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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53)화 (53/228)
  • 53화

    몽둥이……?

    아니, 저런 무기를 메이스라고 하던가? 곤봉?

    당황스러운 눈으로 한여름이 거대한 몽둥이로 땅 위를 내리치는 걸 쳐다봤다.

    콰아아앙!

    “윽……!”

    모래 폭풍이 일어나 순간 눈앞이 가려졌다. 겨우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땐, 요란한 폭발과 함께 정신 사나운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으하하하!”

    “…….”

    한여름은 마치 인간 폭탄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녀도 성유빈과 같은 불 능력을 가진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 조금 달랐다. 단순한 화기 능력이 아닌, 불꽃이 터지는 폭발 능력에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그녀의 몸보다 큰 몽둥이가 화력을 더 높여 주는 것 같았다. 특별한 장치라도 있는 무기인가?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해송연 못지않게 훨훨 날아다니는 한여름은 도저히 내 눈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헉, 헉…….”

    “이진아, 괜찮아?”

    “허어, 미친, 진짜…….”

    나는 한여름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어찌나 시원시원하게 밀고 나가는지, 출발하기 전에 그녀가 장담한 대로 해송연의 스피드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듯했다.

    “이 괴물들 같으니…….”

    과연 이게 내 보조 스킬 때문일까? 원래부터 발키리 멤버들이 무지막지한 괴물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의문을 느낄 정도로 나는 점점 초주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정지!”

    “흐어어, 흐어…….”

    그렇게 1구역의 끝에 다다랐을 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 쓰러질 것 같은 나를 강유현과 이든이 각각 붙잡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한이진 능력자.”

    “허어억, 헉…… 뭘, 이정도야…….”

    “…….”

    허세를 부리는 나를 송차현이 안쓰러운 눈으로 응시했다. 왜, 뭐. 왜 그렇게 보는데, 왜.

    고개를 드니, 눈앞에 거대한 동굴의 입구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나가들의 영역, 세(Sæ) 던전의 제2구역이었다.

    “……1구역을 반나절 만에 돌파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하아, 그렇군요.”

    “그것도 던전 이상 현상 때문에 난이도가 3구역만큼이나 높아졌는데 말이죠. 이게 단 두 명의 능력자가 이뤄 낸 거라고 누가 믿겠습니까.”

    “……? 그런……가요?”

    송차현의 말이 조금 알쏭달쏭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조금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딘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의문 섞인 눈으로 송차현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시겠습니까. 한이진 능력자.”

    “제가 뭘요……?”

    “한이진 능력자의 보조 스킬만 있으면, 몇몇 S급과 A급 능력자들만으로도 상위 등급의 던전 공략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것도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요. 번거로운 인원을 매달고 다닐 필요 없이,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가령…….”

    송차현의 눈이 내 옆에 있는 강유현을 향했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송차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여기 있는 강유현 능력자가 한이진 능력자의 보조 스킬을 받으면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도 있겠죠. SS급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한 것처럼요.”

    “…….”

    송차현의 말에 나는 그제야 주변의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1구역을 돌파하는데 보조 스킬을 건 단 두 명의 능력자로 충분했으니, 앞으로 이걸 활용하면 2구역도 수월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 보스몹과 최종 보스몹을 상대할 인원만 대기 시간에 걸리지 않게 잘 분배한다면, 기존의 공략 시간을 과연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까.

    ‘이거,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한 스킬이잖아……?’

    그냥 쓸 만한 스킬 정도, 이걸로 밥 벌어 먹고살 수는 있겠다 싶었던 보조 스킬이 생각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혼란스러워하는 내 앞을 강유현이 막아섰다. 나는 그의 넓은 등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래서? 애초에 한이진의 스킬을 믿지 못해서 시험한 주제에 무슨 말이 하고 싶습니까.”

    “……시험?”

    나는 강유현과 송차현의 느닷없는 대치에 그저 눈만 깜빡였다.

    “듣기 안 좋은 말이군요. 그만큼 투자한 능력자를 검증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아, 그러니까 내 보조 스킬을 일단 시험해 보려고 강유현의 하루 3명 개소리도 봐주었다는 말이군. 우선은 스킬 검증이 안 되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몰랐으니까.

    근데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라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자기한테 사기 스킬이 있다면서 믿어 보라고 하면 일단은 의심부터 해 볼 거 같은데.

    그리고 정말로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인지를 먼저 알아보려고 했겠지. 송차현의 행동은 그리 유별난 게 아니었다.

    “오딘 길드에서는 정말로 한이진 능력자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

    “당장 나만 해도 이렇게 탐이 나는데, 지킬 수 있을까?”

    “……!”

    이글거리는 눈이 나를 향했다. 순간 소름이 돋아서 머리카락이 삐쭉 솟을 정도였다. 송차현의 눈빛에 나는 기가 팍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때, 내 앞에 선 강유현에게서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의심되면 지금 시험해 보든가.”

    “윽……!”

    SS급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주위를 흉흉하게 압박했다. B급인 나는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칫.”

    혀를 찬 강유현이 기운을 거두자 좀 살 만해졌다. 숨을 좀 돌리고 나서 강유현의 넓은 등을 노려보았다.

    “야! 문제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좀 있어, 던전 클리어는 해야 할 거 아냐!”

    “…….”

    태평양 같은 등을 퍽퍽, 때리며 외쳤다. 이놈은 왜 자꾸 쓸데없는 일로 프레이야 길드 사람들이랑 부딪치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그냥 네, 네 하고 던전 클리어부터 잘해야 할 거 아냐.

    “그만 때려.”

    “아씨, 진짜.”

    짜증 나서 때렸는데 내 손이 더 아파서 짜증만 늘어났다. 나는 강유현의 어깨를 확 밀치고 송차현을 마주 보았다.

    “어쨌든 그건 저와 오딘 길드의 문제니까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 그러시다면.”

    빙긋 웃은 송차현이 몸을 돌렸다. 그렇게 강유현을 도발한 것치고는 꽤 선선한 몸짓이었다.

    도대체 의도를 모르겠네.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보는 눈은 대놓고 탐욕으로 번들거려서 좀 무서웠다.

    이제야 좀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내 스킬을 노리는 길드들이 앞으로 더 늘어나겠지. 아마 단순한 길드 단위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킬이 좋다고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네.’

    인생이 피곤해진다는 게 단점이었다.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도대체 시스템은 무슨 생각인 건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이진 능력자!”

    “으악!”

    검은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나를 덮쳤다. 식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고 탈탈 털어 댔다.

    “진짜 대단해! 그 S급 보조 스킬!”

    “으어, 이것 좀, 놓고……!”

    누군가 했더니 한여름이었다. 잔뜩 흥분한 그녀가 내 몸을 아주 짤짤 흔들어 댔다.

    자기보다 큰 곤봉을 붕붕 흔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힘이 아주 장사였다. 내가 아무리 밀어 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꺼져! 이 못난아!”

    “뭐?”

    한여름을 확 밀친 이든이 소리쳤다. 불쾌한 듯 일그러진 눈으로 한여름이 이든을 노려봤다.

    “누구 보고 못난이래, 이 솜사탕 머리가!”

    “뭐가 어째? 솜사탕이 얼마나 맛있는데!”

    “…….”

    초딩이냐?

    아니, 요즘 초딩들도 저런 유치한 말싸움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시커먼 동굴 입구를 쳐다봤다.

    보아하니 조금 쉬고 곧바로 2구역에 들어갈 것 같은데. 하루 만에 2구역에 진입하는 건 확실히 엄청난 성과였다.

    “꺄우!”

    “응?”

    바닥에 내려와 냄새를 킁킁 맡던 용식이가 어딘가로 휙 달려갔다. 나는 깜짝 놀라 용식이의 뒤를 따라갔다.

    “용식아, 어디 가!”

    “꺄!”

    타닥타닥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간 용식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크게 울었다. 그리고 제자리에 우뚝 멈췄다.

    “크르르…….”

    “왜 그래?”

    고개를 갸웃하며 용식이를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의외의 인물이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한이진 능력자님?”

    “아, 해송하 능력자.”

    해송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와 용식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어깨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쭈우, 쮸!”

    “어, 그때 봤던 다람쥐…….”

    이름이 라티라고 했던가. 첫날 만났을 때 용식이와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았던 다람쥐 모습의 소환수가 용식이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러 댔다.

    “라티, 쉿, 또 왜 그래.”

    “용식아, 그러지 마. 친구야, 친구.”

    “크르르…… 크응.”

    “쮸우우…….”

    나와 해송하가 달래자 용식이와 라티의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나는 용식이가 진정할 때까지 쓰다듬어 주다가 해송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길 찾느라 많이 힘드시죠?”

    “아아, 아뇨. 괜찮아요.”

    “수현이는 잘하던가요?”

    “네에, 저와 달리 S급인 분이라, 아마 다음엔 저와 라티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에이, 설마요.”

    농담인 줄 알았으나 해송하의 얼굴에 씁쓸한 기색이 보였다. 그리고 어두운 얼굴로 제2구역의 동굴 입구를 응시했다.

    “저기, 한이진 능력자님.”

    “왜요?”

    “그게…….”

    어쩐 일인지 말하기를 주저하던 해송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심각한 얼굴에 나도 덩달아 낮은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

    이윽고 고개를 돌린 해송하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뭔가가 잘못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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