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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80)화 (80/228)
  • 80화

    “열이 좀 나는 거 같은데?”

    “……!”

    강유현의 이마가 좀 뜨거웠다. 한 손을 강유현의 이마 위에 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스킬을 썼을 때 손바닥이 뜨거워진 것 못지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뭐 하는 짓이야.”

    “어?”

    눈살을 찌푸린 강유현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기분 나쁜 듯 일그러진 얼굴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맙소사. 겁도 없이 주인공 얼굴에 손을 대다니. 제정신인가? 화들짝 놀라며 이마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어, 미안.”

    “…….”

    그러나 강유현에게 잡힌 손목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해서 쳐다보니 강유현이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왜?”

    “너 진짜…….”

    입술을 달싹거리던 강유현이 또다시 뜨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나는 맹수 앞에 서 있는 초식 동물처럼 몸을 움츠렸다.

    도저히 힘을 주체할 수 없는 거라면 다른 데서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좋겠다. 기분 나쁘다고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으악!”

    강유현이 손목을 잡은 손을 위로 올리자, 그대로 몸이 휙 들렸다. 그리고 뒤로 넘어졌다. 부드러운 천의 감촉과 함께 출렁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설마 침대? 뒤에 있던 게 침대였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야……!”

    “가만히 있어.”

    내 몸을 찍어 누른 강유현의 목에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강유현의 밑에 깔린 채 눈을 크게 떴다.

    “왜, 왜 이러는데?”

    “…….”

    마주친 강유현의 눈이 평소보다 더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도, 단단히 화가 난 게 틀림없었다.

    이대로 목을 조르는 거 아니야? 처음 만났을 때 강유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겁을 집어먹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잠깐……!”

    그러나 나에게 다가온 건 솥뚜껑 같은 손이 아닌, 강유현의 얼굴이었다. 고개를 숙인 그가 그대로 푹 고꾸라졌다.

    “윽…….”

    “……응?”

    누워 있는 내 얼굴 옆에 고개를 처박은 강유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부작용이 온 건가?

    힘을 쓰지 못하는 강유현을 살짝 밀어 내고 몸을 일으켰다. 한창 보고 있었던 드라마가 끝나 있었다. 검은 화면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지속 시간 1시간. 1화가 1시간짜리인 드라마.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괜……찮냐?”

    꼼짝도 하지 않는 강유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잔뜩 날이 선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젠장, 또…….”

    “…….”

    애석하게도 나 역시 강유현에게 부작용이 일어나는 이유를 모른다. 그러니 이건 진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망하려면 부작용 같은 걸 설정한 시스템을 원망해야지.

    “나 그럼 이만 간다?”

    “……기다려.”

    “미안!”

    슬금슬금 몸을 뒤로 뺀 다음 잽싸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 먹지 못한 감자칩도 챙겼다. 그대로 쏜살같이 달려 강유현의 방을 뛰쳐나왔다.

    “후, 죽는 줄 알았네.”

    마치 사자 우리에서 간신히 도망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목 부근이 서늘해서 괜히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

    “형!”

    “도결아!”

    양팔을 크게 벌리자 도결이가 달려와 푹 안겼다. 나는 도결이의 마른 어깨를 손바닥으로 살짝 두드렸다.

    “잘 있었어?”

    “응, 형이랑 용식이 너튜브 나온 거 봤어!”

    “그거 봤어?”

    “당연하지! 형, 너무 멋있었어.”

    “꺄우!”

    “용식이도 귀여웠어.”

    도결이가 손을 뻗어 용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오늘은 도결이의 면회 날이었다.

    면회라고는 해도 도결이가 아픈 원인이 병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그다지 지키지 않아도 될 규칙이다. 하지만 일단은 도결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말을 맞춰 놨기 때문에 면회일을 지키는 시늉은 해야 했다.

    “어디 보자. 밥은 잘 먹었어?”

    “응.”

    “병원 밥 맛없지?”

    “그래도 여기는 전에 있던 곳보다 맛있어.”

    “그래?”

    “응!”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도결이를 보며 미소 지은 나는 인벤토리를 뒤졌다. 그리고 숙소에서 먹었던 과자들을 꺼냈다.

    “우와.”

    “먹고 싶은 거 먹어.”

    “이거 다 먹어도 돼?”

    “음.”

    오딘 길드에서 신경 써 주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마른 도결이의 몸을 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저 작은 몸으로는 내가 꺼내 놓은 과자를 반도 못 먹을 것 같은데.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어.”

    “와아.”

    도결이는 살이 더 쪄야 한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애를 얼마나 굶긴 건지, 뼈만 앙상해서 볼 때마다 속상했다.

    “용식이 지지야.”

    “뀨우…….”

    도결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용식이도 탐이 났는지 자꾸만 과자가 있는 쪽을 기웃거렸다. 그래서 한마디하고 손을 내저으니 용식이가 귀를 축 늘어뜨리며 내 눈치를 봤다.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지만, 얼마 전 최상급 마수석과 비싼 이그드라실의 나뭇가지를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낮잠을 자던 용식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안 되지, 안 돼. 소환수가 인간의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어떡하려고. 이번엔 내가 제법 강경하게 나가자 용식이가 끼잉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거 맛있다.”

    “그게 마음에 들어?”

    “응.”

    “다음에 더 가져올게.”

    도결이가 특히 마음에 들어 한 건 초콜릿이 듬뿍 발라져 있는 과자였다. 도결이는 초콜릿을 좋아하는구나. 머릿속에 입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결아.”

    “응?”

    주스를 마시던 도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눈을 보며 박윤성이 했던 말을 다시 상기했다.

    내가 던전에 가 있는 동안, 도결이는 각성 센터에서 정식으로 S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공표하지는 못했다. 아직 병원을 벗어나기엔 도결이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결이는 이제 나 말고 다른 사람과도 슬슬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뛰어난 상담의이자 히로인인 오서현 덕분이었다. 그녀와 상담을 시작하면서 남들과 간단한 대화 정도는 주고받게 되었는데 길게 이어지지는 못한다고 했다. 능력자가 아닌 사람들은 특히 금방 도결이의 감정에 휩쓸려서 긴 대화를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도결이가 협회의 눈에 띄거나 국가 기관에 감시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여기 오시는 서현 원장님 어때? 잘 지내고 있어?”

    “서현 누나?”

    “응.”

    벌써 누나라고 부르는구나. 두 사람이 친해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응, 친절하고 좋아. 근데…….”

    활짝 웃던 도결이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나랑 있으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

    역시 눈치채고 있구나. 오서현 딴에는 숨기려고 했을 텐데.

    착잡한 눈으로 도결이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전에 말했지? 네가 아팠던 건 병 때문이 아니었다고.”

    “……응, 나도 능력자라고 했었잖아.”

    “너의 능력은…… 컨트롤하지 못하면 같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어. 네가 아픈 것처럼 말이야.”

    “…….”

    “괜찮아. 훈련하면 나아질 테니까.”

    “훈련?”

    도결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계 스킬을 가진 능력자는 국내에서 많지 않았다. 하물며 S급이라니. 도결이를 훈련시킬 전문가는 아마도 해외에서 초빙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서현은 심적으로 피폐해진 도결이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테지만 능력이나 스킬 부분에서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도결이의 정신계 스킬이 어떤 유형인지 알아야 했다.

    “도결아, 상태 창 부를 수 있지?”

    “어…… 아마도?”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결이가 어색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상태 창을 불러낸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거기 움직여서 스킬 부분 봐 봐.”

    “응, 봤어.”

    “혹시 무슨 스킬들 있는지 알려 줄 수 있어?”

    “음…… 그게.”

    상태 창을 바라보는 듯 허공을 응시하던 도결이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있는 건 ‘거짓된 진실.’ S급이고 어떤 능력이냐면…….”

    도결이는 그대로 상태 창에 있는 내용을 줄줄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습에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 잠깐만. 도결아.”

    “응?”

    “그렇게 남한테 스킬 내용 다 알려 주면 안 돼.”

    “왜?”

    “왜라니.”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며 난감함을 느꼈다.

    능력자가 자신의 스킬을 어느 정도 숨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한이진은 보조 스킬이 있다는 걸 장태산에게 숨겼었다.

    능력자들에게 있어서 스킬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다른 경쟁 길드나 능력자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스킬을 함부로 알려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자신이 능력자라는 걸 막 알게 된 도결이는 어리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유를 차근하게 알려 주려는데, 도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하지만 형은 남이 아니잖아.”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도결이가 이렇게 나를 믿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이유를 알 수 없이 가슴속이 술렁거렸다.

    내가 왜 이러지. 당황스럽게 술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도결이에게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능력자끼리는 웬만해선 자신의 스킬을 함부로 알려 주지 않아.”

    “…….”

    “특히 너 같은 귀한 능력을 가진 S급은 조심해야 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알았어.”

    도결이는 불만이 있는 듯 입술을 비죽이면서도 내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안심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대충 어떤 능력인지만 말해 줄래? 가장 등급이 높은 스킬부터.”

    “음, 그러니까…….”

    스킬 내용을 눈으로 쭉 훑은 도결이가 입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도결이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

    대체 어떤 스킬이길래?

    의아함을 느끼며 도결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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