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40)화 (40/228)

40화

“좀 더 빨리할 수는 없어?”

[흠…….]

내 물음에 심단테가 고민하는 신음을 냈다. 그리고 다소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한이진 씨가 직접 오셔서 실험에 참여해 주시는 거거든요. 근데 그건…… 싫으시겠죠?]

“응, 꺼져.”

[하하…….]

심단테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하여간 연구에 미친놈 같으니.

[아, 곧 세(Sæ) 던전에 들어가신다면서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후후, 다 아는 방법이 있죠.]

세(Sæ) 던전에 간다는 건 박윤성이 오늘 내게 막 알려 준 협력 요청이었다. 프레이야 길드에서 직접 요청했던 것이니 그만큼 보안이 철저했을 텐데,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심단테의 정보력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응, 곧 갈 건데? 왜?”

[저 그럼 무지갯빛 산호초 가져다주시지 않을래요? 세(Sæ) 던전에만 있는 건데!]

“내가 왜?”

[그게 있음 연구에 도움 될 것 같은데에…….]

“하…….”

이 요망한 새끼 같으니. 한숨을 쉬고 물었다.

“몇 개나 필요한데?”

[한…… 10개 정도요?]

“……산호초 백만 개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걸 10개나 가져다 달라고?”

[에이이,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잖아요오.]

“하아…….”

이걸 확 그냥. 수화기 건너편에 있는 놈을 때릴 수도 없고. 사내자식의 애교 따윈 그저 역겹기만 할 뿐이었다.

부글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차분하게 이익을 따졌다. 대가 없이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좋아, 대신 던전에서 쓸 만한 아이템들 내놔.”

[정말이지, 한이진 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네요.]

혀를 내두른 심단테가 곧 아이템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선 불안한지 정말로 자기를 도라에X으로 생각하는 거냐고 물었다. 난 대답하지 않고 통화를 끊었다.

“뀨?”

“응, 우리 용식이는 신경 안 써도 되는 놈이야. 지지야, 지지.”

“뀨우!”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용식이가 우다다 뛰어가서 뼈다귀 장난감을 다시 입에 물었다. 저게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강아지 같고 귀엽네.

한동안 용식이와 놀아 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 지나고 박윤성이 던전 브리핑을 한다고 하던데, 이제 슬슬 밥을 먹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강유현의 숙소, 아니, 이제는 공용 숙소가 된 이곳은 정말 엄청났다. 식당에 가면 각종 산해진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맛도 훌륭해서 호텔 레스토랑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었다.

보안을 위해 음식도 모두 포털로 옮겨 온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리 갓 지은 것처럼 따끈따끈한 음식들이 배달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은 과연 어떤 메뉴일지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식당으로 이동할까 싶어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쿵!

“……응?”

“햐악!”

문밖에서 들린 소음에 문고리를 돌리려다 움찔했다. 곁에 다가온 용식이가 하악질을 하며 문을 향해 가시와 날개를 세웠다.

“용식이, 쉿.”

“큐…….”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용식이를 뒤로 물리고 문에 귀를 가까이 댔다. 밖에서 또 무슨 소리가 들리나 싶어서였다.

“……?”

그러나 조용했다. 의아함을 느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설마 S급들이 지키고 있는 숙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긴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끼익.

“……엥? 너희가 여기 왜 있냐?”

문을 연 나는 놀라서 앞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이든과 강수현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말을 걸자, 둘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이진아!”

“형!”

왠지 살기등등한 기운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졌다. 이든이 먼저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저 새끼가 네 방문 앞에서 얼쩡거렸어!”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하, 이 음침한 새끼가.”

“머리가 분홍색인 사람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은데요.”

“뭐?”

“…….”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건 마치……. 청춘 드라마에서 양아치 학생과 모범생이 다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 싸우지 좀 마라. 이것들아.”

이든과 강유현만 서로 으르렁대는 줄 알았더니, 이놈들은 전체적으로 다 사이가 나쁜 것 같았다.

하긴, 이든은 나와 마찬가지로 빌런 길드 출신이니 잘 섞이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진아, 그치만 저 새끼가 먼저…….”

“씁, 조용히 해라.”

눈을 부라리니, 이든의 눈썹이 축 늘어졌다.

아무래도 이든은 우리가 이곳에 얹혀살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로키 길드에서 했던 것처럼 막살면 안 되는데, 언제쯤 정신을 차릴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는데, 강수현도 나에게 다가왔다.

“형, 밥 먹으러 가요.”

“아, 그래야지.”

용식이를 끌어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입술이 비죽 튀어나온 이든이 툴툴거리며 따라왔다.

“같이 가!”

“빨리 와. 배고프다.”

그렇게 양쪽에 각각 이든과 강수현을 끼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놈들은 화장실까지 꼭 같이 가야 하는 여학생들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밥 먹을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좀 혼자 먹으면 어디가 덧나나.

투덜거리면서 걷는데, 옆에서 걷던 이든이 슬쩍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동생 만났다며?”

“…….”

여상하게 묻는 이든의 모습에 잠시 멈칫했다가 겨우 대답했다.

“아…… 응.”

“잘됐다.”

“…….”

이든은 그저 담담했다. 정말로 잘됐다는 듯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얼굴이라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이든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장태산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그놈의 말을 듣도록 세뇌당한 탓도 있지만, 아마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처지나 마찬가지였던 한이진은 동생을 만났다. 어머니를 잃은 자신과 다르게.

아마 이든은 지금쯤 제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날 것이다. 약에 취해 있던 이든을 깨우기 위해서라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어머니를 언급했던 일이 새삼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넌…… 그, 괜찮냐?”

“나?”

눈을 동그랗게 뜬 이든이 날 쳐다봤다. 곧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나야 완전 괜찮지. 왜?”

“아니…….”

내가 머뭇거리자, 어떤 의미인지 알아챈 듯 이든의 입술이 긴 호선을 그렸다.

“난 진짜 괜찮아.”

“……그러냐.”

“응, 네가 곁에 있으니까.”

“……?”

그게 무슨 상관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이든이 바보 같은 얼굴로 헤실헤실 웃었다.

“형, 형.”

“으응?”

미심쩍은 눈으로 이든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강수현이 반대쪽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형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나?”

뜬금없이?

그러나 식당을 가는 길이니, 궁금하면 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생각해 봤다.

사실 전생의 기억이 시스템에 의해 대부분 지워져서,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그런 자잘한 것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이진의 몸에 빙의하고 나서 먹었던 것들 중 맛있다고 느꼈던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난 한식이 좋던데. 제육볶음이나 김치찌개 같은 거. 청양고추 팍팍 넣어서 매우면 더 좋고.”

이상하게 난 매운 음식이 당겼다. 저쪽 세계에서 내가 매운 걸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한이진의 몸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면 둘 다인가?

혼자 고개를 갸웃하는데, 강수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제가 직접 만들어 줄게요. 저 요리 잘해요.”

“오, 그래?”

“네! 자취 생활 오래 했으니까요.”

강유현이 게이트에 갇히고, 혼자 남은 강수현은 아마 중학생 때부터 자취 생활을 했을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요리를 잘한다는 말이 조금 씁쓸하게 들렸다. 그래도 감히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내가 뭐라고.

“그럼 엄청 맵게 만들어 줘.”

“네! 마라 맛으로 만들게요.”

오, 완전 끌린다.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는데, 옆에서 불쑥 이든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진아, 나도, 나도……! 달걀 프라이 잘해!”

“넌 남이 만들어 주는 거나 잘 처먹어라, 좀.”

얘는 왜 아까부터 어린애한테 자격지심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작게 타박하자 또다시 이든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투닥투닥하다 보니 금방 식당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기대가 무색하지 않게 온갖 산해진미가 나를 반겼다.

이번엔 테마가 중식인 것 같았다. 나는 접시 위에 사천식 매운 볶음면을 산처럼 쌓았다. 냄새만 맡아도 매운 향이 코를 찌르는 게, 아주 맛있을 것 같았다.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는데, 인원이 좀 부족해 보였다. 아주 존재감이 강한 한 명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서 게살 볶음밥과 탕수육을 잔뜩 퍼 온 강수현을 보며 물었다.

“강유현은?”

“으음…….”

그러자 강수현은 두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밀어 넣은 볶음밥을 겨우 삼키고 대답했다.

“형은 길마님이랑 할 얘기가 있다던데요.”

“그래?”

우리 먼저 먹어도 되겠지?

1초 정도 걱정한 다음에 볶음면을 퍼먹었다. 사천요리라 그런지 마라 맛이 강하게 났다. 나는 만족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후우.”

“이진아, 그렇게 먹으면 조만간 위가 뚫릴 거야.”

“신경 꺼라.”

매운 음식을 먹는 건 나뿐이었다. 이든이 짬뽕을 선택하긴 했지만, 전혀 매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냄새만 맡아도 매운지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짬뽕을 선택하지 않았다.

“근데 있잖아, 너…….”

“엉?”

“……아무것도 아니야.”

“……?”

뭐라고 더 말을 하려던 이든은 볶음면을 퍼먹는 나를 묘한 눈으로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뭐지? 찝찝하게 왜 말을 하다 말아. 그러나 곧 입 안에서 터지는 매운맛의 향연에 나는 다시 접시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러고 보니 강유현은 소설에서 엄청난 대식가였다. 게이트 안에 몇백 년이나 갇혀 변변찮은 거로 연명하다가 겨우 빠져나왔으니,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쿨한 이미지 때문인지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식탐 내는 주인공이라니, 좀 깨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 궁금해졌다. 그 강유현이 식탐을 내며 음식을 먹는 모습이 말이다. 우물거리면서 주변을 살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 문이 슥 열렸다.

“…….”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강유현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찾는 듯 식당을 쭉 둘러보았다.

곧 그와 눈이 마주쳤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