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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41)화 (41/228)
  • 41화

    강유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가뜩이나 무서운 표정인데, 심지어 나를 보며 걸어와서 솔직히 좀 무서웠다.

    내 앞까지 다가온 강유현이 입을 열었다.

    “많이 먹었나?”

    “어? 나?”

    “…….”

    강유현은 대답 없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봤다.

    뭐지, 이 새끼가 원래 남이 처먹는 걸 살뜰히 살피는 성격이었나?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많이 먹었지? 더 먹을 거지만.”

    “…….”

    “너도 어서 먹지, 그래?”

    어색함을 참지 못하며 권했다. 강유현은 왜인지 나를 또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몸을 홱 돌렸다.

    휴, 남몰래 속으로 숨을 내쉬고 볶음면을 응시했다. 다시 2차전을 하기 위해 젓가락으로 볶음면을 한가득 집어 올렸을 때였다. 무언가를 접시 위에 산더미처럼 쌓은 강유현이 식탁으로 다가왔다.

    나는 볶음면을 먹으려다 말고 강유현이 앉은 쪽을 흘끗 쳐다봤다. 과연 주인공이 무슨 음식을 골랐는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산처럼 쌓아 올린 검은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짜장면? 저 새끼 지금 짜장면만 한가득 퍼 온 건가?

    어이없는 눈으로 자리에 앉은 강유현을 쳐다봤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는 또 어색하게 웃고 고개를 돌렸다.

    뭐, 심플 이즈 베스트지. 짜장면 맛있잖아. 그래.

    더 맛있는 요리가 많은데도 굳이 짜장면만 퍼 와서 먹는 게 조금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취향 존중은 해 줘야지. 그리고 게이트 안에서 짜장면이 격하게 먹고 싶었을 수도 있잖아. 아마 나라도 그랬을걸.

    열심히 합리화를 하던 나는 얼마 가지 않아 또 슬쩍 시선을 돌렸다. 주인공이 밥을 먹는 레어한 장면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었단 말이지.

    하도 눈을 옆으로 떠서 가자미눈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강유현이 있는 쪽을 흘끗 본 나는 깜짝 놀랐다.

    “……!”

    ……없어? 짜장면이 없어?

    어디로 간 거야, 대체. 방금까진 있었잖아. 내가 분명히 봤었다고.

    “왜?”

    “…….”

    강유현은 또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답할 말도 찾지 못한 채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짜장면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진 짜장면에 당황하던 내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너 벌써 다 먹었냐?”

    “……?”

    뭐가 문제냐는 듯이 강유현이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여기서 당황한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다들 그냥 자기 밥 먹기 바빴다. 조금 민망해진 내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흠, 아니, 먹는 게 아주…… 빠르네, 응.”

    생존 본능이 몸에 배기라도 한 건가? 하긴, 그곳에서는 마음 편히 뭘 먹지도 못했겠지. 나는 측은한 눈으로 강유현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나도 먹던 거나 마저 먹자는 생각으로 볶음면을 다시 공략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뷔페 쪽으로 또 갔던 강유현이 돌아오더니, 내 앞에 무언가를 탁 내려놨다.

    “먹어라.”

    “……?”

    이건…… 탕수육인가? 생뚱맞게 이걸 왜 나한테 가져다주지? 의아하게 쳐다보자 강유현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넌 많이 먹어야 한다.”

    “허?”

    어이가 없어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양옆에서 보고 있던 놈들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맞아, 이진이 넌 좀 많이 먹어야 해.”

    “그래요. 팔 부러질 것 같은 거 봐.”

    “…….”

    이 자식들이, 이럴 때만 단합 잘되는 거 보소.

    참고로 한이진의 몸은 녀석들이 안쓰럽게 볼 정도로 가녀리진 않았다. 키는 180에 가깝고, 근육도 적당하게 있고, B급이지만 능력자라서 일반인에 비하면 현저하게 체력도 좋단 말이지.

    물론 아직 레벨이 낮아서 능력자인 것치고는 체력이 좀 후달리긴 한다. 그래도 저렇게 딱한 눈으로 보며 동정할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빌어먹을 S급 놈들. 너희들은 키 크고 체격도 건장해서 좋겠다. 그들에 비하면 한이진의 피지컬 따위 갖다 대기도 민망할 수준이었다.

    “아, 내가 알아서 먹는다니까!”

    “골고루 먹어야지, 이진아. 면만 먹지 말고.”

    “…….”

    아니, 강유현은 아까부터 짜장면만 퍼먹고 있거든?

    “형, 아 해 봐요. 아~”

    “꺼져!”

    진저리를 치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발치에 엎드리고 있던 용식이가 반짝 눈을 떴다. 내 불쾌한 목소리에 반응한 용식이가 녀석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냈다.

    “크르릉…….”

    “용식아, 싸우는 거 아니야. 워워, 옳지.”

    잔뜩 흥분한 용식이를 겨우 진정시키고 식탁 위를 노려봤다. 그리고 큼지막한 탕수육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래, 먹는다. 먹어. 이 자식들아.”

    입 안에 털어 넣고 씹으니, 바삭하고 얇은 튀김의 식감과 돼지고기 특유의 고소한 육즙이 퍼졌다.

    음, 맛은 있네. 졸지에 애 취급을 받아 짜증 났던 마음이 사르르 녹을 정도로 엄청난 맛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탕수육을 계속해서 집어 먹었다.

    그렇게 또 과식을 하고 말았다. 조만간 오딘 길드의 공용 숙소에서 돼지를 한 마리 사육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 것 같아 조금 두려워졌다.

    “후…….”

    부른 배를 두드리며 회의실로 향했다. 박윤성이 던전 브리핑을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회의실 역시 공용 숙소 안에 있었다.

    대체 여기는 얼마나 넓은 거야. 겉보기에는 평범한 주택처럼 보였는데, 안에는 멀티플렉스처럼 별의별 게 다 있었다.

    이곳 지하에는 간단한 운동을 하거나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훈련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든이 환장하던 게임방과 영화관도 있다. 모두 최첨단 시설이었다.

    게다가 옥상에는 수영장도 있는데, 솔직히 왜 있는진 모르겠다. 여기서 한가하게 수영이나 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그 옆에 있는 사우나는 들어가 보고 싶었다. 거기 욕탕 물이 알칼리성 온천수라던데.

    어쨌든 1층은 각자의 방과 식당이 있는 거주 구역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넓은 회의실이 나왔다. 고작 5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회의실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넓었다.

    저기 천장에 달린 건 빔 프로젝터인가. 앞에 있는 스크린이 너무 커서 마치 영화관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지하에 영화관이 대체 왜 있는 거지? 그냥 여기서 불 끄고 영화 틀어서 봐도 충분할 것 같은데.

    허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가 미리 준비한 것 같은 따끈한 차가 앞에 놓여 있었다. 여기서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양옆을 힐끔거리는데, 타이밍 좋게 박윤성이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은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숙소는 어떤가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아주 좋은데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녀석들을 흘끗 쳐다봤다. 솔직히 시한폭탄들과 사는 느낌이 없지 않아 들긴 하지만 숙소 자체는 아주 훌륭했다. 조무래기 빌런 따위가 누리기에는 지나치게 호화로웠다.

    “잘됐군요.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네…….”

    그리고 박윤성은 그대로 나를 지나쳐 상석으로 향했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잘 지내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약간 뻘쭘해져서 쳐다보자, 박윤성이 우리를 한 번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든과 강수현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프레이야 길드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추가 인원을 아주 기꺼워하더군요.”

    “그럼……?”

    “길드 입장에서는 과도한 인력 지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상관은 없습니다.”

    박윤성이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이번 던전은 네 분이 모두 가는 걸로 하시죠.”

    “아싸!”

    “하…….”

    무슨 소풍 가는 것마냥 기뻐하는 꼴이라니. 거기가 또 SS급으로 변하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A급인 이든과 던전이 처음인 강수현은 무척 걱정되었다.

    “…….”

    뭐, 그래도 강유현과 내 스킬이 있으면 괜찮겠지? 아무렴.

    니플헤임 던전에서 무쌍을 찍었던 강유현을 다시 떠올리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보스몹도 그때처럼 쉽게 무찔러서…….

    잠깐, 세(Sæ) 던전의 보스몹?

    뒤늦게 문제점을 떠올린 나는 순식간에 가슴 속이 싸해졌다.

    “세(Sæ) 던전은 인천 왕산항 부근에서 열립니다. 공항과 가깝기 때문에 던전 브레이크 관리 지역 중 순위가 높은 편이죠. 또한 바다에 열리는 던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클리어 보상이…….”

    설명을 이어 가는 박윤성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 소설 내용을 자세하게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이곳은 총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구역은 특이한 점이 없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 구역은 좀 특이합니다. 둘 중 한 곳으로 랜덤하게 입장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상대하는 중간 보스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 구역, 혹은 네 번째 구역의 중간 보스를 쓰러트리면 보스몹이 등장합니다.”

    문제는 이거였다. 세 번째 구역인 진주 방에서는 머메이드 중간 보스가 나오고, 네 번째 구역인 비늘 방에서는 나가 중간 보스가 등장한다.

    보통은 두 번째 구역을 지나면 세 번째 구역 혹은 네 번째 구역에 랜덤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히로인과 썸을 타야 하거든!

    강유현과 성유빈만 네 번째 구역으로 빠지고, 다른 인원들은 세 번째 구역으로 진입한다. 왜 그런지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작가가 둘만 있게 해 주고 싶었나 보지.

    SS급인 강유현과 발키리의 리더인 성유빈이 빠지는 바람에 남은 인원들끼리 중간 보스를 상대하게 되어서 무척 위험해진단 말이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박윤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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