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82)화 (82/228)
  • 82화

    “말씀하십시오.”

    “음, 그게요.”

    소회의실 안에서 박윤성과 마주 앉았다. 나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도결이가, 훈련이 잘 끝나면 퇴원하고 병원을 나와야 하잖아요.”

    “그렇죠.”

    지난 면회일에 알게 된 도결이의 스킬 정보를 정리해서 연승원에게 전했었다. 연승원은 그 정보를 토대로 전문가를 초빙해서 훈련 스케줄을 잡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도결이는 똑똑하니까 금방 능력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훈련을 받고 난 다음이다. 협회에서 무사히 승인을 받으면 도결이가 병원에서 나올 수 있을 텐데, 그 후에 거취 문제가 걱정이었다.

    도결이도 나처럼 오딘 길드와 임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당연히 편의를 봐주겠지만, 이 숙소에서 같이 살게 해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물어는 보자 싶었다.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혹시 도결이가 여기서 저랑 같이 지내도 괜찮을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박윤성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당연히 여기서 지내야죠.”

    “그, 그래요?”

    “오딘 길드에서 이곳보다 보안이 뛰어난 숙소는 없습니다.”

    “어…….”

    내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박윤성은 너무나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왜 괜한 걱정을 하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서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음, 그러니까.”

    생각해 보니 S급 정신계 능력자인 도결이가 정식으로 발표되면 나 못지않게 관심이 치솟을 것 같았다. 협회나 빌런 길드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을 테고. 그런 도결이를 보안이 한층 낮은 숙소에서 지내게 하는 건 확실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도 집주인이 강유현이잖아. 자기 집을 용케 공용 숙소로 해 줄 마음이 들었구나 싶었는데, 과연 도결이까지 용납해 줄까. 강유현이 제일 싫어하는 게 어린애들이란 말이지.

    “강유현이…… 그, 괜찮아 할까요?”

    “강유현 능력자 말입니까?”

    “네.”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윤성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아니, 난 진지한데 왜 웃는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짜죠?”

    “하하, 네.”

    박윤성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두 분이 저번 던전에서 조금은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군요.”

    “저랑 강유현이요?”

    이 사람이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주인공이랑 가까워지다니, 완벽한 데드 플래그잖아. 나는 이대로 강유현과 거리 두기 하다가 안전하게 손절할 거라고. 나를 죽일 주인공도, 능력자도 없는 완벽한 세상으로 돌아가서 말이지.

    “아무튼 그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아, 네.”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나는 그대로 소회의실을 나왔다. 넓은 회의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강유현은 처음부터 바쁜 일이 있다고 브리핑에 빠졌었고, 이든과 강수현은 내가 말한 대로 게임방에 가 있을 것이다.

    “꺄우.”

    “그래, 그래. 가자.”

    졸려 하는 용식이를 방에 데려가 재우고, 나는 다시 방을 나왔다. 지하에 있는 게임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수현이는?”

    그러나 게임방 안의 VR 기계 앞에는 이든 혼자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이든이 시큰둥한 어조로 대답했다.

    “자기 방에 있을걸?”

    “그래?”

    강수현은 아무래도 VR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몇 번 같이 하긴 했는데, 꼭 내가 자리를 비우면 자기 방으로 돌아간단 말이지.

    설마 요즘 어린애들이 VR 게임을 구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괜히 뒤늦게 유행 지난 게임에 빠져든 꼰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진아, 시작한다.”

    “어, 그래.”

    이든의 말에 서둘러 VR 장비를 얼굴에 썼다. 당연히 언제나 하던 좀비 슈팅 게임을 틀 거라고 생각하고 컨트롤러를 두 손으로 꾹 잡았다.

    곧 눈앞의 세상이 바뀌었다.

    “……응?”

    그런데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좀비 게임의 첫 시작은 다 무너진 건물 앞이다. 원래는 거기서 튜토리얼을 하고 넘어가는데, 우리는 튜토리얼을 다 끝냈기 때문에 저장한 곳으로 바로 이동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주변은 무척 어두웠다. 새카만 곳 한가운데서 나와 이든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여기 어디야?”

    “미안, 내가 뭘 잘못 눌렀나 봐.”

    “그럼 빨리…….”

    으스스한 게 왜인지 기분이 나쁜 곳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비석 같은 게 눈에 보였다. 그걸 본 나는 삐거덕거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여기가 어떤 장소인지 알고 그대로 사고가 멈췄다.

    “어? 이거 왜 안 되지?”

    컨트롤러 조작이 잘 안 되는 듯, 이든이 짜증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그런 다음 컨트롤러를 잡은 손을 위아래로 탈탈 털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우리에게 훅 하고 다가왔다.

    [히히히히.]

    “으아아악!”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여자 귀신을 피해 무작정 몸을 움직였다. VR 게임은 쓸데없이 모습과 동작이 리얼해서 진짜 귀신이 나를 덮치는 것 같았다.

    “저리 가!”

    “이진아, 좀 진정…….”

    “으아악!”

    옆에 있는 이든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거의 VR 존 구석까지 몰려서 발발 떨자, 그제야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헉, 헉…….”

    “이진아, 괜찮아?”

    “……응?”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는데, 물어오는 이든의 목소리가 유독 가깝게 들렸다. 나는 머리에 쓰고 있던 VR 장비를 벗었다.

    “헉, 깜짝이야.”

    코앞에서 분홍색 눈동자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VR 게임 귀신에 너무 놀라서 이든에게 덥석 안겨 있던 것이었다.

    “괘, 괜찮아.”

    헛기침을 하고 이든의 가슴팍을 손으로 밀어 냈다. 하지만 나를 끌어안은 이든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발. 위험 상황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번엔 다른 결의 경고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우리 이진이 많이 놀랐구나.”

    “아, 기분 나쁘니까 좀 꺼져!”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든을 계속해서 밀어 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는 왜 맨날 장난치는 게 이런 식이야.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짜증이 난 나는 결국 손에 들고 있던 VR 장비를 이든의 머리통을 향해 휘둘렀다.

    “악!”

    퍽, 하는 소리와 이든이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몸을 옭아매던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품 안에서 잽싸게 벗어났다. 그런 나를 보며 이든이 얻어맞은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너무해.”

    “또 그러면 손모가지 부러트려 버린다.”

    “정말?”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 이든의 얼굴에 수상한 기색이 어른거렸다. 머리를 맞아 아파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는 눈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썹을 팍 일그러트렸다.

    “기대된다.”

    “아, 씨발.”

    이 기분 나쁜 새끼가 진짜. 왜 하필 변태 짓에 재미가 들려서는.

    흥분해서 달려드는 건 오히려 변태를 더욱 자극하기만 할 뿐이다. 욕설을 줄줄 내뱉을 것 같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도 귀신 때문에 놀란 가슴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귀신이 그렇게 무서워? 좀비랑 뭐가 다르다고.”

    “뭐라고? 당연히 다르지!”

    내가 땅바닥에 패대기친 컨트롤러와 VR 장비를 주우며 이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비와 귀신의 차이점을 모르는 이든을 향해 열변을 토했다.

    “좀비는 총으로 쏴 죽일 수 있는데, 귀신은 못 죽이잖아!”

    “아까 그것도 총 쏴서 없애는 거였을걸? 같은 슈팅 게임이었잖아.”

    “어……?”

    아니, 뭐 그런 게임이 다 있어? 귀신을 어떻게 총으로 죽이냐고.

    게다가 배경은 깜깜한 공동묘지에, 느닷없이 갑자기 귀신이 툭 튀어나오다니 말이야. 총 쏘는 법도 안 알려 주고 대뜸 그러는 게 어디 있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던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무슨 게임이 저 따위야.”

    “좀비 다시 틀까?”

    “에이씨.”

    내 몫의 VR 장비들을 들고 실실 웃고 있는 이든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에게서 빼앗듯이 장비들을 가져왔다.

    그래도 역시 슈팅 게임은 못 참지. 이든이 제대로 게임을 바꾼 걸 확인하고 VR 장비를 다시 머리에 썼다.

    ***

    “도로롱, 도로롱…….”

    방으로 돌아온 나는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용식이를 확인하고 픽 웃었다.

    던전에서 성체로 보스몹과 싸웠던 게 힘들긴 했는지, 용식이는 숙소에 돌아온 다음 부쩍 마수석을 많이 먹고 잠도 많이 잤다.

    내일 또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괜찮으려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용식이를 보다가 씻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계속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분리 불안이 심한 용식이를 혼자 두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방으로 가서 핸드폰을 들었다. 게임을 하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깨톡이 꽤 쌓여 있었다.

    「유나유나: 이거 보셨어요??」

    「사진」

    「사진」

    뭔가 하고 보니, 너튜브 영상에서 용식이가 클로즈업해서 잡힌 부분을 팬들이 짤방으로 만들어 꾸민 사진이었다. 보자마자 저장을 눌렀다. 다음 사진도 저장, 저장.

    사진을 보내 준 유나유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방금 보낸 것 같은 메시지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심단테 : 고갱님~ 내일 무스펠헤임 던전 들어가신다면서요~?^^」

    “…….”

    이 새끼는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눈살을 찌푸린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