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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94)화 (94/228)

94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구만…….”

“…….”

투덜거리듯이 말하자 백시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혼잣말하는 것도 존댓말 써야 해? 이 망할 꼰대 같으니…….

노려보는 눈길에 지지 않고 마주 보다가 슬쩍 시선을 내렸다. 몬스터에게 물려서 피가 났던 손가락은 어느새 멀쩡해져 있었다. 피가 제법 많이 나는 것 같더니, 성유빈이 줬던 방어 아이템 덕분인가? 어쩌면 이 정도로 끝나는 게 다행인지도.

그런데 손에 피가 제법 묻어서 찝찝했다. 그냥 대충 옷에 닦거나 내버려 두기엔 꽤 많은 양이었다. 인벤토리에 쓸 만한 게 있나 싶어서 손을 움직였을 때였다.

“너…….”

“……?”

백시후가 눈살을 찌푸린 채 내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상처를 걱정해 주는 건 아닐 테고,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표정이 흉흉했다.

“왜, 왜……요?”

“…….”

아니, 대체 왜 저렇게 무서운 표정이냐고.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나자 백시후의 시선이 계속 따라붙었다. 집요한 눈길이 피가 묻은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데, 백시후가 손을 뻗었다.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피가 묻은 내 손을 꽉 잡았다. 놀라서 몸이 펄쩍 뛰었다.

“으악!”

“…….”

백시후는 내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도 깜박하지 않으며 내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모습을 멍청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했다. 백시후의 새하얀 얼굴과 대비되는 붉은 혀가 비현실적인 광경처럼 보였다. 그러다 사이렌이 울리는 것처럼 머릿속이 왱왱댔다.

“야! 백시후!”

이대로 백시후를 놔두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백시후가 하려는 짓을 말리려고 다른 쪽의 손을 뻗었을 때였다.

쾅!

“……!”

“……!”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나는 물론이고 백시후마저 흠칫거릴 정도로 큰 폭발음이었다.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뭐지?”

“…….”

저 멀리서 새빨간 불이 치솟아 올랐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지며 곳곳에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악, 뜨거워!”

시뻘건 불이 내 옆을 훅 지나갔다. 갑작스럽게 바뀐 풍경에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백시후에게 잡힌 손도 자유로워져 있었다.

“야, 잠깐만……!”

백시후는 처음 불길이 일어난 곳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부르는데도 멈추는 기색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간다.

“……요! 야!”

뒤늦게 나도 백시후의 뒤를 따라갔다.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설마 보스 몬스터가 등장한 건가? 불의 영역이라고 불린 곳이니, 보스 몬스터는 당연히 불 속성일 확률이 높았다. 무시무시한 화염이 피부를 태워 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과연 백시후와 둘이서 클리어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만약 보조 스킬로도 백시후가 보스 몬스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그럼 백시후도 죽고, 나도 죽는 거다. 그런 일만큼은 사양이었다.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팽팽 돌렸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스킬 발동 조건: 대상자와 직접적인 스킨십이 필요함」

「스킨십의 강도가 높을수록 효과가 높아집니다.」

‘제길, 제기랄……!’

다시금 개박하 스킬의 설명을 떠올리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강유현은 점막끼리 접촉하고 나서 SS급 보스 몬스터인 드라우그 킹을 쓰러트렸다. 그렇다면 백시후와는 얼마나 진한 스킨십을 해야 이곳의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대체 이 스킬은 어디까지 나를 시험할 셈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겨우 백시후의 뒤를 따라잡았다.

“헉, 헉……. 으어, 잠깐…….”

“…….”

숨을 몰아쉬며 겨우 백시후의 등 뒤에 다가갔다. 목석처럼 서 있던 백시후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이진.”

“응……? 아니, 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 얼떨결에 대답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시후가 보였다.

뭘 봤길래 저러지? 호기심이 생긴 나도 백시후의 등 너머를 슬쩍 훔쳐봤다.

“꾸에에엑!”

“……!”

장작불처럼 타오르는 불길 안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꾸엑, 꾸엑, 울고 있는 작은 도마뱀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화룡 샐러맨더

등급: ??

레벨: ??

?? ?? ?? ??, ?? ?? ??

…….」

화룡? 샐러맨더? 저 조그만 도마뱀이?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샐러맨더를 주시했다. 마치 막 태어난 아기처럼 계속해서 빽빽 울기만 하고 있었다. 비록 주변에 일으키는 불길은 예사롭지 않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등급 확인이 안 되는 걸 보면 최소한 A급이라는 말인데……. 얘 설마…….

“저기, 혹시…… 쟤 등급 확인돼? ……요?”

“…….”

가만히 있던 백시후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는 건, 진짜로…….

“쟤가 보스 몬스터……?”

“…….”

놀란 눈으로 샐러맨더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보스몹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보스몹은커녕, 내 손가락을 물어 피를 낸 몬스터보다 더 약해 보였다.

하지만 몬스터는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용식이도 그렇게 작고 귀여운데 독 브레스를 내뿜어 S급 능력자의 얼굴을 녹여 버리지 않았던가. 게다가 성체로도 변할 수 있었고, 그 상태에서 던전의 중간 보스 몬스터와 싸우기도 했었지.

그러니 이 작은 도마뱀을 경계해야 하는 게 맞았다.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는데, 자꾸만 내 손은 빼액, 빼액, 울고 있는 샐러맨더를 만지고 싶어 움찔거렸다.

스릉.

“……?”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맹렬히 고민하던 중, 옆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옆을 돌아보니, 백시후가 검을 꺼내 샐러맨더를 겨누고 있었다.

“자, 잠깐. 뭐 하는 거야?”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전에 죽인다.”

“지금 죽인다고?”

깜짝 놀라며 백시후의 앞을 막아섰다.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한 행동이었다.

“비켜.”

“아니, 일단 상황을 좀 보는 게…….”

“상황을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

할 말을 잃고 백시후를 올려다봤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아무리 봐도 몬스터인 샐러맨더를 지금 해치우는 게 나았다. 그런데도 왜인지 꺼림직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쩐지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서 비켜.”

“그러니까, 잠깐만…….”

하지만 백시후가 내 말 따위를 들어줄 리가 없었다. 샐러맨더를 지키듯이 등지고 있는 나를 노려보며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샐러맨더와 함께 나까지 공격할 셈인가.

“윽……!”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저 목석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칼날이 나에게로 떨어지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살짝 눈을 떴다.

“큭……!”

“……!”

백시후의 검이 불에 타고 있었다. 아니, 빨간 불꽃이 백시후의 검을 막듯이 주변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거였다.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삐이, 삐!”

“어…….”

샐러맨더가 드디어 제대로 눈을 떴다. 보석을 박은 것 같은 샛노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때, 시스템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샐러맨더(전설급, 용종)가 당신을 부모로 인식합니다.]

[소환수 등록을 하시겠습니까?]

[YES/NO]

“……뭐?”

소환수? 눈앞에 있는 이 작은 도마뱀, 아니, 샐러맨더가 소환수라고?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뒤에서 거친 호통 소리가 들렸다.

“한이진! 또 뭐 하는 짓이야!”

“아.”

백시후가 뒤에 있었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살짝 돌아보았다. 분노한 것처럼 보이는 백시후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게…….”

백시후에게 샐러맨더에 대해 설명을 해 줘야 하는데, 그 전에 또 재촉하는 시스템 음성이 내 귀를 때렸다.

[소환수 등록을 하시겠습니까?]

[YES/NO]

“아, 거참…….”

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이렇게 안달 내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yes’를 선택했다. 소환수를 거절하면 이 아이는 백시후에게 죽을 거고, S급에게도 등급 확인이 되지 않는 용종 소환수가 생긴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소환수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공백 포함 15글자 이내)]

“음…….”

그러고 보니 소환수로 등록하면 이름을 지어 줘야 하지.

어쩐다. 용식이는 미리 이름을 생각했었는데, 얘는 갑작스러운 일이라 이름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삐이, 삐이이.”

“너 혹시…… 여자애니?”

“삐이!”

높은 톤의 울음소리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는데, 마치 그렇다고 하는 듯 샐러맨더가 긴 울음을 내뱉었다. 용식이 여동생 만들어 주는 셈 치면 되려나.

“그럼…… 용순이?”

[…….]

시스템 음성이 별안간 침묵했다. 나는 이유를 몰라서 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떨떠름한 시스템 음성이 다시 들렸다.

[‘용순이’ 소환수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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