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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39)화 (39/228)
  • 39화

    8. 러브라인의 행방은……?

    “……예.”

    백시후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얼굴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백시후가 작게 이를 갈았다.

    “흐음.”

    라이수의 얼굴에 유쾌한 빛이 스쳤다. S급인 백시후의 패시브 스킬과 독 내성을 뚫고 상처를 입힌 소환수라.

    “그것참 탐나는걸.”

    파랗게 빛나는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원하는 건 모두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시스템에 등록된 소환수를 빼앗는 건 할 수 없지만,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바로 소환수를 등록한 주인이 죽어 시스템상에서 사라지는 것. 그렇게 하면 주인을 잃은 소환수를 길들여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주인을 잃은 소환수가 광분하겠지만, 그걸 길들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라이수의 눈이 잔혹하게 빛났다.

    “등급을 알 수 없는 소환수였습니다.”

    “등급이 안 보였다고?”

    S급인 백시후에게 열람되지 않는 등급이라면, 그보다 높은 SS급 이상이라는 건데. 아직 소환수가 SS급인 전례는 없었다. 묘한 미소를 짓던 라이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번엔 다르다는 건가.”

    “예?”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내저은 라이수가 백시후의 뺨을 더듬던 손을 거두었다. 백시후의 창백한 뺨에서 몽글거리던 하얀 거품이 카펫 위로 뚝뚝 떨어졌다.

    “시후야.”

    “예.”

    “한이진, 네가 보기에 어땠니?”

    “…….”

    라이수의 물음에 차분히 가라앉아 있던 백시후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일렁거리는 낮은 채도의 조명이 기이한 빛이 감도는 백시후의 얼굴을 비추었다. 라이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장태산에게 S급 보조 스킬이 있는 걸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아니, 그런 거 말고.”

    “……예?”

    고개를 내저은 라이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진 말들은 백시후를 또다시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어떻게 생겼어? 예뻐? 아니면 귀여워? 머리카락 색이랑 눈 색은? 눈물점이나 보조개가 있나?”

    “…….”

    “너무 예쁘면 죽이긴 아까운데.”

    속마음을 드러낸 라이수가 달콤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벌레를 손으로 눌러 죽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잔인하고 잔혹한 미소였다.

    “……한이진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는 백시후를 김샌 얼굴로 보던 라이수가 욕조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에 거품 낀 물이 욕조 밖으로 출렁거리며 흘러나왔다.

    “뭐, 그건 됐어.”

    그가 일어나자 구석에 서 있던 남자가 다가와 라이수의 몸에 가운을 입혀 주었다. 검은 정장에 하얀 복면을 쓴 특이한 행색의 남자였다. 라이수는 자연스럽게 가운을 입고 욕조에서 벗어났다.

    “로키 길드에 있던 우리 애들은?”

    장식장에 다가간 그가 위스키를 꺼내 얼음 잔에 담았다. 진한 갈색의 액체가 잔에 채워지고, 라이수가 느긋한 몸짓으로 몸을 돌렸다. 백시후는 아직도 욕조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라이수의 말에 대답했다.

    “등급이 높은 자들은 대부분 회수했습니다.”

    “그래?”

    싱긋 웃은 라이수가 차가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도수가 50도가 넘는 독한 몰트 위스키를 입 안에서 굴리며 라이수가 느릿하게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에반이 귀국하면 같이 움직여. 아무래도 혼자선 힘들 것 같으니까.”

    “하지만……!”

    라이수의 말에 백시후는 몸을 들썩이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걸 보던 라이수가 백시후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시후야. 내가 말했지.”

    “…….”

    “내 말을 듣지 않는 개 따윈 필요 없다고.”

    조르륵, 차가운 위스키가 백시후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얼굴을 뒤덮는 액체에 백시후가 두 눈을 감았다. 그의 긴 속눈썹이 젖어 들어갔다.

    “……알겠습니다.”

    백시후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벌린 입 사이로 높은 도수의 위스키가 살짝 들어갔는지, 그의 짙은 눈썹이 조금 찌푸려졌다.

    어차피 S급은 이까짓 알코올에 영향받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라이수가 피식 웃고 몸을 돌렸다. 가운 아래로 뻗은 하얗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푹신한 카펫 위를 사뿐사뿐 걸어갔다.

    “다음엔 더 잘하자. 알았지?”

    “예.”

    자존심이 강한 백시후는 혼자서 임무를 하지 말라는 말에 발끈했다. 하지만 SS급과 S급들이 지키고 있는 존재를 그 혼자서 제압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에반. 그 광기에 찬 능력자가 귀국하면 또 재미있는 일이 잔뜩 벌어질 것이다.

    얼음 잔 안에 다시 위스키를 채워 넣은 라이수의 눈이 악동처럼 반짝였다.

    ***

    “후…….”

    숙소를 겨우 복구한 뒤, 그제야 내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용식이를 품에 안고 드넓은 방 안에 들어온 나는 순수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대박.”

    로키 길드에서 지냈던 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북유럽풍으로 꾸민 방 안은 하얗고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잘 꾸민 스튜디오 같아 보이기도 했다.

    “뀨우우!”

    용식이도 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품에서 벗어나 푹신한 카펫이 깔린 바닥을 우다다 달려갔다.

    드래곤이라 날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 날아다니는 것보다는 뛰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뛰어다니는 용식이를 보던 나는 방 안을 둘러보다 한쪽에 놓인 물건들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사용할 법한 장난감들이었다.

    “음…….”

    이런 것도 준비해 놓다니. 한번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민하던 내가 낚싯줄 같은 끈이 달린 장난감을 꺼냈다. 끝에는 쥐 모양의 모형과 형형색색의 깃털이 달려 있었다.

    “용식아.”

    “뀨우?”

    내가 부르자, 용식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장난감의 손잡이를 잡고 살살 움직였다. 전생에서 내가 반려동물을 키워 봤으려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

    그렇게 혼자 고개를 갸웃하는데, 이리저리 흔들리는 장난감을 보는 용식이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린 용식이가 보랏빛이 감도는 두 눈을 장난감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좌우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럼 여기서 한번…….

    슬슬 움직이던 장난감의 손잡이를 갑자기 위로 휙 들어 올리자, 용식이의 몸이 빠르게 튀어 올랐다.

    “꺄우! 꺄!”

    “으앗!”

    공중에 뛰어오른 용식이가 놀라운 속도로 장난감을 낚아챘다. 나는 속절없이 장난감을 빼앗겨 버린 빈손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용식이 빠르네…….”

    “꺄아우, 꺄우.”

    장난감을 손에 넣은 용식이가 즐거워하며 카펫 위를 뒹굴었다. 형광 주황색 쥐 모형을 툭툭 치고 물어뜯기도 했다. 장난감에 뭔가 장치를 해 놓은 건지, 용식이의 격한 애정에도 장난감은 무사히 살아남고 있었다.

    “흠, 다른 건…….”

    비슷한 모양의 장난감들을 뒤적거리다가, 뼈다귀 모양의 장난감을 용식이에게 휙 던져 주었다. 용식이는 환장하며 딱딱해 보이는 뼈다귀를 까득까득 깨물었다.

    용식이의 독니에도 녹지 않는 장난감이라니, 대단하네. 한이진의 몸보다 더 단단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파에 앉았다. 연한 회색빛의 커다란 소파는 푹신해서 아주 편했다.

    “하아, 좀만 쉬자…….”

    소파에 앉아 있으니 금세 노곤해졌다. 빙의한 이후부터 모든 일이 폭풍처럼 몰아닥쳤던 것 같다.

    이제 조금 쉬어도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는데, 잠을 방해하는 소리가 지이잉, 거리며 들려왔다.

    “하…….”

    눈살을 찌푸리며 허리춤에 넣어 놨던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주변을 한번 휘 둘러본 다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부분을 귓가에 대니, 발랄한 목소리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한이진 씨!]

    “어어, 그래…….”

    [목소리가 졸린 것 같은데요. 주무시고 계셨어요?]

    “조금……?”

    고개를 휘휘 내젓고 통화에 집중했다. 목을 가다듬고 물었다.

    “흠, 무슨 일이야?”

    [하하, 저희가 뭐 무슨 일이 있어야 연락하는 사인가요?]

    “끊는다.”

    [아, 잠깐, 잠깐만요.]

    심단테의 당황하는 목소리에 시큰둥하게 다시 귓가에 핸드폰을 붙였다.

    “그래서?”

    [하아, 한이진 씨한텐 무슨 말을 못 하겠네요.]

    “끊는다.”

    [흐아아, 진짜 그러지 좀 마세요오…….]

    울먹거리는 심단테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묻혀 있던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 하신다던 일은 다 잘 되셨어요?]

    “뭐…….”

    손가락을 들어 턱을 긁적거렸다. 결론적으로 다 잘 된 거라고 할 수 있으니…… 잘한 거겠지?

    “아마도?”

    [의문형이군요. 저한테서 수많은 베이비들을 강탈해 가셨으면서…… 흑흑.]

    “베이비는 무슨, 애 낳았냐?”

    [너무해요오…….]

    나는 심단테에게서 꽤 많은 아이템들을 받았다. 용식이를 깨운 S급 부화기부터 시작해서, 이든을 구하러 갈 때 사용한 A급 순간 이동 아이템까지. 순간 이동 아이템은 제약이 많지만 확실해서 앞으로도 종종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거, 순간 이동 아이템 좀 더 보내 봐 봐.”

    [아니, 제가 진짜 툭 치면 나오는 도라에X인 줄 아세요?]

    “도라야키라도 줄까?”

    [됐어요!]

    “흠, 싫음 말고.”

    [흑흑, 너무해요.]

    어쩌라는 건지. 시큰둥하게 한쪽 귀를 파다가 몸을 일으켰다. 장난감을 물고 빨던 용식이가 내 움직임에 고개를 돌렸다.

    [아, QED-07 잘 받았습니다. 협조 감사드려요. 한이진 씨.]

    “고마워할 건 없고, 연구나 잘 해.”

    [넵!]

    정수기로 다가가 물컵에 냉수를 받았다. 물을 마시고 있으니 용식이가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적당히 다리를 움직여 용식이와 놀아 주었다.

    “그거, 연구하는 데 얼마나 걸려?”

    [음…….]

    조금 고민하던 심단테가 확실하지 않은 어조로 대답했다.

    [한…… 1년?]

    “뭐? 1년?”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한동안 캑캑대던 내가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그렇게 오래 걸려?”

    [당연히 그 정도는 걸리죠. 기계 자체도 다시 살펴보고, 수식 배열도 다시 확인하고 업그레이드까지 시켜야 하니까요. 게다가 한이진 씨가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면, 저쪽 세계에 있는 진짜 한이진 씨도 찾아야 하잖아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하, 이 거지 같은 곳에서 1년이나 더 있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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