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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61)화 (61/228)
  • 61화

    9. 이게 아닌데…….

    ……랜덤? 이거 무슨 뽑기 게임이냐?

    황당한 눈으로 시스템 창을 쳐다보는데, 귀 바로 옆으로 몬스터가 던진 삼지창이 슉 하고 지나갔다.

    제길, 일단 뭐든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마음먹자마자 시스템 창이 또 떴다.

    「랜덤 소환을 시행하시겠습니까?」

    「yes/no」

    「남은 횟수: 3」

    왠지 또 재촉하는 것 같아서 짜증 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계속 총을 난사하면서 소리쳤다.

    “yes!”

    [랜덤 소환을 시행합니다.]

    무감정한 시스템 음성과 함께 주변에서 푸른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말 무슨 영웅 뽑기 게임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기왕 뽑는다면 이든이나 발키리들 중에서 아무나 나왔으면 하는데. 강수현은 아무래도 아직 어리고, 탐지계 능력자라 전투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1/5의 확률이다. 아무리 내가 운이 없다고 해도, 설마 1/5 확률로 강수현을 뽑겠어?

    소환의 영향인지 몬스터들이 쉽게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긴장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복잡한 문양이 얽히고설킨 푸른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푸른빛이 점차 사라지고,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어? 형!”

    “…….”

    내 운빨 무슨 일이야.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강수현이 날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눈을 접으며 방긋 웃었다.

    “하아…….”

    “왜 이런 데 혼자 있어요? 걱정했잖아요.”

    “그게…….”

    여기가 4구역이라는 말을 해 주려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강수현을 소환한 마법진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몬스터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조심해!”

    “……!”

    마치 환영 인사라도 된다는 듯이 강수현에게도 커다란 삼지창이 날아왔다. 가볍게 피한 강수현이 주변을 살짝 둘러보더니 나를 흘끗 쳐다봤다.

    “여기 설마…….”

    “일단 내 뒤에 서!”

    이대로 가면 강수현도 나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강수현을 끌어당겼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야, 지금 상황이……!”

    “괜찮아요.”

    급박한 상황에 맞지 않게 느긋한 어조로 말한 강수현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좁은 통로 안쪽으로 우글거리며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멈춰.】

    “……!”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마치 머릿속을 뒤흔드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린 뒤,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건 우리에게 달려들던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눈만 겨우 움직여 강수현 쪽을 쳐다보자, 그가 난감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라, 왜 형도 걸리지?”

    “……!”

    입을 열어서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파티, 파티를 걸고 스킬을 써야지. 이 바보야!

    강수현과 나는 공대에서 파티가 따로 맺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같은 파티가 아니었다. 그래서 광역 스킬이 나에게도 걸려 버린 것이었다.

    “아, 맞다.”

    “…….”

    뒤늦게 깨달은 강수현이 부산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내 앞에 작은 시스템 창이 떴다.

    「세(Sæ)-S76 채널 접속 완료. ‘강수현’이 파티를 신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다행히 시스템에게는 속으로만 말해도 수락이 가능하니 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힘껏 외쳤다.

    ‘yes! 빨리 yes!’

    「‘강수현’과 파티를 맺었습니다.」

    「기존 파티원 ‘강유현’이 자동으로 파티에 들어옵니다.」

    「상태 이상이 해제되었습니다.」

    “휴…….”

    몸을 옥죄던 느낌이 사라졌다. 한숨을 내쉬며 손을 쥐었다 펴는데, 가까이 다가온 강수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괜찮아요?”

    “응.”

    고개를 끄덕이고 앞을 쳐다봤다. 통로 앞을 꽉 채운 몬스터들, 나가들이 눈을 부릅뜨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방금 전의 나처럼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한 거야?”

    “네.”

    “오…….”

    “근데 제한 시간이 짧아서 빨리 없애야 해요.”

    “뭐?”

    깜짝 놀라며 몬스터들을 훑어보니, 벌써부터 삼지창을 쥔 손이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형, 공격 스킬 있어요? 이거 쓰는 동안은 다른 스킬을 쓸 수가 없어서…….”

    “어, 잠깐, 잠깐만.”

    마음이 급해졌다. 물론 나에게 공격 스킬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오딘 길드에서 지급해 준 무기가 더 있었다.

    지금 들고 있는 무기는 성능은 좋지만 권총이라 난사가 불가능했다. 제한 시간이 풀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쓸어 버릴 무기가 필요했다.

    다급하게 인벤토리를 뒤졌다. 다행히 A급 무기들이 장비 칸에 꽉꽉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다룰 수 있는 무기들을 눈으로 쭉 훑었다. 군대에서 지겹게 잡았던 경량 기관총이 떡하니 있는 걸 보고 쾌재를 울렸다.

    ‘이거다!’

    하지만 총기류니까 불 속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지금 들고 있는 권총도 그랬다. 그래서 성유빈에게 반전 스킬을 받은 거였는데, 인벤토리 안의 무기들은 반전 스킬을 부여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세히 따지면서 무기를 고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풀릴 것 같았으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기관총의 모습을 가진 A급 무기를 꺼냈다.

    「캐릭터 특성 ‘금손’의 영향으로 아이템 등급이 변경됩니다.」

    “좋아!”

    예상대로 무기를 만지자마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무기가 아까보다 좀 더 묵직해진 느낌이 들었다.

    “강수현, 물러나!”

    “네.”

    이제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강수현이 몸을 움직여 내 뒤로 오자, 곧바로 몬스터들을 묶어 둔 스킬이 풀렸다. 동시에 나는 몬스터들을 조준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콰과과광, 콰과과과과광!!!

    “윽……!”

    엄청난 화력에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 났다. 이를 악물고 버티자 무기에서 쏟아진 불길이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아, 역시 불 속성 무기인가. 아무리 등급이 높아졌다고 해도 정예 몬스터들을 처치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총에 맞은 몬스터들 사이에서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새파란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뭐지?”

    파지지직, 파직.

    “크아아아!”

    “크어어!”

    1구역에서 해송연이 멀록들에게 전격 스킬을 쓴 것처럼 새파란 전류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윽!”

    총을 쏘는 걸 멈추고 강수현과 함께 뒤로 더 물러났다. 전깃불에 지져지는 몬스터들에게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부연 설명에 달려 있는 짤막한 글을 발견했다.

    「부가 효과: A급 전격 마법」

    “오…….”

    마침 부가 옵션으로 전격 마법이 달린 무기였다. 부옵이면 이전에는 등급이 더 낮았겠지만, 내 금손 패시브 스킬로 등급이 향상된 것 같았다.

    그렇게 통로에 흘러 들어온 몹들을 모두 쓸어 버리고 앞을 쳐다봤다. 통로 입구 앞에 서 있는 강유현을 소리 높여 불렀다.

    “야, 강유현!”

    “……?”

    흉흉한 기세로 마검을 휘두르던 강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그의 앞으로 밀려들던 몹들도 줄어든 것 같았다.

    “여긴 우리한테 맡기고, 넌 빨리 중간 보스몹 잡고 와!”

    “…….”

    “그래야 공대랑 합류하지!”

    계속 이러고 있으면 끝이 없다. 이곳 4구역의 중간 보스몹인 ‘아카로스’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정예 몬스터들이 있어서, 사실 고작 세 명이서 공략할 수 있는 구역이 아니었다.

    그런 곳을 원작에서 강유현과 성유빈은 단 두 명이서 공략하긴 했지만, 거기서도 정석대로 공략하지는 못했다.

    화력의 끝판왕인 성유빈이 정예 몹들의 어그로를 한꺼번에 끌어서 시간을 버는 동안, 강유현이 심해 안으로 홀로 내려가 아카로스를 퇴치해서 클리어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서!”

    “……알았다.”

    주인공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상황 파악을 빠르게 끝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이 잠시 나와 강수현을 훑었다. 혹시 강수현이 동생이라고 걱정하는 건가? 나도 내가 강수현을 제대로 지켜 줄 수 있을지 좀 걱정되긴 한다.

    그래서 입을 열어 한 마디 해 주려는데, 강유현이 곧바로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아, 잠깐, 스킬……!”

    “필요 없다.”

    “저, 저…….”

    뒤늦게 개박하 스킬이 생각나서 강유현을 붙잡으려고 했는데, 이놈이 싸가지 없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대로 물속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저러다 또 드라우그 킹처럼 중간 보스몹이 SS급으로 확 변해 버리면 어떡하려고!

    답답한 마음에 어휴, 하고 한숨을 쉬자마자 다시 몬스터들이 개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강수현이 또 스킬을 썼다.

    【멈춰.】

    그리고 그사이 잽싸게 탄창을 갈았다. 총기류 모양의 무기들은 일반 총과 똑같이 탄창을 갈아 줘야 했다. 물론 진짜 총알과는 다르다. 총알 모양처럼 만든 아이템 안에 탄환이 아닌 능력자의 스킬로 부여한 갖가지 속성 마법들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탄창 하나하나가 겁나 비싸지만, 역시 오딘 길드. 내 인벤토리 안에는 속성 마법을 건 탄창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좋아.”

    곧 총구에서 다시금 불을 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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