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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9)화 (29/228)

29화

“으…….”

"야, 이든!"

상처로 가득한 얼굴이 찌푸려졌다. 재차 이름을 부르자 분홍빛이 감도는 검은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신지 파르르 떨리던 눈이 나를 발견하고 조금 커졌다.

“……한이진?”

“어, 그래.”

다행히 정신을 차렸는지 이든이 나를 알아보며 입을 열었다.

“꿈인가?”

“…….”

아니, 역시 아직 제정신이 아닌가. 속으로 혀를 차며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 창을 흘끗거렸다.

「부화기 사용 중. 남은 시간 19분 57초.」

“음.”

기다리기는 좀 애매한 시간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든을 일으켜 세웠다.

“일단 빨리 여기서 나가자. 여기 있으면 안 돼.”

“뭐?”

곧 협회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이 숨겨져 있는 방의 존재도 알게 될 것이다. 그전에 이든을 빼돌려야 했다. 안 그러면 장태산의 수족인 이든도 잡혀가고 말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장태산 그 새끼 협회랑 경찰들이 잡아갔어. 우리도 빨리 나가야 해.”

“자, 잠깐. 그게 대체…… 윽.”

“야, 정신 차려.”

뺨이라도 몇 대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하고 싶지만 상처가 가득한 얼굴은 도무지 때릴 데가 없었다. A급 헌터의 몸이라면 이런 상처쯤 순식간에 치유될 테지만, 지금은 봉인 아이템으로 일반인에 가까운 몸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심단테에게 부화기랑 같이 해제 아이템이라도 받아 놨어야 했는데.

“어쨌든 빨리 나가자. 네 계약서는 어디 있어?”

“…….”

“이든?”

대답이 없는 이든을 의아하게 내려다봤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이든은 뜻 모를 말들을 중얼거렸다.

“안 돼. 나는……, 여기서 나가면…… 안…….”

“뭐라고?”

잘 들리지 않아 되묻자 이든은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 장태산 이 개새끼. 애한테 PTSD 오게 만들었네. 망할, 진짜.

하는 수 없이 이든을 억지로 일으키는 건 포기하고 방 안을 뒤졌다. 소설에서는 장태산이 이 체벌 방처럼 숨겨 놓은 장소들이 몇 있는데, 거기에 뒤가 구린 것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묘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 인벤토리는 저장할 수 있는 물건이 한정적이다 보니 고전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숨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이 수상해 보이는 금고처럼.

“뭐, 설마 이런 데 두진 않았겠지만.”

이렇게 떡하니 가져가라는 듯이 둘 리가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일단 발견했으니 금고 문을 열어 보았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구조인 것 같은데, 나는 그냥 힘으로 열었다. 놀랍게도 종이 인형 한이진의 힘으로도 끼긱거리며 금고 문이 열렸다.

“오.”

작게 감탄하며 금고 안으로 손을 뻗었다. 돈이라도 넣어 뒀나? 손에 잡힌 게 바스락거리는 종이라서 진짜 돈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어라?”

찾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 물건을 쉽게 찾아 버렸을 때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고위급 헌터들의 계약서가 정말 금고 안에 들어 있었다. 이렇게 허술하게 보관해도 되는 건가. 계약서를 대충 확인하니, 세 번째 장에는 이든의 이름도 보였다.

“아니, 근데…….”

왜 계약서가 금고 밖으로 안 나오지? 낑낑거리며 붙잡고 있다가 포기하고 계약서를 열람했다. 그러자 시스템 창이 조그맣게 떴다.

「이동 불가 스킬로 인해 해당 아이템은 습득이 불가합니다. 등급: ??」

“뭐야?”

왜 이렇게 허술하게 뒀나 했더니 이동 불가 스킬이 걸려 있었다. 그것도 한이진의 등급으로는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최소 A급 이상이었다.

아, 진짜 짜증 나네. 그냥 몰래 오지 말고 오딘 길드에 호위를 부탁할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금고 문을 열어 놓은 채 몸을 돌렸다. 아직도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든이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든은 내부 고발자인 나와 달리 잡혀가면 장태산과 연루되어 처벌을 받을 터였다. 아무리 오딘 길드라고 할지라도 범죄자를 어떻게 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나 때문에 소설과 달리 이든이 로키 길드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원래 내부 고발자의 역할은 이든이 해야 하는 거였다. 어찌 보면 내가 이든이 해야 할 일을 빼앗은 격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몰래 올 수밖에 없었다. 이든을 구해 내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만큼은 오딘 길드의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었다.

“이든, 시간이 없어. 빨리 일어나!”

심단테에게 받은 아이템으로 몰래 안전 가옥을 빠져나온 나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든을 내보내고 바로 돌아가도 들킬까 말까인데,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이든의 계약서는 나중에 어떻게든 하고, 지금은 우선 이든을 데리고 나가야 했다.

“끄응.”

“으…….”

문제는 한이진의 몸이 덩치만 평균치이고 종이 인형이라는 데에 있다. 물론 얼마 전에 레벨 업을 많이 해서 좀 업그레이드 된 종이 인형이긴 한데, 그래 봤자 종이 인형이 종이 인형이지, 시발.

거기다 이든은 한이진과 체격은 비슷하면서, 무슨 돌로 만든 것처럼 몸이 더럽게 무거웠다.

“아, 진짜…… 너 적당히 좀……!”

“……으.”

이든의 눈은 잔뜩 풀려 있었다. 내가 아닌 먼 어딘가를 보는 듯이 시선이 멍했다. 아까보다 더 나빠진 듯한 몸 상태에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장태산이 약이라도 먹였나?

“……어머니…….”

“……!”

풀린 동공으로 이든이 누군가를 불렀다.

이든의 어머니. 이은수.

한이진의 동생이 볼모로 붙잡혀 있었던 것처럼, 이든 역시 어머니가 장태산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었다. 소설에서 비중이 적은 한이진보다 이든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었기에, 나 역시 그 사정을 알고 있었다.

장태산은 각성하기 전에 조폭 일을 하던 놈이었다. 이든의 어머니인 이은수는 장태산이 관리하던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이든을 임신했고, 조폭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이든은 그렇게 조폭 밑에서 자라났다. 반항하면 어머니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각성하고 난 후에도 개처럼 장태산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런 이든이 길마 몰래 날 도운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세상이 어느 정도 소설의 이야기와 같다면, 이든의 어머니는 이미…….

“아저씨, 잘못했어요. 제가 벌 받을 테니, 어머니는, 제발…….”

“……이든!”

이든의 학대는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이루어졌다. 평소의 실실거리며 웃는 얼굴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지만, 속은 썩어 있었겠지.

시발, 장태산 개새끼. 감옥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시원찮을 놈 같으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계속 헛소리를 웅얼거리는 이든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살짝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든, 너도 이미 알고 있었잖아.”

“윽…….”

“네 어머니는…….”

이 역할을 하는 건 원래 내가 아니다. 소설에서는 강유현 쪽 히로인 포지션 여캐가 했었다.

각성 전 이든의 어머니와 인연이 있었던 그녀는 줄곧 이든을 찾아다녔다. 어머니의 유언을 이든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장태산은 이든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 어머니의 죽음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었다.

가까스로 그 아들이 이든이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이든이 로키 길드를 배신하고 선한 길을 가도록 이끌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얼마 안 되는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그러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기만임이 분명하다. 원래 이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네 어머니는 돌아가셨어.”

“아…….”

“그리고 그분은 네가 자유롭게 살길 바라셨어.”

이든의 어머니가 남긴 유언은 딱 한 마디. 제 아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는 거였다. 아들에게 짐이 된 자신을 평생 원망하며 살던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흐릿하던 이든의 눈에 점점 초점이 돌아왔다.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이든과 눈을 마주쳤다.

“……이든?”

“한, 이진…….”

“그래, 나야.”

느릿하게 눈을 깜박인 이든이 고개를 숙였다. 하아, 얕은 한숨을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맞아. 나도…… 알고 있었어.”

“…….”

“그래도 모르는 척……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하면…… 어머니가 계속 살아 있는 것 같았어.”

이든은 항상 불안해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생이 붙잡혀 있는 한이진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감시 역을 하면서도 내내 불안을 표출했다.

나가지 마. 나가면 안 돼. 그건 아마 이든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나가도 돼.”

“…….”

“나랑 같이 나가자. 이든.”

고개를 든 이든이 입술을 달싹였을 때였다.

쾅!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거칠게 열린 문짝이 뜯어져 저 멀리 날아갔다.

“……!”

“이런 곳에 있었나.”

날카로운 눈이 나를 향했다. 로키 길드의 S급 헌터, 백시후였다. 나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장태산과 함께 구속된 게 아니었나? 비록 그의 정체가 주변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해도, 로키 길드에서 제일 강한 헌터인 백시후를 협회가 가만히 둘 리가 없었을 텐데.

“네가 여긴 왜…… 큭……!”

“잘도 시답잖은 짓을 했군.”

순식간에 다가온 백시후가 내 목을 한 손으로 틀어쥐었다. 예상치 못한 일인 데다 S급인 그를 막을 힘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신음을 흘리며 펼쳐 놓은 시스템 창을 흘끗거렸다.

「부화기 사용 중. 남은 시간 3분 51초.」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 나는 백시후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윽, 라우페이 길마가…… 이미 눈치챈 건가?”

“뭐?”

백시후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여자보다 아름다운 얼굴이 나에 대한 흥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사실 라우페이 길드 마스터의 심복이다. 그 정체는 본래 소설 중반에서 이든이 로키 길드를 배신했을 때 드러난다. 장태산이 망하고 로키 길드가 무너질 때, 백시후는 협회의 추격을 따돌리고 라우페이 길드로 돌아갔었다.

“멍청하게 굴더니 다 연기였던 건가? 놀랍군. 한이진.”

“윽……!”

“너는 전리품으로 길마께 데려가야겠다.”

“누구…… 맘대로!”

인벤토리에서 꺼낸 총을 겨눴다. 그러나 총을 쏘기 전에 몸이 뒤집혔다. 백시후는 한 손으로 내 목을 잡고 들어 올린 후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큭, 컥……!”

그 충격으로 손에서 튕겨 나간 총이 바닥을 굴렀다.

퍽, 백시후의 발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꼼짝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긴, 너는 항상 반항적이었지. 번거롭게도.”

“헉, 이, 개, 새끼…….”

“이번엔 오딘 길드로 가 강유현 놈에게 빌붙을 생각이었나?”

비스듬히 나를 내려다보는 백시후의 눈이 번들거렸다. 주인공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백시후는 강유현이라면 치를 떨었다. 둘이 싸우는 에피소드에서는 항상 주변이 초토화되곤 했었다. 발에 밟혀 바둥거리는 나를 백시후가 차디찬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다리 하나쯤 자르면 그런 생각은 안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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