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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32)화 (32/228)
  • 32화

    7. 거리두기 안 되나요

    아마도 진짜 한이진은 이든과 겉으로는 데면데면하게 굴었었나 보다.

    하긴, 성격도 그렇고 동생에 대한 것도 있으니 다른 데 신경 쓰고 싶진 않았겠지. 아무튼, 걱정했던 것보다 이든의 일이 쉽게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야, 너도 오딘 길드랑 용병 계약해.”

    “그럼 너랑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아, 뭐. 그렇겠지?”

    “할래.”

    냉큼 고개를 끄덕이는 이든에게 펜을 쥐여 주고 사인을 하게 했다. 어쩐지 이 녀석, 친한 사이면 보증도 홀랑 서 버릴 정도로 순진해 보여서 양심이 좀 찔렸지만, 그래도 소설 내용대로 이든이 오딘 길드에 들어오는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든과의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 박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진지한 눈이 나를 향했다.

    “앞으로는 저희를 더 믿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이진 능력자.”

    “아, 네…….”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이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옆에서 입술을 비죽이며 투덜거렸다. 팔꿈치로 또 녀석의 허리를 찌르다가 슬쩍 옆을 돌아본 나는 경악했다.

    “헉……!”

    “뀨우, 뀨!”

    대화를 나누느라 관심에서 벗어난 사이, 용식이는 바닥에 깔린 러그와 원수라도 진 듯 물어뜯고 있었다. 문제는 용식이의 침이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려 S급 능력자의 몸도 녹아내리게 만든 맹독이다. 나는 기겁하며 용식이를 불렀다.

    “요, 용식아!”

    “크릉?”

    “그, 그거 내려놔. 지지야, 지지!”

    “크릉!”

    쫓아가자 용식이는 놀아 주는 줄 알았는지 러그를 입에 문 채로 폴짝폴짝 방 안을 뛰어다녔다. 이미 걸레짝이 된 러그는 물론이고, 용식이가 흘린 독극물 침으로 바닥까지 뚫릴 기세였다.

    “으아악, 가만히 좀 있어!”

    “꺄우우, 꺄우!”

    한바탕 난리를 친 뒤에야 용식이를 겨우 붙잡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내 품 안에서 조금 바둥거리던 용식이는 그래도 만족했는지 길게 울고는 몸을 축 늘어트렸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순식간에 초토화 된 방 안을 둘러보는 박윤성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그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용식이를 바라보았다.

    “니드호그…… 전설급 용종 맞죠?”

    “아, 네…….”

    “음, 소환수로 키우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겠군요.”

    “하, 하하…….”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태평하게 하품하는 용식이를 내려다봤다. 소설에서 재력이 넘치는 강유현은 니드호그를 위해 운동장만 한 우리를 만들어서 키웠었다. 왜인지 우리 용식이는 크기가 작아서 그 정도까지 큰 우리가 필요하진 않겠지만, 이대로 무럭무럭 자라면…….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

    앞으로 용식이가 망가트릴 물건도 상당할 테고, 먹이 값도 만만치 않게 들 게 분명했다. 그걸 다 감당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하겠지. 그러고 보니 슬슬 용식이한테 먹이도 줘야 할 것 같은데.

    이것저것 연승원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박윤성을 흘끗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그러자 박윤성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네, 무슨 일이시죠?”

    “음, 그게, 혹시…….”

    소환수들은 엄밀히 말해 던전 안의 몬스터들과 똑같았다. 단지 알이나 새끼 상태로 테이밍해 인간이 길들이는 것뿐이었다. 용식이도 처음 눈 뜨자마자 본 나를 부모로 인식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인간을 부모 혹은 주인으로 인식하더라도 습성은 몬스터와 똑같다. 거기다 용식이는 전설급 용종, 던전 안에서 제일가는 최상위 포식자다. 원래는 포동포동한 하급 몬스터를 먹으며 살아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던전 밖에서 어떻게 몬스터를 먹이로 줄 수 있겠는가. 물론 던전 들어갈 때마다 사냥을 하면 되긴 하지만, 저번에 들어간 D급 던전과 달리 앞으로는 공대 인원이 모여 싸우느라 바쁠 텐데, 고작 소환수에게 줄 먹이 사냥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서 소환수를 키우는 헌터들이 몬스터를 대신해서 먹이로 삼는 게 바로 몬스터를 죽이고 얻을 수 있는 정수, 마수석이었다.

    문제는 용식이의 등급이 높다 보니 낮은 급의 마수석은 성에 차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분명 A급 이상의 마수석만 먹으려고 할 텐데. A급 이상의 마수석은 당연히 가격이 높을 것이다.

    당장 지불할 돈도 없는데 선뜻 달라고 할 염치가 내게는 없었다. 그래도 배가 고플 용식이를 위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혹시 A급 이상의 마수석을 구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먹이도 필요하겠군요.”

    용식이는 이제 내 품에서 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막 부화한 후에 소환수 등록을 하자마자 브레스까지 대차게 뿜어 댔으니 이제 지칠 만도 했다. 박윤성은 이해했다는 듯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준비해 놓겠습니다.”

    “네, 그리고 그…….”

    사이즈는 작더라도 용식이 전용 우리에 특수 처리된 물건들, 그리고 A급 이상의 마수석까지. 솔직히 가격이 얼마나 될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비용은 전부…… 가불로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은 돈이 없었다. 빈털터리에 가깝다 보니 이런 말 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그러자 예상대로 박윤성의 얼굴이 설핏 굳어졌다.

    “한이진 능력자.”

    “네…….”

    꿀꺽, 침을 삼키며 박윤성을 쳐다봤다. 얼굴이 조금 굳어 있긴 했지만 화가 난 기색은 아니었다. 뭔가, 어이가 없다거나 황당한 표정에 더 가까웠다.

    “용…… 소환수에 대한 비용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장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주세요. 무려 전설급 용종이니까요. 길드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아…….”

    박윤성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투자.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고개를 내려 고롱거리는 용식이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작은 몸으로도 S급 헌터를 격퇴한 아이였다. 성체가 된다면 더욱 강해지겠지. 확실히 오딘 길드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터였다.

    “그럼 감사하게 받을게요.”

    “네, 그리고…….”

    “……?

    나를 향하던 시선이 용식이에게 머물다가 떨어졌다. 박윤성이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이진 능력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셔야 할 것 같군요.”

    “위치요?”

    의아하게 되묻자 박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이진 능력자의 스킬은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길드들이 탐낼 만한 능력입니다. 또한, 전설급 용종을 부화시켜 무사히 소환수로 삼기도 하셨고요. 지금까지 전설급 용종을 길들인 헌터는 없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도 강유현이 최초로 S급 용종을 소환수로 등록했다고 화제가 되긴 했었지. 거기에 나온 용은 부화하자마자 성체였지만, 우리 용식이는…….

    “뀨우…….”

    “…….”

    아무래도 이런 미니미한 모습이라 자각이 덜 되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프다는 듯 칭얼거리는 용식이를 다독이며 박윤성을 마주 보았다.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씩 웃은 박윤성이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는 여러모로 저희에게 더 의지해 주었으면 하는군요.”

    “네…….”

    “한이진 능력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빈말로 느낄 수도 있는 말이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든, 요지는 그거다. 좀 더 당당하게 굴어도 괜찮다는 거겠지.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용식이를 꽉 끌어안았다.

    “숙소 준비가 끝났는데 슬슬 이동하실까요?”

    “아, 네.”

    “배고프시겠지만 조금 참아 주십시오. 식사는 그쪽에 준비해 놨으니까요.”

    “네, 괜찮습니다.”

    아직 그다지 배가 고프진 않아서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자 박윤성은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듯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서두르죠. 이제 더는 말릴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요.”

    “네?”

    영문 모를 말을 내뱉은 박윤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씩 웃었다. 그 미소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뚝뚝 떨어져서 짐짓 걱정될 정도였다.

    “어서 가죠.”

    재촉 아닌 재촉을 받으며 하룻밤 머무른 안전 가옥을 떠났다. 밖에 나가자마자 보인 고급 세단을 타고 이동했다. 널찍한 차 안은 용식이가 마음껏 뒹굴어도 될 정도로 넓었다. 그러나 아직도 기운이 없는 용식이는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뉘고 잠들었을 뿐이었다.

    몰랐는데, 내가 탄 차의 앞뒤로 똑같은 차들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지나치는 풍경이 신기해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알게 되었다. 갑자기 영화에서나 보는 VIP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미묘했다.

    차는 외곽에서 도심으로 이동했다. 어젯밤을 보낸 안전 가옥은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지금 오딘 길드 본사로 가고 있는 거였다.

    “도착했습니다.”

    “우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감탄이 흘러나왔다. 로키 길드도 제법 건물이 봐 줄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오딘 길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크기의 건물을 올려보다가 목이 꺾이는 줄 알았다.

    “들어가시죠.”

    “아, 네.”

    박윤성과 이든이 양옆에 서고, 능력자로 보이는 보디가드들이 주위를 빈틈없이 감쌌다. 고작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향하는데 상당히 과한 호위였다.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오딘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는 사람들을 물렸는지 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다.

    과연 오딘 길드의 숙소는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대한민국 1위 길드답게 복지가 장난 아니게 좋다는데, 당연히 나도 준 S급으로 대우해 준다고 했으니 좋은 곳에 지내게 해 주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박윤성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걸음을 옮길수록 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기…… 이거 포털 아닌가요?”

    “맞습니다.”

    길드원 숙소로 가는 줄 알았는데,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들어간 방 안에는 일렁이는 워프 포털이 푸른빛을 뿌리고 있었다.

    잠깐만, 가만있어 봐…….

    이거 소설에서 읽은 것 같단 말이야. 오딘 길드 안에 극소수만 들어갈 수 있는 워프 포털을 만들어 아공간으로 이동하는 숙소……. 그거 길마랑 주인공이 쓰는 숙소 아니야?

    경악한 얼굴로 박윤성을 돌아보았다.

    “아니, 숙소로 가는데 왜 포털을……?”

    그러자 박윤성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날 마주 보았다.

    “당연히 지내실 숙소가 포털 안에 있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흥분하려던 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응, 그래. 설마 포털이 있다고 다 주인공 숙소와 연결되어 있진 않겠지. 아무래도 날 철저히 지킬 생각에 아공간을 하나 더 만들었나 보다. 나는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 일단 들어갈게요.”

    우선은 확인이나 해 보자는 심정으로 박윤성의 뒤를 따라 워프 포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자 전에 한번 느꼈던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몸을 조금 비틀거렸다.

    “으윽.”

    하여간, 왜 이렇게 멀미를 잘 느끼는 거야. 눈살을 찌푸리자마자 누군가가 내 몸을 붙잡았다. 아마 먼저 들어간 박윤성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아, 감사…….”

    “늦었어.”

    “……!”

    주인공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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