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7)화 (27/228)

27화

“저는 성윤재의 동생, 성유빈입니다.”

“…….”

침착하게 입을 연 성유빈의 시선은 오로지 강유현을 향해 있었다. 강유현의 옆에 매달려 있는 난 아주 병풍 취급이었다.

그러나 그 취급이 결코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아주 기꺼웠다. 슬슬 방해꾼은 이만 사라지고 젊은 사람들끼리 대화를…….

대화를…….

“윽…….”

시발.

내 몸은 그야말로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리는 나를 강유현은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결국 바둥거리는 것을 멈추었더니 둘의 대화 소리가 바로 앞에서 이어졌다.

“저한테 할 말 없습니까. 강유현 능력자.”

“없습니다만.”

“…….”

싸늘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S급 이상인 능력자들의 인내심이 얼마나 짧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시스템은 이들에게 강대한 힘을 주었고, 또한 개같은 성질머리를 주었지. 겉으로 보기엔 잠잠한 것 같은 사이코 새끼들은 사실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할 말이…… 없다고요.”

성유빈의 눈이 단번에 흉흉해졌다. 그녀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오빠인 성윤재가 게이트 안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자신에게 남긴 말은 없는지, 아무 사소한 얘기라도 해 준다면 더는 귀찮게 굴지 않고 돌아갈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근할 사람이 강유현에게 있어서는 수천 명이었다. 죽은 1세대 각성자들의 직계 가족만 해도 천명은 가뿐히 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유가족들의 바람을 일일이 들어주다 보면 앞으로 일어날 등급 이상 현상을 제때에 막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가 막아 내지 못한다면 1세대 각성자들의 희생보다 더 큰 참사가 일어날 테니 결정한 일이었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냥 나도 덩달아 냉정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강유현이 워낙 사이다패스 주인공이다 보니 유가족들에게 죄책감을 드러내며 질질 짜는 건 캐붕이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해서 죄를 지은 건 아니기 때문에 그의 결정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음…….’

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쏟아 낼 것 같은 성유빈의 눈을 보니 마음이 좀 약해졌다. 그래도 오빠에 대해 따뜻한 말 한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SS급이면서 혼자만 살아남은 주제에.”

“…….”

“그런데 우리에게 입에 발린 말 한마디도 하기 싫습니까?”

음, 저 말은 좀…….

성유빈이 1세대 각성자들과 게이트 안에 갇힌 강유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서 한 말이었다. 소설을 읽은 나는 내막을 잘 알지만, 그녀는 아니다.

SS급으로 각성했다고 해서 니플헤임은 결코 쉽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S급 하나 없던 나머지 1세대 각성자들이 번번이 강유현의 발목을 잡으면 잡았지, 그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역시 세간은 혼자만 살아남은 강유현을 비난했다. SS급이면서 누구 하나 지키지 못한 그를 무능력하다고 비판한 사람도 많았다. 자기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더 무능력할 게 뻔한데. 그러고선 던전 이상 현상이 생기니까 SS급인 강유현에게 매달리곤 했지. 하여간 이기적인 놈들 같으니.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끝입니까.”

“…….”

“길 막지 말고 비키시죠. 불쾌하니까.”

하여간 우리 주인공님이 말도 참 싸가지 있게 하신다니까.

근데 소설에서는 성유빈과 첫 만남에 이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좀 더 에둘러서 말하려고 하지 않았나? 지금처럼 가시 돋친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다시 소설과의 괴리감을 느낀 내가 표정을 조금 굳혔을 때쯤, 분노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강유현 능력자……!”

“……!”

성유빈의 주위로 붉은 불꽃이 넘실거렸다. 불을 다루는 그녀의 능력은 이런 곳에서 터지면 답이 없었다. 식겁한 내가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저, 저기, 성유빈 능력자님!”

“……!”

그녀의 눈이 나를 향하자 조금 크게 떠졌다. 이제야 나를 인식한 듯 불꽃을 머금은 듯한 붉은 눈이 파르르 떨렸다.

“하하, 제가 참, 성유빈 능력자님 팬이거든요.”

“아, 당신은…….”

그래도 기자 회견에서 날 보긴 한 듯 성유빈이 조금 아는 척을 했다. 당황한 건지 조금 느슨해진 강유현의 팔에서 벗어나며 성유빈에게 아주 살짝 가까이 다가갔다.

“활약하시는 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정말 멋지세요.”

“……네에.”

성유빈은 무뚝뚝한 성격이라 지나친 아부에 면역력이 별로 없었다. 굳은 얼굴에 조금 균열이 일어났다. 그래, 그렇게 날 잊지 말아 달라고. 당신들과 달리 종이 인형 같은 한이진의 B급 몸은 조금의 충격도 견디지 못할 테니까.

“등급 이상 던전도 프레이야 길드가 앞장서서 클리어하고 있죠?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살기 위해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쓸모없다고 여겼던 한이진의 패시브 스킬이 혀에 기름칠을 두둑하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성유빈은 더 능력을 쓸 생각도 못 하고 평소와 같이 차분해졌다.

가까이에서 본 성유빈의 얼굴은 정말 인형 같았다. 하긴, 외모로는 히로인들 중 탑을 찍으니 말 다 했다. 여자임에도 S급이라 그런지 피지컬이 장난 아니라 키가 거의 한이진과 비슷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바로 코앞에서 성유빈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눈앞에 둔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그런데, 당신…….”

“네?”

나를 보는 성유빈의 눈이 점점 오묘해졌다. 붉은 기가 사라지고 검게 변한 동공이 나를 응시하며 작게 수축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고양이의 눈처럼. 그 집요한 눈길에 어딘가 꺼림직함을 느꼈을 때였다.

“으악!”

단단하게 옭아매는 팔에 맥없이 뒤로 끌려가 다시 강유현의 품 안에 가둬졌다. 알싸한 머스크 향이 또다시 코를 찔렀다.

“이만 가지.”

“아, 잠깐…….”

딱딱한 목소리로 말한 강유현이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이유인지 성유빈은 그를 말리지 않고 멀뚱히 쳐다만 봤다.

뭐, 어쨌든 싸움으로 번지지 않아 다행인 건가. 속으로 하아, 한숨을 내쉬는데 주차장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된 것을 눈치챘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집.”

“누구 집?”

“…….”

네 집? 지금 네 집으로 가는 거야? 근데 난 왜 끌고 가?

황당해하는 내 앞에 매끈하게 잘 빠진 외제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강유현의 차라는 걸 알고 식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자, 잠깐, 야, 잠깐만!”

그러자 강유현은 발버둥질 치는 날 내려다보며 귀찮은 듯한 어조로 물었다.

“왜?”

“왜라니, 내가 너네 집을 왜 가?”

주인공의 집이라니, 부담스럽다. 너무 부담스러워!

게이트 안에 갇힌 경험 때문에 자기 영역에 누가 오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놈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소설 내내 히로인들 중 누구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성역이었는데.

그러나 복잡해진 머릿속을 헤집는 건 또 따로 있었다. 강유현이 예의 그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또 도망가려고?”

“도망? 도망은 무슨, 내가 언제…….”

갔지. 도망갔었지, 강유현 앞에서 두 번이나.

한 번은 강수현 납치했을 때, 또 한 번은 던전에서.

특히 던전에서는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는 걸 놔두고 이든이랑 포털 타고 돌아갔었지. 하하, 나도 참. 왜 그랬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자 나를 잡는 손아귀 힘이 더욱 강해졌다.

“계속 그렇게 도망쳐 봐.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아니, 저기…….”

얘는 말을 왜 이렇게 무섭게 하지? 거기다 또 눈이 맛이 갔다. 왜 자꾸 눈을 그렇게 떠? 무서워 죽겠다고, 이 SS급 주인공 놈아!

“일단, 이것 좀 놓고…….”

“닥쳐.”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대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몇 번 도망갔다고 신뢰가 바닥이라서 그런가? 그래서 자기 집에 감금해 놓겠다고?

그건 좀 곤란하다. 던전 등급 이상 현상이 나아질 때쯤엔 어떻게 해서든 주인공이랑 멀어져야 한다. 안 그러면 한이진의 데드 플래그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강유현의 집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기자 회견 끝나고 해야 할 일들도 있는데…….

그러나 강유현은 여전히 날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몸이 더 밀착해 있었다. 아주 민망할 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식, 진짜 기분 안 나쁜가? 거, 거시기 닿을 것 같아. 서로의 하체가 민망하게 닿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였다.

“한이진 능력자?”

“형?”

“……!”

구세주가 등장했다. 박윤성과 강수현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강유현을 대신해서 길마인 박윤성이 뒤처리를 하다가 늦은 모양이었다.

“기, 길마님!”

“쯧.”

나는 마치 구명줄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빛내며 그를 쳐다봤다. 반면에 강유현은 작게 혀를 차며 못마땅해했다.

“여기서 뭐 하고 계셨습니까?”

“그게…….”

차마 납치 감금의 현장을 진솔하게 말하진 못하고 강유현의 눈치를 봤다. 여전히 눈을 세모로 뜬 강유현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을 때였다.

삐리릭, 하는 단조로운 벨 소리가 주차장 안을 울렸다. 박윤성이 입 모양으로 ‘잠시만요.’ 하고 핸드폰을 꺼내더니 귓가에 댔다.

“네, 알겠습니다.”

짧게 통화를 마친 박윤성이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의아한 얼굴로 마주 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장태산이 구속될 겁니다.”

“네?”

아니, 이렇게 빨리?

놀라고 있는 나를 보며 박윤성이 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계약서 쓰러 가실까요?”

“…….”

왜인지 그의 웃는 얼굴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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