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왜?」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왜 저렇게 쳐다봐? 눈살을 찌푸리면서 보다가 성유빈의 손을 잡았다. 물속이라 그런지 맨살이 평소보다 미끄러워서 기분이 좀 이상했다.
「한이진 능력자, 스킬을 쓰고 이곳에서 최대한 멀어지십시오.」
「그럴게요.」
「위험하니 근처에 얼씬도 하면 안 됩니다.」
「알겠다니까요.」
과보호 성향을 보이는 성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던 한여름에게도 스킬을 걸어 줬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던 한여름이 대뜸 입을 열었다.
「아, 진짜 탐난다. 우리 길드 안 들어올래요?」
「저 남잔데요.」
「에이, 이제 프레이야 길드도 방침을 좀 바꿔야지. 아니면 여장? 여장하는 건 어때요?」
「……싫습니다.」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말고, 꽤 어울릴 것 같은데.」
「아, 싫다고요!」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실제로 소리는 나오지 않아서 내 빡침이 잘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마지막으로 강유현에게 다가갔다. 강유현이 입을 굳게 다물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를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해? 너도 손 줘.」
「…….」
그러자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 강유현이 시비조로 말했다.
「손? 저번에는 엄한 곳을 만지더니.」
「…….」
아오, 이 자식이 진짜. 쪼잔하게 그때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냐.
하지만 나도 그다지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 보니 틱틱거리면서 강유현의 말을 받아쳤다.
「그럼 손 말고 어디 만져? 저번처럼 얼굴 만져 주랴?」
「…….」
지그시 쳐다보는 강유현의 눈길이 왜인지 불길했다. 살짝 벌어지는 강유현의 입술을 긴장하며 쳐다보고 있었을 때였다.
콰아아앙!
「……!」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별안간 폭발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며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해룡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해룡 라슈디르
등급: ??
레벨: ??
? ?? ?? ??, ?? ?? ??
…….」
라슈디르의 몸체는 전체적으로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멀리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비늘 색이 노란 건지. 그것도 아니면 패시브 스킬이 내뿜는 빛이 노란색이라 그렇게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보스몹이 벌써 움직인다고? 아직 아무도 저쪽으로 다가가지 않았는데?
비상사태에 발키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정예 몬스터들을 차근차근 밀어붙이던 발키리들이 서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보스몹 움직인다!」
「1대대 어디까지 들어갔어?」
「온다!」
「결계는……!」
쾅!
「으악……!」
거세게 몰려오는 물보라 때문에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러자 단단한 팔이 내 몸을 꽉 붙잡았다.
「강유현……!」
「가만히 있어.」
내 몸을 감싸 안은 강유현이 뒤를 흘끗 쳐다봤다. 내 시선은 그의 몸에 가로막혀 어떤 상황인지 알 길이 없었다.
「꺄우!」
「용식아!」
등 쪽에 매달려 있던 용식이가 날개를 쫙 펼쳤다. 그리고 강유현에게서 날 떨어트릴 셈인지 날개를 파닥거리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잠깐, 스킬……!」
「…….」
아직 강유현에게 보조 스킬을 걸어 주지 못했다. 그래서 허우적거리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다시 물보라가 몰아쳤다.
「윽……!」
「이진아, 괜찮아?」
「어…….」
어떡하지. 강유현에게 스킬을 걸어 주지 못한 채로 멀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보스몹 쪽으로 향하는 강유현과 성유빈, 한여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래도 성유빈과 한여름에게 스킬을 걸어 줬으니, SS급 보스 몬스터 정도는 셋이서 쓰러트릴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
「당신, 일부러 스킬 안 받았지?」
「…….」
한여름의 물음에 강유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한여름은 그 모습을 보다가 혀를 차며 성유빈 쪽을 돌아보았으나, 그쪽 역시 분위기가 너무 냉랭했다. 한여름은 다시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공격력이 제일 강한 능력자들이 팀을 짜는 건 흔한 일이지만, 하필 이 조합이라니. 보스몹에게 향하는 짧은 시간조차 어색한 기류가 흘러 한여름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레이드에서 두 사람의 충돌은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편이었다. 분명 이번에야말로 성유빈과 강유현이 마주치면 큰 사달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생각보다 잠잠했던 탓이었다.
그건 아마 그 사람 때문이었겠지. 한여름은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한이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사람을 사이에 둔 강유현과 성유빈은 마치 서로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곤 했었다.
특히 성유빈은 그토록 강유현에게 이를 갈았는데, 한이진 능력자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느라 강유현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공대에 있어서 좋은 일이긴 한데, 한여름은 왠지 신경이 쓰였다. 분명 서로 해야 할 말들이 있을 텐데 언제까지 묻어 두고 살 것인지.
‘에이, 내 일도 아닌데 신경 써서 어쩔 거야.’
고개를 휘휘 내저은 한여름이 더 빨리 몸을 움직였다. 보조 스킬을 받아서 그런지 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이 보조 스킬 없이 앞으로 계속 싸울 수 있으려나. 보조 스킬을 받을수록 점점 더 중독되는 느낌이 들었다.
「죽어라! 이 하찮은 것들!」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해룡이 커다란 입을 벌렸다. 촘촘하게 박혀 있는 송곳니 사이로 물보라가 솟구쳤다.
브레스인가? 한여름은 일단 브레스를 피해 세 명이 각자 흩어지자는 신호를 보내려 했다.
「어? 야, 성유빈!」
그러나 해룡이 브레스를 쏘려는 것을 보고서도 성유빈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속도를 높이며 해룡을 향해 돌진했다.
「아니, 강유현 능력자……!」
「…….」
게다가 그 뒤를 강유현이 지지 않고 따라갔다.
‘미치겠네, 진짜.’
그 모습을 보던 한여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SS급에, 보조 스킬을 받은 S급 능력자가 둘인데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니 SS급 보스 몬스터의 브레스를 정면으로 맞아도 살 수는 있지 않을까.
암담한 미래에 끙, 하고 속으로 신음을 삼킨 한여름도 해룡을 향해 돌진했다.
***
콰과광, 콰광!
「윽……!」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싸움의 여파가 계속해서 느껴졌다. 그나마 얼떨결에 가지게 된 전설급 방어구 덕분에 꼴사납게 몸이 나부끼지는 않았다.
「이진아, 괜찮아?」
「꺄우.」
게다가 내 곁에는 이든과 용식이도 있었다. 나는 조금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제 곧 전투가 모두 끝날 것 같았다. 해룡이 예상보다 더 일찍 공격한 것 빼고는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 발키리 부대가 정예몹들을 없애고 있었고, 곧 강유현과 성유빈, 그리고 한여름이 보스몹을 무찌를 것이다.
그런데도 왜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강유현한테만 보조 스킬을 걸어 주지 못한 것 때문인가. 왜 이러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였다.
쿠구구궁.
「뭐지?」
주변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보스전에서 이런 적이 처음인지 지원팀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었다.
「……!」
그러다 지원팀 뒤쪽의 땅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며 솟구쳐 올랐다. 그곳에 가까이 있는 어린 여자애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꺄악!」
「구슬 능력자……!」
헤엄도 제대로 못 치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이동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구슬의 작은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윽……!」
그리고 등 쪽에 엄청난 타격감이 느껴졌다. 구슬을 안은 채로 심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 한이진 능력자님…….」
「크윽.」
구슬이 덜덜 떠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바닥에서 튀어나온 무언가를 쳐다봤다.
「크어어…….」
「……!」
바닥을 헤치고 올라온 건, 새카만 덩어리처럼 보이는 몬스터였다. 그러다 점점 형태를 갖추었다. 그걸 보는 내 눈이 흔들렸다.
「저게 왜…….」
내 눈을 의심했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몬스터의 형태가 알브헤임 던전에서 봤던 망자 몬스터, 드라우그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크으으…….」
「……!」
마주친 회색 눈이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캬아아!」
「용식아! 윽……!」
그 몬스터를 시작으로 바닥에서 수많은 드라우그가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전투원들이 모인 지원팀 한복판에서, 등급 확인이 되지 않는 정예몹들이 수도 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구슬 능력자, 일어날 수 있겠어요?」
「네, 네.」
어떻게든 발키리들이 있는 쪽으로 몹들을 유인해야 했다.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낸 내가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탕!
「캬아!」
「달려요, 어서!」
「하지만…….」
「빨리 가!」
소리치자 구슬이 몸을 움찔 떨더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미친 듯이 총을 쏘는 나에게서 몸을 돌렸다. 구슬이 발키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걸 흘끗 본 나는 안심하며 시선을 돌렸다.
「야, 이든!」
「이진아!」
바람 능력으로 주변을 휩쓸어 버린 이든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눈이 내 몸을 훑었다.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가온 이든을 쳐다봤다.
「그거 하자.」
「뭐?」
「네가 잘하는 거.」
「……?」
눈을 동그랗게 뜬 이든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능력을 끌어 올렸다.
「몹 몰이.」
「아.」
오랜만에 나에게서 보조 스킬을 받은 이든이 씩 웃었다.
「그거야 내 전문이지.」
고개를 끄덕인 이든이 내 허리를 손으로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