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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95)화 (95/228)
  • 95화

    “삐이이! 삐이!”

    용순이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내 팔에 매달렸다. 그리고 팔을 타고 후다닥 올라와 다시 길게 울었다. 마치 기뻐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용순이는 어깨에 매달려도 그다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화룡이라는 이름답게 몸은 전체적으로 붉고,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몸에 비해 눈이 크고 동그래서 순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어서 그런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귀엽네.”

    “삐이!”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코끝을 살짝 건드리자, 용순이가 또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용식이는 몸이 까맣고 날개가 있어서 서양 전설 속의 드래곤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용순이는 날개가 없고 단순한 도마뱀의 모습이라 그런지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애완 도마뱀이라도 기르게 된 느낌이 들었다.

    “……너, 대체 뭘 한 거지.”

    “아.”

    백시후를 깜빡 잊고 있었다. 용순이를 어깨에 얹은 채 뒤를 돌아봤다. 백시후는 아직도 불길 때문에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다지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 불을 보다가 용순이를 흘끗거렸다.

    용순이가 하고 있는 건가? 막 태어난 아기인데도 불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아니면 혹시 용식이처럼 성체로 변할 수 있는데 아기처럼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용순이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를 으득, 갈고 있는 백시후를 향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얘, 이제 내 소환수 됐으니까 싸우지 마. ……세요.”

    “……소환수?”

    눈살을 찌푸린 백시후가 경계하는 시선으로 나와 용순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긴, 나도 이런 식의 테이밍을 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보통 용식이처럼 보상 아이템으로 얻은 알을 부화시켜서 소환수로 삼으니까 말이다. 던전에서 막 태어난 몬스터를 소환수로 삼는 건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은 얘기였다.

    “던전의 몬스터를 소환수로 삼았다고? 대체…….”

    “…….”

    떨떠름하게 중얼거린 백시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이거 풀어.”

    “정말 얘 해치지 않을 거……죠?”

    “…….”

    내 물음에 백시후가 부리부리하게 눈을 치켜떴다. 저렇게 노려보는데 어떻게 믿으라는 건지. 속으로 혀를 쯧쯧 차다가 용순이를 돌아보았다.

    “용순아.”

    “……삐이.”

    이름만 불러도 용순이는 내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안다는 듯 바람 빠지는 풍선 같은 소리를 냈다. 기분이 좋아 발랄하던 텐션이 한순간에 훅 내려간 것 같았다. 용순이도 어지간히 백시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눈도 제대로 뜨지 않는 자신을 다짜고짜 죽이려고 한 사람인데, 정 붙이기 힘들겠지.

    그럼에도 용순이는 온순하게 불길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큰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기라도 한 듯이.

    “응, 그래. 잘했다. 착해요, 착해.”

    “삐이이!”

    웃으며 넓적한 얼굴을 쓰다듬어 주자, 또 기분이 좋은 듯 길게 울었다. 삐이, 삐이 하며 우는 게 새가 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였다.

    “하아…….”

    “…….”

    한숨을 내쉬는 백시후의 눈치를 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도 이런 소환수 있으면 보스몹 잡을 때도 도움 되고……. 죽이는 것보단 나은 것 같은데…….”

    “…….”

    그리고 용순이도 자신을 어필하려는 듯이 아까보다 더 우렁차게 울었다.

    “삐이! 삐이익!”

    하지만 소리가 너무 커서 역효과인 것 같았다. 백시후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시끄러우니까 닥치라고 해.”

    “……넵.”

    고개를 끄덕이고 용순이의 콧등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용순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입꼬리를 더 올렸다.

    진짜 웃는 것처럼 보이네. 신기하다.

    용순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샌가 백시후가 몸을 돌려 걸어가고 있었다. 용순이를 어깨에 올린 채 헐레벌떡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같이 가! ……요!”

    “삐!”

    “…….”

    불길이 사그라든 땅을 밟으며 백시후의 뒤에 바싹 붙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멈춰!”

    “…….”

    강유현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달려갔다. 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던 성유빈이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멈추라고! 강유현!”

    “…….”

    뙤약볕 아래에서 벌써 몇 시간 째 쉬지도 않고 강행군을 이어 가고 있었다. SS급이라 힘이 넘치는 강유현이라면 몰라도, 다른 능력자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지쳐 나가떨어졌다. 같은 S급이라고 해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강유현을 따라가고 있는 건 이제 성유빈밖에는 없었다.

    “제길, 빌어먹을 놈.”

    흉흉한 눈으로 강유현을 욕한 성유빈이 이를 악물었다. 눈이 뒤집힌 건 그의 앞에서 날아가고 있는 용종 소환수도 마찬가지였다. 전과는 다르게 주인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성체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제 주인을 찾겠다는 집념만큼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둘이 참 죽이 잘 맞았다.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꼴이 말이다. 성유빈이 속으로 혀를 차며 점점 더 속도를 높였다.

    뒤에 남겨진 공대의 안전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템으로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고, 길잡이까지 있으니 길을 잃지는 않을 터였다. 강유현과 용종 소환수가 앞에서 실컷 어그로를 끌고 있기 때문에 몬스터들도 죄다 이쪽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처치해야 하지 않나. 느껴지는 샌드웜의 기척이 한둘이 아니었다.

    쿠구구구!

    “윽……!”

    달려가던 성유빈의 몸이 기우뚱하게 기울여졌다. 급하게 자세를 잡자마자 눈앞에 무언가가 튀어 올랐는데, 그게 순식간에 갈가리 찢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를 앞서가던 한 능력자와 소환수 때문이었다.

    ‘미친놈들…….’

    기어코 성유빈마저 경악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렇게 던전 안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다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마 이대로 보스 몬스터까지 물리치려는 건 아니겠지. 성유빈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보조 스킬을 받지 않고 이 인원으로 보스 몬스터를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건 자살행위다. 이대로 돌진하면 죽는다. 성유빈의 촉이 그렇게 외쳤다.

    “……강유현!”

    “…….”

    이를 으득, 간 성유빈이 강유현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외쳤다.

    “당신과 게이트에 갇혔던 다른 능력자들처럼 다 개죽음당하게 할 셈입니까!”

    “…….”

    그 말에 겨우 강유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특이하게 그가 멈추자 앞서가던 용종 소환수도 움직임을 딱 멈췄다. 물론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강유현과 성유빈을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강유현과 성유빈의 눈이 서로 부딪쳤다. 그동안 서로 외면하려고만 했던 일이었다. 성유빈의 눈이 태양 빛 아래에서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당신 혼자 죽는다면 나도 말리지 않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 목숨도 달려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

    “왜? 이 던전에서도 혼자만 살아서 돌아갈 셈인가?”

    비아냥거리는 말에도 강유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잠깐이라도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성유빈이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뒤에 남겨진 공대가 보이지는 않았다.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공대와 합류해야 한다.

    잠깐 사이에 생각을 정리한 성유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열사병에 걸린 능력자들 체크해!”

    “네!”

    “포션 얼마나 남아 있지?”

    “그건…….”

    한편, 뒤에 남겨진 공대는 어수선했다. 계속된 강행군에 지쳐 쓰러진 능력자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하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그래도 어떻게든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의 불행은 시작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기분에 더운 사막에서도 괜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 이게 그냥 기분 탓인가? 서하준이 파르르 떨리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한이진과 구덩이에 빠졌을 때부터 몸이 이상했다. 지금도 그랬다. 아까부터 이상한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우욱……!”

    허리를 굽힌 서하준이 우웩, 하고 속을 게워 냈다. 다른 능력자들은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그를 전혀 살피지 못했다. 괴로워하는 그의 뒤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흠, 역시 부작용이 심한가 보네.”

    “누, 누구…… 윽!”

    뒤를 돌아보려는 그의 뒷머리를 한 손으로 꽉 잡아 눌렀다. S급 능력자인 서하준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그의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리고 곧 멍해지기 시작했다.

    “S급은 암시를 거는 게 쉽지 않단 말이지.”

    “으…….”

    혀를 쯧쯧, 하고 찬 다음 싸늘한 눈으로 서하준을 내려다보았다. 꺽꺽대는 서하준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그의 눈이 선명한 금색으로 빛났다.

    “예정이랑 좀 틀어지긴 했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으려나?”

    곧 그의 눈이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마치 나쁜 장난을 치려는 악동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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