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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50)화 (50/228)
  • 50화

    “지금 저보고 꺼지라고 한 겁니까.”

    “귀도 잘 안 들리나 보군.”

    “…….”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당황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이 두 사람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응, 없구나.

    아직 송차현도 선율이도 오지 않았다. 아마 공대 인원들을 다 무사히 보내고 나면 올 셈이겠지. 책임감이 강한 건 좋은데, 덕분에 맹수 두 마리를 초원에 풀어놓은 격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의 무례한 언사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강유현 능력자.”

    “그쪽이야말로 한이진에게 또 손대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성유빈이 흠칫하고 내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양팔을 감싸 쥐고 있는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제가 혹시 아프게 했습니까……?”

    “아, 그게…….”

    입바른 말로 괜찮다고 하려 했지만, 그 순간 팔이 삐그덕거렸다.

    ……미안하다. 성유빈. 이건 내가 실드 쳐 줄 수가 없구나.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솔직하게 말을 내뱉었다.

    “하하…… 좀 아프네요.”

    “…….”

    그러자 성유빈의 얼굴에서 죄책감이 가득 묻어났다.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강한 능력자들만 있었을 테니 힘 조절을 못 한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같이 몸이 약한 B급 능력자도 있다는 걸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조심해 주면 좋을 텐데.

    “죄송합니다. 한이진 능력자.”

    “조금만 조심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팔이 아팠던 것도 꽤 나아져서 감싸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런데 어쩐지 몸 상태가 아까와 달랐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내 몸을 내려다봤다.

    “……?”

    분명 물에 젖은 생쥐처럼 바닷물에 푹 절어 있었던 내 몸이 어느새 보송보송해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의아해하는 내 눈에 성유빈의 몸 주위를 넘실거리는 불꽃이 보였다.

    성유빈의 능력은 불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발키리들은 불 속성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발키리들의 전투력 대부분은 이 엄청난 화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레이야 길드가 주력으로 삼는 던전은 이곳, 세(Sæ) 던전이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세(Sæ) 던전은 바다에 위치한 곳이고, 여기에 속한 몬스터들 모두 물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포켓X을 조금이라도 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속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마치 게임과도 같은 현대 판타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식적으로 불 속성을 가진 파티원들이 물 속성의 던전을 공략하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하지만 발키리들은 불 속성을 주력으로 가지고도 수도 없이 세(Sæ) 던전을 클리어해 왔다. 그건 단순한 기합과 노오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물론 아니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하겠습니다. 한이진 능력자.”

    “아, 네에.”

    그건 바로 성유빈의 스킬 덕분이었다. 그녀는 속성을 반전시키는 역상성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 속성을 가진 몬스터들에게 본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그 스킬은 함께 전투하는 파티원들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던전에서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했다. 새삼 그 힘을 두 눈으로 확인하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저기, 성유빈 능력자님!”

    “네?”

    내 적극적인 외침에 성유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가서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성유빈 능력자의 역상성 스킬, 아이템에도 적용이 되나요?”

    마침 내가 가진 무기가 불 속성을 띠고 있었다. 물론 오딘 길드에서 다른 무기도 지급해 줬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손에 익은 무기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내 물음에 성유빈이 당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이템에 적용되는 스킬은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스킬을 걸면 아이템의 속성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정말인가요?”

    “네. 직접 쓰는 능력보다는 효과가 다소 떨어지지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활짝 웃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혹시 저에게도 역상성 스킬을 걸어 주실 수 있을까요?”

    성유빈의 역상성 스킬은 시스템이 정한 인원수의 파티원만큼만 자동 적용이 된다. 그리고 이미 그쪽 정원은 발키리 1대대 능력자들로 인해 꽉 차 있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성유빈에게 역상성 스킬을 받으려면 그녀가 직접 걸어 줘야 했다.

    능력자들에게 있어서 보조 스킬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남들에게 걸어 주지 않는다. 아무리 같은 공대라고 해도 말이다. 하물며 우리는 같은 길드원도 아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성유빈은 그런 내 걱정을 한 번에 날리며 흔쾌히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물론입니다. 한이진 능력자!”

    휴, 다행이다. 소설에서는 성유빈이 역상성 스킬로 다른 능력자들에게 까칠하게 굴어서 좀 걱정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녀 역시 나에게 보조 스킬을 받아야 하니 마음이 좀 너그러워진 모양이었다.

    안심하는 나를 향해 성유빈이 조금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나에게 다시 다가오며 말했다.

    “사실은 제 스킬도 특별한 발동 조건이 있습니다.”

    “어?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개박하 스킬과 달리 성유빈의 역상성 스킬은 그냥 걸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그러나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 소설의 작가는 생략을 지나치게 많이 한단 말이지. 소설에서 나오지 않은 설정이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성유빈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잠깐 저와 저쪽에 가서…….”

    “……?”

    어쩐지 수상한 느낌이 물씬 들었을 무렵, 내 몸이 또 뒤로 휙 밀려났다. 고개를 돌리니 눈살을 찌푸린 강유현이 여전히 나를 안은 채 성유빈을 노려보고 있었다.

    “개수작 부리지 마.”

    “……개수작?”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뒤로 물러난 성유빈이 혀를 차고 있는 게 보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만 깜박이는데, 천장에 있는 게이트에서 다시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거센 물줄기와 함께 우리가 타고 내려왔던 것과 똑같은 보트가 바다 위로 떨어졌다.

    촤아악!

    “야, 성유빈!”

    “유빈 언니!”

    보트에서 한여름과 차민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성유빈이 그랬던 것처럼 맹렬하게 해수면을 박차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와, 다른 능력자들은 다 이렇게 멋지게 도착하는구나. 물에 빠진 건 나뿐이었던 건가? 새삼 허탈해졌다.

    “너 그렇게 혼자 막 뛰어 내려가면 어떡해? 미쳤냐?”

    “언니, 괜찮아요? 이번에야말로 죽은 줄 알았…… 아니,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뒤이어 다른 발키리 멤버들도 차례차례 도착했다. 마지막 보트에 탄 송차현과 선율이까지 도착하자 드디어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한이진 능력자.”

    “네?”

    송차현이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이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강유현을 흘끗 보고는 다시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한이진 능력자의 보조 스킬은 상황을 보고 썼으면 합니다. 1구역은 이상 현상이 있어도 그렇게 강한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럼 언제쯤……?”

    “2구역에서도 상황을 보고 결정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지속 시간이 긴 스킬은 아니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아마 내 스킬은 보스전 직전에 써야 유용할 것이다. 송차현도 그걸 잘 알기에 말을 꺼낸 거겠지. 잡몹들 상대로 능력치를 늘려 봤자 그다지 도움 되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3구역부터였다. 3구역과 4구역에 나뉘어서 들어가 중간 보스몹을 각각 상대해야 한다. 3구역에서는 그나마 내 스킬로 S급과 A급 위주로 능력치를 올리면 되는데, 4구역에 단둘이 들어갈 강유현과 성유빈이 좀 걱정되었다.

    물론 소설에서는 둘이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게 더 극적이고 재미있었는데, 지금 이건 현실이었다. 가뜩이나 소설보다 둘의 사이가 더 험악한 것 같아서 걱정인데, 둘만 남겨졌을 때 어떨지 걱정이 좀 되었다.

    그러니 2구역에서 워프하기 직전에 강유현이나 성유빈의 손을 몰래 잡아서 스킬을 걸어 줄 생각이었다. 그럼 더 수월하게 중간 보스몹을 잡고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역시 난 천재야.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며 고개를 돌리다가 강유현과 눈이 마주쳤다.

    “…….”

    “뭐, 왜?”

    괜히 찔려서 움찔하자, 강유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하루 세 명.”

    “……뭐?”

    이게 뭔 소리야.

    눈살을 찌푸리는데, 강유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보조 스킬을 거는 인원은 날 제외하고 하루 세 명. 그 이상은 안 된다.”

    “뭐라고?”

    기가 막혀서 쳐다보자, 송차현 역시 당황스러운 눈으로 강유현을 보고 있었다.

    “하루에 세 명은 좀…… 부족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저를 제외하고 세 명입니다. 그리고 돌발 상황에는 제가 최대한 대처하겠습니다.”

    “음…….”

    강유현이 저렇게까지 말하자 송차현도 더는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기, 내 의견은? 내 의견도 들어야 하지 않겠소, 여러분들?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려고 하자, 강유현이 비뚜름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설마 다른 놈들과 질펀하게 놀아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지, 질펀?”

    아니, 얘가 지금 큰일 날 소리를…….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휘휘 돌렸으나, 다행히 다들 준비하느라 바빠서 우리 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야, 미쳤어? 고소당할 일 있어?”

    혹시라도 오해받으면 큰일 날 말을 내뱉는 강유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타박했다. 그러자 강유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러니까 하루 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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