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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54)화 (54/228)

54화

해송하가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되다뇨?”

“그게…….”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거리던 해송하가 제2구역으로 들어가는 동굴 입구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어두운 얼굴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탐지가 전혀 안 돼요…….”

“탐지가…… 안 된다고요?”

해송하의 말에 나 역시 제2구역의 동굴 입구를 흘끗 쳐다봤다. 정황상 저 2구역을 말하는 게 맞겠지? 그래도 확인차 다시 입을 열었다.

“2구역 탐지가 안 된다는 말인가요?”

“네.”

“전혀?”

“네에.”

안 그래도 어두운 해송하의 얼굴이 까만 먹구름이 낀 듯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에 내 얼굴도 심각해졌다.

“2구역은 동굴 안이라 길이 무척 복잡하지 않나요?”

“맞아요…….”

해변이라 사방이 온통 뻥 뚫려 있는 1구역과 달리 좁은 동굴 안인 2구역은 마치 미로처럼 길이 무척 복잡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탐지를 못 하면 영영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던데.

어두운 동굴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서둘러 강수현을 불렀다.

“야, 강수현!”

“……?”

그러자 동굴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던 강수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손짓을 하자 재빨리 나에게 다가왔다.

“왜요, 형?”

“너도 2구역 탐지가 안 되냐?”

“아…….”

강수현의 시선이 해송하에게 닿았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탐지가 전혀 안 돼요.”

“무슨 그런 일이…….”

S급과 A급 탐지계 능력자들이 전혀 탐지를 못 한다고? 그게 말이 되나?

“뭔가가 앞을 못 보게 꽉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냥 새카만 도화지가 눈앞에 있는 거 같아요.”

“음…….”

어쨌든 둘 다 탐지가 전혀 안 된다는 거네. 이거 정말 엄청난 문제인 거 같은데.

결국 우리끼리 고민해 봤자 소용이 없다. 쉬고 있던 송차현과 선율이, 그리고 몇몇 발키리 대원들이 모여 간이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하나도 감지가 안 된다는 겁니까?”

“네, 원래 입구 부근에서 뭐라도 기척이 느껴져야 하거든요. 근데 그런 느낌이 아무것도 없어요.”

“1구역은 여전히 탐지가 되는데, 2구역만?”

“네…….”

“…….”

해송하의 말에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한여름이 멀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야, 저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럼?”

“그럴 리가.”

짧게 혀를 찬 성유빈이 송차현을 쳐다봤다. 성유빈이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네.”

담담하게 대답한 송차현이 해송하에게 이것저것 더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송하는 번번이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군요.”

조금 고민하던 송차현이 입을 열어 말했다.

“하나는 한여름 부대장의 말대로, 2구역에 감지되는 몬스터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

“…….”

하지만 그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던전에서 몬스터가 증발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을 한 송차현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다음으로 내뱉은 말에 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른 하나는, S급과 A급의 탐지 능력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것.”

“…….”

“…….”

그럼 2구역의 등급이 S급 이상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강수현의 스킬 레벨이 아직 낮다는 걸 감안하면 최소 S급, 아니면 얼마 전에 나와 강유현이 클리어한 니플헤임 던전처럼 SS급으로 올라갔다는 말인데…….

이제 겨우 2구역인데, 벌써? 중간 보스 몬스터도 나오지 않는 2구역이 그 정도로 변한다고?

그때,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선율이가 말을 보탰다.

“S급 이상의 몬스터가 결계를 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2구역에 중간 보스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난이도가 올라갔다면, 충분한 가능한 일이에요.”

“…….”

이렇게 되면 2구역 공략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진다는 말이었다. 세(Sæ) 던전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발키리들은 물론이고, 저화질 영상으로나마 공부했던 우리의 노력도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선은 탐지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송차현이 중얼거린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로 쏠렸다. 바로 내가 서 있는 자리였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아, 내 보조 스킬. 그걸로 탐지계 능력자의 능력치를 올리면 2구역을 탐지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 해송하 능력자에게 스킬을……?”

“아, 아뇨.”

내 물음에 해송하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는 등급이 더 높은 강수현 능력자님이 스킬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쟤는 스킬 숙련도가 아직 좀…….”

사실이라고 해도 대놓고 말하면 상처가 될 테니까, 해송하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러자 해송하가 잠시 몸을 움찔, 하더니 뒤로 조금 물러나며 말했다.

“저, 저한테 공감 스킬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 스킬 숙련도를 강수현 능력자와 공유할 수 있어요. 스킬 자체를 공유하지는 못하지만요.”

“아하, 그런 스킬이…….”

“네, 그러니 저보다 등급이 높은 강수현 능력자가 보조 스킬을 받아서…… 우선은 2구역을 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음.”

차분하게 설명하는 해송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스킬 숙련도 공유가 가능하다면 해송하보다는 강수현이 먼저 보조 스킬을 받는 게 낫겠지.

나 역시 동감하며 고개를 돌리자, 송차현 역시 허락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까요.”

“지금 시작할까요?”

“으음…….”

내 물음에 송차현이 손목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던전은 대부분 낮과 밤이 뚜렷하지 않아서 시간을 알기 어려웠다. 특히 해변이 배경인 1구역은 하루 종일 뜨거운 해가 내리쬐고, 동굴 안인 2구역은 항상 어둡기만 하다.

그래도 우리 몸의 생체 리듬은 지켜야 하기에, 던전 공략을 하면서 시간 배분을 잘하는 건 중요한 문제였다.

곧 시간을 확인한 송차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1구역을 돌파하는데 걸린 시간이 빨랐기 때문에, 차라리 지금부터 2구역 공략을 시작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그렇지?”

“네, 여기서 휴식 시간을 더 가지면 내일 이동해야 할 것 같아요.”

송차현의 물음에 선율이도 시간을 계산해 보곤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곧바로 강수현에게 다가갔다.

“손.”

“……?”

다른 발키리들에게 그랬듯이 기계적으로 한쪽 손을 쓱 내밀었다. 그러자 강수현이 가뜩이나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쳐다봤다.

“저도 손이에요?”

“뭐?”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강수현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저도 그냥 손만 잡아요?”

“아니, 그럼?”

뭘 또 하려고?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자, 강수현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음 하고 짧은 신음을 내뱉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볼 키스?”

“시발.”

남자끼리 역겹게 뽀뽀는 무슨. 극혐하는 표정으로 노려보는데, 여기저기서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잠깐! 난 아직 손도 못 잡아 봤는데!”

“야, 성유빈 잡아! 저거 말려!”

“언니, 진정해요. 워워.”

“꺄아우! 꺄우!”

나보다는 주변이 더 아우성이었다. 당황한 눈으로 둘러보자, 흉흉한 살기가 강수현에게 꽂혔다.

“이진아, 저놈 그냥 죽일까?”

“…….”

험한 말을 지껄이는 이든은 물론이고, 제 동생을 보는 눈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눈빛의 강유현까지.

아니, 애가 농담 한 번 한 것 가지고 죽이긴 뭘 죽여.

나는 이든의 허리춤을 팔꿈치로 찌르고, 다시 강수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난하지 말고 잡아라.”

“치.”

입술을 비죽인 강수현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감쌌다.

나는 곧바로 정신을 집중했다. 이전에 스킬을 썼던 것보다 더 정성을 들였다. 2구역의 갑작스러운 난이도 변화로 탐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전보다 내 스킬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 보조 스킬을 걸고도 강수현과 해송하가 아무것도 탐지할 수 없다면, 길도 찾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공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지난 두 번보다 더 긴장되었다. 저도 모르게 강수현의 손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괜찮아요.”

“응?”

“스킬을 쓰고 나서 탐지가 안 된다고 해도, 형 잘못이 아니니까.”

“아…….”

앳된 얼굴을 한 강수현이 씩 웃었다. 나보다 어린 애한테 이런 말을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좀 부끄러워졌다.

“그래, 고맙다…….”

“헤헤.”

그리고 이제 슬슬 된 것 같아 손을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강수현은 손에 힘을 풀지 않고 나를 멀뚱하게 쳐다봤다.

“야, 이제 손 놔.”

“벌써 끝났어요?”

“응.”

“흐음.”

고개를 갸웃거린 강수현이 다시 물었다.

“정말 쓴 거 맞아요? 아무 느낌도 안 나는데.”

“아까 손이 뜨거워졌잖아.”

“못 느꼈다니까요.”

“진짜?”

그러자 눈을 접은 강수현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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