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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56)화 (56/228)

56화

“……!”

이게 그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 그런 느낌인가……!

지쳤던 몸에 활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정말 힐 한 번에 기운이 회복되다니 놀라웠다.

“오, 대박……!”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워하자, 옆에서 눈치를 보던 구슬이 조용히 물었다.

“이제 괜찮으신가요?”

“네, 아주 좋네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구슬이 안도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볼수록 어려 보이는 얼굴이다.

나이를 물어보면 실례이려나. 해송하처럼 겉모습만 어려 보이는 거면 어쩌지. 근데 목소리나 하는 행동을 보면 진짜 어려 보이는데. 중학생? 잘 봐 줘도 고등학생 정도?

“그런데 구슬 능력자…….”

“네?”

“실례지만 나이가……?”

아무래도 참을 수 없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러자 다행히도 구슬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 올해로 15살이에요. 중학교 2학년이요.”

“아…….”

도결이와 동갑이네. 마음이 착잡해졌다. 도결이에게는 어린애가 무슨 던전에 들어가냐고 타박했지만, 눈앞에 있는 어린 힐러는 정작 그 애와 동갑이었다.

전투계를 제외한 다른 보조계 능력자들이 워낙 귀해서, 어린 나이부터 던전 공략에 차출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이렇게 어린아이를…….

“구슬 능력자.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네?”

“송차현 길마님이나 부길마님은 상사니까. 그분들에게 말하기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하라구요. 얼마나 도움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

그에 구슬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초면인 능력자가 이렇게 말하면 부담스러우려나.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데 구슬이 어딘가 감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한이진 능력자님.”

“아니, 뭐…… 주제넘은 참견일 수도 있지만…….”

“아니에요. 한이진 능력자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두 손을 맞잡은 구슬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부담스러운 눈길에 하하,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저, 다른 분들도 부르셔서…….”

“아, 그럼 어서 가 봐요. 또 봐요, 구슬 능력자.”

“네!”

꾸벅 인사한 구슬이 스태프를 들고 총총거리며 멀어졌다. 멋쩍기도 하고, 좀 착잡한 기분도 들었다. 도결이는 자기가 던전에 가고 싶어 하던 눈치던데, 저 아이는 어쩌려나. 순수한 자의로만 오진 않았겠지.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해송하가 슬쩍 입을 열었다.

“구슬 능력자는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대요.”

“그래요?”

“네, 거기다 악질 브로커들에게 잡혀갈 뻔한 걸 송차현 마스터님이 빼내서 데려왔대요.”

“헐…….”

각성 센터 주변에는 나쁜 의도를 가진 악질 브로커들이 득실득실했다.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각성자들을 살살 꼬드겨 질 나쁜 길드에 팔아넘기거나 이용하곤 했는데, 막 각성한 어린 여자애는 그놈들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힐러니까 던전 말고 다른 데서도 일할 수 있을 텐데, 가족들이 예전에 게이트 사고에 휘말려서 집안 사정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더라구요. 송차현 마스터님도 탐탁지 않아 하는데 힐러가 워낙 귀하다 보니…….”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지원팀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구슬을 힐끗거렸다. 나처럼 기력이 떨어진 지원팀 사람들이 힐을 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고, 나도 내 한 몸 건사하기 바빠서 뭘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입맛이 씁쓸했다.

“구슬 능력자가 신경 쓰이세요?”

“아, 네. 제 동생이랑 나이가 똑같아서…….”

“한이진 능력자님도 동생 있으세요?”

“하하, 네. 제 동생은 남자애예요.”

“구슬 능력자랑 동갑이면, 동생분이 한이진 능력자님과 나이 차이가 꽤 나네요?”

“네, 그렇죠.”

10살 가까이니까, 차이가 좀 나긴 한다. 한이진 부모가 늦둥이를 낳은 모양이지.

“저희랑 비슷하시네요. 저랑 송연이도 나이 차이가 꽤 나거든요.”

“네? 그래요?”

“저랑 송연이는 딱 10살 차이네요.”

“…….”

미안하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해송연이 10살 연상의 누나로 보인다고…….

하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제 사람들이 하나둘씩 휴식을 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바깥 시간으로는 지금이 밤 10시 정도. 여기서 아침까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이동할 것이다. 동굴 안이라 밤이고 낮이고 내내 어둡기만 하지만, 랜턴을 밝히니 그나마 있을 만했다.

“이진아! 이거 먹어.”

“응?”

어딘가로 사라졌던 이든이 돌아오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가 하고 보니 랩에 간편식이 돌돌 말려 있었다.

“어디서 났어?”

“저기서 주던데?”

“……?”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지원팀 일부가 배식용 식사를 만들어 나눠 주고 있었다. 인원이 많아서 배식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새 받아 온 건가. 빠르기도 해라.

“오, 땡큐.”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 들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조금 다급한 손길로 랩을 벗겼다.

안에는 커다란 닭고기가 들어 있었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방금 데운 건지 따끈따끈했다.

“이거 고기 안에 밥도 들어 있다더라.”

“그래?”

“응.”

닭 날개 볶음밥 같은 건가? 신기한 마음으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의외로 쫄깃하고 담백한 닭고기가 씹혔다. 거기다 그 안에 꽉 찬 볶음밥이 감칠맛 났다.

“오, 이거 맛있네?”

“그치?”

우리는 마주 앉아서 닭 날개 볶음밥을 게 눈 감추듯이 허겁지겁 먹었다. 2구역까지 미친 듯이 돌파하느라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하고 달리기만 해서 그런지 정말 꿀맛이었다.

순식간에 하나를 다 먹으니 아쉬웠다. 딱 하나만 더 먹었으면 좋겠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을 때였다.

“……응?”

무언가가 불쑥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뭔가 하고 보니 아까 먹은 닭 날개 볶음밥이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닭 날개 볶음밥을 들고 있는 팔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무표정한 얼굴의 강유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먹어.”

“어? 나?”

“그래.”

얼떨결에 강유현이 주는 닭 날개 볶음밥을 받았다. 그리고 강유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너는?”

“난 먹었다.”

“그래?”

하나 더 받은 건가? 어떻게 받아 왔지? 하여간 능력도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유현이 준 닭 날개 볶음밥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한이진 능력자!!”

“……성유빈 능력자?”

헐레벌떡 달려온 성유빈이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수줍은 얼굴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가 하고 보니 또 닭 날개 볶음밥이었다.

“어, 저 먹었는데요.”

“벌써요?”

“네.”

“그래도 하나 더 드세요.”

“아니, 두 개나 먹어서 배부른데…….”

무슨 유행이야, 이거. 왜 다들 나한테 닭 날개 볶음밥을 주지 못해서 안달인데. 내가 그렇게 안쓰러워 보이나? 한이진 몸이 그렇게 마르진 않았는데.

“형!”

“강수현, 너마저…….”

강수현마저 나에게 달려와 닭 날개 볶음밥을 내밀었다. 이제 보니 이거 신종 괴롭힘 같은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서 드세요. 한이진 능력자. 던전 안에서는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야 합니다.”

“맞아요, 형. 그리고 형은 많이 먹어야 해요.”

“빨리 먹어, 이진아.”

“…….”

아니, 이거 다 못 먹는다고…….

난감해하는 내 눈에 지원팀을 돌아다니며 힐을 하느라 배식받을 때를 놓쳤는지, 급하게 배식받는 곳으로 뛰어가는 구슬이 보였다.

“구슬 능력자!”

“……네?”

조그만 머리통이 내 쪽으로 휙 돌아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땀을 뚝뚝 흘리는 구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성유빈과 강수현에게 받은 닭 날개 볶음밥을 내밀었다.

“아직 못 먹었죠? 이거 먹어요.”

“아, 네. 근데 두 개나…….”

“성장기니까 많이 먹어야죠.”

“어어…….”

놀란 얼굴로 닭 날개 볶음밥을 받은 구슬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많이 먹고 힘내세요!”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구슬은 내 뒤를 흘끗 보고는 별안간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왜 그런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나에게 닭 날개 볶음밥을 안겨 준 장본인들이 눈을 흉흉하게 뜨고 있었다. 왜 애를 저렇게 보는 거야.

“뭐냐?”

“이진아, 이거 원래 한 사람당 하나씩 먹는 거야.”

“뭐? 나는 여러 개 먹었는데?”

“그건…….”

그러자 말문이 막힌 듯,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고개를 갸웃하는데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왔다.

“약탈자들이 여기 있었군요.”

“……!”

선율이가 다가와 싸늘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배식 담당자들이 얼마나 곤란해했는지 아십니까.”

“저, 저는 제 몫을 드린 건데…….”

“그게 더 문제인 걸 모릅니까. 성유빈 대장.”

“윽…….”

“최전선에서 싸워야 할 대장이 본인 관리를 소홀히 하다니 반성하세요.”

“넵…….”

냉정한 선율이의 말에 성유빈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아무리 여유분이 있다고 해도 두 개씩 가져가면 어쩌자는 겁니까. 식량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거 모릅니까?”

“헉…….”

이놈들이 결국 대형 사고를 쳤구나. 눈앞이 깜깜해졌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선율이에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부길마님. 이놈들이 제가 안 먹은 줄 알고 제 몫까지 계속 챙겨 와서…….”

“…….”

선율이의 못마땅한 눈이 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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