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유나유나.
실제 이름은 김유나.
그녀는 현재 국내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너튜버였다.
유나유나는 처음엔 먹방과 일상을 위주로 동영상 업로드를 하는 너튜버였다. 연예인 뺨치는 미모와 위트 넘치는 입담, 사근사근한 말투가 화제가 되어 초반에도 인기가 많았었으나, 본격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시점은 현역 헌터들이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부터였다.
대형 길드의 인기 높은 헌터가 절친이었던 유나유나는 그녀를 게스트로 초대해 동영상을 찍었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한국은 게이트 사태 이후로 최단기간에 나라를 안정시켰고, 그것에는 길드와 헌터들의 역할이 컸다. 헌터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건 전 세계가 비슷했지만 한국은 특히 남다른 면이 있었다.
국가의 주도가 아니라 능력 있는 길드와 헌터들을 위주로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인지 헌터들을 덕질하는, 소위 ‘헌터빠’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질의 양상이 일반인들 사이에까지 퍼지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연예인보다 헌터들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전투뿐만이 아니라 헌터들의 일상까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소탈한 모습을 담은 콘텐츠로 구독자 수와 조회 수가 폭발한 유나유나는 계속해서 헌터들을 섭외하며 덩달아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는 SS급인 강유현을 섭외했을 때만 해도 날아갈 듯이 기뻤다. 드디어 경쟁 너튜버들을 꺾고 명실상부 국내 1위 너튜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 강유현 능력자님만이 아니고…… 그 한이진 능력자님도 같이 출연하신다고요?”
아침에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은 그녀는 깜짝 놀랐다. 강유현만이라고 해도 충분히 핵폭탄급의 게스트인데, 거기에 더해 요즘 한창 화제인 한이진까지 자신의 채널에 출연하겠다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물론이죠! 저는 아주 좋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딘 길드의 연락에 폴더 폰처럼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인사한 유나유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제 정말로 국내 너튜버 1위도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인맥으로 성유빈 능력자를 게스트로 초대했던 ‘쏘민’에게 위기의식을 느꼈던 유나유나는 자신의 방 안에서 앞 구르기, 뒤 구르기를 하며 환호를 내질렀다.
“만세!”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유나유나는 촬영장을 찾아갔다. 본래 지금까지의 너튜브 촬영은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진행했지만, 이번엔 오딘 길드가 지정한 곳에서 해야 했다. 보안을 이유로 다른 곳에서의 촬영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유나유나는 마음이 한껏 너그러웠다. 얼마나 귀한 분들이신데, 하라는 대로 해야지. 마음속으로 고개를 수백 번을 끄덕이며 철저한 절차를 거쳐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
생각보다 자신의 요구 사항에 맞춰 공을 들인 것 같은 모습에 유나유나는 놀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전체적으로 핑크색 톤으로 맞춘 스튜디오 안의 광경은 그녀의 스튜디오와 느낌이 거의 똑같았다.
게다가 촬영 장비나 소품이 자신이 쓰던 것과는 가격부터 달랐다. 오히려 이곳에서 촬영하는 게 더 감사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VIP룸으로 들어가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도무지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과연 강유현 능력자와 한이진 능력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유나유나 역시 두 사람의 모습은 기자 회견과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으로 본 게 전부였다.
헌터들은 능력자로 각성하기 전엔 일반인이었기 때문에 외모적인 부분에서는 사실 크게 기대하기 힘들었다. 영웅이라는 화제성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것이었다.
하지만 기자 회견의 짧은 영상만 봐도 두 사람의 외모는 빛이 났었다. 인기 너튜버가 된 뒤 셀럽의 반열에 든 이후부터 수많은 미인들을 만났던 유나유나도 감탄했을 정도로 말이다.
“흠흠.”
헛기침을 한 유나유나가 룸에서 나갔다. 촬영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인 누군가의 모습에 몸을 멈칫했다.
“안녕하십니까. 유나유나 씨.”
“어…….”
회색빛이 섞인 오묘한 갈색 머리카락, 수려한 얼굴, 부드러워 보이는 미소.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오딘 길드의 마스터, 박윤성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길드 마스터님!”
“다른 일정 전에 잠시 들렸습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유나유나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너튜버들 사이에서 섭외 1순위는 당연히 국내 길드 1위의 마스터인 박윤성이었다.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수려한 외모에 교회 오빠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다정한 모습은 수많은 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유나유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그녀가 덕질한 최애 헌터는 당연하게도 박윤성이었다. 눈앞에서 최애 헌터를 만난 유나유나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박윤성 마스터님. 제가 마스터님의 굿즈는 빼놓지 않고 다 산 거 아세요? 공식 굿즈는 물론이고 금손님들의 굿즈도 항상 체크하는데, 제 이런 마음을 아실까요…….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덕밍아웃을 꾹 참으며 간신히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소……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네! 폐를 끼치지 않게 힘내겠습니다!”
“…….”
덕심을 최대한 억누르며 활짝 웃는 유나유나를 오묘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박윤성이 자리를 떠났다.
실제로 박윤성을 마주한 유나유나는 잔뜩 들떴다. 자신은 성공한 덕후라며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게스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라……?”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게스트들이 있는 곳으로 간 유나유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튜디오 한구석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눈에 확 띄도록 잘생긴 사람들이었다.
‘오늘 여기서 아이돌 촬영도 같이 하나……?’
순간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오딘 길드의 촬영장에서 아이돌 촬영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유나유나가 순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었다. 특히 머리가 분홍색인 남자가 시선을 확 끌어당겼고, 덩치는 크지만 앳된 얼굴의 남자에게도 은근히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남자. 바로 요즘 화제인 한이진이었다. 실제로 보니 생각한 것과는 이미지가 달랐다. 그의 주변은 마치 빛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귀엽다…….’
남자에게 귀엽다는 말이 어울릴 줄이야.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데 얼굴이 작은 편이라 그런가, 멋있다는 말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게다가 유나유나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의 얼굴을 닮아서 더 시선이 머물렀다.
그 순간, 한이진의 반짝이는 갈색 눈이 유나유나를 향했다.
***
‘우와, 진짜 유나유나다.’
실제로 유나유나를 본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소설에서도 히로인들 중 외모가 탑급이라고 하던데. 눈앞에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예쁘긴 예쁘네.’
빙의하고 실제로 본 히로인은 성유빈뿐이었다. 하지만 성유빈과 유나유나는 외모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설에서의 역할이나 성격이 너무 달랐다.
성유빈은 아무래도 강유현과 합이 잘 맞는 전투 파트너에 더 가까웠고, 유나유나는 강유현의 인지도에 날개를 달아 주는 역할이었지.
성격이 다른 두 히로인은 독자들의 팬층도 각기 달랐다. 나는 어느 쪽이었냐 하면, 두 사람 다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누가 더 좋다고 하는 것보다는.
“안녕하세요. 유나유나 씨죠?”
“아, 앗, 네. 안녕하세요.”
“한이진이라고 합니다.”
최대한 인상을 좋게 심어 주기 위해 활짝 웃었는데, 유나유나는 나를 보더니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이거 진짜, 설마 다들 날 무서워하는 건가? 구슬 이후로 묘하게 자신감이 하락한 것 같다.
“저는…… 너튜버 유나유나라고 해요.”
“네, 저도 유나유나 씨 팬이에요. 채널 구독자거든요.”
“정말요?”
내 말에 유나유나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유나유나의 채널에 출연하는 게 확정되고 난 후 밤을 새우며 그녀가 업로드한 영상을 찾아봤었다. 소설을 읽긴 했지만, 실제로 진행하는 걸 봐야 촬영 당일에 당황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상한 대로 유나유나는 밝은 텐션을 유지하며 방송을 했다. 그녀의 영상을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확실히 노련하게 진행하는 유나유나의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영상이 다 재밌던데요. 제가 다른 헌터분들만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에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방긋 웃음 지은 유나유나가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멈칫한 아까와 달리 조금은 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시선이 양옆에 있는 이든과 강수현을 향했다. 그녀가 곧 우물쭈물하며 나에게 속삭였다.
“저, 근데 이 두 분은…… 전 한이진 능력자님과 강유현 능력자님이 게스트라고 들었는데요…….”
“아아, 이 녀석들은…….”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숙소를 벗어나려고 하면 꼭 이든과 강수현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래도 이번엔 촬영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테니 두 사람이 따라오는 걸 뭐라고 하지 않았다. 녀석들도 숙소 안에만 있는 건 지겨울 테니 말이다.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유나유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얘네들도 헌터인데, 이번엔 그냥 저 따라온 거예요. 촬영에는 지장을 주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유나유나의 시선이 자꾸만 내 양옆을 힐끔거렸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자 같았다.
확실히 이 두 녀석도 썩히기 아까운 비주얼이긴 하지. 하지만 방금 박윤성이 넌지시 권유했던 촬영 요청에도 싫어한 걸 보면, 아쉽게도 오늘 유나유나의 영상에 출연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도 거들어 봤다. 막상 유나유나를 만나니 히로인인 그녀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도 잠깐 출연해 볼래?”
“응?”
“……?”
“아니, 뭐…… 싫으면 말고.”
고데기로 세팅한 머리가 어색해서 괜히 손가락으로 집었다가 놓았다. 평소보다 탱글탱글한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서 삐죽거렸다.
“그러지, 뭐.”
“응? 정말?”
“저도요. 저도 할게요.”
“……?”
너희들 방금, 박윤성한테는 엄청 까칠하게 싫다고 하지 않았니?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나는 유나유나를 쳐다봤다.
역시 히로인은 뭐가 다르긴 다르구나. 첫 등장부터 이든과 강수현을 휘어잡은 그녀에게 속으로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