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은 강유현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송차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나와 강유현을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정말요?”
솔직히 스킬을 적게 걸어 주면 나야 편하긴 하다. 정신력 스탯이 높아서 스킬을 많이 써도 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지치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프레이야 길드는 그걸로 괜찮을까. 나를 데려오려고 던전에서 얻는 막대한 보상을 많이 포기했었을 텐데. 최대한 나를 이용하는 게 이득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송차현을 바라보는데, 그녀와 딱 눈이 마주쳤다. 송차현의 눈이 휘었다.
“괜찮습니다. 스킬 적용 대상자는 후에 알려 드리죠.”
“예…….”
의외로 쿨하게 대답한 송차현이 몸을 돌렸다. 이로써 내 쓰임은 2구역이나 3구역에서 본격적으로 생길 테니 여유가 많이 생겼다. 게다가 하루에 세, 네 명에게만 보조 스킬을 걸어 주기만 하면 된다.
이거 완전 꿀 빠는 거잖아? 얼떨결에 월급 루팡하는 고액 연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형, 저는 앞에서 갈게요.”
“그래.”
탐지계인 강수현은 해송하와 함께 파티 전열에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쪽에 성유빈, 한여름, 차민희, 해송연 같은 1대대의 주력 전투원들을 배치하고 뒤에는 나를 포함한 나머지 지원 인력이 강유현과 이든, 그리고 다른 발키리 멤버들에게 보호받으며 이동할 것이다.
“…….”
“…….”
강수현은 내 옆에 있는 강유현에게도 슬쩍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강수현은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유현 역시 서늘한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대화가 모자란 형제들 같으니라고. 혀를 쯧쯧 차며 강유현의 등을 퍽 때렸다.
“야! 수현이한테 조심하라고 말 좀 해라.”
“…….”
그런데도 강유현은 꿋꿋하게 입을 열지 않았다. 게다가 강유현의 등을 때린 내 손만 아팠다. 시발.
“전 괜찮아요. 형.”
“으이구.”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은 강수현이 선율이의 부름에 뒤를 돌아 달려갔다. 나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강유현을 흘끗 노려봤다.
“왜?”
“어휴, 아니다.”
꼬일 대로 꼬여 있는 주인공에게 나 따위가 잔소리해 봤자 뭐가 바뀔까. 한숨을 푹 내쉰 나는 파티 끄트머리에서 고개를 휘휘 돌렸다.
지금은 아무리 봐도 한가로운 휴양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관광객이 하나도 없는 무인도의 해변이 이런 느낌일까. 부드러운 모래를 사박사박 밟으며 걸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그때, 해변 저 멀리서 덩어리진 새카만 무언가가 우리들 쪽으로 맹렬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동하던 파티가 멈추고, 곧바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꾸워어어!”
“꾸에에엑!”
“…….”
화질이 나쁜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뭔가 더…….
더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리고 너무나 흉측했다. 생선 대가리에 사람 팔다리가 달린 멀록은 게임 같은 데서 봤던 것처럼 귀여워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보면 저런 느낌이구나. 그나마 파티 끝에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흐린 눈을 하며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뛰어오는 멀록들을 쳐다봤다. 생선 비린내가 여기까지 풍길 것 같았다.
“전투 준비!”
성유빈의 목소리가 해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평소엔 차분하던 성격의 그녀가 야차처럼 돌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멀록 무리와 발키리들이 격돌했다. 앞으로 달려 나간 성유빈은 멀록들이 미처 다가오기도 전에 주먹을 해변 위에 내리꽂았다.
쾅!
새빨간 불꽃이 순식간에 멀록 무리들을 집어삼켰다. 역상성 스킬로 멀록들은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성유빈의 불꽃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녀의 주위로 새빨간 불꽃이 위협적으로 넘실거렸다. 이곳까지 그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느껴졌다.
“우와…….”
감탄하는 내 옆에서 강유현과 이든은 시큰둥했다. 저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B급인 나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뒤에서 구경했다. 성유빈의 주먹 난사를 시작으로 다른 발키리 멤버들도 본격적으로 멀록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아오, 이 생선 대갈 새끼들이!”
“야! 거기 투창 좀 막아 봐, 좀!”
“저딴 거 맞아도 안 죽으니까 신경 꺼!”
“시발!”
“…….”
다소 과격하고 과한 욕설들이 함께 했지만 말이다. 이것 또한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부분들이라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움을 느꼈다. 발키리들은 전투할 때 생각보다 더…… 입이 걸쭉하구나!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데, 갑자기 내 몸이 뒤로 질질 끌려갔다.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만 가.”
“가까이 가면 위험해. 이진아.”
강유현과 이든이 각각 하나씩 내 팔을 잡아끈 것이다. 무슨 내가 강가에 내어놓은 어린애인가. 과보호가 아닌가 싶었지만, 고개를 내리니 용식이도 짧은 앞발로 내 옷 끄트머리를 잡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뀨우, 뀨…….”
“으, 응. 그래, 그래. 알았어. 아빠 조심할게.”
용식이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순순히 백스텝을 했다. 그래, 나는 B급이니까 조심해야지. 허약한 멀록들한테도 금방 당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전투가 끝나는 걸 지켜봤다. 1차로 몰려든 멀록들은 금방 퇴치됐고, 해변에는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 갔다. 그리고 약간의 재료와 아이템으로 변하며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수거팀이 재빨리 가서 아이템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나도 지금 하는 일이 없는데 저거라도 하는 게 어떨까. 그런 마음으로 수거팀을 응시하다가 강유현을 흘끗 봤는데, 그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내 속마음을 안 거지? 귀신같네.
“한이진 능력자!”
“……!”
저 멀리서 멀록들의 시체를 밟고 선 성유빈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상당히 기괴한 광경이었다. 멀록 시체 위에서 활달하게 손을 흔드는 성유빈의 모습이 또 어색하지 않아 더더욱 기괴해 보였다.
“하,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멀리 있는 내가 잘 보일까 싶었는데, 그녀는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을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전투가 잘 끝나서 기분이 좋은가 보네. 무사히 멀록들을 물리친 성유빈과 발키리들을 흐뭇한 얼굴로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
그때, 성유빈과 멀지 않은 바다에서 하얀 거품 같은 게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모습이 특이해서 유심히 살펴보는데, 그 순간 무언가가 바닷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성유빈 능력자!”
바다에서 올라온 거대한 것이 곧바로 성유빈을 향해 돌진했다. 멀록 시체 위에 있던 성유빈이 가장 가까워서 타깃이 된 것 같았다.
큰 목소리로 성유빈을 부르고 바다 쪽을 가리켰지만, 이미 늦었다. 성유빈이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바닷물을 흩뿌리며 올라온 괴물이 그녀를 덮친 후였다.
콰과과광!
마치 폭탄이 떨어진 듯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변까지 죄다 휩쓸렸다. 뒤에 있던 나도 충격파를 고스란히 느끼며 허리를 접었다.
“윽……!”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주변이 좀 잠잠해졌다 싶을 때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놀라운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크르, 크르르…….”
“……!”
길고 거대한 몸통을 가진 바다 괴물이 지면에 머리를 박으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큰 몬스터는 3구역에서부터 나올 텐데 왜 이곳에…….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몬스터의 머리가 번쩍 들려 해변 모래 위에 처박혔다.
콰앙!
거대 몬스터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은 성유빈이 그대로 패대기를 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쏟아져 나온 불꽃이 곧바로 몬스터를 덮쳤다.
“크아아아!”
불에 타는 괴로움에 몬스터는 모래 위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몬스터의 긴 몸통은 바다에 닿아 있었는데,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탓에 바다의 해수면과 부딪혀 큰 물보라가 일었다.
“공격!”
다른 발키리들은 불꽃이 조금 꺼지길 기다렸다가 공격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거대 몬스터가 정리되었다. 나는 그걸 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앞에는 길을 찾는 해송하와 강수현도 있었기에, 자칫하면 큰일 날 수도 있을 뻔했다. 나는 수거팀의 뒤를 졸졸 따라가 파티의 앞부분으로 다가갔다.
“성유빈 능력자!”
“……!”
“괜찮아요?”
발키리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성유빈이 사람들을 헤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성유빈의 상태는 더 괜찮아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한이진 능력자는 아무 일 없었습니까?”
“네, 저야 멀쩡하죠.”
뒤에서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렸는데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이는데 심각한 표정의 송차현과 선율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1구역에서 수룡이 등장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수룡? 아까 그게요?”
“예, 좀 작은 놈입니다만. 엄연한 용종입니다.”
“……그거 분명 3구역부터 나오는 놈들이었죠?”
무려 중간 보스가 나오는 곳에서부터 등장하는 상급 몬스터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시체가 된 수룡을 흘끗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1구역에서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린 송차현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생각한 것보다 내 차례가 더 빨리 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