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아이구, 고갱님~]
“너 진짜 어떻게 아는 거야?”
[핫핫.]
내 물음에 심단테는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이 심단테가 고갱님에 대해 모르는 건 없습니다.]
“얼씨구.”
스토커냐. 하여간 기분 나쁜 자식.
뭐, 그래도 어쨌든 심단테의 정보력 하나는 혀를 내두를 만했다. 이런 녀석이 다른 마음먹지 않고 기계에만 미쳐서 은둔하는 게 차라리 세상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속으로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뭐가 필요한데?”
[역시 말이 빨리 통해서 좋다니까요. 하하.]
지난 던전에서 심단테가 나에게 요구한 건 무지갯빛 산호초였다. 값어치가 어마어마한 재료 아이템이었다. 그런 고가의 재료를 뻔뻔하게 대량 채집 해 올 것을 요구한 심단테였다. 이번엔 또 뭘 원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심단테에게서 풀풀 풍기는 사기꾼의 냄새를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자식, 설마 비싼 재료 아이템만 날름 먹고 연락 끊는 건 아니겠지?
나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너 그 기계 고치고 있는 건 맞지?”
[아니, 이 심단테를 뭘로 보시고!]
“……도라에X?”
[아니라니까요!]
심단테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귀 터지겠다.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슬쩍 떨어트려 놓았다. 한참 흥분하며 말소리를 높이던 심단테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제 역작을 보여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오, 정말?”
[네, 무스펠헤임 던전에서 돌아오시면 제 연구실을 직접 보여 드리죠.]
“음…….”
그게 가능할까? 지금도 던전 지원 가는 거 아니면 밖에는 돌아다니지도 못하는데. 심단테의 연구실을 간다는 말도 박윤성에게 하지 못 할 텐데 말이다.
“직접 가는 건 못 할 것 같은데.”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쇼!]
“방법?”
[넵!]
제법 자신 있는 말투로 심단테가 대답했다. 그럼에도 의심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떤 방법인데?”
[에이, 기업 비밀인데 말씀드리면 안 되죠.]
“…….”
더더욱 의심스러워졌다. 납치라도 할 셈인가. 그러다 난리 나면 어쩌려고?
“너 오딘 길드한테 싸움 걸려는 거 아니지?”
[제가요? 설마요.]
왜 그런 무서운 짓을 하겠냐며 심단테가 또 한참 입을 나불거렸다. 나는 그 말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자고 있는 용식이에게 다가갔다.
“뀨우우, 뀨우…….”
“그래, 그래.”
잠결에 뒤척이는 용식이에게 담요를 다시 덮어 주고 손으로 토닥거려 주었다. 잠든 용식이를 흐뭇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제 말 듣고 계신 거죠?]
“그럼, 물론이지.”
이번에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연구실을 보여 준다는 심단테의 말을 대충 납득했다. 뭐,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건 그렇고, 무슨 재료 채집하면 되는데?”
[그건 말이죠!]
기다렸다는 듯이 심단테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원하는 재료가 우르르 튀어나왔다.
사막 전갈의 꼬리, 사막 도마뱀의 혀, 사막 선인장의 가시…….
이것들은 채집하는 재료라기보다는 몬스터를 해치우면 드랍하는 잡템들인데. 의아해진 내가 심단테에게 물었다.
“필요한 게 정말 잡템뿐이야?”
[이번엔 그렇게 되었습니다.]
“흠. 왠지 수상한데.”
[아니, 왜 그렇게 저를 못 믿으시는 건데요?]
“당연히 믿음이 안 가지.”
너라면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 애먼 데로 끌고 와서 개고생시키는데 믿을 수 있겠냐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심단테는 찔리는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가 조금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제가 이것저것 도와드리고 있잖아요. 기계도 잘 고치고 있다니까요?]
“그래, 수고해. 도라에X.”
[아, 아니라니까요!]
“응, 수고.”
뒷말은 듣지 않고 그대로 통화를 뚝 끊었다. 핸드폰을 대충 침대 주위에 놓고 시간을 확인했다.
대구로 출발하는 시간은 오전 8시. 아직 잘 시간은 충분했다.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아침, 마중 나온 사람들을 따라 이동했다.
저번에 박윤성이 전용기를 탄다고 해서 근처 공항이나 활주로가 있는 곳으로 가나 했는데, 사람들이 향한 곳은 오딘 길드 건물의 옥상이었다.
뭐야, 여기서 비행기를 어떻게 타? 의문을 가진 내 눈에 보인 건 검은색의 헬기였다.
“……헬기?”
“네.”
“전용기라고 했었잖아요?”
“…….”
내 물음에 연승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용기 맞잖습니까.”
“…….”
시이발…….
전용 비행기, 전용 헬기. 물론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이건 사기 아니냐고!
“난 못 타! 저런 거 못 탄다고!”
“시간이 없습니다.”
“으악!”
싫다고 버티던 나는 꼴사납게 질질 끌려갔다. 뒤늦게 옥상에 올라온 이든과 강수현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부터 숙소에 없던 강유현은 일을 마무리하고 혼자서 대구로 간다고 들었다. 등급이 높은 던전 위주로 투입되는 나와 달리 강유현은 등급 이상 현상의 파동이 적은 등급이 낮은 던전에도 자주 투입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소설에서도 집에 붙어 있을 시간 없이 바빴었지. 이럴 땐 주인공에게 빙의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헬기를 처음 본 나와 마찬가지로 당황하는 표정을 짓던 이든과 강수현은 곧 흥미진진해하며 말했다.
“우와, 헬기 타는 거야? 대박.”
“재밌겠네요.”
“…….”
두 사람이 저러면 내가 겁쟁이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연승원이 나에게 구명조끼를 내밀었다.
“대구까지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냥 타시죠.”
“젠장…….”
구명조끼를 받아 몸에 걸쳤다. 그리고 간단한 안전 교육을 받고 순식간에 헬기 앞으로 다가갔다.
이래도 되는 건가?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빙의하기 전에 살았던 세계에서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조금 남아 있었다. 거기서 봤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헬기 타기 전에 각서 같은 것도 쓰던데.
나는 무표정한 얼굴의 연승원을 돌아보았다.
“혹시 각서 안 써요?”
“각서요?”
“음…… 신체 포기 각서?”
“…….”
그러자 언제나 무표정하던 연승원의 얼굴이 기괴하게 바뀌었다.
“그런 걸 왜 씁니까?”
“아니에요?”
“하…….”
한숨을 내쉰 연승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차분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면책 동의서를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사인하실 필요 없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길드에서 다 처리해 드릴 테니까요.”
“아, 넵.”
“어서 타시죠.”
용식이를 꼭 안은 채 헬기 안에 탔다.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을 흘끗 보는데, 쓸데없이 창이 넓어서 바깥이 환히 보였다.
“이진아,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꺄우!”
“…….”
이든의 말과 용식이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곧바로 헬기의 프로펠러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소리에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중으로 두둥실 뜨기 시작했다.
투두두두.
“시발.”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르던 헬기가 순간 기우뚱거렸다. 고층 옥상인 데다 이른 아침이라 바람이 심하게 분 탓이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듣게 된 헬기 소음은…… 진짜 컸다. 이대로 계속 타면 귀가 멀어 버릴 것 같았다.
“으으윽.”
헬기를 탈 때 헤드폰을 씌어 줬지만 소음을 다 막아 주지는 못했다. 이든과 강수현, 심지어 용식이까지 헬기가 떠오르자 신기해하며 연신 창밖을 내려다봤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으에엑.”
겨우겨우 도착해 헬기에서 내리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바람 때문에 기체가 하도 흔들려서 달팽이관이 망가진 것 같이 머리가 빙빙 돌았다. 허리를 접으면서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괜찮아?”
“안 괜찮…… 으엑.”
“꺄우우.”
그렇게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딘 길드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하아…… 네?”
고개를 들자, 짧은 스포츠머리의 우락부락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위압감이 들어 순간 몸을 움츠렸다.
“네, 그런데요.”
하지만 패시브 스킬 덕분인지 입은 잘만 나불거렸다. 남자의 굵은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저는 티르 길드의 부마스터 서하준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이진 능력자시죠.”
“네…….”
그대로 쌩하니 고개를 돌린 서하준은 이든과 강수현에게도 비슷한 태도로 인사를 나누더니 곧바로 몸을 돌렸다.
“따라오시죠.”
“…….”
“…….”
저 새끼 좀 재수 없네.
이든이 눈으로 하는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형 길드의 부마스터에게 불만을 표현할 수 없으니 입을 꾹 다물고 따라갔다.
문득 프레이야 길드의 부마스터였던 선율이가 떠올랐다. 둘 다 대형 길드의 부길마라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그녀와 비교하고 말았다. 아직 첫 만남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하준은 선율이와 느낌이 좀 달랐다. 선율이 역시 첫 만남에서 친절이라는 단어와 극히 먼 태도를 보였지만, 그게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서하준이라는 놈은 어딘지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게이트 앞으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무스펠헤임 던전을 이미 한 번 클리어에 실패한 티르 길드는 마음이 급한 듯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동 수치가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지. 전문가들이 분석한 것보다 이상 현상이 급변해서 다른 길드들도 급하게 지원하러 온다고 들었다.
서하준의 첫인상 따윈 차치하고, 우선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수도 있는 무스펠헤임 던전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소설을 읽은 나는 주인공인 강유현만 있다면 가뿐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부담감이 크겠지.
게이트 앞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강유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