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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69)화 (69/228)

69화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눈살을 찌푸리며 이든을 노려봤다. 뭐? 뭘 해 줘? 뽀뽀?

그게 같은 남자에게 할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어이없는 얼굴로 이든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미쳤냐?”

“아니?”

그러자 이든은 뻔뻔한 얼굴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제 뺨을 두어 번 톡톡 쳤다.

“빨리 해 줘.”

“씨발.”

욕을 해도 이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욕이 이든의 기분만 더 좋게 해 준 모양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새하얀 뺨을 손으로 밀어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야, 역겹게 왜 이래, 진짜!”

“역겹다니, 나 상처받았어.”

흑흑, 우는 척을 하던 이든이 새초롬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강유현이랑은 더 한 것도 했잖아.”

“뭐, 뭐?”

“걔랑은 키스…… 읍.”

“닥쳐 좀!”

프레이야 길드원들이 있는 한복판에서 대놓고 나의 흑역사를 까발리는 이든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주변을 경계하며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야,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말 꺼내고 지랄이야?”

“으으읍.”

“그리고 그건 스킬 때문이었잖아!”

알브헤임 던전에서 SS급 보스 몬스터를 마주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강유현에게 보조 스킬을 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웬만한 스킨십으로는 드라우그 킹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내 쪽에서 먼저 강유현에게 진한 스킨십을 했던 것이다.

그때 일은 나에게 흑역사로 남아 있었다. 앞으로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손잡기 이상의 스킨십은 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하던 차였다.

근데 뭐? 뽀뽀? 강유현이랑 키스했으니 자기랑은 뽀뽀해야 한다고? 이게 무슨 애들보다 못한 사고방식이야.

“나랑은 손도 안 잡았으면서…….”

“…….”

서운한 티를 팍팍 내는 이든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이 자식, 진짜 무슨 소름 끼치는 말을 하고 있어.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이든이 실실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응? 그러니까 뽀뽀해 줘.”

“아오, 씨. 진짜.”

“나도 뽀뽀해 줘!”

“아, 떨어져! 좀!”

징징대는 이든을 밀어 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발치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용식이가 캬릉거리며 울었다.

“캬아아!”

얼른 용식이를 안아 들고 이든을 위협했다.

“자꾸 그러면 얘보고 물어 버리라 그런다.”

“힝, 너무해.”

“…….”

이 새끼는 대체 왜 맨날 징그러운 짓만 하는 건지. 원작에서는 좀 능글맞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손사래를 친 이든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대체 왜 이런 기분 나쁜 농담이나 하는 건지.

에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진짜 원하는 게 뭔데?”

“흐음.”

처음에는 이든의 몫으로 재료를 챙겨 줄까 했었다. 그런데 필요 없다며 거절하더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원작의 이든은 겉으로는 실실 웃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속은 다 썩어 문드러지고 뒤틀려서, 자기 자신조차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고 방황하는 빌런이었지.

그러다 히로인 중 한 명을 통해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되고 로키 길드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그때 보인 이든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독자들을 꽤나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아무튼 그렇게 히로인에게 마음을 연 이든은 겉보기와 다르게 직진 순정남이었다. 그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강유현을 좋아하는 히로인을 남몰래 좋아하며 호구처럼 도와주고, 가끔 뻔히 보이는 개수작도 부리고…….

근데 이거 약간 지금의 이든이랑 겹치지 않나? 만약 저 개소리가 다 히로인에게 하는 말이었다면…….

아니, 시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겁나 기분 나빠. 아무리 내가 원작을 비틀었어도 히로인 포지션이 되었을 리가 없잖아!

“야, 이거 줄 테니까 퉁치는 거다. 어?”

“뭐? 잠깐…….”

나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인어의 눈물을 다 털어서 이든에게 주었다. 인어의 눈물이 훨씬 비싸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내가 필요한 건 무지갯빛 산호초였고, 이든의 도움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구석으로 가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이든은 내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

“하아…….”

“뀨우.”

“…….”

품속에 안고 있는 용식이를 내려다봤다. 고개를 빼꼼 내민 용식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용식이, 너…….”

“꺄우?”

“…….”

저렇게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눈빛으로 봐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겠지. 왜 성체인데 어린 모습으로 있는 건지 말이다. 분명 내 말을 다 알아듣고 있을 것이다.

“너 원래는 성체인데 왜 그런 모습으로 있는 거야? 응?”

“…….”

“성체로 있는 건 싫어?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

내 물음에 용식이는 묵묵부답이었다. 보랏빛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 눈길을 피했다.

그러다가 내가 끈질기게 또 입을 열었을 때였다.

“꺄우!”

“읏……!”

훌쩍 뛰어오른 용식이가 제 머리를 내 이마에 콩 하고 박았다. 그러자 눈앞에 새파란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용식이’가 데이터를 전달합니다.」

「전달 오류.」

「‘이그드라실의 정수’가 부족합니다.」

「필요한 ‘이그드라실의 정수’의 개수: 0/1」

“이게 뭐지?”

이그드라실의 정수? 분명 소설에서 봤었던 거 같은데…….

설마 그건가? 보스몹 잡으면 랜덤으로 주는 전설급 아이템?

“헐…….”

아니, 그걸 무슨 수로 얻으라는 거야.

아마 내일쯤 5구역의 보스몹인 해룡을 잡을 테지만, 그때 이그드라실의 정수를 드랍한다고 해도 주인공한테 가지, 그게 나한테 오겠냐고.

“에휴…….”

“뀨우우…….”

“아무튼 그게 없으면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거구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용식이가 원작과 달리 이런 모습으로 지내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원래는 강유현의 소환수가 되어야 하는데 나에게 와 버렸으니 어떤 오류가 생겼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거겠지.

“끙, 이그드라실의 정수라…….”

“이그드라실의 정수요?”

“으아악!”

“으악!”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말을 건 사람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를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해, 해송하 능력자.”

“으어어, 죄송해요. 노, 놀라셨어요?”

“…….”

아니, 그쪽이 훨씬 더 놀란 것 같습니다만…….

해송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소환수인 라티가 털을 잔뜩 부풀리며 하악질을 해 댔다.

“아니, 제가 더 과민 반응해서 죄송하네요. 하하…….”

“아뇨, 제가 더…….”

“…….”

그렇게 서로 마음껏 미안해한 후에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근데 이그드라실 정수에 대해 아세요?”

“방금 한이진 능력자님이 중얼거리시길래…….”

“음, 그랬었죠.”

고개를 끄덕이며 해송하를 흘끗 쳐다봤다. 그의 어깨에 매달린 라티가 나와 용식이를 경계하는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 모습을 보다가 슬쩍 해송하에게 물었다.

“저, 혹시 이그드라실의 정수가 소환수에게 무슨 영향을 주나요?”

“이그드라실의 정수가요?”

“네.”

“음…….”

해송하가 고민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이그드라실의 정수. 소설에서 나오긴 했지만,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오진 않았다. 결말 부분에서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봤던 중반 부분까지는 보스몹들이 왜 드랍하는지 모를 정도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게 소환수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주인공인 강유현은 너무할 정도로 소환수에게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꺄우?”

“…….”

고개를 갸웃하는 용식이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그 무심한 놈보다는 내가 더 낫지? 그러나 지금의 용식이는 소설에서의 제 모습을 모를 테니 물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그드라실의 정수가 소환수에게 무슨 영향을 주는지는요.”

“아…… 그렇군요.”

“그래도 용식이가 왜 그런 모습으로 있는 건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

해송하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소환수의 베테랑인 해송하는 뭔지 알고 있는 건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그게 뭔데요?”

그러자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해송하가 말했다.

“한이진 능력자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은 거 아닐까요?”

“……네?”

“성체 모습이면 한이진 능력자가 예뻐해 주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

후후, 하고 웃는 해송하를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 설마 그런 이유로 부화하면서부터 내내 새끼 용 모습으로 있는 거라고?

“꺄아우!”

“…….”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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