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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65)화 (65/228)

65화

“…….”

나는 할 말을 잃고 용식이를 내려다봤다. 중간 보스몹 카이렌을 끝장낸 무시무시한 드래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용식이를 보다가 물었다.

“너…… 성체로 변할 수 있었…… 아니, 원래 성체로 부화한 게 맞구나…….”

“뀨우우…….”

“하, 근데 왜 나한테는……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혼란스러웠다. 역시 원작처럼 용식이는 부화할 때부터 성체로 자랄 수 있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근데 왜 내 앞에서는 새끼 용인 척했던 거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이진 능력자!”

“아…… 성유빈 능력자.”

원래 강유현과 4구역에 빠졌어야 할 히로인, 성유빈이 날아오듯이 다가와 내 앞에 섰다. 방금 막 전투를 끝내서 그런지 그녀의 주위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괜찮습니까?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전 괜찮은데요. 오히려 성유빈 능력자가…….”

성유빈은 평소와 같이 기운이 넘쳐 보였지만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발키리의 전투복은 등급이 높은 장비일 텐데도 불에 그을리고 찢겨 있었다. 게다가 저기 녹아내린 부분은 설마 용식이 때문인가. 애써 그곳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힐러를 찾았다.

“빨리 치료받으셔야 할 거 같은데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구슬이 보였다.

“구슬 능력자! 여깁니다!”

“헉, 헉……. 한이진 능력자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선 성유빈 능력자 치유를…….”

“아, 넵.”

고개를 끄덕인 구슬이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전과 비슷한 주문을 소리 높여 외쳤다.

“깨끗하게 나아라, 얍!”

새하얀 빛무리가 성유빈을 감쌌다. 그을린 피부와 피가 흐르는 상처들이 순식간에 낫는 걸 보니 감탄이 나왔다. 역시 A급 힐러는 다르구나.

“고맙습니다. 구슬 능력자.”

“네에, 그런데…… 독 해제는 저 혼자 못하겠어요. 죄송해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

역시 저거 독에 당한 거 맞지……? 3구역 중간 보스몹 카이렌은 물 속성 몬스터니까 독이라면 용식이한테 당한 게 맞는 거겠지……? 같이 싸우다가 영향받은 거 맞지……?

내 시선이 발밑에 있는 용식이에게 향했다. 용식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있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니 또 애교를 피우듯 갸릉갸릉거렸다. 세상에…….

“성유빈 능력자, 제 포션이라도…….”

“아닙니다. 혹시 무슨 일 있을지도 모르니 아껴 두십시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오딘 길드에서 지급한 상급 포션을 주려고 하는데, 성유빈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독을 해제하지 않는 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니 넣어 두십시오.”

“아…….”

독을 해제하지 않는 한, 아무리 포션을 쏟아붓는다고 하더라도 낫지 않는다. 지금도 용식이의 독이 성유빈의 몸을 지키는 패시브 스킬과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용식이의 독은 S급이다. 그것도 같은 S급조차 막지 못하는 강력한 독이다. 성유빈의 상처가 너무 신경 쓰이는데, 정작 그녀는 무덤덤하기만 했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이진 능력자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

활짝 웃는 그녀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곧 송차현이 와서 성유빈을 데려갔다. 나에게는 선율이가 다가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저와 강유현만 4구역에 들어갔었어요.”

“4구역 말입니까?”

“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선율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클리어했다니 다행입니다. 저희 쪽도 그…… 소환수 덕분에 클리어할 수 있었습니다.”

“예…… 그런데 성유빈 능력자 상태는……?”

“죽지는 않을 겁니다.”

“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걱정이 안 되겠냐고!

처리할 일이 많은지 선율이도 나를 두고 딴 곳으로 가 버렸다. 강수현도 오자마자 해송하가 불러서 가 버렸고, 강유현도 부작용 때문에 성유빈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결국 나랑 용식이, 그리고 이든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하…….”

“이진아, 괜찮아? 많이 무서웠어?”

“말 걸지 마라.”

“알았어.”

“꺄아우…….”

“…….”

일단 용식이가 성체로 변했던 건 나중에 생각해 보자. 강유현도 스킬 부작용일 뿐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테고. 문제는 성유빈이었다.

성유빈과 강유현의 부상으로 인해 던전 공략이 정체되었다. 5구역으로 가는 포털이 열렸지만 정비하느라 선뜻 이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대 한편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인벤토리에서 각종 도구를 꺼내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 쪽을 살폈다.

바로 채집팀이었다. 던전 안에는 몹들이 오지 않는 중립 지역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 자라는 식물이나 광석을 채집하면 쏠쏠한 아이템 재료가 된다.

이곳 3구역의 끝은 심해와 연결된 지역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갖 희귀 재료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소설의 설정을 찬찬히 떠올리다가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그 사람’도 왔었지. 어쩌면 성유빈의 독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야, 이든.”

“응?”

“나랑 어디 좀 가자.”

“지금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시발.”

역겨운 말을 하며 들러붙는 이든을 발로 차려고 했으나, 그건 오히려 이 변태를 즐겁게 할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야 당연히 이진이가 가는 데 따라가야지.”

“후…… 그래.”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선율이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허락을 받아 채집팀에게 다가갔다. 채집팀은 거의 다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저기, 안녕하세요!”

“헉……!”

“……?”

스쿠버 다이버 같은 장비를 입은 채집팀의 사람이 나를 보더니 숨을 들이켰다. 왜 이러지? 나도 놀란 얼굴로 보는데, 당황한 채집팀 사람이 뒤로 슬슬 물러났다.

“자, 잠시만요.”

“네?”

그러더니 휙 돌아서 달려 나갔다. 어이없는 일에 나는 그저 두 눈을 깜박였다.

잠시 후, 아까 사라졌던 채집팀 팀원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녀와 똑같이 잠수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는 프레이야 길드 채집팀 팀장 백하늘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왜인가 했더니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불러온 거였군. 무시당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니 안심됐다. 구슬처럼 다른 사람들이 날 무서워하나 했네.

“무슨 일이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저랑 이 녀석도 채집에 참가하고 싶어서요. 부길마님 허락은 받았습니다.”

“아, 그러신가요?”

내 말을 들은 백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를 돌며 말했다.

“그럼 절 따라오세요.”

“넵.”

나는 얌전히 그녀를 따라갔다. 앞으로 채집을 잘하려면 그녀들의 말을 아주 잘 들어야 했다.

다행히 소설에서는 채집에 관한 이야기가 꽤 자세하게 나왔었다. 왜냐하면 이곳에도 조연이 한 명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백하늘을 따라가며 연신 주변을 곁눈질했다. 그러다 소설 묘사와 가까워 보이는 한 인물을 발견했다.

“…….”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한 남자가 제 손에 든 물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가 있는 곳만 딴 세상인 듯했다.

아싸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뿔테 안경을 쓴 남자. 연금술사 이채진이 분명했다. 나는 그의 위치를 확인하곤 백하늘의 뒤를 총총거리며 따라갔다.

“우선은 이걸 입으셔야 해요. 갑자기 수심이 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잠수복은 필수로 입으셔야 합니다.”

“넵.”

“그리고 잠시 후에 전체적인 브리핑도 할 거지만, 두 분은 채집이 처음이실 테니까 먼저 좀 말씀드리자면…….”

백하늘의 설명을 묵묵히 들으면서 계속 이채진 쪽을 흘끗거렸다. 역시나 그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든 신경도 쓰지 않으며 아이템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둥둥 떠 있는 섬 같았다.

“……그래서 저희가 조를 짜서 채집해야 하는데 혹시…….”

“저희는 저분이랑 가도 괜찮을까요?”

“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본 백하늘의 눈이 커졌다.

“어…… 저분…… 이채진 능력자랑요?”

“네!”

“저분은…… 음…….”

백하늘은 신중하게 말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가 굳이 세탁하지 않아도 나는 이채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연금술사인 그는 별명이 여럿 있다. 괴짜, 아싸, 사차원, 소패. 하나같이 좋은 별명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천재 연금술사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저분은, 그…… 혼자 채집하는 게 편한 분이라서요. 조를 짜지 않으신답니다.”

“혹시 그럼 이채진 능력자가 허락하면 괜찮을까요?”

“네?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이채진에게 시달려 온 백하늘은 필사적으로 나를 말리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소설을 읽은 나는 이채진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지금 여쭤보고 올게요.”

“아, 잠깐만요. 한이진 능력자…….”

나는 말리려는 백하늘에게 손을 흔들고 바로 뒤를 돌았다. 그리고 아직도 아이템을 노려보듯이 응시하고 있는 이채진에게 다가갔다.

“이채진 능력자님,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역시 예상대로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성격이니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단번에 흥미를 가질 만한 걸 얘기했다.

“여기에 황금색 불가사리 찾으러 오셨죠?”

“……!”

이채진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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