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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31)화 (31/228)
  • 31화

    “뭐……?”

    이든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눈을 찌푸렸다.

    “무슨 말 하는 거야?”

    “유기하는 건 나쁜 거야.”

    “뭐라는 거야, 진짜.”

    아니, 내가 언제 개를 주웠다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든의 말에 어이가 없어진 나는 어깨를 잡고 있는 이든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둥글게 휘어진 눈이 어딘가 섬뜩해서 멈칫했다.

    내가 방금 개는 아니고 사람을 한 명 탈출시키긴 했는데…….

    이 자식, 설마?

    “네가 날 주웠으니 이제 책임져야지.”

    “헐.”

    이거 완전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심산이었다.

    물론 이든이 나 때문에 고초를 겪은 건 미안한 일이지만, 대신 감방 갈 거 구해 주지 않았는가. 거기다 지금은 나도 내 한 몸 건사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야, 나도 지금 내 코가 석 자거든? 이만 서로 갈 길 가자.”

    냉정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대로 오딘 길드에 이든을 데려가 봤자, 오히려 그게 이든에게 더 좋지 않은 일이 될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냉정하게 말했건만, 그다지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이든은 마치 떼를 부리는 아이처럼 나불대기 시작했다.

    “싫어, 난 너랑 있을래. 어디에도 안 가.”

    “하아, 아니…… 너 이러면 감옥 가야 한다니까?”

    “감옥 안 가면 되지.”

    “아오, 진짜!”

    그게 됐으면 내가 혼자 몰래 널 구하러 갔겠냐!

    답답한 마음에 손으로 가슴을 팡팡 내리쳤을 때였다.

    끼기기기기긱!

    매끈한 중형 세단이 좁은 골목길 안을 거칠게 들어왔다. 새카만 몸체는 코팅을 했는지 반질반질했다. 유리창은 죄다 짙은 색으로 선팅을 해 놔서 안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 앞에 멈춘 차를 긴장한 눈으로 쳐다봤다. 여차하면 바로 도망칠 생각으로 어깨 위에 있는 이든의 팔을 꽉 잡았다. 이윽고 뒷좌석의 문이 열렸다.

    탁.

    무뚝뚝한 인상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 당신…….”

    어젯밤, 박윤성의 명령으로 나를 안전 가옥에 데려다 주었던 사람이었다. 이름이…… 연승원이었나. 거의 박윤성의 비서처럼 굴던데.

    “한이진 능력자님.”

    “아니,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길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소름이 쫙 끼쳤다. 저 번쩍번쩍한 중형 세단은 마치 처음부터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곧장 찾아왔다. 건물 위에서 눈대중으로 대충 본 외진 골목길인데 말이다.

    모르는 사이에 위치 추적 장치라도 달아 놓은 건가? 불신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연승원의 눈이 옆에 있는 이든을 향했다.

    “그리고 손님도 함께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

    그 말에 나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근처 CCTV라도 보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자 연승원이 의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한이진 능력자님?”

    “아.”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에 민망해진 나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정말이지, 나도 어지간히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오딘 길드의 정보력을 얕봐서는 안 되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빨리 찾아내다니. 짧은 일탈 후 집으로 돌아가는 불량 청소년의 기분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흠흠, 가죠.”

    “누구야?”

    경계하는 이든을 측은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게 보내 줄 때 냉큼 갈 것이지.

    “나 이제 오딘 길드 들어간다고 했잖아. 그쪽 사람.”

    “흐음.”

    이든의 눈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연승원을 쭉 훑었다.

    연승원은 비전투원이라 그런지 소설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았다. 박윤성이 비서들에게 뭔가 지시하면 네, 네,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연승원을 비딱하게 보는 이든의 눈빛이 뭔가 불안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라도 걸면 말리기가 난감해진다. 박윤성도 참, 내가 이든 녀석과 있다는 걸 알았으면 보디가드라도 한 명 붙여서 보낼 법도 한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한숨을 내쉬며 이든의 팔을 잡아끌었다.

    “야, 괜히 시비 털지 말고 너도 가자.”

    “나도…… 같이?”

    “응.”

    그러자 뭐에 또 기분이 좋아진 건지 이든이 실실 웃었다. 내 어깨를 와락 끌어안은 이든이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알았어. 당연히 주인님 따라가야지.”

    “아오, 진짜.”

    아무래도 저 이상한 주인님 놀이에 꽂힌 것 같은데.

    뭐, 아직 정신이 온전치 않을 테니 좀 봐줄까. 난 이든을 어깨에 매단 채 연승원이 문을 열어 준 차 안에 탔다.

    ***

    몇 시간 만에 돌아온 오딘 길드의 안전 가옥은 제법 싸늘한 기운이 풍겼다. 지금은 추운 날씨가 아니니까 단순히 방 안의 온도가 내려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박윤성이 평소와 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오셨군요.”

    “아…… 네.”

    마치 벌을 받는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이상하게도 박윤성에게는 교육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졸업하고 10년 넘게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 본 적도 없는데, 그의 앞에서는 어린 학생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야?”

    “하, 좀 닥쳐라…….”

    마주치는 사람마다 앵무새처럼 누구냐고 묻는 이든이 이젠 좀 짜증 났다. 작게 이를 갈며 속삭이듯이 말하자 이든의 눈썹이 아래로 축 처졌다. 왜 갑자기 불쌍한 척이람.

    “일행이 늘어나셨네요. 한이진 능력자.”

    “하, 하하…….”

    박윤성의 눈이 내 옆에 있는 이든과 용식이를 쭉 훑었다. 이든을 볼 때는 의외로 무심하던 눈이 용식이를 볼 땐 조금 놀란 듯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그 드래곤은……?”

    “아.”

    “꺄우!”

    용식이가 잘 보이도록 번쩍 들어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용식이는 놀아 주는 줄 알고 경쾌한 소리를 내다가, 박윤성을 보고 금방 이를 드러냈다.

    “크르릉…….”

    “워워, 착하지. 우리 용식이.”

    “……용식이?”

    왜인지 박윤성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러나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뿌듯한 얼굴로 물었다.

    “얘 이름이에요. 귀엽죠?”

    “……귀여워요? 이름이?”

    “뭐, 이름이랑 생긴 거 둘 다?”

    “음…….”

    박윤성이 난감한 얼굴로 용식이를 바라보았다. 용식이는 낯선 사람이 자신을 관찰하자 불쾌한 듯 계속 으르렁거렸다. 달래듯이 머리를 쓰다듬자 가시가 돋친 거친 비늘이 손끝에 만져져서 좀 아팠다.

    “그렇군요. 귀엽……군요.”

    “그렇죠?”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 박윤성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용식이가 귀엽다는 말에 신이 난 나는 줄줄 말을 내뱉었다.

    “저번에 강유현이랑 클리어 한 SS급 던전에서 보상으로 알을 받았는데, 방금 막 부화시켰거든요.”

    “그렇군요.”

    “아까 좀 위험했는데 얘 덕분에 무사했다니까요. 독 브레스가 어찌나 무시무시하던지.”

    “아하.”

    아차, 박윤성이 너무 맞장구를 잘 쳐 줘서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한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용식이를 다시 발치에 내려놓았다.

    “일단 두 분 여기 앉으시죠.”

    “아, 네.”

    자리를 권하는 박윤성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는 이든의 허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자리에 앉았다.

    “우선 말도 없이 이곳을 나가셨던 것 말입니다만.”

    “아, 죄송합니다. 그게…….”

    변명하려는 나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린 박윤성이 옆에 있는 이든을 흘끗거리며 말했다.

    “이유는 파악했습니다. 다만…….”

    “다만?”

    “제가 알고 싶은 건 이곳을 빠져나간 방법입니다.”

    “아…….”

    이곳, 오딘 길드의 안전 가옥은 수많은 능력자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특히 기자 회견 이후 따라붙을 파파라치나 다른 길드의 염탐꾼들을 고려해서 박윤성은 하룻밤 자는 것뿐인데도 경비에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그런 곳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은신 스킬이 없으면 SS급인 강유현이라도 힘들 것이다. 박윤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저희에게 숨기고 있는 스킬이 있으십니까?”

    “음, 그게…….”

    “물론, 아무리 계약 관계라고는 하나 스킬을 모두 알릴 의무는 없으십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의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언질은 주셨으면 합니다.”

    “음…….”

    내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안전 가옥을 나갈 수 있었던 건, 심단테에게 받은 일회용 아이템 덕분이었다. 혹시 모를 도주 수단으로 핸드폰을 받을 때 몇 개 받아 놨었는데, 그걸 이번에 쓴 것이다. A급 이동 아이템, 좌표까지 세세하게 지정할 수 있어서 무척 편리했다.

    근데 이걸 박윤성에게 말하게 되면 내가 심단테와 협력 관계라는 것도 알려야 하겠지.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심단테에 대해 말하는 건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개인적으로 박윤성을 믿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일단, 스킬 같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박윤성은 여전히 온화한 어조로 물었다.

    “말씀하시기 곤란한가요?”

    “네, 좀…….”

    “흠…….”

    박윤성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한이진 능력자의 안전 때문에 물어본 것이니 불쾌해하진 마십시오.”

    “아뇨.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죠.”

    고개를 휘휘 내젓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박윤성은 아이템에 대해 더는 캐묻지 않고 이든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한이진 능력자가 돌발 행동을 한 건 당신 때문이군요.”

    “…….”

    “반갑습니다. 이든 능력자. 저는 오딘 길드의 마스터 박윤성입니다.”

    와, 역시 이든이 누군지도 다 알고 있구나. 이든은 한이진보다 더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빌런 짓을 했었는데.

    바람 능력자라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박윤성은 그런 이든을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이든의 굵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어쩌라고?”

    “…….”

    이 싸가지를 어쩌면 좋을까, 정말.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박윤성마저 설핏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하, 길마님. 그게…….”

    “이진아, 아파.”

    “좀 즈응히 해라.”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이든의 허리를 팔꿈치로 계속 찌르면서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나 이 변태 새끼는 아프다고 하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 망할.

    “그게, 얘가 이렇게 보여도 나쁜 놈은 아니거든요? 사정이 저랑 비슷해서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처벌은 어떻게 좀…… 선처를…….”

    그래도 사람은 살려야겠다 싶어서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박윤성은 그런 나를 보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저, 정말요?”

    “한이진 능력자의 안전을 지킬 능력자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같은 길드 출신이니 한이진 능력자도 곁에 두기 마음 편할 테고요. 다만…….”

    나와 이든을 바라보는 박윤성의 눈이 조금 오묘해졌다.

    “조사했던 것보다 두 분의 사이가 각별해 보이는 건 조금 의외군요.”

    “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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