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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68)화 (68/228)

68화

“아까는 구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이채진이 제법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어안이 벙벙한 채 그를 보던 나는 히드라의 촉수를 대신 맞았던 일을 떠올렸다.

“아, 그건……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거라서요.”

“…….”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별로 다치지도 않았고…….”

민망해서 그런지 아무 말이나 주절거리는 나를 이채진이 빤히 쳐다봤다.

“그래도 한이진 능력자가 아니었으면 제가 히드라에게 붙잡혔겠죠.”

“뭐…… 그렇죠?”

“한이진 능력자와 다르게 저는 버티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음…….”

그랬으려나? 뭐, 그럴 수도 있다. 연금술사인 이채진은 생산계 능력자라 나만큼 버티지 못하고 물밑으로 끌려 내려갔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더 구하기 힘들었겠지.

이채진의 말에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그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난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입니다.”

“어…… 그래요?”

“남한테 빚지지 않고, 저도 남을 돕지 않는 게 인생의 모토라서요.”

“하…….”

그것 참 정서적으로 훌륭한 스크루지 영감 같은 말이로군.

뭐, 소설에서 나온 이채진의 과거를 떠올려 보면 그럴 만하다고는 생각한다. 천재 연금술사인 그를 이용하고 시기 질투한 사람들이 오죽 많았어야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채진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저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십시오.”

“원하는 거요……?”

“뭐든 목숨값보다는 못하겠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뛰어난 연금술사니까요.”

“아.”

그러니까, 아까 자기 대신 히드라에게 붙잡힌 것에 대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 건가? 이채진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라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하지만 이건 이채진에게 포션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곧장 그에게 대답했다.

“그러면 받았으면 하는 포션이 있는데요.”

“……말하십시오.”

순간 이채진의 얼굴이 조금 싸늘해졌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S급 독 해제 포션을 받았으면 합니다.”

“……독 해제…… 포션이요?”

“네, 있으시죠?”

내가 눈을 반짝이자 이채진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몸을 훑어보았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독에 중독된 곳이 있습니까?”

“제가 아니고, 성유빈 능력자가 독에 중독됐거든요.”

“성유빈 능력자…… 아.”

중얼거리던 이채진이 뭔가를 깨달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내 발치에 있는 용식이를 흘끗 쳐다봤다. 용식이는 그 눈길에 얼굴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니까, 대가로 받는 포션을 남을 위해 쓰겠다는 겁니까?”

“뭐, 그렇죠?”

“……다른 포션을 받으면 이득이 훨씬 큰데도요?”

“다른 포션이요? 흠.”

물론 지금 이채진이 가진 포션들도 어마어마하지만, 곧 그가 만들 포션들이 더 대박이다. 오늘 내 도움으로 엄청나게 많이 채집한 황금 불가사리만 해도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차라리 나중에 그걸 몇 개 얻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그런 속내를 숨기며 이채진을 향해 활짝 웃었다.

“제가 다른 포션은 잘 몰라서요. 그리고 성유빈 능력자가 독에 중독된 게 제 소환수 때문이라 저에게 책임이 있어서…….”

“…….”

“혹시 S급 독 해제 포션은 없으세요?”

“아니, 있습니다.”

“오!”

A급이면 소용이 없으니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있다고 한다. 떨떠름한 표정의 이채진이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하나 꺼냈다. 연한 초록색의 액체가 든 포션을 나에게 내밀었다.

“정말 이거면 되는 겁니까?”

“네! 감사해요.”

신이 나서 손에 든 포션을 흔들었다. 연두색을 띠는 액체가 찰랑거렸다. 이채진의 포션은 확실하니, 이거면 성유빈의 독 중독이 완전하게 나을 것이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어…… 네.”

“이대로는 좀 찝찝해서요. 후에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십시오.”

“네?”

그렇게 말한 이채진이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아 보니 연락처가 적힌 명함이었다.

“제 개인 연락처입니다. 저는 무소속이라 길드로 찾기는 힘드실 테니까요.”

“아니, 이건…….”

이채진은 개인 사정으로 아무 길드에도 들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떠돌아다니는 상황이었다. 거처도 수시로 옮기며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나한테 이렇게 개인 연락처를 줘도 되는 건가?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니, 이채진이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늦었으니 돌아가죠.”

“잠깐…….”

“이진아, 볼일 다 끝난 거 맞지?”

“…….”

이채진은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갔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든이 달라붙었다.

아, 맞다. 도와주는 대신에 이든이 원하는 거 해 주기로 했었지. 솔직히 뭘 원할지 감도 안 오지만 약속했으니 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그보단 이 포션을 성유빈에게 주는 게 먼저였다.

“잠깐만, 이것 좀 갖다 주고.”

“치.”

“네가 애냐?”

어린애처럼 입을 쭉 내미는 이든의 입술을 꼬집는 것처럼 꽉 잡았다 놔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성유빈 능력자!”

“……한이진 능력자?”

힐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성유빈이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다들 그만하십시오. 어차피 소용도 없는데.”

“하지만…….”

“하아.”

힐러들의 치유를 거부하는 성유빈을 보며 송차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성유빈에게 다가갔다.

“성유빈 능력자, 몸은 좀 어때요?”

“아주 멀쩡합니다.”

“…….”

완전…… 안 멀쩡한데. 아까보다 독이 더 퍼지지 않았나?

전투복의 방어력을 뚫고 들어간 용식이의 독이 성유빈의 피부에 닿아 부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차마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거, 쓰세요.”

“이게 뭡니까?”

“S급 독 해제 포션입니다.”

“이걸 어떻게……?”

얼떨결에 포션을 받아 든 성유빈이 눈을 크게 떴다. 놀라는 그녀에게 채집을 하며 이채진을 도와준 얘기를 해 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해서, 독 해제 포션을 달라고 했거든요.”

“한이진 능력자가…… 촉수…….”

“네?”

“큼,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금 히로인의 입에서 들려선 안 되는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아무튼 빨리 마셔요. 그걸로 안 되면 또 달라고 해야 하니까.”

“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성유빈이 포션을 쭉 들이켰다. 꿀꺽꿀꺽, 그녀의 목울대가 꿀렁대는 걸 긴장하며 지켜봤다.

“하…… 맛이 별로네요.”

“그건 별로 안 궁금…… 오!”

성유빈이 포션을 마시자마자 몸에 달라붙어 있던 독이 증발하듯 확 사라졌다. 놀라운 광경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로 독이…….”

“다 나은 거 맞죠? 나은 거 맞는 거죠?”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오오.”

역시 천재 연금술사 이채진. 실력 하나는 확실하다니까.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별안간 송차현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이진 능력자.”

“네? 아니…….”

이러시면 좀 곤란한데요. 길마님.

애초에 성유빈이 독에 중독된 게 용식이 때문이라 그런지 감사 인사를 받는 게 미안하고 어색할 지경이었다.

“한이진 능력자. 저를 위해 무서운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오셨군요. 감동했습니다.”

“네?”

“이제부터 제 목숨은 한이진 능력자의 것…….”

“얘 진정될 때까지 치워라.”

“한이진 능력자……!”

송차현의 싸늘한 명령에 발키리들이 성유빈의 양쪽 팔을 붙든 다음 들다시피 하며 걸어갔다.

“…….”

그 모습을 당황한 얼굴로 지켜보다가 송차현을 쳐다봤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송차현의 얼굴이 아까보다는 조금 풀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다 한이진 능력자의 덕분이군요. 그 용종 소환수가 아니었으면 3구역을 클리어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성유빈 능력자가 독에 중독됐죠.”

“그것도 한이진 능력자가 포션을 얻어 줘서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음…….”

“이채진 능력자는 내키지 않으면 억만금을 줘도 자기 포션을 내주지 않는데……. 어떻게 꼬셔 냈는지 궁금할 정도군요.”

“아하하.”

게다가 얼떨결에 연락처까지 받아 버렸지. 나도 이채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했던가. 그렇게까지 보은하는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면 완벽주의자라서 그런가.

어쨌든 그의 포션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기에 좋게 여겼다.

“아직 정비가 필요해서 5구역에는 바깥 시간을 기준으로 날이 밝으면 이동할 예정입니다. 보조 스킬 대기 시간도 지나야 하니까요.”

“아, 넵.”

“그러니 더 쉬십시오.”

송차현은 바쁜지 짧게 말하고 바로 어딘가로 떠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빼고 다 바빠 보였다.

아, 한가한 사람이 더 있구나.

“이진아, 이제 진짜 볼일 끝난 거지?”

“에휴.”

이든이 다가와 치근댔다.

그래도 약속한 게 있으니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몸을 빙글 돌리고 이든을 쳐다봤다.

“그래, 원하는 게 뭔데?”

“음…….”

“변태 같은 부탁은 안 된다.”

“내가 언제 변태 같은 부탁을 했다고?”

“…….”

가만히 노려보자 이든 녀석도 찔리는 게 있는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변태라니, 오빤 다 진심이었는데…….”

“진짜 죽고 싶냐?”

“아, 알았어.”

종이 인형 같은 내 주먹이 뭐가 무섭다고, 이든이 제법 겁먹은 티를 냈다. 그리고 곧바로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그냥 아주 간단한 부탁이야.”

“뭔데?”

“뭐냐면…….”

“……?”

가까이 다가온 이든이 제 뺨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로 지껄였다.

“뽀뽀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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