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8)화 (28/228)

28화

6.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맙시다

장태산은 요즘 유달리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까지 거슬렸던 문제가 해결되어 더욱 그랬다. 그는 앓던 이가 빠진 사람처럼 허허 웃으며 시도 때도 없이 기분 좋은 티를 내곤 했다.

장태산에겐 다루기 힘든 부하가 한 명 있었다. 능력은 쓸 만한데 성격이 지랄 맞아서 도통 말을 잘 듣질 않는 부하였다. 등급은 낮지만 귀한 정신계 능력자라 오냐오냐해 주었더니 끝을 모르고 기어오르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비로소 그 높은 콧대를 확 짓눌러 주었던 것이다. 어차피 그의 밑에 있는 수많은 부하처럼, 그 역시 결국은 장태산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이진. 부모는 게이트 사고에 휘말려 죽고, 한이진과 몸이 약한 어린 동생만 남았다.

그러나 직후 동생이 이름 모를 희귀병으로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뇌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이 원인 모를 희귀병은 게이트 사태 이후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의료계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도 한이진은 하나뿐인 가족을 살려야 했기에 끊임없이 동생을 위해 방도를 찾아보았다. 그도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돈이 필요했다. 희귀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각성한 한이진의 능력은 너무나 어중간했다. 정신계 능력자가 귀하긴 했지만 여기저기서 원할 만큼 등급이 높진 않았다. 결국 그는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길드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장태산은 동생을 지원해 준다는 조건으로 한이진의 목줄을 틀어쥘 수 있었다. 그의 능력은 장태산의 일을 만족스럽게 도왔다. 처음엔 좀 어수룩했으나 똑똑한 한이진은 날이 갈수록 일 처리가 깔끔해졌다.

하지만 동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듯 굴었던 한이진이 머리가 굵어지더니, 어느 날부터 슬슬 반항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소했다.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하는 어린아이처럼 툴툴대는 정도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태도도 상당히 안 좋아져서 못 볼 꼴 다 겪은 길드원들조차 한이진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곤 했다.

그래도 장태산은 한이진을 한 번도 나무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달래 주려고 애썼다. 한이진보다 높은 등급의 정신계 능력자가 길드에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니 최대한 기분을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장태산의 인내심이 끊어진 건, 한이진이 소재를 감춘 동생을 찾으려 하고 도주 계획까지 세웠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때도 한이진을 크게 압박하지 못했다. 그저 임무가 아니면 방 안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감시자를 붙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나자, 장태산은 참지 못하고 한이진을 불러 협박했다. 동생이 자기 손아귀 안에 있으니 자꾸 헛짓거리하지 말라고 으름장도 놓았다. 그때 지었던 한이진의 표정이란. 장태산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했다.

진작 이렇게 해야 했는데 너무 봐준 것 같았다. 기껏 구한 귀한 정신계 능력자라고 대우해 줬더니 끝도 모르고 기어오르지 않았는가. 이젠 봐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할 때쯤, 장태산은 태블릿을 보며 기겁했다.

[로키 길드의 한이진 능력자입니다.]

“뭐? 뭐라고?”

강유현의 기자 회견 중계를 심드렁한 얼굴로 보고 있던 장태산이 좌석에 기댄 몸을 황급히 일으켰다. 그는 강유현이 SS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대대적인 기자 회견을 연다는 소식에도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라우페이 길드장 놈이 또 지랄을 떨어 대서 적당히 방해하라고 기자 회견장에 한이진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화면에 얼굴을 비추자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유현의 옆에 앉아 긴장한 티를 내며 대답하는 사람은 분명 한이진이었다. 기자 회견을 방해하라고 보냈더니 옆자리에 떡하니 앉아 같이 인터뷰를 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에게는 S급 보조 스킬이 있습니다. 대상자의 능력치를 증폭시켜 주죠.]

“……!”

거듭되는 충격적인 말에 장태산은 신음도 내지르지 못했다. 그러다 회견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강유현과 한이진을 보고 나서야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 자식이…… 감히 나를 속여?”

분노한 목소리가 고급 외제차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바쁜 일정 때문에 차 안에서 기자 회견 방송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한이진이 강유현과 함께 SS급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건 둘째로 치고, 그가 자신에게 S급 보조 스킬을 숨겼다는 게 더 괘씸했다.

정신계 스킬에다 S급 보조 스킬. 그것도 상대방의 스탯을 한계치 이상으로 높여 주는, 여태껏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귀한 스킬이었다. 이걸 지금까지 자신에게 감쪽같이 숨겼다니. 장태산의 꽉 다문 입이 부르르 떨렸다.

“저, 저어, 마스터.”

“뭐야?”

앞 좌석에 앉은 비서의 목소리에 장태산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태블릿을 보느라 끼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거칠게 빼낸 장태산이 핸드폰을 귓가에 댄 채 안절부절못하는 비서를 노려보았다.

“빨리 길드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도 미팅이 있어 가는 길이었는데, 황당한 말이나 하는 비서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물론 정상적인 미팅이 아니고 협회 윗대가리에게 부정 청탁을 하려는 지저분한 술자리에 불과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길드에 경찰과 협회 사람들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뭐라고?”

애써 침착하게 대답한 비서를 보며 장태산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비서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장태산을 돌아보느라 잠깐 떼어 놓은 핸드폰에서 길드원의 당황한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왔다.

그 길로 방향을 틀어 장태산은 길드로 돌아갔다. 로키 길드의 거처는 다른 길드들이 그렇듯 도심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빌딩이었다. 지나가면서 보면 일반적인 회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평범한 건물 앞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심상치 않은 풍경에 장태산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길드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의 앞을 사람들이 막았다.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장태산 마스터.”

“뭐? 너 누구야?”

불쾌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는 장태산을 내려다보며 남자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특수 능력자 전담 수사반 이도원 경위입니다. 당신을 살해 교사 및 납치 지시 혐의로 체포합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발작하는 듯이 소리 지르는 장태산을 아랑곳하지 않고 영장을 들이민 형사는 제 할 말만 했다. 고저 없는 억양이 미란다 원칙을 술술 읊었으며, 그에게 사람들이 더 다가왔다.

장태산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둘러싼 경찰들 모두 능력자였다. 능력자 전담반이기 때문에 형사들도 모두 등급이 높은 자들 뿐이었다. S급이면서도 변변찮은 공격 스킬 하나 없는 장태산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상대들이었다.

“야,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때문에 그는 고전적인 말이나 지껄이며 드잡이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그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길드원들도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했다.

노기를 품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곧 특수 처리된 경찰차 안으로 사라졌다.

***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맙시다.’

장태산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장태산이 꼼짝없이 붙잡혀 경찰차에 올라타 모습이 사라지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원하긴 한데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되니 조금은 찝찝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걸로 한이진의 첫 번째 데드 플래그는 무너트린 거나 다름없었다. 원래 한이진은 로키 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빌런 짓을 억지로 해야 했으니까. 적어도 빌런 짓을 하다가 강유현에게 맞아 죽는 미래는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흠.”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있는 사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나도 이제 슬슬 짐을 챙기고 나가야 했다. 경찰과 협회 사람들이 탈탈 털기 전에 빨리 물건들을 확보해야 한다.

우선 한이진의 방으로 갔다. 다행히 길드원들은 패닉에 빠져서 주변을 잘 보지도 못했다. 아마 곧 건물 자체가 통제되어 이들도 연행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무심히 지나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은 태블릿 챙기고…….”

한이진의 동생에게 줄 태블릿들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고, 평소 눈여겨봤던 것들도 남김없이 탈탈 털어 넣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꽤 빨리 짐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곧장 위로 올라갔다. 이번 목표는 장태산의 방이었다. 심단테가 닦달한 QE…… 어쩌구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이크.”

벌써부터 장태산의 방 앞에는 경찰과 협회 관계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저곳에서 온갖 증거들이 무더기로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겠지.

복도 끝에서 침착하게 사람들의 모습을 훑고, 스킬을 써서 대충 그들과 비슷한 옷차림으로 위장했다. 등급이 높은 능력자들은 장태산을 제압하려 죄다 밑에 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는 일반인이나 사무직을 하는 낮은 등급의 능력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거긴 아직 손대지 마세요.”

“아, 네.”

예상대로 나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 짐짓 주의를 주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큰 박스 안에 다른 사람들이 빼놓은 문서들을 적당히 넣었다. 그리고 들키지 않게 눈만 굴려 기계의 위치를 찾았다.

‘저기 있다.’

그 흉물스러운 기계는 마치 안마 의자처럼 장태산의 방 안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사람들도 증거로 수집될 문서나 usb 따위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슬금슬금 다가간 나는 티 나지 않게 기계를 얼른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부피가 커도 손만 대면 저절로 소리 없이 들어가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걸로 미션을 클리어한 나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쳤다. 이제 남은 건 한 군데뿐이었다.

장태산의 방을 빠져나가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걸어가던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졌다.

로키 길드의 최상층 구석에 있는 끝 방. 그곳은 A급 이상의 고능력자들을 가둬 놓는 곳이었다.

일명 체벌 방. 소설을 읽을 때에도 악취미다 싶었던 짓거리였다. 나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언뜻 평범해 보이는 방의 문을 확 열었다.

「길드 전용 결계. A급 이상 해지 가능.」

“끙.”

역시 길드원이라고 개나 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구나.

그러다 또다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패스워드 입력 시 통과 가능합니다.」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장태산이 체벌 방에 들어갈 때 입력했던 패스워드가 분명…….

“XOTKS”

「결계가 해제되었습니다.」

“…….”

‘태산’을 영어 키보드로 바꾼 간단한 패스워드였다. 소설이었으니 이런 허술한 패스워드가 가능하지, 실제로는 해커들에게 여러 번 뚫렸을 것 같은 패스워드다.

고개를 내저으며 체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곧 방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분홍색 머리가 보였다.

“이든!”

여전히 능력 제어 아이템으로 손이 묶인 이든이 정신을 잃은 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