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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55)화 (55/228)

55화

“…….”

아무리 봐도 거짓말하는 거 같은데.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강수현이 접힌 눈을 휘며 샐쭉 웃었다. 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엔 확실하게 느끼기 위해 더욱 정신을 집중하고, 땀이 밴 손을 꽉 잡았다.

“하, 미치겠네…….”

“……?”

나른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의구심이 들어 고개를 들자, 얼굴이 붉어진 강수현이 보였다.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놈, 역시 스킬 적용됐는데 아니라고 거짓말한 거구만!

열받은 내가 손을 빼내려고 탈탈 털었다. 그러나 강수현은 끈질기게 내 손을 놔주지 않았다.

“야, 빨리 놔라!”

“에이, 좀만 더요.”

“이게 무슨 놀이인 줄 알아?”

화를 버럭 내며 강수현의 손을 찰싹찰싹 때렸다. 물론 이놈도 때린 내 손이 더 아파서 빡치기만 했다. 제길.

“시간이 없으니 빨리 진행하죠. 강수현 능력자.”

보다 못한 송차현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 강수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내 손을 놓았다.

하여간 쟤는 매사가 다 장난인 것 같지. 이래서 어린애란.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시 장갑을 꼈다. 그리고 강수현과 해송하가 다시 동굴 입구 쪽으로 다가가는 걸 지켜봤다.

해송하의 어깨에서 내려온 라티가 강수현의 어깨를 타고 올라갔다. 조그마한 다람쥐가 꼬리를 움칫거리며 강수현의 어깨 양쪽을 왔다 갔다 했다.

잠시 후,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물든 강수현이 고개를 돌려 송차현을 바라보았다.

“탐지됩니다.”

“후…….”

송차현을 비롯한 다른 공대원들도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이제 2구역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로써 하루 3명이 끝났군요. 그 조건은 이런 상황에서도 유효한 겁니까?”

“…….”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띤 송차현의 얼굴을 강유현이 지그시 내려다봤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강유현이 내 보조 스킬을 하루 3명에게만 걸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었다.

1구역에서 해송연과 한여름에게 스킬을 걸고, 2구역 탐지를 위해 강수현에게도 스킬을 걸었다. 이렇게 3명에게 스킬을 걸게 된 것이다.

하지만 S급과 A급 능력자들의 탐지 스킬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진 2구역을 보조 스킬 없이 돌파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냥 발키리들에게 계속 스킬을 걸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강유현을 설득하려 했을 때였다.

“네, 안 됩니다.”

“……! 야!”

“…….”

무심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 강유현이 나를 살짝 밀었다. 그러자 내 몸은 속절없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어쭈, 이게?

“대신 2구역은 제가 정리하도록 하죠.”

“어…….”

강유현이? 혼자서?

놀란 얼굴로 쳐다보자, 강유현이 척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멍청하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후.”

“…….”

왜인지 송차현은 ‘계획대로야.’라고 말하는 듯한 썩은 미소를 짓고 뒤돌았다. 분명 강유현이나 나, 둘 중에 하나를 이용하려고 했던 거겠지. 강유현은 그 미끼를 덥석 물어 버린 거고.

“에휴.”

원래 1구역과 2구역은 프레이야 길드가 주도해서 클리어하기로 했었다. 그동안 낮은 등급의 몹들만 있었던 1구역과 2구역은 이상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 보스몹이 있는 3구역이나 4구역에서부터 SS급인 강유현의 힘을 빌리려고 했었다. 등급 이상 현상으로 보스몹의 등급이 확 높아져 버리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강유현밖에 없을 테니까. 그전까지는 힘을 아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2구역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부디 강유현의 컨디션이 버텨 주길 바라는 수밖에.

뭐, 주인공이니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걱정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2구역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크아아아!”

“키에에에!”

“…….”

무슨 인간 불도저세요?

해송연과 한여름이 트럭 수준이었다면, 강유현은 그야말로 불도저였다. 정말 엄청난 기세로 2구역의 몹들을 쓸어 버리고 있었다.

수거팀은 이제 그냥 해탈한 채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측은하게 여길 틈도 없었다. 나 역시 겨우 따라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진아, 괜찮아?”

“하아……. 말 걸지 마라.”

“꺄우우, 꺄우.”

나는 거의 이든과 용식이에게 짐짝처럼 들려서 이동하고 있었다.

보조 스킬은 왜 자신에게는 걸 수 없는 건가. 나도 세지고 싶다. 체력 좀 좋아지고 싶다…….

너무 짐짝처럼 끌려다녀서 멀미가 나올 것 같아졌을 무렵, 공대는 2구역의 중간 지역에 도착했다. 게임으로 치면 약간 세이브 포인트 지점 같은 곳이었다.

동굴 안의 좁은 길을 빠져나가니, 곧 넓은 공간이 나왔다. 길 양쪽이 뻥 뚫려 있는 넓은 동굴 안은 몹들이 오지 않는 중립 지역이었다.

“흐아아…….”

나는 돌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이건 미친 짓이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 어쩜 이렇게 막무가내로 공략할 수가 있는 거지. 팔다리가 후들거려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가면 되겠군.”

“네, 마침 중립 지역이 나와서 다행이네요.”

“…….”

송차현과 선율이가 두런두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다행이다. 이제 여기서 푹 쉬면 체력이 좀 돌아오긴 하겠지.

강수현에게 건 보조 스킬 지속 시간이 떨어지기 전까지 미친 듯이 돌파해 왔다. 그래서 고작 하루 만에 1구역을 지나, 2구역의 반까지 밀고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러다가 세(Sæ) 던전 공략 시간 신기록 달성하겠는데? 최소 일주일을 잡던 공략 시간이, 내 스킬 덕분에 절반 이상을 단축하게 되는 건가. 점점 더 송차현이 했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한이진 능력자님! 괜찮으세요?”

“……해송하 능력자…….”

조금 피곤한 기색이 느껴지긴 하지만, 해송하 능력자는 나보다 훨씬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린애로 착각했을 정도로 어려 보이고, 몸도 작지만 그는 엄연한 A급 능력자였다. 탐지계 능력자라서 체력도 좋은 것 같고, 부럽다…….

“힐러 분을 불러올까요?”

“아뇨, 다친 것도 아닌데…….”

“그래도 기력 회복도 시켜 주시니까 힐을 받아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그래요?”

힐러가 해 주는 힐이 기력 회복도 시켜 준다니, 처음 듣는 얘기였다. 소설은 워낙 괴물 같은 주인공 놈들의 얘기만 나오다 보니 나처럼 체력이 약한 조연을 위한 정보 같은 건 무시되기 마련이었지.

아무튼 그럼 힐러한테 도움을 좀 받아 볼까? 어차피 그동안 다친 사람도 없어서 힐러들이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해송연과 한여름, 강유현 같은 괴물들이 몹들을 다 쓸어 버렸으니.

“그럼 좀 부탁드릴게요.”

“네! 제가 여기로 모셔 올게요!”

당차게 외친 해송하가 호다닥 어딘가로 뛰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아예 돌바닥 위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죽겠다…….”

“뀨우우.”

“응, 아빠 괜찮아, 괜찮아.”

부산스럽게 내 곁을 왔다 갔다 하던 용식이가 앞발을 들어 내 다리를 꾹꾹 눌렀다. 귀여워라. 손을 들어 용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 줄까?”

“오, 땡큐.”

이든이 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든의 바람 능력인지, 어디선가 바람이 솔솔 불어와 좀 살 것 같았다. 비록 우중충한 던전 안이지만, 안마를 해 주는 용냥이와 인간 선풍기가 곁에 있으니 좀 살 만하구나.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을 때였다.

“모셔 왔어요. 한이진 능력자님!”

“아.”

고개를 드니, 해송하와 그 옆에 처음 보는 여자애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저 애가 힐러?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 한이진 능력자님.”

잔뜩 긴장한 여자애가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스태프를 꽉 쥐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거 아닌가? 설마 나 때문에 긴장한 건가?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당황하고 있는데, 힐러로 추정되는 여자애가 꺼질 듯한 음성으로 겨우 말을 이었다.

“저는…… 프레이야 길드의 A급 힐러…… 구, 구슬이라고 합니다…….”

“네, 구슬 능력자…….”

특이하지만 예쁜 이름이네. 그런 생각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구슬을 마주 보았다.

“제가 지금 체력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요. 힐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네, 무, 물론이요.”

“…….”

근데 왜 이렇게 떠는 거지. 한이진 얼굴이 그렇게 무섭게 생기진 않았는데. 떨떠름하게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는데, 구슬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손을 꽉 쥐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저, 저기……!”

“네?”

“소, 손 한 번만 잡아 주세요…….”

“……?”

구슬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눈을 깜박였다. 손을 왜 잡아? 설마 보조 스킬 걸어 달라는 건 아닐 테고.

“아, 안 될까요…….”

“아뇨, 뭐. 손 정도야…….”

당황하긴 했지만 거절할 정도의 부탁은 아니라서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스킬을 걸어 달라는 건 아닐 테니 장갑은 벗지 않았다. 담백하게 악수만 하고 손을 거두자, 구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가,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힐이나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러자 구슬이 들뜬 얼굴로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기운 내라, 얍!”

“…….”

그건 스킬 이름인가? 근데 꼭 스킬 이름을 불러야 발동할 수 있는 건가? 거참 이상하네…….

어쨌든 다 큰 어른이 말했으면 다소 민망했을 것 같은 짧은 외침 이후로, 새하얀 빛무리가 나를 감쌌다. 그리고 점점 내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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