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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35)화 (35/228)
  • 35화

    성유빈이 호감을 느낀 부분에 이렇게까지 빠진 걸 보면 스카우터 스킬이 유례없이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S급 보조 스킬을 가진 한이진이라는 능력자의 힘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기자 회견 내용이 다 사실이라는 거네요.”

    담담하게 중얼거린 부마스터, 선율이가 송차현을 흘끗거렸다. 지독하게 무표정한 송차현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그녀의 곁에 오래 있었던 선율이는 어느 정도 송차현의 생각을 추측할 수 있었다.

    “혹시…… 그 한이진이라는 능력자를 스카우트하려는 건 아니죠?”

    “…….”

    프레이야 길드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여자만 멤버로 받아들이는 길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 객원 멤버가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운영이 빠듯했던 초창기 시절에는 남자 능력자들과 용병 계약을 맺어 던전 클리어를 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유빈을 비롯해 지금 발키리의 핵심 멤버들을 영입하고 난 이후부턴 용병 계약조차 맺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지금 대부분의 발키리 멤버들은 남자와 던전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였다.

    만약 그 한이진이라는 능력자를 용병 계약으로 데려온다면, 어떤 혼란을 가져올지 알 수 없었다. 길드원을 여자만 받아들인다고 해서 길드 자체가 금남 구역인 건 아니지만, 선율이는 부마스터로서 길드의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입장이 강한 편이었다.

    “안 하면? 당장 우리끼리 다음 세(Sæ)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

    “…….”

    “…….”

    세(Sæ)는 다른 던전과 달리 바다 한가운데에 열리는 던전이었다. 인천 바다에 게이트가 열리는데, 던전이 열리는 횟수가 몇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특수한 곳이었다.

    게다가 던전이 열릴 때마다 등급도 매번 달라졌다. 얼마 전에는 던전 이상 현상도 겹쳐서 자칫 잘못하면 발키리도 클리어하지 못할 뻔했을 정도로 등급이 높아졌었다.

    바로 이전에 던전이 열렸을 때의 추정 등급은 S급. 까딱 잘못하면 강유현과 한이진이 클리어한 SS급과 근접했을 수도 있었다. 만약 다음에 세(Sæ) 던전이 다시 열린다면, 등급 변경 폭이 얼마나 심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터였다.

    “무리겠죠…….”

    “하지만, 박윤성 쪽에서 과연 한이진 능력자를 넘겨줄까요?”

    기자 회견 직후, 한이진 능력자가 오딘 길드와 계약을 진행했다는 지라시 기사들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그게 정식 길드원 계약인지, 아니면 용병 계약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 됐든 한이진 능력자가 오딘 길드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

    박윤성이나 되는 능력자가 희귀한 S급 보조 스킬 능력자를 놔줄 리가 없었다. 세계 상위 랭커인 그는 강할 뿐만 아니라 셈에 능할 정도로 능구렁이 같은 구석도 있었다. 반면에 송차현은 모든 게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러니까 딜을 해 봐야지.”

    세(Sæ)는 특수한 던전인 만큼 보상도 남달랐다. 아무리 박윤성이라고 할지라도 거절하기 힘들 정도의 희귀한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던전 입찰이 치열했었던 곳이었다. 아마 박윤성은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확실하게 확인해 봐야지. S급 보조 스킬 능력자의 스킬을…….”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린 송차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직 다른 길드들은 확실하지 않은 S급 보조 스킬 능력자의 등장 소식에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세(Sæ) 던전에서 그가 활약한다면, 본격적으로 한이진을 영입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겠지.

    그때가 되면 박윤성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그리고 라우페이 길드는…….

    잠시 라우페이 길드장을 떠올린 송차현의 얼굴이 흐려졌다. 선율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송차현을 바라보았다.

    “언니, 괜찮아요?”

    “……괜찮아.”

    애써 웃어 보인 송차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대형 길드들이 움직일 것이다.

    송차현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

    숙소를 나온 박윤성은 집무실로 향했다.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숙소 문제는 어떻게든 일단락된 듯 보였다. 한숨을 내쉰 박윤성이 서류를 살피다가 막 방 안으로 들어온 연승원을 쳐다봤다.

    “알아본 건?”

    “…….”

    연승원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서류를 내려놓은 박윤성이 의뭉스러운 얼굴로 신음을 내뱉었다.

    “흐음.”

    분명 한이진을 돕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을 추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연승원에게 박윤성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지.”

    한이진이 머물렀던 임시 숙소에는 곳곳에 CCTV가 달려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 임시 숙소 안에 있었던 한이진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곧 순식간에 몸이 사라졌다.

    순간 이동 아이템은 희귀하기도 하거니와 성능이 불안정해서 높은 등급이 아니면 잘 유통되지 않았다. 그러니 한이진이 가지고 있었던 순간 이동 아이템은 최소한 A급 이상이었을 텐데, 로키 길드의 능력으로는 선뜻 제공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한이진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 오딘 길드의 해커들이 수도 없이 도청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어디쯤 있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사라진 한이진의 위치는 거리의 CCTV와 강수현의 추적 스킬로 알아낼 수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한이진의 조력자라는 건 박윤성의 심기를 거스르게 했다.

    “혹, 한이진 능력자가 라우페이 길드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요.”

    연승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딘 길드의 능력으로 알아낼 수 없다는 건, 라우페이 길드의 방해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한이진이 했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박윤성의 스킬로 지켜본 결과, 한이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었다.

    “라우페이는 아니야.”

    “그럼…….”

    “그러고 보니, 한이진 능력자의 소환수가 S급이었었지.”

    용식이라는 괴상한 이름이 붙은 용종 소환수.

    “아니…… S급 이상이었던가.”

    아직 자세히 감정을 한 건 아니지만, 박윤성이 감정 스킬을 걸었을 때 제대로 정보가 뜨지 않았다.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스템이 불안정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한이진이 가진 용종 소환수가 S급 이상의 등급을 가졌다는 말이 된다.

    어쨌든 S급 이상의 소환수를 부화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S급 이상의 부화 아이템이 필요했다. 당연히 그것도 한이진 개인의 능력으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A급 이상의 순간 이동 아이템과 S급 이상의 부화 아이템을 제공할 수 있는 세력. 뿐만 아니라 도청과 추적이 불가능한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눈썹을 찌푸린 박윤성이 누군가의 이름을 조그맣게 말했다.

    “……심단테?”

    “예?”

    레긴 길드의 마스터이자 S급 제작자.

    그자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의외의 인물이라 그런지 연승원조차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하지만, 레긴 길드가 직접 움직인 적은 지금껏 없었지 않습니까.”

    “그렇지.”

    레긴 길드의 마스터, 심단테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였다. 본래 기계 공학을 전공한 과학자였던 그는 주변 사람을 하찮은 벌레 취급하고, 벌레가 아니면 실험체로밖에 보지 못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만든 제작 아이템들은 성능이 뛰어나, 심단테가 흥미를 잃고 툭 던진 아이템들이 경매장에서 수억을 호가하곤 했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던전에서 구하는 아이템보다 질이 좋으니, 그의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강유현마저도 다른 것에는 지극히 무관심하면서 심단테의 아이템에는 관심을 가지곤 했으니 말이다. 박윤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심단테가 한이진 능력자를 돕는 거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 지독한 이기주의 과학자가 한이진을 돕는다면,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둘 사이에서 어떤 관계성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심단테가 한이진의 S급 보조 스킬에 흥미를 보일 리도 없었다. 던전 안에는 죽어도 들어가지 않는 자였으니.

    “무슨 속셈이지.”

    눈썹을 찌푸린 박윤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한이진은 완벽하게 그의 통제 안에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발생할 예기치 못한 일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을 터였다.

    “심단테의 최근 행적을 한번 알아봐.”

    “예, 마스터.”

    비록 심단테가 자신의 정보를 철저히 숨기는 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찾다 보면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고개를 숙여 대답한 연승원이 곧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리고…… 한이진 능력자의 동생, 한도결 군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무사히 찾아서 보호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스터께서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연승원이 작은 서류철을 박윤성에게 건넸다. 박윤성은 의아한 기색으로 서류철을 받았다.

    “한도결 군의 담당 의사는 그가 가진 희귀병과 아무 상관 없는 전문의였습니다.”

    “장태산이 할 만한 짓이지.”

    장태산이라면 분명 적절한 치료도 해 주지 않고 아이를 방치해 왔을 것이다. 치료는 무슨. 그러면서 교묘한 말로 한이진을 속여 그를 착취해 왔겠지. 안 봐도 뻔한 얘기였다.

    “근데 그게 왜?”

    “사실…… 의사 소견서에 묘한 말이 있어서, 혹시 몰라 각성 센터에 문의를 했습니다.”

    “……!”

    “아직 센터 측에서 정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우선 한도결 군이 각성자인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추정 등급…….”

    추정 등급 S급 이상. 정신계 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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