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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33)화 (33/228)
  • 33화

    꽉 잡은 손가락이 어깨와 허리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파드득 놀라며 떨어지려고 했으나 내 몸은 속절없이 강유현의 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 잠깐……!”

    “조금만 더 늦으면 다 불태우려고 했었지.”

    무시무시한 말을 읊조리는 강유현을 마주 봤다. 스킬을 쓰고 있는지 푸른빛이 일렁이며 형형하게 빛나는 눈이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잠깐, 이것 좀 놔 봐!”

    “……한이진.”

    깊은 동굴 안에서 울리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었다. 강유현이 이렇게 이름을 부르면 어쩐지 불안해져서 조마조마하게 된다.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주인공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른 새끼의 냄새를 묻혀 온 거 같은데.”

    “뭐……?”

    “불쾌하군.”

    눈가를 찡그린 강유현이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어이가 없었다.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땐 형제가 하는 짓이 똑같았다. 기분 나쁘게 왜 남의 냄새를 맡고 그러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리 와, 당장 가서 씻기나 해.”

    “어어, 야!”

    무작정 잡아끄는 강유현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무리였다. 정말이지 힘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끌려가는데, 뒤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렸다.

    “한이진!”

    “꺄아우!”

    이든과 용식이었다. 바람 능력으로 순식간에 다가온 이든이 내 한쪽 팔을 잡고, 용식이가 왼쪽 다리 바짓단을 물었다. 잡아 준 건 고마워. 고맙지만, 내 입에선 곧바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악, 용식아! 바지 탄다, 타!”

    “뀨, 뀨우우.”

    용식이의 독니에서 나오는 맹독이 순식간에 바지를 녹였다. 식겁하며 다리를 털자 용식이가 시무룩해하며 바지를 놓았다. 그리고 잽싸게 이동해서 강유현의 앞을 가로막고 으르렁거렸다.

    “크르릉, 크릉!”

    “허…….”

    근데 쟤는 SS급이 무섭지도 않나? 본능적으로 주인공의 무시무시함을 느낄 텐데. 강유현은 SS급이니까.

    그러고 보니 문득 소설의 설정이 생각났다. 용식이, 원래는 강유현의 소환수가 돼야 했을 니드호그는 상당히 성질이 더러웠다. 강유현을 주인으로 인식하면서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래서 강유현이 명령을 내려도 시큰둥했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미적거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 강유현은 어떻게 소환수를 길들였냐고?

    ……팼다.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듯 개 패듯이 니드호그를 팼다. 그랬더니 성질 더러운 니드호그도 결국엔 강유현의 말에 복종하게 되었었다.

    나는 불안한 얼굴로 강유현과 그의 앞에 있는 용식이를 바라보았다. 강유현은 자신보다 한참 작은 용식이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강유현이 긴 다리를 뻗었다.

    “안 돼……!”

    금방이라도 강유현의 다리가 용식이를 차 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든 강유현을 말리려고 몸을 비틀었으나 꼼짝도 하지 못했다. 원작에서 성체였던 니드호그는 몰라도, 지금 내 소환수인 용식이는 어린 용이었다. SS급인 강유현의 발길질 한 번에 까딱하면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용식……! 응?”

    “꺄우?”

    “…….”

    그러나 강유현의 발은 애매한 거리에서 우뚝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앞에 있는 용식이를 차 버릴 것 같은 자세인데 어쩐 일인지 발을 멈춘 채 기묘한 눈으로 용식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저 성질머리에 설마 내가 말렸다고 들어 먹었을 리는 없고. 혹시 용식이를 보고 뭔가를 느낀 건가?

    은근히 기대 어린 눈으로 강유현을 올려다봤다. 소설에서는 용식이가 다 자란 성체였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귀여운 용식이의 외모에 저 얼음장 같은 차가운 마음이 조금 녹아내렸을 수도…….

    “……하.”

    “캬아아, 캬아!”

    ……일 리는 없나.

    강유현은 마치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에 용식이가 기분 나쁜지 새된 목소리로 카랑카랑한 울음소리를 냈다.

    둘의 대치를 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유현이 용식이를 다짜고짜 패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용식이를 더욱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강유현에게 무시받았다고 생각한 듯 용식이는 작은 제 몸을 부러 크게 부풀렸다.

    근데, 저 자세는 설마…….

    “용식아, 안 돼!”

    용식이의 횡격막이 크게 부풀었다. 백시후에게 독 브레스를 뿜었을 때와 똑같았다. 금방이라도 용식이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캬, 캬우…….”

    “……어?”

    그러나 기세 좋게 입을 벌렸던 용식이는 얼마 가지 않아 픽, 하고 고꾸라졌다. 그새 강유현이 뭘 한 건가 싶어서 쳐다봤으나, 용식이를 내려다보는 강유현의 얼굴도 어이가 없다는 듯 짜게 식어 있었다.

    “이제 한계였나 보네요.”

    강유현과 이든에게 붙잡혀 있던 나 대신 박윤성이 다가가 용식이를 살폈다. 마치 건전지가 다 된 인형처럼 엎어져 있는 용식이는 박윤성의 손길에도 하악질 하지 않고 밭은 숨만 색색 내쉬고 있었다.

    “크, 큰일 나는 건 아니겠죠?”

    “괜찮습니다. 마수석을 준비해 놨으니 먹으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후, 다행이다.”

    안도하는 나를 바라보던 박윤성이 강유현과 이든을 한 번씩 돌아보더니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있지 마시고 안에 들어가서 대화 나눌까요? 강유현 능력자, 이든 능력자.”

    “…….”

    “…….”

    그래도 역시 오딘 길드의 대빵은 박윤성이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

    “용식아, 맘마 먹자.”

    “쿠우?”

    반쯤 눈을 뜬 용식이 앞에 초록색 빛을 띠는 마수석을 흔들었다. 그러자 냄새를 킁킁 맡은 용식이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 어서.”

    “쿠우, 쿠…….”

    그러나 왜인지 덥석 받아먹지 못하고 끙끙거린다. 대체 왜 이러지? 소설의 니드호그는 마수석이라면 등급 따지지 않고 와구와구 먹을 정도로 대식가였는데. 거기다 박윤성이 구해 준 이 마수석은 무려 A급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용식이는 딱히 끌리지 않는 듯 반응이 미지근했다. 배고파서 쓰러지기까지 했었는데 말이다.

    “하아, 왜 그러니……?”

    걱정되어 한숨을 내쉬자 박윤성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마수석을 먹지 못하는 용식이를 살피더니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아직 마수석을 직접 씹어 먹는 건 힘든 것 같습니다. 용종이라도 막 태어난 아기니까요.”

    “아…….”

    말을 마친 박윤성이 자신의 인벤토리 안을 뒤적거리는 듯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나뭇가지?”

    “이그드라실의 가지입니다. 독 계열의 용종들은 대부분 좋아하더군요. 간식처럼요.”

    “아하.”

    “이 위에 마수석을 가루로 뿌려서 주면 먹을 겁니다.”

    나는 박윤성의 말대로 이그드라실의 나뭇가지 위에 가루로 만든 마수석을 뿌렸다. 그러자 냄새를 맡은 용식이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보랏빛이 감도는 눈을 확 떴다.

    “꺄우, 꺄!”

    “먹고 싶어?”

    “꺄아!”

    “옳지. 그래, 그래.”

    환장하면서 먹는 용식이를 뿌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뭇가지에 묻혀 놓은 마수석 가루를 맛있게 핥아 먹더니, 나중엔 독니로 나뭇가지를 까득까득 깨물면서 가지고 놀았다.

    어린 강아지들이 밥을 먹지 못할 때 놀이하듯이 길들이는 방법이 있다던데, 그게 소환수에게도 적용될 줄이야. 한동안 나뭇가지에 환장하는 용식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형, 쟤 이름이 용식이에요?”

    “…….”

    대체 강수현은 왜 또 여기 있는 거지. 골치가 아팠다. 같은 공간에 SS급인 강유현, S급인 강수현, A급인 이든과 같이 있는 B급 한이진은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넌 여기 왜 있냐?”

    “저요?”

    강수현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모든 일의 원흉인 박윤성이 태연한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기막힌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분명 숙소에서 지내게 해 준다며, 숙소! 강유현 집이 언제부터 S급들이 우글거리는 숙소가 되어 있는 거냐고!

    눈으로 따지듯이 응시하자 곧바로 박윤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이글거리는 내 눈빛에 예의 그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젠 안 속는다. 이 악마야!

    “오늘부터 이곳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여기서요? 여기 강유현 집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한이진 능력자와 다른 능력자분들을 위한 공용 숙소가 될 것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황당한 말에 입을 벌리자 어디선가 싸늘한 기운이 훅 끼쳐 왔다. 강유현이 살벌한 눈으로 박윤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여기는 강유현의 집이었다. 당연히 혼자 살던 곳에 사람들이 몰려오면 싫겠지. 거기다 강유현은 게이트 안에서 시달린 경험 때문에 잠잘 때 누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걸 지독히도 싫어한단 말이지. 그런 강유현이 이 미친 짓에 순순히 가담할 리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열심히 응원의 눈길을 보냈다.

    “제가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요. 박윤성 길드 마스터.”

    “……!”

    그래, 잘한다. 어서 공용 숙소 따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해. 날 내쫓으라고, 어서!

    “한이진을 보호하는 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응?”

    “그러니 다른 놈들은 다 내쫓으시죠.”

    “아니, 저기…….”

    나는? 나는 왜 안 내쫓아? 나도 그냥 1인 숙소에서 편하게 살게 해 주면 안 될까? 응?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박윤성과 강유현의 살벌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그건 안 됩니다. 강유현 능력자.”

    “어째서입니까.”

    “지금은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던전 등급 이상 현상을 해결할 때쯤엔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부분은 강유현 능력자도 혼자서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

    “국내 길드면 몰라도 국외 열강들이 어떤 능력자를 숨기고 있을지 짐작할 수 없죠. 생각지도 못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들이 한이진 능력자를 노린다면, 그때도 혼자 감당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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