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여긴가 봅니다!”
“……!”
아이처럼 들뜬 얼굴로 이채진이 탐지된 곳을 가리켰다. 나와 이든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동굴 바닥은 바닷물이 들어와 종아리 부근에서 찰랑거리고, 바닥에 깔린 수많은 산호초가 주변에서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어, 근데…….”
“……?”
이채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이채진이 가리킨 부근만 유독 시커먼 색을 띠고 있었다.
“저기, 아무래도 구멍이 뚫려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랬다. 동굴 밑바닥에 사람 팔뚝 몇 개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아이템이 그곳을 가리키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채진이 구멍에 더 가까이 아이템을 가져다 대자, 더 맹렬하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커먼 구멍은 저 끝에 뭐가 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깊었다.
“다른 데를…… 찾아볼까요?”
“음…….”
아무리 능력자들이라고 해도 저 작은 구멍 안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올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넌지시 물어봤는데, 이채진이 아이템을 보며 곤란한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저 안에 인어의 눈물이 한두 개 있는 게 아닌 거 같은데요.”
“뭐라고요?”
“여기 보면 붉은 불이 깜박이는 게 좌표를 나타내는 거고, 파란 불은 개수를 나타내거든요. 근데 지금 엄청…… 진한 색이네요.”
“…….”
저 안에 그만큼이나 희귀 재료들이 널려 있다고? 채집할 수만 있다면 잭 팟이나 마찬가지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꺄우!”
“……용식아?”
물에 닿지 않게 줄곧 품에 안고 있었던 용식이가 길게 울며 바둥거렸다. 놀라서 안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내 품에서 벗어난 용식이가 한 번 더 길게 소리를 내더니 바닷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꺄아우!”
“용식아!”
깜짝 놀라며 용식이를 불렀다. 용식이는 바닥에 난 구멍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이윽고 용식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 어떡하지?”
“진정해, 이진아.”
“…….”
구멍 안에서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나는 초조한 눈으로 그걸 응시했다.
용식이가 수영은 할 줄 알까? 수룡이 아닌데 헤엄칠 수 있는 거야? 괜찮은 건가? 만약 용식이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구해야 하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점점 힘겨워질 무렵,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구멍 안에서 튀어 올랐다.
촤아악!
“용식아!”
공중에서 젖은 몸을 파드득 털어 낸 용식이가 순식간에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입에 문 것을 내 손에 퉤, 하고 뱉었다.
“이건……!”
정말로 이름 그대로 무지갯빛으로 형형색색 빛나는 산호초, 그리고 황금색 불가사리였다. 나와 이채진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꺄아!”
“아이구, 우리 애기…….”
감동한 내가 용식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용식이는 우쭐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용식이의 활약과 요정 날개 가루로 재료를 엄청나게 쓸어 모았다. 정신없이 재료를 모으고 난 뒤에야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요? 바닷물도 꽤 찼고.”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채진이 뿌듯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재료 채집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는지, 그는 종일 까칠한 성격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우리 덕분에 황금색 불가사리를 엄청나게 모았을 테니, 이걸 빌미로 슬슬 포션에 대해 말해 볼까?
그런 생각을 은근슬쩍 할 때쯤이었다.
“크윽!”
“이채진 능력자!”
별안간 이채진이 놀란 신음을 내뱉더니 물속으로 풍덩 빠졌다. 이채진의 주위로 작게 물보라가 일었다. 나는 경악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나 이채진은 이런 일쯤은 익숙하다는 듯이 무덤덤한 얼굴로 잭나이프를 들었다.
“괜찮습니다. 바위 틈새에 발이 낀 것뿐입니다.”
그리고선 능숙하게 잭나이프를 물속에 집어넣어 발 근처를 팍팍 찔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와드릴까요?”
“괜찮다니까요.”
무뚝뚝하게 말한 이채진이 잭나이프를 더 높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발치를 콱 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윽……!”
“이채진 능력자!”
발밑의 물이 술렁거렸다.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도 모르게 이채진을 확 밀었다. 동시에 물에서 튀어나온 기다란 게 내 몸을 옥죄었다.
“이진아!”
“꺄우!”
“큭…….”
당황한 눈으로 내 몸을 옥죈 것을 쳐다봤다. 어두운색의 긴 밧줄 같은 게 나를 칭칭 감싸고 있었다. 촉수같이 생긴 게 기분이 아주 나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촉수 자체에 독 같은 건 없는 모양이었다. 만약 독을 쏴 댔으면 B급의 약한 몸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터였다.
“윽, 제길…….”
하지만 문제는 가느다란 촉수 자체가 너무나 성가시다는 데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어 있어서 이든도 용식이도 섣불리 촉수를 공격하지 못했다. 심지어 본체는 이 물 안에 있는지, 촉수의 시작 부분이 물에 가려져 있어서 본체를 공격하기도 힘들었다.
설상가상 몸이 주르륵, 하고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버텨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젠장, 이렇게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몹한테 잡아먹히는 건가? 근데 채집하는 곳에 이런 몬스터가 있었던가?
“크윽…….”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억지로 비틀어 인벤토리를 열려고 했다. 차라리 폭탄이라도 터트려서 벗어난 다음 나중에 치유받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꽤나 자학적인 생각을 하며 발악하던 때였다. 귓가에 심상치 않은 파공음이 들렸다.
쐐애애액.
“……용식이?”
동굴 천장까지 날아올랐던 용식이가 촉수가 뻗어 나온 부근으로 다이빙했다. 촤악, 하고 튀긴 바닷물이 얼굴을 후려쳤다.
“용식아, 위험……!”
물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산호초와 불가사리들을 캤던 용식이니까 잠수를 할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순간 놀라서 큰 소리가 튀어 나왔다.
발밑에서 보글거리며 기포가 올라왔다. 이윽고 점차 기포가 많아지더니 파악, 하고 물이 튀었다. 동시에 몸을 옥죈 촉수가 요동쳤다.
“으악!”
“이진아!”
요동치던 촉수들이 어느 순간 느슨해졌다. 촉수의 움직임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내가 몸에 힘을 주며 버티자, 한순간 힘이 풀린 촉수들이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이진아, 엎드려!”
“윽…….”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든이 능력을 썼다. 보이지 않는 바람 칼날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가 촉수들을 끊어 냈다.
“괜찮아?”
“으, 응.”
뒤로 주춤거리는 몸을 이든이 받아 냈다. 촉수가 있는 부근을 벗어나자 물밑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어어어!”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 들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끔찍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촉수가 축 늘어졌다.
“용식아…….”
이제 슬슬 용식이가 떠오를 때가 됐는데, 잔잔한 수면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초조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용식이는 성체로 변할 수 있었으니까, 겉보기와 다르게 약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S급 용종이지 않은가. 보스급은 되어야 용식이의 상대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뀨?”
“용식아!”
잔잔하던 수면에 용식이의 작은 머리가 툭 튀어나왔다. 용식이를 보자 안심한 내가 활짝 웃자, 조그만 몸이 훅 올라와 공중을 파드득 날았다.
“용식아, 아빠 걱정했잖아. 다친 데 없어?”
“꺄아우.”
공중에서 한차례 몸을 털어 낸 용식이가 날갯짓을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언젠가 봤던 시스템 창이 용식이의 옆에 떴다.
「소환수 ‘용식이’가 몬스터 ‘히드라’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히드라?”
방금 촉수를 뻗은 몬스터가 히드라였어? 5구역에 나오는 그 몬스터?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이자, 이채진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등급 이상 현상이 생기면서 이곳이 히드라의 서식지로 변한 모양입니다.”
“헉, 그럼 다른 사람들도…….”
“글쎄요. 저희가 멀리 나온 탓일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은 빨리 돌아가죠.”
“네,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템을 작동시켰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프레이야 길드에서 지급한 아이템이었다.
널따란 판자처럼 생긴 이동 아이템은 그다지 멋지진 않았지만 승차감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세 사람이 타기엔 좀 좁아서 어쩔까 하다가 그냥 다 같이 탔다. 괜히 하나 더 꺼내서 히드라들을 자극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위험하니까 이진이 네가 가운데에 타.”
“어…….”
그래 주면 고맙긴 한데, 그렇게 해도 되나?
이채진의 눈치를 보는데, 그가 선뜻 입을 열었다.
“제가 길을 잘 아니까 맨 앞에 타죠.”
“아, 네. 감사합니다.”
“…….”
잠시 나를 묘한 눈으로 보던 이채진이 맨 앞에서 아이템을 작동시켰다. 아이템은 순식간에 채집 구역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휴, 살았다…….”
꽤 하드한 경험이었다. 히드라의 촉수에 당할 뻔하다니. 그놈들의 마니악한 에피소드는 보통 히로인들의 이벤트 같은 거였다고. 근데 왜 나한테…….
어쩐지 원작의 이야기가 갈수록 엉망이 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진아, 괜찮아?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프지 않으니까 그만 좀 물어봐라.”
옆에서 귀찮게 구는 이든을 떼어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딘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채진이 나에게 다가왔다.
“……한이진 능력자.”
“네?”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이채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