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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34)화 (34/228)
  • 34화

    꽤나 차가운 박윤성의 말에 강유현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SS급을 속이고 나를 납치해 갈 수 있는 능력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글쎄……. 박윤성의 말대로 다른 나라의 능력자들도 정신 나간 놈들이 많으니까, 어쩌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강유현도 그걸 아니까 대답을 못하는 거고.

    “저기, 정말 저 때문에 강유현의 집을 공용 숙소로 만드신 거라고요?”

    “그렇습니다.”

    “하…….”

    “정 싫으시면 다른 선택지도 있습니다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뭔데요?”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으나 물어보았다. 설마 지금 상황보다 더 최악일까 싶은 심정으로 말이다.

    “오딘 길드 내부 숙소에서 지내시되, 상주하는 직원 최소 3명 이상과 24시간 내내 함께 지내셔야 합니다. 그들과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되고, 단독 행동도 불가합니다. 화장실을 가실 때도…….”

    “잠깐, 잠깐만요!”

    그러나 내 예상은 와장창 깨졌다. 이것보다 더 최악인 대안이 있다니. 얼굴도 잘 모르는 길드 직원들이 내 주변에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다 아파졌다.

    머리를 짚는 나를 보며 박윤성은 그것 보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금방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냥, 여기 있을게요…….”

    그렇게 나는 또라이 같은 능력자들과 한 공간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형, 괜찮아요?”

    “어…… 근데 너 학교는?”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내 옆에 앉아 있는 강수현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강수현이 사슴같이 큰 눈망울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저 S급 판정받고 조기 졸업하기로 했어요. 이제 학교 안 가요.”

    “아, 그랬었지.”

    “네?”

    “아무것도 아니야.”

    확실히 소설에서도 강수현이 S급으로 각성하고 나서 학교에 안 가고 던전에 들어가곤 했었지.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그땐 2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라 곧 있으면 졸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학기, 강수현은 이제 막 19살이 된 남자애였다.

    중‧고등학교 무렵엔 다들 각성하니까 딱히 미성년자가 던전에 들어가는 게 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은 나이가 어리면 훈련을 받다가 졸업하면 길드에서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강수현은 S급이니까 더욱 빨리 전선에 뛰어들게 된 것이었다.

    그게 딱히 마음 아픈 건 아니었지만 강수현의 뽀송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괜히 뒤숭숭했다.

    “그래서 너도 이제 여기서 지낸다고?”

    “네!”

    강수현은 기쁜 듯이 활짝 웃었다. 이 살얼음판같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저런 웃음을 짓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 눈치가 좀 없을 수도 있지. 나는 죽어라고 강유현을 노려보는 이든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야, 가만있어라.”

    “……난 반대야.”

    “어쭈, 네가 뭔데?”

    박윤성의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이자 이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로키 길드에서 24시간 내내 나를 감시할 때는 불평불만 한 번 없었으면서 길드를 나오자마자 온갖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그럼 너 혼자 다른 숙소에서 지내라. 난 여기 있을 테니.”

    “뭐?”

    이든이 충격받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난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 없는 몸이니, 이든이 싫으면 편한 곳에서 살라고 보내 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이든은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진아, 날 버릴 거야?”

    “미친, 내가 버리긴 뭘 버려.”

    “내가 잘못했어. 나 버리지 마.”

    “아오, 진짜.”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붙잡고 늘어지는 이든을 짜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잭나이프가 날아와 소파에 팍, 하고 꽂혔다.

    “거기까지.”

    “…….”

    “…….”

    미, 미친 새끼. 좀 시끄럽게 했다고 이렇게 무기를 날려 버려? 어이가 없어서 강유현을 쳐다봤다가, 화가 난 듯 보이는 살벌한 얼굴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집주인이 좀 화가 난다는데 내가 이해해야지 어쩌겠어.

    그러나 이든, 이 하룻강아지 같은 새끼는 납득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유현 너 이 새끼, 방금 이진이 공격했냐?”

    “그럴 리가. 그 옆에 있는 주제도 모르는 놈한테 던졌는데.”

    “뭐라고?”

    “왜, 이번엔 제대로 맞춰 줄까?”

    “하…….”

    SS급과 A급의 말싸움 수준이 똑같은 거 보소.

    심지어 둘이 곧 싸우기라도 할 듯이 드잡이질을 하는데도 아무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보육원 원장님 같은 박윤성에게 눈짓을 했지만, 그는 교묘히 내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시발.

    “어, 그래. 해 봐, 해 봐, 이 새끼야.”

    “참아 주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다. 바람 능력자.”

    “아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만 처싸우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이 망할 놈들아!”

    아침부터 쫄쫄 굶은 데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배 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열받아서 씩씩거리는 나를 강수현이 뒤에서 연신 불러 댔다.

    “형, 형.”

    “아, 왜?”

    “저기…….”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리자, 그곳에는 독니로 갈아 대던 나뭇가지를 내팽개치고 다음 타깃을 잡은 용식이가 있었다.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마호가니 장식장의 한쪽 다리가 통째로 용식이의 독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꺄아우, 까우!”

    그리고 그걸 보며 용식이가 신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절망하며 용식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으아아악, 용식아아!!”

    ***

    프레이야 길드의 마스터, 송차현은 실로 오랜만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길드의 핵심 능력자들만 부른 회의라 참석 인원은 많지 않았다. 상석에는 마스터인 송차현 본인이 앉아 있고, 그 양옆에는 부마스터 선율이와 발키리의 리더인 성유빈, 그리고 발키리의 능력자인 한여름과 차민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빈아.”

    길드원들을 소집하고 딱히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송차현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이름을 불린 성유빈이 눈만 흘끗 돌려 송차현을 응시했다.

    “네, 언니.”

    “……강유현.”

    “…….”

    “혼자서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일부러 기자 회견이 끝나고 뒤를 쫓아가 만난 건데, 송차현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성유빈은 변명을 하는 대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후.”

    무표정한 얼굴의 성유빈을 바라보던 송차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유빈은 불을 다루는 능력을 가졌지만 평소 성격은 무척 조용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한번 흥분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들곤 했다.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말이다.

    송차현은 혼자서 강유현을 만나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었다. SS급인 강유현을 도발하면 분명 좋지 못한 일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강유현을 독단으로 만났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좀 의외였다. 송차현이 그 부분을 언급하기에 앞서, 호기심으로 점철된 눈을 빛내며 한여름이 먼저 불쑥 입을 열었다.

    “야, 너 만났지?”

    “……?”

    “그, 이름 뭐야. 한…… 한유진?”

    “한이진.”

    “맞다. 그 사람. 그때 만나 봤어?”

    “…….”

    강유현의 기자 회견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정작 당사자인 강유현이 아니었다. 이번 기자 회견에서 그와 함께 SS급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알려진 B급 능력자 한이진이었다.

    기자 회견이 끝나고 엄청난 화제가 된 한이진은 실시간 검색어를 휩쓸고 인터넷상에서 벌써 신상이 탈탈 털리고 있었다. 그 강유현과 함께 SS급 던전을 클리어했을 뿐만 아니라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킬 수 있다는 S급 보조 스킬 때문에 같은 능력자들 사이에서도 핫이슈가 되었다.

    특히나 남의 일에 관심 많은 한여름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은 고작 TV로 봤지만, 성유빈은 그를 직접 만났을지도 모른다. 꼭 그녀에게 감상을 듣고 싶었다.

    “네, 만났어요.”

    “어땠어? 응? 좀 말해 봐 봐.”

    “…….”

    잠시후, 성유빈은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잘생겼던데요.”

    “아, 그래. 잘생겼…… 뭐?”

    건조한 얼굴과 말투와는 다르게 성유빈의 입에서는 다른 느낌의 말들이 튀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말에 한여름이 눈을 크게 뜨자, 성유빈은 빠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쌍꺼풀진 눈은 아닌데 크고 맑았어요. 코는 오뚝하고 입술 모양도 좋고 턱도 갸름한 편이고요. 얼굴도 작고 코랑 입도 작은 편인데 오밀조밀하니 어울려서 보기 좋았어요. 웃을 때 보조개가 파이고, 눈웃음도 많이 쳐요. 전체적으로 귀염상이긴 한데 체격이 좋아서 그런지 유약해 보이진 않고 의외로 몸이…….”

    “야, 너 미쳤어?”

    한여름은 느닷없이 한이진의 외모 찬양을 주절거리는 성유빈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고, 송차현과 선율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차민희는 아까부터 딴 곳을 바라보며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죄송해요.”

    “하, 이번엔 왜 또 외모에 꽂혀선…….”

    성유빈의 S급 스킬, 스카우터.

    전투 능력도 수준급이지만, 그녀가 발키리의 리더가 된 건 이 스카우터 스킬 때문이었다. 호감을 가진 상대의 재능을 알아보는 이 스킬은 성유빈이 조절할 수가 없어 패시브 스킬처럼 발동되곤 했었다.

    지금까지 발키리의 인원은 성유빈의 스킬로 발굴해 냈다. 스카우터 스킬은 능력이 강한 능력자일수록 성유빈의 호감을 극대화시켰다. 손톱이 예쁜 능력자에게는 느닷없이 네일 아트 칭찬을 해 대고, 말투가 차분한 능력자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는 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호감을 느낀 능력자들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덕질하는 오타쿠처럼 굴었다.

    그래도 지금까진 대부분 여능력자들에게 스킬이 발동해서 다행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한이진이라는 능력자의 외모가 딱 성유빈의 취향이었던 모양이었다. 한여름은 귓가가 붉어진 성유빈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잘생겼나? 난 강유현이 더…….”

    “그 자식 얘기는 하지 마세요.”

    “헐.”

    금방 살벌해지는 성유빈을 보며 한여름은 혀를 내둘렀다.

    스카우터 스킬이 발동한다면, 당연히 성유빈은 강유현에게도 호감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 그는 무려 지구상에 유일한 SS급 능력자이니까.

    하지만 성유빈은 그에게 손톱만큼의 호감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아예 스킬 발동 자체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강유현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느낀다면 단번에 감정이 뒤바뀌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게 더 재밌을 것 같긴 한데.’

    눈을 빛내던 한여름은 상석에 앉아 있는 송차현을 힐끗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송차현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대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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