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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60)화 (60/228)
  • 60화

    “윽……!”

    포털을 지나자마자 몸이 어딘가로 휩쓸렸다. 게다가 눈도 뜰 수 없었다. 물이 눈 안으로 들어와 따끔따끔했기 때문이었다.

    제길, 바닷속인가? 그럼 3구역이나 4구역의 후반부? 하필이면 중간 보스몹 코앞으로 이동한 건가?

    잠깐, 4구역에 빠진 강유현과 성유빈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물이 많은 곳에 들어왔을 리가 없는데…….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 급류에 휩쓸리는 몸을 어떻게든 해야 했다.

    “으윽……!”

    아이템을 써야 한다. 인벤토리에 있는 호흡용 아이템과 잠수용 아이템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물속인 데다 급류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은 인벤토리 안에 있는 아이템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와, 나 이렇게 어이없이 죽는 건가? 데드 플래그가 아니라 수영을 못해서 죽는다고? 이게 말이 돼?

    억울한 마음에 힘껏 발버둥을 쳤다. 그러자 단단한 무언가가 내 몸을 위로 확 끌어 올렸다. 나는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푸하!”

    그토록 간절했던 공기가 폐부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동시에 물속에서 발버둥 치며 잔뜩 마셨던 물이 역류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켁! 콜록……!”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기침부터 해 댔다.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누구지? 기침이 안정된 후에 슬며시 눈을 떠 보았다. 제일 먼저 물에 젖은 시커먼 코트가 보였다. 그리고 속살이 비치는 하얀색 셔츠. 나는 그걸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반질반질했을 셔츠가 물에 젖은 데다가 손안에 우그러져서 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다.

    “헉…….”

    “괜찮나?”

    무심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 강유현이었다.

    네가, 네가 왜 여기 있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나는 경악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머리를 다쳤나?”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린 강유현이 내 이마에 커다란 손을 척 올렸다. 그에 나는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경기를 일으키듯 그에게 벗어나려고 하다가, 여기가 물속이라는 걸 깨닫고 다시 강유현의 셔츠를 손으로 꽉 붙잡았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능력자들은 보지 못했다.”

    “아무도? 아무도 없어? ……성유빈은?”

    “보지 못했다.”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 강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대로 잔잔한 해수면 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성유빈이 없다고? 4구역에는 강유현이랑 성유빈만 떨어지는 거 아니었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자, 강유현이 멋대로 나를 끌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 수면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헉, 헉…….”

    세(Sæ) 던전의 1구역은 해변, 2구역은 동굴, 3구역과 4구역도 후반까지는 동굴이 계속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바닷속으로 배경이 바뀐다. 특히 4구역은 해저 동굴이 굉장히 오래 이어지다가 중간 보스몹이 등장하기 직전에 갑작스럽게 깊은 바닷속으로 배경이 바뀐다.

    역시 아무래도 여기 4구역 맞지? 분위기상 4구역이 맞는 거지?

    울고 싶은 기분에 고개를 숙이는데, 아직도 폐 속에 남아 있는 물이 꾸역꾸역 식도를 타고 넘어왔다.

    “으에엑…….”

    민망하게도 강유현이 계속 내 등을 두드려 줬다. 수치사 각이다. 젠장.

    조금 진정되자 겨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강유현이 스킬을 써서 주변에 불을 밝혔다. 그가 쓴 파란 불이 어두운 해저 동굴의 끝과 잔잔한 수면을 비췄다.

    “여기 아무리 봐도 4구역 끝인 것 같은데…….”

    “그래.”

    “다른 사람들은 없고 우리만…… 그치?”

    그러고 보니 용식이도 없었다. 내가 없으면 용식이가 많이 불안할 텐데……. 혹시나 해서 소환수를 찾거나 소환할 수 없나 하고 시스템 창을 살폈지만,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에러만 떴다. 젠장.

    “그래.”

    내 말에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강유현이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더니 손을 뻗어 왔다. 그리고 무자비한 손길로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헉, 야, 뭐 하는 짓이야!”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위험하다.”

    “아니, 잠깐……!”

    이거! 이 젖은 옷 이벤트도 히로인이랑 하는 거였잖아! 내가 아니라 성유빈 옷을 벗겨야 하는 거라고!

    아니, 실제로는 벗기진 않고 서로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등을 돌려 옷을 갈아입었던 거지만. 근데 나한테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적극적이지? 같은 남자라 그런가.

    “아, 좀! 내가 벗을 수 있다고!”

    “…….”

    버럭 소리를 지르고 손을 떼어 내자, 강유현이 탐탁지 않은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왜 저렇게 무섭게 봐. 얼른 안 벗으니까 답답해서 저러나. 나도 이러고 싶진 않지만 차가운 물에 굳어서 손가락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아, 아니라고.”

    굼뜬 움직임이 짜증 나는지 강유현이 버럭 화를 냈다. 자기는 다 갈아입었다고 시위하는 거야, 뭐야.

    “……왜 자꾸 쳐다봐?”

    “…….”

    이글거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물어보자, 강유현이 이를 바득 갈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저 성질머리 하고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 하는 짓은 다 답답하고 짜증 나는 모양이다.

    한숨을 푹 내쉬며 나도 옷을 갈아입었다. 손가락이 곱은 데다가 젖은 옷이 자꾸만 축축 쳐져서 갈아입기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단추가 풀리지 않아 낑낑댈 때마다 기다리기 짜증 나는지 강유현이 한숨을 푹푹 쉬는 소리가 들려서 눈치도 보였다.

    이럴 거면 나도 그냥 발키리들이 잠수복 챙겨 입을 때 같이 입을걸. 그러나 후회는 너무 늦었다. 나는 간신히 옷을 갈아입고 뒤돌아 서 있는 강유현을 불렀다.

    “나 다 갈아입었…….”

    퐁당.

    “……응?”

    바닷물이 고여 있는 뒤쪽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혹시 뒤늦게 성유빈이 오기라도 했나?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았다.

    “으악!”

    하지만 그런 나에게 날아온 건 커다란 삼지창이었다. 내 몸 따위는 가볍게 꿰뚫어 버릴 수 있는 투척용 창이 물속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날아왔다.

    챙!

    내 앞을 가로막은 강유현이 마검으로 창을 쳐 냈다. 그리고 그 직후 수면이 흔들리더니 몬스터들이 일제히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키에에!”

    “……!”

    여기 중간 보스몹 잡기 전에 마지막 중립 지역 아니었어? 이 물속에 들어가야 몬스터들한테 어그로가 끌리는 걸 텐데. 왜 벌써부터 몹들이 공격하는 거지?

    당황하는 나를 두고 강유현은 이미 몬스터들과 전투에 들어갔다. 나는 그의 뒤에 서서 침착하게 무기를 꺼냈다.

    4구역의 중간 보스 몬스터는 ‘아카로스’라 불리는 거대한 수룡이었다. 평소 세(Sæ) 던전 자체가 등급 변동이 심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원작대로라면 강유현이 혼자서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지금은 그를 도울 성유빈도 없었다.

    ‘역시 내가 스킬을 걸어 줘야…….’

    포털을 타기 직전에는 무슨 일인지 개박하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동기화를 막 끝내고 조절이 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스킨십 조건에만 정신이 팔려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 이든에게 발동되지 않았을 때 빼고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필 포털 타기 직전에 스킬이 걸리지 않았다니. 혹시 그게 잘못돼서 성유빈이 아닌 내가 강유현과 4구역에 들어오기라도 한 건가.

    “크어어!”

    “윽……!”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유현이 미처 막지 못한 몬스터가 나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총을 장전해 놓고 있었던 터라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쾅!

    D급 던전에서 이든에게 받았던 그 총이었다. 그리고 성유빈의 스킬로 반전 속성까지 곁들인. 불 속성을 가진 무기라 화염을 내뿜지만 물 속성을 가진 4구역의 몬스터, 나가에게는 확실한 유효타를 먹였다. 비늘에 둘러싸인 푸른 나가의 몸이 화염에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어라?”

    공대에 가입한 뒤로 뜨지 않던 상태 창이 눈앞에 뜨며 무감정한 시스템 목소리도 동시에 들렸다.

    확실히 공대와 구역이 떨어진 게 맞는 모양이었다. 현재 공대와 다른 구역에 있기 때문에 연결이 완전히 끊긴 것이다. 한숨을 삼키며 계속해서 총을 쐈다.

    쾅, 쾅, 콰과광!

    “크윽!”

    그러다 곧 한계에 다다랐다. 강유현과 나를 덮치는 몬스터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게다가 중간 보스몹을 지키는 정예 몬스터들이다 보니 상대하는 게 너무 버거웠다. 나는 강유현의 뒤에서 그가 놓친 몬스터들만 처치하는 데도 그랬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

    강유현에게 스킬을 걸어 주기 전에 뒤지게 생겼다. 나는 성유빈만큼 강하지 못했다. 이대로면 히로인의 자리를 빼앗은 머저리에 더해 민폐 짓이나 하는 트롤 확정이었다.

    당황하고 있는 이때, 갑자기 눈앞에 상태 창들이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든]

    레벨: 65

    등급: A

    칭호: 바람의 가호(S)

    스탯

    체력: 70 힘: 62 민첩: 75 정신력: 50 마력: 49

    스킬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