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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70)화 (70/228)
  • 70화

    애교를 피우며 꼬리를 흔드는 용식이를 떨떠름한 눈으로 보다가 다시 해송하를 쳐다봤다.

    “그런 이유로 용식이가 성체 모습으로 안 변하려고 하는 거라고요?”

    그러자 해송하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용식이 마음이 이해 가는걸요.”

    “……네?”

    “앗, 아무것도 아니에요…….”

    “……?”

    얼굴을 확 붉힌 해송하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지?

    “아무튼, 이대로 있어도 괜찮으려나요.”

    “괜찮지 않을까요? 오히려 평소엔 작은 모습으로 있어 주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은데…….”

    “아…….”

    확실히, 소설에서는 용식이가 너무 커서 강유현이 잘 데리고 다니지 않았었지. 크기를 좀 줄일 수는 있는 것 같지만, 원작의 용식이도 강유현 말은 더럽게 듣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이렇게 지내는 게 더 나으려나? 확실히 어린 모습이 더 귀엽기도 하고…….

    “꺄우!”

    “음.”

    뭐, 이그드라실의 정수는 차차 생각하자. 어차피 그렇게 쉽게 드랍하는 아이템도 아니니까. 던전 다니다 보면 언젠가 얻을 수 있겠지. 얻지 못한다고 해도 그다지 상관없고.

    “그렇죠? 좋게 생각해야겠네요.”

    “아, 부길마님이 한이진 능력자님을 찾고 있었어요. 곧 5구역 브리핑할 것 같더라구요.”

    “헉, 빨리 가죠.”

    깐깐한 선율이가 늦으면 또 얼마나 노려볼지 모른다. 기겁하며 해송하와 함께 공대 중앙 쪽으로 돌아갔다. 곧 내 머릿속에서 이그드라실의 정수에 대한 문제는 싹 사라졌다.

    ***

    세(Sæ) 던전의 마지막 스테이지인 제 5구역. 던전 이상 현상이 생기기 전에도 항상 보스몹의 등급이 S급에서 변한 적이 없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던전 이상 현상까지 생겼으니, 5구역의 보스 몬스터인 해룡 라슈디르의 등급이 SS급으로 올라갔을 확률이 높았다.

    “해룡을 처치하는 건 보조 스킬을 받는 강유현 능력자, 성유빈 능력자, 그리고 한여름 능력자에게 맡기겠습니다. 나머지는 정예 몬스터 퇴치에 주력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

    아직도 하루 세 명 조건을 철저히 지키는 건가. 아니면 파워 밸런스를 고려해서 세 명만 뽑은 건가.

    솔직히 내 스킬을 받으면 강유현 혼자서도 충분할 텐데. 아무래도 그러면 아이템 분배에 문제가 생기니까 발키리 멤버들을 투입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강유현 역시 뭐라고 하지 않고 잠잠했다. 오히려 나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내 쪽을 자꾸만 흘끗거렸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그의 등을 팡팡 쳤다.

    “야! 잘 해치우고 와라. 나는 뒤에서 응원할 테니까.”

    “……그래.”

    이번엔 제발 개고생하지 말고 뒤에서 꿀이나 빨았으면 좋겠다. 보조 스킬만 걸고 뒤에서 탱자탱자 놀 줄 알았더니, 이상한 이벤트에 잘못 걸려서 죽을 뻔하고 말이야. 왠지 빙의하고 버프 받은 보조 스킬이 오히려 내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오싹한 생각을 떨쳐 내려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런 나에게 이든이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걱정 마, 이진아. 내가 지켜 줄 테니까!”

    “…….”

    글쎄, 과연 보스몹을 지키는 정예몹들을 상대로 A급이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그래도 공격 스킬이 없는 나보다는 낫겠지. 한숨을 삼키며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다치지 않게 몸에 장비나 발라야겠다.

    “……어라?”

    인벤토리를 뒤지던 나는 처음 보는 장비 아이템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게 있었나? 인벤토리에서 꺼내니 은색의 팔찌가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자 아이템 정보가 눈앞에 떴다.

    「해신의 팔찌(L)

    해신 뇨르드의 팔찌.

    착용 효과: 해신의 가호(L)

    힘 10, 민첩 10, 마력 20, 기본 방어력 20 증가」

    “헉……!”

    뭐지, 이 무시무시하게 좋은 레어 아이템은? 전설급 장비라니, 오딘 길드에서 지급해 줬을 리가 없는데?

    혹시 4구역에서 강유현이 보스몹을 잡았을 때 내 인벤토리에 들어왔나? 아니면 3구역에서 용식이가 보스몹 잡았을 때?

    둘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니, 어느 쪽이라고 해도 우선은 송차현에게 자진 신고해서 넘겨 줘야겠지. 레이드에서 나온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던전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길드의 것이니까.

    “읏……!”

    그런데 그 순간 파앗, 하고 팔찌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그 눈부신 빛에 눈을 감았다가 뜨니 해신의 팔찌가 내 손목에 떡하니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 알림음이 들렸다.

    [해신의 팔찌(L)가 영구 귀속되었습니다.]

    “……!”

    이런 미친!

    S급 이상의 레어 아이템들은 다른 장비 아이템들과 달리 한번 착용하면 영구 귀속이 되어 버린다. 즉, 완전히 귀속되어서 타인에게 주거나 팔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귀속을 풀려면 S급 이상의 계약 파기 아이템이 있어야 하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웬만하면 영구 귀속된 장비 아이템들은 계속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 근데 나는 착용하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왜 멋대로……? 왜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생긴 거지?

    부들거리면서 팔찌를 내려다봤다. 내 손목 크기에 딱 맞는 심플한 은색 팔찌는 아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문제는 이걸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손목에 차는 게 전설급 장비 아이템이 아니고 실제 은팔찌가 된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패닉에 휩싸여 있는데, 드디어 5구역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송차현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발키리 1부대와 2부대 앞으로! 나머지는 지원팀을 최우선적으로 지킨다!”

    “네!”

    “…….”

    소매를 슬쩍 내려 아이템을 감췄다. 이건 먹고 튀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진 신고를 뒤로 미루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5구역으로 향하는 포털에 들어갔다.

    워프 포털을 타고 들어온 5구역은 바닷속에 있었다. 그래서 채집할 때 입었던 잠수복과 호흡용, 잠수용 아이템을 착용한 채 포털을 탔다.

    그 때문인지 포털을 지나고 5구역에 진입하는 순간, 느낌이 굉장히 이상했다. 그러나 공대 사람들 대부분은 익숙해서 그런지 나 빼고 다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나처럼 이곳에 처음 오는 이든조차 말이다.

    「이진아! 이거 되게 신기하다.」

    「…….」

    물속이라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옆에 채팅 창처럼 문자가 둥둥 떴다. 이것도 아이템의 덕분이라고 했다. 눈을 깜박이며 물속에서도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든을 쳐다봤다.

    바람 능력자라 하늘을 나는 게 익숙해서 그런가. 물속에서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어색해서 삐걱거리는 건 나뿐인가 싶었다.

    「왜 그래? 잘 못 움직이겠어?」

    「엉.」

    「그럼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고개를 갸웃하자 이든이 헤엄을 치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한 손으로 허리를 감쌌다.

    「일단 몸에 힘을 빼야지. 물속이라고 너무 긴장하고 있잖아.」

    「아, 그런가?」

    이든치고는 제법 좋은 조언이었다. 이 치근대는 손만 아니라면 말이다.

    좀 찝찝하긴 하지만 조언은 꽤 도움 될 것 같아서 내버려 두니, 손이 점점 위로 올라왔다.

    「그래, 긴장하지 말고 힘 풀어. 팔도 좀 자연스럽게 휘저어 봐.」

    「음…….」

    이든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니 조금은 물속이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역시 하늘을 나는 것과 물속에서 헤엄치는 게 어느 정도 비슷하긴 한 모양이다.

    「고맙다.」

    이번에는 도움이 된 게 사실이기에 솔직하게 말했더니, 이든의 눈빛이 금방 묘해졌다.

    「그렇게 고마우면 나…… 으악!」

    「꺄아!」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이 다가온 이든을 용식이가 휙 밀어 냈다. 그러면서 꼬리에 얻어맞기까지 했는지, 이든이 제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저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가……!」

    「도마뱀? 우리 용식이 말한 거냐?」

    「아, 이 아이템이 불량이네. 이상한 말이나 뜨고, 하하…….」

    「……?」

    의아하게 이든을 쳐다보자, 용식이가 내 잠수복을 살짝 물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용식이는 이든보다도 더 헤엄을 잘 쳤다. 그걸 깨달은 나는 용식이의 꼬리를 잡고 편하게 이동했다.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혼자 헤엄치려고 했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따라가니, 드디어 해룡의 영역 안으로 진입했다.

    「하찮은 인간들이 감히…….」

    「……!」

    놀랍게도 5구역의 보스몹인 해룡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물속이라 옆에 글자가 둥둥 떠다니는 형식이지만 말이다.

    「위대한 해신께서 저주를 내리리라!」

    해룡의 박력은 가히 엄청났다. 멀리 있는 나에게까지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의 말이 끝나자 주위에 있던 정예 몬스터들이 발키리들을 향해 우루루 달려들었다. 마치 게임에서 던전 안에 들어갔을 때 나오는 입장 영상을 본 기분이었다.

    「온다!」

    「더 가까이 오면 광역 스킬 걸어!」

    「누가 타이밍 재 봐!」

    「5!」

    발키리들이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그 뒤에 있는 강유현과 성유빈, 한여름에게 다가갔다.

    「한이진 능력자!」

    성유빈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넵, 스킬 걸어 드릴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

    가장 먼저 성유빈에게 스킬을 걸어 주려고 하는데, 누군가의 눈빛이 너무 따가웠다.

    강유현, 쟤는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어서 저렇게 나를 노려보는 걸까.

    조금 고민하다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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