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던전에 들어갈 날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에, 박윤성이 말했던 소환수 조련사가 공용 숙소를 찾아왔다. 나는 용식이를 안은 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를 맞이했다.
“아, 아아, 안녕……하세요…….”
“…….”
지나치게 떨고 있어 좀 난감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타 길드원이 이 공용 숙소 안으로 들어오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걸친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아마 목숨보다 소중한 스킬을 몇 개나 건 계약서를 쓰고, 모든 감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납치당하듯이 끌려왔겠지.
그러니 저렇게 긴장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거기다…….
“히, 히끅…….”
SS급과 S급과 A급 능력자가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놈들은 날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숙소 앞 공터에 쪼르르 모여서 조련사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 중이었다.
“저는 헤, 헤르모드 길드의 해…… 해송하라고 합니다아…….”
“아, 예…….”
하지만 이런 어린애가 나에게 해코지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단 말이지.
나는 벌벌 떠는 해송하 능력자를 난감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나이는 한 열다섯? 열여섯? 도결이와 또래로 보일 정도로 어려 보였다. 오렌지색이 섞인 밝은 갈색 머리는 만지면 부드러울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가녀린 미소년의 느낌이 났다.
해송하 능력자가 겁먹지 않도록 최대한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해송하 능력자. 저는 한이진이라고 합니다. 얘는 용식이고요.”
“아, 그 아이가 S급 용종…….”
용식이를 본 해송하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때, 해송하의 어깨에 늘어지듯이 앉아 있던 소환수가 고개를 들었다.
다람쥐? 아니면 청설모인가? 털 색깔이 갈색과 회색이 섞여 있어 쉽게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 하지만 소환수니까 쟤도 몬스터겠지? 겉모습만 동물 같아 보일 뿐. 근데 쟤도 참 귀엽게 생겼구나. 몰래 해송하의 소환수를 관찰하고 있었을 때였다.
“캬아아!”
“쮸쮸! 쮸!”
갑작스럽게 날개를 쫙 펼친 용식이가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그러자 해송하의 소환수도 깜짝 놀라서 털을 바짝 세우며 소리쳤다.
나와 해송하는 당황하며 서로 뒤로 물러났다.
“용식아, 쉬, 진정해, 진정.”
“라티, 착하지. 가만있어, 응?”
해송하도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한 듯 자신의 소환수를 달랬다. 라티라고 불린 다람쥐 모습의 소환수는 지지 않고 용식이에게 이를 드러냈다. 조그만데 성격은 꽤 사나워 보였다.
“하, 하하. 얘가 원래 이러는 애가 아닌데…….”
“하하하…….”
멋쩍게 말하는 해송하에게 나는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우리 애는 매번 그래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캬아아, 캬아!”
“어허, 용식아! 하지 마!”
마치 전생의 원수를 만난 것마냥 용식이는 계속해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능력자들에게도 이 정도까지 격한 행동은 하지 않았던 터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물론 첫 만남이 최악이라 다짜고짜 독 브레스를 뿜어 댔던 백시후는 제외였다.
결국 해송하는 라티를 멀리 떨어트려 놓고 다시 왔다. 나는 연신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소환수들끼리는 종종 있는 일이라서요.”
“그런가요?”
“네, 그런데 보통은 용종끼리 많이 다투거든요. 영역 싸움을 하느라…… 라티는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을 텐데…….”
“…….”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해송하가 잠잠해진 용식이를 슬쩍 쳐다봤다. 용식이는 라티가 시야에서 사라져서 그런지 다시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애가 너무 제멋대로라서요. 제가 화도 잘 못 내고…….”
“인간으로 치면 아직 아기니까요. 그리고 S급 이상의 용종 소환수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어서 저도 모르는 게 많아요.”
고개를 끄덕인 해송하가 부드러운 눈으로 용식이를 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이진 능력자께서 착각하시는 게 있어요. 굳이 소환수의 행동을 질책하려 하지 않으셔도 돼요.”
“진짜요?”
“막 태어난 소환수는 아기랑 똑같아요. 용식이는 지금 한이진 능력자를 부모로 인식하고 있을 거예요. 아이에게 화를 내며 가르치는 부모들은 최악이잖아요? 잘못된 행동을 하면 좋은 말로 훈육하시면 돼요. 무작정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요.”
해송하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설명을 해 나갔다. 방금까지 벌벌 떨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감탄하며 쳐다보니 흠칫 몸을 떤 해송하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제, 제가 너무 주제넘었나요?”
“아니요, 선생님. 아주 훌륭하십니다.”
용식이를 안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속으로 열렬히 손뼉을 쳤다. 그러자 칭찬을 들은 해송하가 부끄러운 듯이 몸을 배배 꼬았다.
“흥, 어린애가 말만 그럴듯하게 해서는.”
그때, 옆에서 뚱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이든이 툴툴대며 말했다.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지 입술이 잔뜩 튀어나와 있었다.
“야, 좀 닥쳐라.”
“쥐방울만 한 소환수나 가지고 있는 어린애가 무슨 선생이야. 속지 마, 이진아.”
“맞아요. 못 미더워요.”
“…….”
꼭 이럴 때만 죽이 잘 맞는 이든과 강수현이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리고 강유현은……. 쟤는 원래 사람을 벌레처럼 보는 놈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너희들 방해할 거면 그냥 꺼져라, 어?”
“내가 언제 방해했다고? 맞말한 건데.”
“저도 방해 안 했어요. 억울해요.”
“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무리 맞말이라도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해송하 능력자가 어려 보여서 못 미더운 느낌이 살짝 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말하는 거 보면 훌륭한 조련사의 분위기가 풍긴단 말이지.
내가 눈을 부릅뜨고 더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저기…….”
“……?”
해송하가 작은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를 향해 시선이 몰리니 또 흠칫했다. 그래도 이번엔 벌벌 떨지 않고 용기를 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어린애 아닌데요……?”
“네……?”
내가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자, 해송하가 거듭 말했다.
“저 올해로 서른다섯 살이에요.”
“……!”
경악한 시선들이 해송하에게 꽂혔다. 그러자 해송하가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정말요?”
“제, 제가 그렇게 어려 보이나요?”
“네.”
해송하는 정말, 아주, 심각하게 어려 보였다. 저 얼굴로 서른다섯 살이라니. 하루 세끼 방부제만 먹으면서 살아온 건 아니겠지? 저 보송한 아기 피부가 정말 서른다섯 살의 것이라고……?
“저, 정말인데…….”
“…….”
울상을 짓는 해송하의 얼굴은 그야말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툴툴대던 이든과 강수현마저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서른다섯…… 열다섯이 아니고요……?”
“네에.”
진짠데, 하고 해송하가 억울하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렇게 울면 믿기기는커녕 더 의심스러워진단 말이다.
당황하던 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럴 때 차라리 박윤성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주변에는 도움 안 되는 놈투성이였다.
그때, 용식이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꺄우우!”
“……!”
마치 해송하에게 울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해송하가 눈을 크게 떴다.
오, 이때다.
나는 해송하를 향해 용식이를 쑥 들이밀었다.
“한번 만져 보실래요?”
“네? 지, 진짜요? 그래도 돼요?”
고개를 끄덕이며 용식이를 더 들이밀었다. 묘한 확신이 들었다. 도결이에게 한 것도 그렇고, 용식이는 아무래도 작고 어려 보이는 사람들에게 약한 것 같았다.
해송하는 도결이가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용식이가 또 해송하의 손을 킁킁거렸다.
“캬우…….”
“왜 그래?”
그리고 불쾌한 듯이 눈살을 팍 찡그렸다. 못마땅해하는 듯한 기색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방금 용식이와 싸웠던 소환수가 떠올랐다.
“괜찮아. 그 친구 여기 없어. 다른 사람이야. 잘 봐 봐.”
“쿠우…….”
내 말에 용식이가 잔뜩 긴장한 해송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보라색 눈을 꾹 감고는 머리를 쑥 내밀었다. 마치 ‘너에게 내 머리를 허락하노라’고 말하는 것 같은 거만한 움직임이었다.
“와아, 내가 요, 용종을 쓰다듬다니.”
용식이의 머리를 흠칫흠칫하며 쓰다듬으면서 해송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감격한 듯한 그는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가 있었다. 역시 용식이의 힘은 대단했다.
“저, 여, 열심히 할게요! 믿어 주세요!”
“물론이죠. 선생님.”
다행히 기운을 차린 해송하가 힘차게 외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자,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해송하는 마치 ‘세상에 나쁜 소환수는 없다’는 가르침을 설파하러 온 그분의 빙의자 같았다.
“……그래서 소환수가 이런 행동을 할 때는 반복적으로 이해시키는 게 중요해요.”
“아하, 그렇군요.”
“소환수들은 성체가 되면 사람 못지않게 똑똑해지거든요. 그래서 분리 불안증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예요. 용종은 다른 소환수보다 더 똑똑한 존재라, 사실 한이진 능력자가 몇 번 말하면 지금도 다 알아들을 거예요.”
“네, 알아듣긴 하더라구요.”
그냥 알아듣기만 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갸우?”
용식이는 마치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허허 웃었다.
“그럼 오늘은 간단한 훈련만 해 볼까요?”
숙소 앞에는 해송하가 준비해 온 것 같은 훈련용 기구와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걸 쭉 둘러본 해송하가 한곳을 가리켰다.
“오늘은 저걸 한 번 써 볼게요.”
“……?”
나와 용식이의 고개가 해송하가 가리킨 곳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