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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66)화 (66/228)

66화

“당신은……?”

그제야 이채진이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이 나를 한 번 훑더니, 이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주위에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굴었는데, 아무리 주변에 무심한 이채진이더라도 한두 번은 나를 봤었겠지.

그래도 내 이름까지는 모를 확률이 높고, 초면이기에 우선 자기소개부터 하기로 했다.

“저는 오딘 길드에서 파견 온 한이진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이든이라고 하고요.”

“…….”

이름 따위는 그다지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흐음, 하고 작게 신음을 낸 그가 입술을 열어 물었다.

“제가 황금색 불가사리를 찾는 건 어떻게 아셨죠?”

“그건…….”

나는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아이템을 쳐다봤다. 그건 다른 채집팀 사람들이 들고 있는 아이템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검은색의 길쭉한 물체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이곳에서 자란 ‘인어의 눈물’을 찾는 아이템이었다.

‘인어의 눈물’은 특별한 조개가 품고 있는 진주다. 엄청난 희귀 재료로 값어치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곳에 모인 채집팀 인원의 대부분이 그걸 노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장비 아이템에나 쓰이는 인어의 눈물을 연금술사인 이채진이 필요로 할 리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인어의 눈물에 이끌려 주변에 모여든 불가사리, 그중에서도 황금색 불가사리였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곳에는 무지갯빛 산호초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채진에게 접근한 건, 심단테가 요구한 무지갯빛 산호초 탓도 있었다.

“그 아이템으로 만약 인어의 눈물을 찾으면, 주변에 다른 재료들도 있을 텐데 연금술사가 원하는 재료는 불가사리 정도잖아요. 다른 건 장비나 보조 아이템용 재료들이니까요.”

“…….”

내 말에 이채진은 침묵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누군지 알고 계시는군요.”

“뭐, 그야…… 워낙 유명하시니까요.”

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소설을 읽어서 알고 있는 거지만, 실제로 이채진은 유명한 연금술사였다. 아직은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유명해서 문제였지.

하지만 그건 지금 시점의 이야기이고, 장차 그는 놀라운 포션들을 만들어서 억만장자가 된다. 그러니 지금도 그가 성유빈이 중독된 독을 치료할 포션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쪽은 뭘 원하는 겁니까?”

일단은 속마음을 숨기며 대답했다.

“아, 전 무지갯빛 산호초입니다.”

“과연…….”

무지갯빛 산호초 역시 인어의 눈물만큼 값어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조를 짜면 경쟁하게 될 것이다. 이채진은 내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전 다른 사람과 조를 짤 생각이 없습니다. 저 혼자서도 충분하거든요.”

이채진은 포션 제작에 쓸 재료를 직접 채취하기 위해 던전까지 따라 들어오는 괴짜였다. 프레이야 길드에는 직접 만든 포션을 지급하는 대신 채집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했다.

독선적인 성격의 그는 지금까지 누구와도 조를 짜지 않고 혼자 채집해 왔다. 처음에는 나처럼 재료 분배에 눈독을 들인 용병들이 몇 번 접근했지만, 곧 그의 까칠한 성격에 질려서 나가떨어지곤 했다.

지금도 그 성질머리가 슬슬 발동하려고 하는지, 이채진의 눈에 흉흉한 기운이 도사렸다. 나는 곧바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를 데려가면 도움이 많이 되실걸요.”

“……도움이라고요?”

“네.”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보는 그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이채진의 눈이 커졌다.

“이건……!”

내 손바닥 위에는 작은 주머니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걸 조금 풀어서 이채진에게 보여 주었다. 작은 주머니 안에는 오묘한 색을 가진 가루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설마…… 요정 날개 가루……?”

“네.”

심단테에게서 강탈한 아이템 중 하나인 요정 날개 가루였다. 이걸 뿌린 곳은 탐사가 훨씬 잘된다. 거기다 인어의 눈물과 상성도 좋아서 발견 확률을 더욱 높여 준다. 이채진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거기다 얘는 바람 능력자라서 가루를 더 멀리 퍼트릴 수 있거든요. 어차피 채집하는 지역은 조대로 구역을 나누니까 눈치 볼 필요 없이 가루를 쓸 수 있겠죠.”

“…….”

나는 옆에 있는 이든을 쿡 찔렀다. 그러나 바람 능력을 써서 이채진을 현혹해야 할 이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 저 새끼 싫어.”

“뭐?”

게다가 이딴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놀라며 이든을 쳐다봤다.

“야, 너 미쳤어?”

“그냥 우리끼리 하면 안 돼?”

“아오, 진짜.”

여기서 최대한 이채진의 환심을 사서 포션을 얻어 내야 하는데. 이채진은 호불호가 확실하고 계산적인 성격이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칼같이 잘라 낸다. 그가 원하는 황금색 불가사리를 잔뜩 안겨 줘서 어떻게든 포션과 바꿔야 한다고.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이든은 심술부리는 어린아이처럼 툴툴거리고 있었다. 이걸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자 옆에서 의문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직 그쪽한테 뭔가 한 기억은 없는데.”

고개를 갸웃한 이채진이 나와 이든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의 눈은 불쾌함보다는 순수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이채진이라도 초면인 사람이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내는 건 처음 있는 일인 모양이었다.

“하하, 이채진 능력자, 그게…… 얘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아서요.”

“나 기분 완전 좋은데?”

“좀 닥쳐라.”

“아야.”

옆에서는 보이지 않게 등을 꽉 꼬집자 이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대체 왜 그러냐는 듯이 눈짓을 하자, 이든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숙였다.

“있잖아, 이진아.”

“어?”

“내가 저 새끼 싫은 거 참고 도와주면, 나한테 뭐 해 줄 거야?”

“뭐?”

뭘 해 주다니. 그것보단 귓가에 닿는 달짝지근한 숨결이 불쾌했다. 슬쩍 뒤로 물러나려고 하자, 이든이 팔을 뻗어 내 허리를 꽉 붙잡았다.

“응? 뭐 해 줄 거냐고.”

“하…….”

코앞에 있는 이든은 즐거운지 씩 웃고 있었다. 이 자식이 또 날 괴롭힐 건수를 잡고 신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매몰차게 거절하고 뿌리치기엔 내 쪽이 더 급한 상황이었다. 일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뭘 원하는데?”

“흠.”

“나 돈 없는 거 알지?”

“에이, 또 그런다. 우리 사이에 섭섭하게 무슨 돈이야.”

눈을 휘며 웃은 이든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이따가 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다?”

“아니, 그게 뭔지 알고…….”

“내 도움 필요 없구나?”

“젠장.”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으나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채진이 점점 이쪽을 수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이든에게 속삭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빨리 이것 좀 도와주기나 해!”

“그래.”

내가 재촉하자 이든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이든이 바람 능력을 써서 가루 일부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려놨다. 이채진이 그걸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과연, 요정 날개 가루에 바람 능력이라…….”

요정 날개 가루는 사실 아직 그렇게 널리 알려진 아이템이 아니었다. 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써먹는 방법도 사람들이 잘 모르다 보니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았다. 요정 날개 가루가 본격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이채진은 이미 요정 날개 가루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당연했다. 원래 소설에서 요정 날개 가루를 이용해 희귀 재료를 마구 채집한 건 내가 아닌 이채진이었으니까.

나는 소설을 읽어서 그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조금 흥분한 것 같은 이채진의 얼굴을 옆에서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그렇게 채집 구역을 늘리면 몹을 마주할 수도 있는데…….”

“얘 S급 용종이에요.”

“꺄아!”

“…….”

내 손에 들린 용식이가 높은 소리로 울었다. 이채진은 완전히 할 말을 잃고 용식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곧 계산을 끝마친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이진 능력자.”

“저야말로요.”

이채진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후후, 웃었다.

***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동굴 끝에 바닷물이 고여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확실히 채집팀이 다 살펴보지 못할 정도로 넓었다. 게다가 지금은 바닷물이 잘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라 더욱 넓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채집팀원들에게 주의 사항을 브리핑한 백하늘이 나에게 다가왔다.

“한이진 능력자와 이든 능력자는 정해진 구역에서 마음껏 채집하시면 됩니다. 개수 제한은 없다고 부길마님이 말씀하셨어요.”

“정말요?”

“네. 다만, 물이 들어오는 시간까지만 채집하고 바로 돌아오세요. 위험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백하늘은 잠시 내 뒤에 있는 이채진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가 채집하러 온 용병들에게 깽판을 쳐서 난리가 난 적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괜찮다는 듯이 웃으며 백하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따가 뵙죠.”

“네…… 조심하세요.”

뭘 조심하라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백하늘은 팀원들에게 돌아가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연신 불안한 눈빛으로 흘끗거렸다.

역시 이채진.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는군.

헛웃음을 지으며 이든을 돌아보았다.

“시작하자.”

“응.”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든이 능력을 썼다. 내 손 위에 있는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요정 날개 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널리 퍼졌다. 이채진이 재빨리 아이템을 작동시켰다.

“……바로 탐지가 됐습니다!”

“오오!”

아이템에서 붉은 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머메이드의 마력을 품고 있는 인어의 눈물은 바다의 특별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이 아이템은 그 기운을 감지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워낙 넓은 구역에 적은 수의 희귀 재료가 퍼져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탐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요정 날개 가루로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이야. 우리는 신이 나서 탐지된 곳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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