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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76)화 (76/228)

76화

“그럼 두 분은 중간에 깜짝 등장하는 형식으로 출연하는 건 어떨까요?”

“그러든지.”

이든이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했다. 겉으로는 쌀쌀맞아 보이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 유나유나를 앞에 두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을 테지.

하지만 아쉽게도 유나유나는 주인공인 강유현에게 반할 예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쟁 상대가 너무 강력한 것 같다. 조금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든과 강수현을 쳐다봤다.

“너희도 메이크업 받고 와.”

“귀찮은데…….”

“그거 꼭 해야 해요?”

“음…….”

나는 스튜디오에 오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메이크업과 헤어 세팅을 받았다. 얼굴에 이것저것 치덕치덕 바르고, 머리카락도 평소보다 탱글탱글하게 변해서 좀 어색하긴 하지만 동영상을 찍어야 하니 그러려니 하며 참았다.

이든과 강수현은 잠깐 출연하는 거니까 안 해도 괜찮으려나? 그래도 받는 게 좋지 않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꺄우!”

“으앗!”

용식이가 펄쩍 뛰어올라 내 가슴팍에 매달렸다. 나는 놀라며 용식이를 끌어안았다.

“너도 다 끝났어?”

“꺄아우!”

용식이 역시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꾸며 주었다. 뭘 발랐는지 거칠었던 용식이의 피부가 더 반들반들해져 있었다. 그리고 목 부근에는 앙증맞은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응, 귀엽다. 우리 용식이.”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싫었을 텐데 의젓하게 잘 참은 용식이를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도 메이크업 받고 올래.”

“저도요.”

“……?”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든과 강수현을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어? 그럼 그래라.”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얼떨떨한 얼굴로 응시하다가, 옆에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유나유나를 돌아보았다.

뭐지? 저 두 사람 다 히로인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건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나를 향해 유나유나가 입을 열었다.

“저, 근데…… 강유현 능력자님은요?”

“강유현이요? 아마 곧 나올걸요.”

신이 내린 얼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길쭉한 기럭지에 조금이라도 더 어울릴 만한 옷을 수도 없이 갈아입히고 있는 건지, 유독 강유현의 준비 시간이 길었다. 나는 이 역시 주인공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유나유나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순간 나도 잠시 넋을 놓았을 정도였다.

항상 시커먼 옷만 입던 강유현에게 갈색 트렌치코트라니. 코디가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한이진.”

“어, 어?”

가까이 다가온 강유현이 날 내려다봤다. 멍하니 그를 보고 있던 나는 느릿하게 두 눈을 깜박였다. 뒤늦게 너무 멍청한 반응을 보였다는 걸 자각했다.

“흠, 왜?”

“…….”

강유현의 눈이 어딘가 삐딱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왜인지 탐탁지 않아 보였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강유현이 불쑥 손을 뻗었다.

“셔츠가 왜 이렇게 벌어져 있어.”

“으윽!”

억센 손이 풀어져 있던 셔츠를 목 끝까지 잠가 버렸다. 무방비하게 서 있던 나는 목이 졸리는 느낌에 신음을 내뱉었다.

“캬아!”

용식이가 가시를 세우며 위협적으로 울었다. 강유현의 손에서 벗어난 나는 다급하게 단추 하나를 풀었다.

이 자식이 이젠 하다 하다못해 목 졸라서 죽이려고 하네. 아직도 못마땅해 보이는 강유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뭐야, 미쳤어?”

“단추 잠가.”

“아니…….”

“잠그라고.”

“…….”

시이발…….

반항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험악한 눈빛에 쫄았다. 그놈의 단추 몇 개 가지고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억울했지만 나에게는 주인공의 횡포에 반항할 힘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는 마음으로 강유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답답한데 하나만 풀자.”

“…….”

“제발.”

비굴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강유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여전히 못마땅해 보이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얼굴을 살짝 끄덕였다.

휴, 하마터면 목 졸린 상태로 영상 찍을 뻔했네. 빙의하고 있는 동안에는 너튜브를 비롯해서 전 세계 포털 사이트에 오르내릴 영상인데 흑역사를 만들 뻔했다.

목덜미 부근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는데, 당황하고 있는 유나유나의 얼굴이 보였다.

“저……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강유현은 원래 자연재해 같은 놈이라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은 유나유나를 다독이며 촬영을 시작했다.

그래도 생방송이 아니라서 마음이 좀 편했다. 게다가 스튜디오 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그다지 긴장되지도 않았다. 역시 방송국 촬영보다 너튜브 촬영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인 것 같았다.

“가끔 라방도 하긴 하는데 게스트 분들이 선호하지는 않더라구요.”

“라방이요?”

“라이브 방송이요.”

“아아.”

멋쩍은 얼굴로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이자 유나유나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대본은 혹시 읽으셨나요?”

“네.”

“사전에 협의한 내용만 말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그런데 왜 자꾸 나만 보면서 말을 하지? 강유현은 아직 좀 부담스러운 건가? 하긴, 유나유나 에피소드에서도 범접할 수 없는 주인공 포스에 유나유나가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나오긴 했었지.

그러고 보니 세(Sæ) 던전에서도 강유현이 성유빈과 더 가까워졌어야 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스토리가 어긋나서 두 사람이 제대로 얘기를 나누지도 못했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중간에서 잘해야겠다. 최대한 분위기를 좋게 풀어서 유나유나와 강유현이 소설처럼 알콩달콩한 모습이 되도록 하는 거야. 남몰래 의지를 불태우며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스태프의 사인을 흘끗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나둥이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유나유나입니다. 오랜만의 영상이죠?”

촬영 시작을 알리자마자 유나유나가 능숙하게 오프닝 멘트를 줄줄 내뱉었다. 그리고 곧 자신의 양옆에 앉아 있는 나와 강유현을 의식하는 듯, 귀엽게 좌우를 둘러보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분들을 게스트로 모셨어요. 바로 요즘 화제의 헌터분들입니다! 와~”

손바닥으로 박수를 짝짝, 친 다음 유나유나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향했다.

“자기소개해 주실래요?”

“아, 네……. 저는 한이진이라고 합니다. 얘는 용식이라고 하구요.”

“꺄우?”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린 용식이가 귀를 까닥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연신 둘러본다. 아무래도 카메라 앞이라 낯선 느낌이 드는 모양이었다.

“용식이라니. 이름이…… 특이하네요.”

“네, 귀엽죠?”

“귀여워요!”

유나유나가 볼을 붉히며 용식이를 응시했다. 그녀가 파충류를 좋아한다는 건 소설을 읽어서 알고 있었다. 뱀과 도마뱀을 키우고 있다고 하던가. 그래서 그런지 용식이를 좋아하는 모습이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는 S급 용종 소환수는 처음 봐요. 성격이 사납고 무시무시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귀엽고 얌전하네요.”

“그래도 송곳니에 독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어머, 그렇군요.”

놀란 표정을 지은 유나유나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용식이를 향해 물었다.

“용식아, 나 물지 않을 거지?”

“꺄우!”

“아, 귀여워라~”

용식이가 호응하듯 짧게 울자 유나유나가 발을 동동거렸다.

생각한 것보다는 제법 훈훈한 분위기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워낙 유나유나가 베테랑 너튜버다 보니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강유현도 유나유나가 하는 질문에는 까칠하게 말하지 않고 술술 대답했다. 약간 교과서를 읽는 듯한 기계적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갑자기 확 터지지 않는 게 어디야.

뒤늦게 영상 촬영에 합류한 이든과 강수현도 자연스럽게 등장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게스트 섭외인데도 유나유나는 그 자리에서 쪽대본을 만들어 나누어 줬다.

너튜브 촬영에서는 헌터들이 깊은 얘기를 하지 않는 게 관례에 가까운 일이라 대부분의 얘기는 잡담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나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말을 할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을 마친 유나유나가 환하게 웃었다. 이번 영상은 대박일 거라고 입버릇처럼 계속 말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저…… 한이진 능력자님!”

“네?”

슬슬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는데 유나유나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유나유나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제 연락처요?”

“네!”

뜬금없이 내 연락처를?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유나유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될까요……?”

“뭐,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유나유나는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만 연락처를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선뜻 강유현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하지 못했었지. 강유현의 무뚝뚝한 얼굴이 철벽 치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혹시 이건 내가 두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찬스인가? 내가 중간에서 훌륭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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