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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90)화 (90/228)
  • 90화

    “그렇게 하죠. 서하준 부마스터.”

    “한이진 능력자……!”

    성유빈이 화를 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금방이라도 불꽃을 터트릴 것 같은 성유빈을 돌아보며 가만히 있으라고 눈짓했다. 성유빈의 주변으로 작은 불꽃들이 터지며 타닥거리는 소리를 냈다.

    “대신, 성유빈 능력자의 쿨타임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쉬었으면 하는데요.”

    “음…….”

    개박하는 쿨타임이 24시간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만 쓰는 건 비효율적인 스킬이었다. 하지만 지금 공대에서 믿을 수 있는 S급 능력자는 성유빈뿐이었다. 샌드웜의 정신 이상 스킬에도 꿋꿋하게 일어난 건 성유빈이 유일했으니까 말이다. 서하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후 저희 쪽 지시에 지체 없이 따라 주셨으면 하는군요.”

    “……알겠습니다.”

    왜인지 모를 찝찝함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서하준과 티르 길드원들이 먼저 휙, 몸을 돌려 오아시스 한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서하준을 끈질기게 노려보던 성유빈 역시 고개를 돌렸다.

    “재수 없는 새끼. 또 무슨 꿍꿍이지.”

    “뭐, 별일 없겠죠.”

    “당연하죠. 한이진 능력자는 제가 목숨 걸고 지킬 겁니다.”

    “아니, 목숨을 걸 필요까진 없는데…….”

    이글이글 타오르는 성유빈의 눈을 조금 질린 듯이 쳐다봤다. 성유빈의 말은 항상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말투와 눈빛은 진심인데, 진심이라고 믿기 힘든 과격한 말들을 폭풍처럼 쏟아 내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이진아. 내가 지켜 줄게!”

    “꺄우!”

    이든과 용식이도 옆에서 소리쳤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어차피 전투팀으로 이동하는 것도 나 혼자 가는 게 아니었다. 용식이가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테고, 내 호위인 이든도 계속 따라다니겠지. 전투에는 그다지 쓸모없지만, 이든의 능력은 도망치기에 최적이었다.

    “그래, 고맙다.”

    게다가 성유빈의 쿨타임을 이유로 시간을 벌었다. 그때까지 강유현이 오면 좋을 텐데. 오아시스 너머로 보이는 뿌연 사막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무스펠헤임 던전의 포털 입구에 도착한 강유현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선이 광풍이 불어닥친 것 같은 포털 입구를 훑었다. 입구를 지키던 티르 길드의 길드원들이 엉망이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으…….”

    “……!”

    가까이 다가온 사람의 기척을 느낀 건지, 쓰러져 있던 길드원 중 하나가 신음을 내뱉었다. 강유현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윽, 강……유현 능력자?”

    강유현을 알아본 길드원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곧 힘겨운 듯 거친 기침을 토해 냈다. 그의 몸 일부가 검은 기운에 잠식되어 있는 것을 본 강유현이 눈썹을 찌푸렸다.

    “쿨럭, 큭……. 비, 빌런 놈이…….”

    “빌런?”

    날카로운 시선이 엉망이 된 포털 주위를 향했다. 쓰러진 길드원의 옆에 연락용 단말기가 박살 나 있었다. 용의주도한 짓이었다.

    보통은 포털 주변을 지키는 길드원에게서 십 분 이상 연락이 없으면 다른 길드원이 와서 살피게 되어 있다. 던전 입구를 지키는 건 길드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이 습격당한 지 아직 십 분도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강유현이 경직된 얼굴로 일렁이는 포털을 바라보았다.

    “한 명이었습니까?”

    “윽, 네…….”

    “…….”

    간신히 대답하는 길드원에게 포션을 먹인 후 몸을 일으켰다. 부서진 단말기를 보다가 티르 길드 쪽에 연락했다. 안 그래도 길드원과 연락이 안 되어 입구를 살피려 했다는 대답이 들렸다. 곧 포털에 티르 길드원들이 도착할 것이다. 강유현은 서둘러 입구 쪽을 수습하고 경계를 더욱 강화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익숙한 기운. 익숙한 방식. 누군가를 떠올린 강유현이 으득, 이를 갈았다.

    파지직.

    “…….”

    새파랗게 일렁이던 포털이 치직거리며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던전에 등급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강유현은 망설임 없이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사막의 태양이 뜨겁게 작열했다. 내리쬐는 햇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래를 박차며 뛰어나갔다. 던전 안에 입장하자마자 누군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한이진. 그와 꼭 어울리는 파장이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졌다. 마치 보드라운 무언가가 등허리 어딘가를 문지르는 느낌에 강유현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파였다.

    하지만 서둘러 달려가던 강유현은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땅이 흔들리는 느낌에 강유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대한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쿠구구구.

    대부분의 몬스터는 그의 패시브 스킬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이건 패시브 스킬로 막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샌드웜인가.”

    담담하게 중얼거린 강유현이 제자리에 서서 샌드웜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위치를 들킨 이상, 어디를 가도 끈질기게 따라올 것이다. 이런 걸 달고 한이진이 있는 곳에 갈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처치해야 했다.

    “키에에에!”

    불쑥 튀어 오른 샌드웜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강유현의 눈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오류가 해제되었습니다.」

    「엘리바가르의 가호(SS)가 정상 발동합니다.」

    「상태 이상 ‘공황’이 해제되었습니다.」

    「소멸하는 어둠(SS)이 정상 발동합니다.」

    「황혼의 인도자(SS)가 정상 발동합니다.」

    “…….”

    정예 몬스터인 샌드웜은 SS급인 강유현에게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S급에 가까워서 꽤 까다로운 상대였다. 던전 초입에 등장할 몬스터가 아닌데, 등급 이상 현상의 영향임이 분명했다. 마검을 소환한 강유현이 혀를 차며 샌드웜을 향해 휘둘렀다.

    “키아아!”

    “큭.”

    샌드웜은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강유현과 샌드웜의 패시브 스킬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주변에 광풍이 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결말이 뻔했던 싸움이었다. 검은빛을 두른 마검이 샌드웜의 몸통을 꿰뚫으려던 찰나였다.

    “윽……!”

    쾅, 콰광!

    강유현의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을 미처 피하기 전에 샌드웜의 거대한 몸통이 강유현을 덮쳤다.

    「원인 불명의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엘리바가르의 가호(SS)가 일시적으로 무력화됩니다.」

    「원인 불명의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소멸하는 어둠(SS)의 효과가 일시적으로 약해집니다.」

    「원인 불명의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황혼의 인도자(SS)가 일시적으로 발동하지 않습니다.」

    “……!”

    패시브 스킬이 순간적으로 무력화된다는 시스템 창이 우르르 떴다. 강유현의 눈이 커졌다.

    SS급의 패시브 스킬을 무력화시키다니. 드라우그 킹 정도의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기치 못한 일에 조금 당황했으나 찰나였다. 강유현의 의지에 따라 폭발적인 기운을 띤 마검이 요동치며 샌드웜의 몸통을 절반으로 갈랐다.

    “키엑……!”

    “…….”

    쓰러지는 샌드웜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강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샌드웜의 시체 너머로 마검을 휘둘렀다. 무형의 기운이 주변의 땅을 공격했다.

    팍!

    “……쯧, 역시 금방 알아채는군.”

    “백시후.”

    모래밖에 없었던 곳에 사람의 형상이 불쑥 생겨났다. 아까부터 샌드웜과의 전투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백시후였다. 그는 지척에 있는 강유현에게도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흔적을 잘 감추지만, 방금 썼던 아이템 때문에 위치가 탄로 났다.

    비록 한순간이지만 SS급의 패시브 스킬을 강제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니.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강유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랜만이다. 강유현.”

    “…….”

    서로를 마주 본 능력자들 사이의 공기가 사납게 진동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강유현이 백시후를 지그시 응시했다.

    강유현이 300여 년을 헤맨 끝에 겨우 이쪽 세계로 다시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처음 마주친 게 바로 백시후였다. 강유현은 막 빠져나온 포털 앞에서 다른 능력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있던 백시후와 마주쳤던 것이다.

    상황 파악이 잘되진 않았지만, 같은 능력자를 죽이는 백시후의 모습이 그다지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강유현은 다짜고짜 자신에게 달려드는 백시후와 전투를 벌였다.

    그때의 강유현은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백시후와 마주치기 전에 이미 한차례 격한 싸움을 한 뒤였고, 포털을 지나면서 정신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SS급은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때문에 백시후 역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둘은 종종 마주쳤다. 그때는 서로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후였다. 세상을 지키려는 히어로와 세상을 망치려는 빌런. 두 사람을 정의하는 확고한 단어였다. 둘의 사나운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장태산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놈이 목줄을 쥐고 있었나 보지?”

    “…….”

    비아냥거리는 말에 백시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손이 검을 꽉 잡았다. 강유현의 마검과 달리 날이 얇고 긴 검이었다. 그곳에서 심연과 같은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SS급의 스킬을 강제하는 아이템을 로키 길드의 마스터였던 장태산이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백시후의 뒤에는 더 큰 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강유현은 그게 누구인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닥쳐.”

    “…….”

    서로를 불쾌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차피 대화를 길게 할 사이도 아니었다. 검을 든 능력자들의 몸이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쿠르릉.

    “……!”

    “……!”

    땅 밑이 흔들리며 모래가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갈색빛이 흐르는 모래가 두 사람을 덮쳤다.

    무덤덤한 시스템 음성이 주변을 울렸다.

    [……의 간섭에 의해 등급 조정이 이루어집니다.]

    [무스펠헤임-S207의 등급이 SS급으로 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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