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간혹 정신계 능력자들은 자신이 각성한 줄도 모르고 지내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건 능력이 미미할 경우의 이야기였고, 정신계 능력이 너무 방대한 자들은 얘기가 달랐다. 오히려 그 강한 능력이 독이 되는 것이다.
서류를 든 박윤성의 눈이 커졌다.
“병 때문이 아니고 능력이 문제였던 건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흠.”
서류 안에는 의사가 적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이 나쁜 말들도 적혀 있었다. 그중에 한 대목이 박윤성의 눈길을 끌었다.
「저 애새끼만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다. 기분 나쁜 새끼.」
“…….”
이 대목을 보고 연승원이 각성 센터에서 사람을 불러온 것이리라.
S급의 정신계 능력자라면 분명 능력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주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만, 한도결의 경우는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갈무리하려고 해 자기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듯 보였다. 타인을 공격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공격할 타깃을 자기 자신으로 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막지 못한 능력이 조금씩 흘러나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박윤성이 서류를 내려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S급 보조 스킬에 S급 정신계 능력자라니. 형제가 나란히…….”
언론에 공개된다면 형제 모두 끔찍할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겠군.
고개를 내저은 박윤성이 연승원을 향해 말했다.
“우선은 한이진 능력자에게 말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연승원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방을 나갔다.
곧이어 어리둥절한 표정의 한이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
“네? 뭐라고요?”
박윤성의 말을 들은 내가 눈을 크게 떴다.
“한이진 능력자의 동생, 한도결 군이 아무래도 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하?”
너무 의외라서 그런지 멍청하게 입이 벌어졌다.
한이진의 동생도 능력자라고?
“아니, 그게…… 그럴 리가…….”
당연히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내용인지라 나는 크게 당황했다. 게다가 뒤를 이은 박윤성의 말에 나는 눈알이 튀어 나올 뻔했다.
“그것도 추정 등급이 S급이더군요.”
“네?”
S급? 이제 개나 소나 다 S급이야? 이게 말이 돼?
“아직 정확한 등급은 아니지만, 보통 추정 등급이 S급이면 확실한 편이죠.”
“하…….”
내가 빙의하는 바람에 이상하게 꼬인 건가, 아니면 원래부터 한이진의 동생이 S급 능력자였던 걸까. 빙의자인 나조차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능력이……?”
“정신계 능력자로 추정 중입니다.”
“그럼, 동생이 아팠던 게 설마…….”
내 말에 박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분은 희귀병이 아닌, 능력으로 인한 고통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
생각해 보니 한이진의 동생이 희귀병으로 쓰러진 건, 게이트가 열린 다음이었다. 정신계 능력이라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 병으로 착각한 거라면 제법 아귀가 들어맞았다.
“그럴 수가…….”
그저 놀라고만 있는 나를 보며 박윤성이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한번 동생분을 만나 보는 게 어떻습니까? 준비는 다 해 놨습니다.”
“…….”
한이진의 동생을 만난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한이진이 아니다. 만약 한도결이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다면, 어쩌면 내가 제 형이 아니라는 걸 알 수도 있었다.
아니, 그래도 어차피 한번은 만나야 한다. 애써 찾은 동생인데, 만나려고 하지 않으면 당장 눈앞에 있는 박윤성부터 나를 의심하고 말 것이다.
“좋아요.”
고개를 끄덕이자 박윤성이 곧바로 이동할 차를 준비했다. 한이진의 동생은 오딘 길드 소속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호위 인원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용식이는 우리 안에 들어가더니 배불러서 잠들었고, 다른 놈들도 한바탕 난리를 치다가 박윤성이 따로 몇 마디 하니까 좀 잠잠해진 것 같던데. 괜찮겠지?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차를 타고 이동했다. 병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 꽤 가깝네요?”
“VIP 병동은 길드와 더 가깝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동생분을 찾아가셔도 됩니다.”
“…….”
아니, 그런 배려는 굳이 필요 없는데…….
뒷말을 꾹 삼키며 박윤성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일반 길드원들이 호위를 하며 앞뒤로 꽉꽉 에워쌌다.
조금 불편한 기분을 꾹 참으며 걸어가 커다란 상아색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박윤성이 인원을 통제한 건지, 가는 길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치 드라마 세트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입니다.”
“…….”
병실 문 앞에서 숨을 작게 몰아쉬었다. 이 문을 열면, 한이진의 동생이 있다.
박윤성은 머뭇거리는 나를 차분하게 기다려 주었다. 아마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긴장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짜 한이진이라면 벅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도리어 긴장할 수도 있겠지. 나는 단순히 가짜라는 걸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것뿐이지만.
“흠, 흠.”
작게 헛기침을 하며 문을 열었다. 끼익, 작은 소리를 내며 병실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
문을 연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내가 병실 문을 연 건지, 아니면 호텔 방문을 연 건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갈색 톤으로 꾸민 병실 안은 아늑한 느낌이 났다. 게다가 사람이 몇십 명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쾌적했다. 문 바로 앞에는 응접실처럼 사람이 여럿 앉을 수 있는 큰 소파 몇 개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심지어 TV도 있는 걸 보고 작게 입을 벌렸다.
이게 진짜…… 호텔이야, 병실이야?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박윤성이 말했다.
“들어가시죠.”
“핫, 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내가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환자가 넘어지면 다칠까 봐 깔아 둔 듯한 카펫이 발아래에서 스쳤다.
아무리 계약 조건이었다고 해도 병실이 너무 과한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애써 납득하며 걸어갔다.
병실 침대는 어른이 몇 명이나 뒹굴어도 될 만큼 커다란 킹사이즈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한 아이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
이 아이가 한도결이겠지. 하얀색 비니를 쓴 한도결은 형인 한이진과 얼굴이 판박이였다. 한이진이 어려지면 딱 이런 모습일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다만 한이진이 좀 더 눈꼬리가 올라가 있어 고양이상에 가까웠고, 한도결은 눈꼬리가 축 늘어진 강아지 상이었다. 똑같은 얼굴인데 인상이 달라 보여서 기분이 묘해졌다.
“……도결아.”
“…….”
억지로 입을 열어 부르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한도결은 나를 보고 있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도결아?”
“…….”
마지못해 다시 부르자, 한도결이 고개를 푹 숙였다.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 설마……. 얘가 벌써 내가 가짜라는 걸 알아챈 건 아니겠지?
긴장하며 아이를 살피는데, 한도결이 갑자기 고개를 휙 들었다.
“이 나쁜 자식아!”
“무, 뭐?”
그리고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한이진, 이 나쁜 놈아! 바보! 멍청이!”
“하, 하하…….”
“해삼! 멍게! 말미잘!”
이게 이 어린 녀석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인가 보군.
아무렴 한이진 동생 아니랄까 봐, 성깔이 장난 아니었다. 만나자마자 욕설이라니. 헛웃음을 짓는 나를 보며 한도결이 씩씩거렸다.
“웃지 마! 웃지 말라고!”
“하…… 이 녀석, 성질 하고는.”
“저리 가! 난 너 같은 거 몰라!”
빽 소리를 지른 한도결이 토라진 듯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또 웃음이 터질 뻔한 나는 꾹 참으며 슬쩍 입을 열었다.
“음…… 그럼 나 진짜 간다?”
“……뭐?”
물론 진짜 돌아가려는 건 아니고, 조금 놀리려고 한 말이었지만 한도결은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지, 진짜…… 간다고?”
“네가 가라 그랬잖아.”
“윽…….”
그러자 한도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커다란 눈망울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자 식겁하며 애를 달랬다.
“미안, 미안. 농담이야. 안 갈게.”
“윽…… 이, 이……!”
농담이라는 걸 알게 된 한도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리고 화를 내며 손을 들어 나를 퍽퍽 때렸다.
“이, 이 나쁜 놈! 한이진, 나쁜 놈아!”
“아, 아, 아야.”
고사리처럼 작은 손이었지만 제법 매서웠다. 아픈 시늉을 하며 조금 뒤로 물러나자, 기어코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도르르 흘러내렸다.
“왜, 왜 이제야 왔어? 왜…….”
“도결아.”
우는 아이를 달래 주려 등을 토닥이는데, 오히려 그게 역효과인 모양이었다. 한도결은 더 서럽게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흐어엉, 나쁜 놈아…….”
그렇게 눈물, 콧물을 쏟으면서 한도결은 내 옷을 붙잡았다. 아이에게 옷자락을 내어 준 채로 계속 등을 토닥였다.
“내가, 내가 아파서 귀찮았어? 그래서 안 온 거야?”
“아냐, 그런 거 아니야.”
한도결은 자기가 희귀병으로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한이진이 자신을 귀찮게 여겨 만나러 오지 않았던 거라고 오해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한이진은 그 누구보다 동생을 만나고 싶어 했었다.
“흐어엉…… 잘못했어. 이제 안 아플게. 그러니까…….”
“…….”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흐어어엉…….”
서럽게 우는 한도결을 꽉 끌어안았다. 나까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며, 잇새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
“버리긴 누가 버려.”
“흐어엉, 허어어엉…….”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도결아.”
그 말에 한도결은 더 큰 울음을 터트리며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를 끌어안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한이진을 대신해, 이 아이를 반드시 지켜 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