일부러 도발적인 말을 했는데도, 감정적인 동요가 전혀 없었다. 성유빈은 강유현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당신 혼자서는 한이진 능력자를 구하지 못해.”

“…….”

“공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애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성유빈이 말을 이었다.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언젠가는 그에게 따져 물어야 하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한이진이 실종된 상태니까 말이다. 그러니 강유현의 이성이 조금이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성유빈이 긴장하며 강유현을 쳐다봤다. 굳게 닫혔던 그의 입술이 서서히 열리는 걸 지켜봤다.

“캬아악!”

“……!”

“……!”

두 사람을 지켜보던 용종 소환수가 별안간 허공에서 새된 울음소리를 냈다. 성유빈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용식……?”

“캬아아, 캬아!”

“윽……!”

공중에서 빙글 돌던 용식이가 아무것도 없는 땅 밑을 노려봤다. 그리고 횡격막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걸 본 성유빈이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일전 세(Sæ) 던전에서 용식이가 브레스를 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봤었다.

콰득, 콰드득.

독 브레스는 주변을 차근차근 녹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강유현과 성유빈도 할 말을 잃고 용식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몸체가 작은데도 S급 용종 소환수의 브레스는 파괴력이 어마어마했다. 광활한 사막은 가죽이 벗겨지는 초식 동물처럼 초라하게 밑바닥을 드러냈다.

“……이건!”

이윽고 보이는 풍경에 성유빈이 눈을 크게 떴다. 용식이의 브레스로 녹지 않는 부분이 치직거리며 타올랐다. 마치 자신의 패시브 스킬과 부딪쳤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고개를 든 성유빈이 강유현을 향해 외쳤다.

“피해!”

“큭……!”

쿠구궁, 땅이 크게 흔들렸다. 거대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샌드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운이었다. 성유빈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스슥, 스스슥. 엄청난 양의 모래가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어느 정도 사정거리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지독한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산이 솟아오른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몸체에 성유빈도, 강유현도 할 말을 잃은 채 그것을 올려다봤다.

‘말도 안 돼.’

무스펠헤임 던전에 저런 게 있다고 듣지 못했다. 분명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저것과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이건 마치 샌드웜이 커진 것 같은 생김새인데,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샌드웜 킹

등급: ??

레벨: ??

?? ?? ?? ??, ?? ?? ??

…….」

“……!”

심지어 성유빈에게는 등급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SS급이라는 말이었다. 저 몬스터는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와 맞먹거나, 아니면 더 강한 존재인 것이다.

스으으으-

마치 바람이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울리는 소리에 성유빈은 제 귀를 의심했다. 이것보다 약한 소리지만, 분명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샌드웜이 상태 이상 ‘공황’을 걸기 전에 내는 소리였다.

“젠장!”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케에에엑!”

“아악!”

귀가 터져 나갈 것 같은 소리에 성유빈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소리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주변에 빗발치는 상태 창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떤 것도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전 처음 겪는 공포에 성유빈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만이 그녀의 몸을 지배했다.

죽을 거야. 이대로 다 죽고 말 거야. 그저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정신 차려!”

“……!”

누군가가 짝, 하고 성유빈의 뺨을 내리쳤다. 퍼뜩 정신을 차린 성유빈이 고개를 들었다. 눈앞이 흐릿했다.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신 차려, 성유빈.”

“강유……현, 능력자.”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이 성유빈을 응시했다. 그 눈빛에 성유빈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남자에게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킨 성유빈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샌드웜 킹을 흘끗 올려다봤다.

“……이제 어쩔 셈입니까.”

“저걸 죽여야지.”

“…….”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구태여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왜? 못 하겠나?”

“…….”

제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문 성유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으로 불길이 확, 하고 불타올랐다.

“아뇨. 저 역시 바라던 일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성유빈과 강유현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강렬한 기운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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