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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49)화 (49/228)

49화

“으아아아아악!!!!!!!!”

브아아아아앙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귀를 울리고, 거센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모터보트가 뒤집힐 듯 크게 울렁거렸다.

그리고 내 속도 미친 듯이 울렁거렸다. 배에 달린 조그만 손잡이를 생명줄이라도 된 듯 필사적으로 잡고 매달렸다.

미친, 이런 미친! 보트가 이렇게 롤러코스터처럼 질주할 거란 소린 안 했잖아!

선율이의 차분한 얼굴이 언뜻 눈앞을 스치고, 그다음으로는 산산이 부서진 파도가 나를 덮쳤다.

최악이다. 진짜.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심장 마비로 죽을지도 몰랐다.

아이템으로 강화했다는 보트는 거친 해수면을 가르며 쭉쭉 뻗어 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도와 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를 지켜 주지는 못했다.

“하하하, 거의 다 왔습니다!”

보트 조종사가 웃으며 큰소리로 지껄였다. 사실 다른 소음이 너무 커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대충 저런 말인 것 같았다.

“대체 언…… 끄악!”

항의하려던 나는 크게 요동치는 보트 때문에 혀를 깨물 뻔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짜디짠 바닷물이 싸대기를 때렸다.

이런 거, 이런 건 소설에 전혀 나오지 않았잖아! 사기다. 나는 사기를 당한 거야!

작가를 찾아가 멱살을 붙잡고 싶었다. 대체 이런 내용을 왜 싹 삭제해서 나를 농락한 거냐고 말이다. 제정신인가? 섬세함이 부족한 작가 같으니라고.

“자, 이제 저 파도만 넘으면 됩니다!”

“뭐, 뭐라……!”

조종사의 말을 겨우 알아들은 내가 눈을 크게 떴다.

저 파도를 넘겠다고? 이 사람이야말로 지금 제정신인가?

눈앞에 보이는 파도는 도저히 이 작은 보트로 넘어갈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미친 조종사는 오히려 모터에 속력을 더 높이기 시작했다.

“시발, 미치이이이이인!!!!!!!!!!!!!!”

“하하하하!”

그야말로 광기였다. 이건 광기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조종사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보트가 산만한 파도를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아악!!!!!!!!”

1시간 전의 나는 그 갑판 위에서 그냥 뛰어내렸어야 했다. 이딴 지옥이 기다릴 줄 알았다면 헤엄을 쳐서라도 도망갔어야 했다고!

그러나 내 비명은 거인 같은 파도와 부딪친 순간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과 물살로 인해 순식간에 바스러져 입 안에서 사라졌다.

배가 거의 뒤집히는 걸 보고, 나는 그냥 눈을 꽉 감아 버렸다.

와씨, 여기가 내 죽을 자린가 보다. 그렇게 모든 걸 체념하려고 했을 때였다.

“읏……!”

“진정해.”

단단한 무언가가 내 어깨를 감쌌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겁고 안정된 손길이 나를 붙잡아 준 것은 사실이었다. 허우적대던 나는 보트가 파도를 지나자 겨우 눈을 뜰 수가 있었다.

“고, 고맙…….”

“…….”

강유현이 무심한 눈으로 나를 흘끗 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감싸 쥔 손에 힘을 줬다. 이제 괜찮은 거 같아서 손을 치워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배가 흔들리는 모양새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 이게 또 뭔…….”

“자자, 이제 정말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은 개뿔! 배 돌려, 시발!”

보트가 기어코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나아갔다. 파도를 겨우 헤치고 난 후에 보인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였다.

바다 한가운데에 낭떠러지가 있다니, 역시 여긴 미친 곳이었다. 그리고 더 미친 건 낭떠러지를 보고 더 신나서 모터 속도를 높이는 조종사였다. 이 미친놈아!!

“배 돌리라고, 시발!!”

“하하, 우리가 제대로 찾아왔군요. 꽉 잡으십쇼!!”

“시바아아아알!!!!!!”

보트는 기어코 부아아앙, 하고 내달려서 낭떠러지를 향했다. 작은 보트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 안으로 바닷물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보트는 바로 그 지점으로 정확히 나아갔고, 순식간에 낭떠러지 안으로 떨어졌다.

***

“이진아.”

“……우욱.”

“이진아, 괜찮아?”

“저리…… 꺼져, 우웩.”

보트가 뒤집히고 내 속도 뒤집혔다.

내 마지막 기억은 낭떠러지로 떨어진 보트가 뒤집히고, 보트에서 떨어진 내 몸이 바다에 휩쓸리고 난 직후까지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나는 멀쩡히 눈을 떴다. 다만 바닷물을 사발로 퍼마신 듯 목구멍 끝까지 짠물이 들이차서 계속 구역질을 하고 있을 뿐.

목소리를 들으니 이든이 자꾸 말을 거는 것 같은데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속에 든 모든 걸 토해 낸 다음에야 간신히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볼 수 있었다.

“……헐.”

꽤나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위에서 끊임없이 물줄기가 떨어져 내려와 마치 작은 폭포처럼 눈앞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물줄기를 보다가 위로 시선을 올렸다.

물이 떨어져 내리는 천장에는 묘하게 눈에 익숙해 보이는 파란빛이 입구를 밝히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다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던전 게이트?”

보트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작은 크기였다. 그 입구에서 물이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설마 내가 저기로 떨어져 내린 건 아니겠지? 설마 여기가 던전 안인 건 아니겠지?

그런 의심이 무색하게 누군가가 다가와 내 등을 탁탁 두드렸다.

“형, 괜찮아요?”

“으으…….”

“기절하고 한참을 정신을 안 차려서 놀랐잖아요.”

“뀨우, 뀨…….”

강수현이 혀를 쯧쯧 차며 계속 내 등을 두드렸고, 용식이도 다가와 앞발로 내 손을 꾹꾹 눌렀다.

그러고 보니 나 살자고 용식이를 챙겨 주지 못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 텐데. 끙끙거리면서 용식이를 끌어안았다.

“으윽, 아빠가 미안해. 다친 데 없어?”

“꺄우, 꺄!”

내 물음에 용식이가 씩씩한 어조로 외쳤다. 아마 괜찮다는 뜻인 것 같았다. 대견해서 머리를 쓰다듬자, 옆에 있던 강수현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걔는 날개가 있어서 그런지 자기가 알아서 쏙 날아오던데요, 뭘.”

“…….”

날개……. 그래, 용식이는 날개가 있었지. 그러니 나처럼 뱃멀미도 하지 않고, 바닷물도 마시지 않았겠지.

나는 대견하다는 눈으로 용식이를 바라보았다. 저 작은 날개로 열심히 날갯짓해서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우리 용식이는 천재인가 보다.

“아구, 잘했어. 우리 용식이, 씩씩하네.”

“꺄아우!”

“…….”

용식이를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울렁거리는 속이 좀 진정되었다. 나는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아직은 도착한 인원수가 많지 않았다.

쏴아아아

천장에 열린 던전 입구에서는 계속해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저 위에서 떨어지겠지. 그 사람들을 보면 내가 얼마나 꼴사나운 꼴로 떨어졌을지 알게 될 것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 있는 해변이었다. 여기가 영상으로 봤던 제1구역, 멀록들의 영역일 터였다.

1구역과 2구역은 워프 게이트가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해변에 포진해 있는 멀록들을 물리치면서 계속 이동하면 동굴이 나오는데, 거기가 나가들의 영역인 제2구역이었다.

이곳은 아직 던전 초입이라 몹들이 나오지 않아 한적해 보였다. 거기다 그냥 보면 휴양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놀러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이제 슬슬 다음 배가 올 때가 됐는데…….”

옆에서 다른 발키리 멤버가 중얼거렸다. 오는 길이 소용돌이 때문에 워낙 거칠어서 보트가 한꺼번에 여러 대 출발하지 못했다. 시간 차를 두고 한 대씩 오고 있는 상황이라 공대 인원이 모두 모이는 데 시간이 꽤 걸리고 있었다.

우리 다음에는 누가 보트를 타고 오더라. 슬슬 핵심 멤버들이 올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천장에 있는 던전 입구의 불이 더욱 환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물줄기가 점차 더 세졌다.

“온다……!”

누군가가 외치자마자 ‘파앗!’ 하고 물줄기를 뚫으며 누군가가 떨어져 내려왔다.

아니, 사람? 사람이라고? 보트가 제일 먼저 내려오는 게 아니라?

황당해서 쳐다보니, 물줄기를 뚫으며 떨어진 사람이 물 위에 착지했다. 아니, 물 위에 착지한 게 아니라, 물에 빠질 새도 없이 해수면을 걷어차며 해변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미친, 무슨 저런 괴물이 다 있지. 어이가 없어서 그냥 쳐다보고 있는데, 미친 듯이 달려오는 사람이 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한이진 능력자!”

“……성유빈?”

저 불도저 같은 괴물은 놀랍게도 성유빈이었다. 검붉은 불꽃을 아지랑이처럼 흩날리며 뛰어온 성유빈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내 앞에 다다랐다.

“한이진 능력자! 다친 곳은 없습니까?”

“네? 네, 저는 괜찮…… 으억!”

“세상에, 온몸이 젖었군요! 아무도 한이진 능력자를 보살펴 주지 않은 겁니까?”

방언이 터진 것처럼 우다다 말을 내뱉은 성유빈이 내 양팔을 붙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꼼짝할 수가 없어서 성유빈이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나부꼈다.

“이, 이것 좀 놓고…….”

“죄송합니다. 한이진 능력자. 역시 제가 같이 타고 왔어야 했는데.”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말한 성유빈이 눈살을 찌푸렸다. 걱정해 주는 건 좋은데, 힘 조절을 하지 않으면 내 팔이 부러질 것 같단 말이다. 이 눈치 없는 S급 능력자야!

그때, 내 손을 붙들고 있던 성유빈이 흠칫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겨우 성유빈에게서 풀려난 나를 누군가가 한쪽 팔로 감싸 안았다. 동시에 서늘한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꺼져.”

“…….”

강유현이었다. 평소였으면 강유현이 이러는 게 소름 끼쳤을 텐데, 지금은 좀 반가웠다. 양팔이 아작 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몰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어째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강유현과 성유빈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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