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43)화 (43/228)

43화

“도결이의 능력이 뭔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는 거죠?”

영상을 보니 새삼 도결이가 능력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되었다. 도결이도, 그리고 주변에서도 그 애가 아픈 이유를 줄곧 밝혀지지 않은 희귀병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도결이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자신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예, 아직은요. 센터에서 등급 확정을 받으면 곧바로 정밀 검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결이도 자기가 능력자라는 걸 알고 있을까요?”

“글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반응하지 않아서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음…… 그렇군요.”

영상 속에서 누가 말을 걸던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도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털을 부풀린 고양이가 잔뜩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동안 도결이 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괜찮습니다. 이제 다 천천히 되돌리면 됩니다.”

“……?”

“앞으로는 동생분과 계속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 늦은 게 아닙니다.”

“아…….”

“도결 군은 분명 괜찮아질 겁니다.”

박윤성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눈가가 시큰해졌다. 그걸 숨기려고 헛기침을 하자, 박윤성이 아까 보여 줬던 서류철을 다시 내 쪽으로 내밀었다.

“우선은 의료진을 먼저 선택해 주시겠습니까? 다 쟁쟁한 분들이라 스케줄이 꽉 차서 빨리 섭외해야 하거든요.”

“아, 예…….”

그래서 다시 프로필을 꼼꼼히 읽어 봤다. 그러나 당최 누가 좋을지 혼자서 결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박윤성의 눈치를 살살 봤다.

“결정하기 힘드십니까?”

“하하, 네…… 잘 모르겠네요.”

“그럼 제가 몇 분만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박윤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추려서 다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 손에는 두 사람의 프로필이 들려 있었다.

“최정훈 교수님은 게이트 사태 이전부터 국내에서는 정신과 의료계의 탑이셨죠.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유명하셨고요. 도결 군에게도 충분히 도움을 주실 겁니다.”

“아하, 네.”

“그리고 오서현 원장님은 그보다는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정신계 능력자들을 위주로 상담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 각성한 A급 정신계 능력자를 케어해서 국가의 감시 없이 헌터 활동을 하게 도운 것으로 유명인이 되셨죠.”

“네에.”

박윤성의 설명을 들으며 오서현 원장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 소설에서도 나온 인물인가?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벌렸다.

오서현, 오서현 원장! 이 사람도 강유현과 썸을 타는 히로인 중 하나였다.

다른 히로인들에 비해 비중이 적고 늦게 나와서 생각이 잘 안 났었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오서현 원장의 프로필을 쭉 읽어 나갔다.

오서현 원장은 소설에서 강유현이 드라우그 킹을 쓰러트린 다음에 등장한다. 사실 강유현은 게이트 안에 갇혔던 일 때문에 온갖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겉으로 볼 땐 멀쩡해 보여서 아무도 몰랐던 것뿐이지.

그러다 복수의 대상이었던 드라우그 킹을 쓰러트리고,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SS급 능력자인 강유현의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는 주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강유현의 상담을 맡은 이가 바로 오서현 원장이었다. 그녀는 꽁꽁 숨기기만 하던 강유현의 여린 마음을 끄집어내, 그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게 만들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했다. 내담자의 성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캐치하는 감각이 남다른 스페셜리스트였다.

소설에서도 검증된 사람이니, 도결이에게도 도움을 많이 주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나중에 강유현과도 만날 테니, 조금 빠르게 마주쳐도 상관은 없겠지.

나는 마음이 한층 가벼워지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분으로 할게요. 오서현 원장님이요.”

“그럼 바로 스케줄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곤할 테니 이만 쉬도록 하세요. 한이진 능력자.”

“넵.”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문으로 다가갔다. 발치에 앉아 있던 용식이가 조르륵 따라오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으악!”

“으아아악!”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에 깜짝 놀라며 똑같이 소리 질렀다.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가슴 앞에 두 손을 엑스자로 모으고 쳐다보자, 문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너희들…… 뭐 하냐?”

놀란 눈으로 물어보자, 문을 가로막은 커다란 인영들이 멋쩍어하며 입을 열었다.

“어, 이진아, 얘기 끝났어?”

“형 기다리고 있었죠. 하하.”

“…….”

이 장면을 어디선가 봤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밥 먹으러 가기 전에도 사춘기 여고생들처럼 달라붙었던 이든과 강수현의 모습이 지금의 장면과 겹쳐 보였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회의 끝났으면 좀 꺼져! 귀찮게 하지 말고.”

그러자 강수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었다.

“형은 제가 귀찮아요?”

“아니, 귀찮게 한다는 거지 네가 귀찮다는 건…….”

“흑흑, 너무해요.”

“…….”

졸지에 애를 울린 나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고민하는데 뒤에 있던 이든이 강수현을 톡 치며 다가왔다.

“이진아! 우리 게임방 가자.”

“게임방?”

“응, 지하에 있는 거.”

그건 좀 솔깃했다. 숙소를 둘러볼 때 살짝 보기만 했는데, 마치 오락실과 피시방을 합쳐 놓은 듯한 곳이었지.

한 번 가 볼까? 이든에게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형, 제 방 안 갈래요? 제 방에 짐숲 있어요.”

“뭐? 짐숲?”

모여 봐요 짐승의 숲. 일명 짐숲! 게이트 사태 이후로도 꾸준히 인기를 휩쓴 콘솔 게임이었다. 소설에서도 간간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어떤지 궁금하긴 하다.

“이진아, 게임방 가자니까.”

“형, 제 방 가요. 네?”

“허…….”

양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이든과 강수현을 난감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새끼들이 게임에 환장했나. 왜 이렇게 난리들이야.

게다가 쉽게 고르기 힘든 선택지다. 으음, 고민하는 신음을 내뱉는 나에게 박윤성이 다가왔다.

“내일 일정도 많으시니 오늘은 일찍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그럴까요.”

“꺄아우!”

용식이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소리를 높여 울고는 내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그 귀여운 모습에 나는 웃으며 용식이를 안아 들었다.

“내일 용식이도 같이 도결이 만나러 가도 될까요?”

“그러시죠. 소환수가 아직 어려서 혼자 두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네.”

도결이가 용식이를 무서워하면 안 될 텐데.

“꺄우.”

“후후.”

뭐, 이렇게 귀여우니 도결이가 놀라진 않겠지. 오히려 사람보단 동물이 더 마음이 편할 수도 있을 거다.

용식이와 마주 보며 싱글거리며 웃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이든과 강수현은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뭐냐?”

“하하, 그래. 오늘은 쉬어.”

“그럼 다음에 제 방에…… 아야.”

“어이쿠, 이런 데 쓰레기가 있네.”

“뭐라구요?”

“하아…….”

또 시답잖은 짓을 하는 둘을 보고 고개를 젓곤 걸음을 옮겼다. 요즘 초딩들도 저렇게 안 싸우겠다.

혀를 쯧쯧 차며 걸어가자 초딩들이 앞다투어 쫓아왔다. 잽싸게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지긋지긋한 놈들에게 벗어날 수가 있었다.

***

“후우…….”

병실 문 앞에서 괜히 긴장하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어제 만났던 도결이는 내가 진짜 형이 아니라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하긴, 떨어져 있던 세월이 얼마였는데. 한이진과 동기화한 내가 가짜라는 걸 알아챌 정도로 도결이가 제 형에 대해 많은 걸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져서 괜히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그러자 어깨 위에 축 늘어져 있던 용식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꺄우?”

“음,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휘휘 내젓고 문을 열었다. 오늘은 박윤성과 오지 않고 길드원들만 따라와 호위를 해 줬다. 그리고 괜히 도결이를 자극할 수 있어서 길드원들은 모두 밖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나와 용식이뿐이었다.

드르륵.

부드럽게 문이 열리고, 나는 카펫이 깔린 고급스러운 병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새로운 곳이 낯선지 용식이가 고개를 휘휘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나는 침대 위에서 태블릿 피시 화면을 보며 집중하고 있는 도결이에게 다가갔다.

“도결아.”

“……형!”

고개를 든 도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순간 어제 본 영상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무심하던 그 표정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잘 지냈어?”

“응, 나 착하게 있었어. 그리고 봐 봐, 레벨도 이만큼 올렸어.”

도결이는 자랑하듯이 나에게 태블릿 피시 화면을 보여 주며 말했다. 어제 깔아 준 게임을 열심히 했는지 벌써 레벨이 꽤 올라 있었다. 나는 칭찬하듯이 도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헤헤.”

눈을 감고 웃던 도결이가 다시 눈을 뜨더니, 내 어깨를 바라보았다. 용식이 역시 고개를 쭉 빼고 처음 보는 생물을 바라보듯 도결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왠지 반려견이 가족을 처음 마주할 때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나는 긴장하며 도결이에게 용식이를 소개했다.

“얘는 내 소환수야.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나랑 떨어지면 불안해하더라고. 그래서 데려왔어.”

“…….”

도결이는 어제 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아무런 말 없이 용식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작은 입술을 벌려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귀…….”

“귀?”

‘귀’라는 말을 작게 반복하던 도결이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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