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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44)화 (44/228)
  • 44화

    “허…….”

    “귀여워, 귀여워! 얘 이름이 뭐야?”

    도결이는 흥분하면서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용식이.”

    “용식이? 이름도 귀여워!”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도결이가 눈을 반짝이며 용식이를 쳐다봤다. 용식이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떨떠름한 얼굴을 하던데. 도결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에 비하면 용식이는 조금 놀라서 그런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도결이가 그런 용식이를 열렬하게 보며 물었다.

    “만져 봐도 돼?”

    “어, 그게…….”

    처음에는 도결이가 용식이를 무서워할 줄 알고 걱정했는데, 막상 마주치게 하니 그 반대였다.

    그러나 용식이도 단순히 놀란 것뿐이지, 도결이한테 겁을 먹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보랏빛 눈을 동그랗게 뜬 용식이 역시 도결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괜찮을걸? 한번 만져 봐, 조심스럽게.”

    “으, 응.”

    막상 만져 보라고 하니 긴장한 듯 도결이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살며시 한쪽 손을 뻗어 용식이에게 내밀었다.

    “뀨…….”

    “…….”

    혹시라도 용식이가 도결이의 손을 실수로 물어 버리진 않을지 걱정이 되어 나도 긴장하며 주시했다. 그러나 다행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며 도결이의 손을 경계하던 용식이가, 이내 다가가 냄새를 킁킁 맡더니 조용해졌다.

    그리고 작은 머리통을 툭, 하고 도결이의 손에 가져다 댔다. 숨도 멈춘 채 용식이를 보고 있던 도결이가 기뻐하며 용식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우와, 차가워! 그리고 까칠해! 우와, 우와!”

    “하하.”

    비늘을 살짝살짝 만지며 도결이가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오두방정을 떠는데도 용식이는 얌전히 도결이에게 제 머리통을 내어 주고 있었다. 심지어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고 그릉그릉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형, 용식이는 뭐 먹어? 뭐 좋아해?”

    “음, 그러니까…….”

    도결이에게 용식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던전에서 보상으로 용식이가 태어난 알을 얻었던 일, 용식이를 부화시켰던 때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 주니 도결이가 연신 감탄했다.

    “우와, 용식이 엄청 세구나!”

    “그래. 입 주변은 절대 만지지 마. 독이 있거든.”

    “우와, 우와아.”

    신기해하면서도 도결이는 행여나 독니에 닿을세라 조심하며 용식이를 쓰다듬었다. 다행히 용식이도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용식이는 지금까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경계하며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도결이에게는 얌전한 게 안심이 되면서도 좀 신기했다. 혹시 도결이가 내 가족이라는 걸 알아챈 건가?

    이 똑똑한 것. 용식이가 대견해서 나도 몸통을 쓱쓱 쓰다듬었다. 용식이가 더욱 기분 좋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꺄아우!”

    “하하, 웃는 것도 귀여워!”

    한바탕 용식이와 놀고 나서, 나는 도결이에게 말할 타이밍을 쟀다. 바로 도결이의 능력에 대해서 말이다.

    “도결아.”

    “응?”

    용식이가 제 손 위에 얌전히 올려놓은 앞발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도결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가 걸린 희귀병 말이야.”

    “……?”

    “그게 사실 병이 아니라…….”

    나는 박윤성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도결이에게 전해 주었다. 애가 아직 등급에 대해선 잘 모를 테니 설명하는 게 조금 어려웠다. 도결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다가 조용히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그럼 나도 형 같은 능력자야?”

    “응? 그래, 맞아.”

    고개를 끄덕이자, 도결이의 눈에서 작은 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도결이가 조금 흥분한 듯한 얼굴로 또 물었다.

    “그럼 나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어?”

    “뭐? 던전?”

    “응, 형이랑 같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거야?”

    “…….”

    나는 도결이의 물음에 당황했다.

    이 녀석, 던전에 들어가고 싶은 건가?

    아직 어린 나이라 헌터나 던전에 선망을 가질 수도 있다. 미디어에서도 끊임없이 그런 이미지를 조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던전에 들어가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나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너까지 던전에 들어갈 필요 없어.”

    “왜?”

    “왜긴, 내가 충분히 너 먹여 살릴 수 있어. 그런 위험한 곳에 왜 굳이 들어가려고 해. 응?”

    “하지만 나도……!”

    “캬우!”

    “……!”

    도결이가 목소리를 조금 높였을 뿐인데도, 용식이는 놀라며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흠칫 놀란 도결이가 제 입을 막았다. 아무래도 도결이의 정신계 능력이 또 저도 모르게 발동한 모양이었다. 나는 놀란 용식이를 진정시킨 다음 도결이를 돌아보았다.

    “형도 정신계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잘 알아. 정신계 능력은 그다지 던전에서 도움 되는 능력이 아니야.”

    “…….”

    공교롭게도 한이진 역시 정신계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B급밖에 되지 않는 하찮은 스킬이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빌런 짓을 할 때는 유용하다고 판단해 장태산조차 한이진을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가치 있는 능력이긴 하지만 전투용은 절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수도 없이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던전 안에서 비전투 인원을 지키며 싸우는 건 너무나도 비합리적이었다. 나처럼 보조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힐러가 아닌 한은 말이다.

    한껏 시무룩해진 도결이가 고개를 푹 떨궜다. 그 모습이 마치 야단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해 보였다. 나는 손을 올려 도결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 대신 네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도 많아. 그러니까 그때까지 능력부터 제대로 익히자. 알았지?”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도결이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나는 용식이에게 눈짓했다.

    “꺄아우…….”

    “…….”

    살금살금 다가온 용식이가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도결이의 손을 툭툭 건드렸다.

    이내 도결이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나는 잘했다는 듯 용식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지금 너를 돌봐 주는 길드가 오딘 길드인데. 너도 알고 있어?”

    “오딘 길드?”

    도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들어 봤어.”

    “한국에서는 가장 큰 길드야. 형도 지금 여기랑 계약 중이거든. 너도 들어올래?”

    “음…….”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만 계약하기로 했어. 그다음엔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

    미성년자가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조건 기한은 20살이 될 때까지다. 물론 그 전에 미성년자를 상대로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면 얼마든지 파기할 수 있었다.

    내 설명에 눈살을 조금 찌푸리던 도결이가 입술을 비죽이며 말했다.

    “나 그 사람 싫어.”

    “그 사람? 누구?”

    “전에 형이랑 같이 들어온 어른 남자.”

    “……박윤성 마스터?”

    의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도결이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응, 싫어.”

    “왜?”

    “…….”

    “형한테 이유 말해 줄 수 있어?”

    입을 꾹 다물고 고민하던 도결이가 한 답은 꽤 시시했다.

    “그냥 싫어.”

    “그냥……?”

    내가 없을 때 박윤성이 애한테 뭐 했나?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소설의 선역인 데다, 누구보다 정의로운 성격인 그가 아이한테 해코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딱히 싫은 이유가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어린애가 부리는 투정에 가까워 보였다. 처음 보는 상대를 이유 없이 싫다고 하는 그런 투정 말이다.

    내가 난감한 눈으로 바라보자, 도결이는 눈치를 보다가 우물우물 말했다.

    “그래도 형이 들어간 곳이니까 나도 들어갈래.”

    “어, 그래…….”

    “근데 진짜 그 사람 싫어.”

    “음, 그래.”

    허허 웃으며 그러려니 했다. 보다 보면 좀 익숙해지고, 지금의 싫은 감정도 변하고 그러겠지.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그리고 형 이번에 던전 들어가서 당분간 못 올 거야.”

    “…….”

    “필요한 거 있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꼭 말해야 해. 알았지?”

    “…….”

    도결이는 또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눈에 불안한 빛이 스쳤다.

    이 아이의 버릇을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도결이는 자신의 감정이 격해질 것 같으면 그걸 꾹 누른다. 그래서 그 순간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감정이 잠잠해지면 다시 입을 여는 것이다.

    “……언제 돌아오는데?”

    “음, 글쎄…….”

    이번에 들어가는 세(Sæ) 던전을 떠올려 봤다. 소설에서는 던전 이상 현상과 함께 주인공, 히로인 실종 사건으로 인해 던전 공략하는 시간이 엄청 지체되었었다.

    그러나 이번엔 S급 보조 스킬을 가진 내가 있었다. 소설보다 조금 더 일찍 각성한 강수현도 있고, 마찬가지로 소설보다 조금 더 일찍 오딘 길드에 들어온 이든도 있지. 아마 방법만 알아내면 어떻게든 소설보다는 빨리 클리어할 수 있을 터였다.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아마도.”

    전에 들어갔던 D급 던전은 막판에 등급 이상에 걸려 난이도가 갑자기 확 올라가긴 했지만, 클리어 자체는 하루 만에 했었다. 보통 D급 던전 클리어 속도가 만 하루였다.

    그러나 세(Sæ) 던전은 기본 등급이 A 이상이었다. 게다가 던전이 넓어서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기까지 하지. 굳이 등급 이상 현상에 걸리지 않아도 클리어하는 데 최소 5일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내 말에 도결이의 얼굴이 또 시무룩해졌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걱정 마. 일주일 금방 간다? 그동안 게임 레벨 열심히 올리고, 훈련도 잘 받고. 알았지?”

    “으응, 알았어.”

    “자, 약속.”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자 도결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어쨌든 도결이와 웃는 얼굴로 헤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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