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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6)화 (26/228)

26화

갑작스러운 말에 대꾸도 못 하고 얼어붙어 있자, 어이없다는 듯 강유현이 말을 걸었다.

“대체 뭘 믿고 그냥 가려고 한 거지? 내가 기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아니, 나는…….”

그의 말에 나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주인공들을 쉽게 믿어 버린 것 같았다. 당연히 그들이 나를 함정에 빠트릴 리 없다는 생각도 했고.

하지만 그들로서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 아직 계약서도 쓰지 않았는데 함부로 믿어 버리는 내 모습이 어수룩해 보였겠지. 그렇다고 너희가 착한 놈들이라는 걸 아니까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런 말 하면 날 아주 수상하게 여기겠지.

끙, 하고 작게 신음한 내가 눈알을 도르르 굴렸다. 기자 회견이라. 먼저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겠다 말한 건 나지만, 이렇게 갑자기 하라고 하는 건 좀 당황스러웠다. 침을 삼킨 내가 침착하게 말을 내뱉었다.

“오늘은, 좀 갑작스러운데. 다음에 날 잡아서…….”

“물론 정식 인터뷰는 따로 하겠지만, 오늘도 좋은 기회입니다. 강유현 능력자의 증언뿐이면 믿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으음…….”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정신력 맥스를 찍은 강유현이라면 몰라도, 나는 그 수많은 기자에게 둘러싸여 질문받는단 생각만으로도 손가락이 곱아들었다.

오늘 내 머리 스타일이 어떻지? 왁스는 발랐나? 강수현이랑 떡볶이 먹고 이도 안 닦았는데, 고춧가루라도 껴 있는 건 아니겠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 들이닥쳤다.

“꼭, 제가 나가야 합니까? 그렇다고 기자들 앞에서 스킬 확인도 해 줄 수 없을 텐데.”

그 민망한 발동 조건만큼은 되도록 꽁꽁 숨겨야 하지 않겠소, 길마 양반. 그런 눈빛으로 간절히 쳐다보니, 박윤성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음, 그것도 그렇죠.”

“…….”

후, 박윤성이 은근히 잘 휩쓸리는 성격이라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이제는 익숙해진 낮은 음성이 못 박듯이 말했다.

“그래도 보고 가.”

“……?”

저 주인공님은 대체 왜 아까부터 하찮은 조무래기에게 집착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배신을 결심한 이상 로키 길드에는 오늘 밤 돌아갈 생각이 없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장태산이 구속된 다음 짐 챙길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당장 하룻밤을 보낼 곳도 마땅치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신경 쓰는 척이라도 해야지. 당신들은 착한 사람들이니 무조건 믿습니다. 아멘. 이런 태도를 너무 보이면 되레 의심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보고 가기만 하는 걸로.”

분명 난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강유현의 기자 회견에 갔던 것이었다.

***

회장 안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대부분은 카메라와 노트북을 가지고 온 기자들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단적인 예는 회장 한구석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서 있는 다른 길드의 능력자들이었다.

‘와, 성유빈이다.’

프레이야 길드의 랭커이자 전투 부대 발키리의 리더. 그야말로 프레이야 길드 마스터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거기다 소설에서도 비중이 높았었지. 특히 히로인 포지션으로 말이다.

그러나 강유현과의 첫 만남은 썩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자 오빠인 성윤재가 강유현과 함께 게이트에 갇힌 1세대 각성자였기 때문이었다. 강유현은 귀환 후 가족들의 생사를 묻는 유족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성유빈은 당연히 그 모습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 후 수많은 에피소드에서 함께 역경을 이겨 내고 서사를 쌓으며 관계가 좋아졌는데, 지금은 아니다. 원래 드라우그 킹은 성유빈과 사이가 좋아진 다음 함께 잡는 보스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유현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치고 있을 텐데, 하필 기자 회견으로 마주치다니. 꼬여도 단단히 꼬인 게 분명했다.

독자로서의 팬심으로 성유빈을 흘끗 훔쳐보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어땠더라. 만만치 않게 한 성격 하는 성유빈이 먼저 강유현에게 선빵 날렸던 거 같은데. 주변은 당연히 초토화되었고 말이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저도 모르게 뒤로 슬금 물러나는데, 그보다 먼저 강유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

찰칵찰칵.

쏟아지는 플래시를 받으면서도 강유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길고 잘 빠진 다리가 성큼성큼 움직였다. 잘난 얼굴은 조명을 받아 더욱 찰지게 빛났다.

감탄하며 쳐다보고 있으니, 어느새 강유현이 자리에 착석했다. 나갈 타이밍을 놓친 나는 두 눈만 끔벅거렸다.

“사실 이번 던전 공략은 저 혼자서 한 게 아닙니다.”

“…….”

어느새 마이크를 잡은 강유현이 빠르게 본론을 꺼냈다. 기자들이 무언가 질문을 하기도 전이었다. 소설 속 그는 언제나 거두절미하고 제 할 말만 내뱉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익숙했던 나는 별로 위화감이 없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럼 대체 누구와…….”

“로키 길드의 한이진 능력자입니다.”

그의 시선이 똑바로 나를 향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확하게 나를 찾은 눈썰미가 대단했다. 그가 회장 안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게 누구야? 노골적으로 묻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당연히 모르겠지. 소설에서도 한이진의 존재는 미디어에 알려지지 않았거든. 조무래기 빌런이라고, 조무래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돌멩이 같은 존재 말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존재감을 곁들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어떤 능력자입니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한 기자의 질문 이후로 폭풍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급하게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동료 기자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에 대한 건…….”

“……?”

천천히 입을 연 강유현의 시선이 사람들을 쭉 훑다가 한 곳에 멈췄다.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도 그를 따라갔다.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겁니다.”

“……!”

아니, 이 새끼가?

기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에게 쏠렸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내가 강유현이 언급한 ‘한이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론적으로 전 세계의 헌터들이 몰려가도 막을 수 없는 SS급 던전을 강유현과 함께 클리어한 능력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바로 눈앞에서 일제히 플래시가 터졌다. 시발, 내 눈!

이를 부득부득 간 나는 어쩔 수 없이 강유현의 옆에 앉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한이진의 몸도 굳어 버렸다.

“……저는 로키 길드의 B급 능력자 한이진입니다.”

“B급?”

“B급 능력자라고?”

겨우 입을 떼 짧은 자기소개를 하자, 믿을 수 없다는 음성들이 회장 안을 꽉 채웠다. 중구난방으로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그냥 내 할 말만 했다. 이럴 땐 확실히 강유현처럼 적당히 무시하는 게 나을 듯했다.

“저에게는 S급 보조 스킬이 있습니다. 대상자의 능력치를 증폭시켜 주죠.”

“스탯의 한계는 99로 알고 있는데요. 설마…….”

“네, 한계를 초월해서 적용됩니다. 물론 스킬 숙련도도 증폭 대상입니다.”

“헉……!”

경악에 찬 기자들이 더욱 열띤 질문을 해 댔다. 능력치 상승 정도, 지속 시간, 인원 등 구체적인 정보를 묻는 질문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윤성과 합의한 대로 구체적인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B급 능력자가 어떻게 S급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거죠? 혹시 사기 아닙니까?”

그중에는 제법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다. 차가운 인상을 가진 기자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을 때는 조금 뜨끔했다. 그래도 내가 빙의자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조금 당황한 내 어깨를 끌어안은 강유현이 느긋한 어조로 대신 답했다.

“사기라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내가 증인이라는 게 가장 큰 증거일 텐데.”

“…….”

거만하게 내뱉는 강유현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상 그들도 SS급 던전을 단신으로 클리어한 강유현을 믿지 못해 이런 기자 회견을 요구했던 게 아닌가. 그래서 그 해답을 눈앞에 들이밀었는데 못 믿겠다고 추궁하는 건 기자들도 면이 안 서는 일이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 자극적인 화제를 기껍게 반겼다. 혹 거짓이라고 해도 여론을 뜨겁게 달굴 특종을 반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다정한 척 내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강유현과, 그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나를 정신없이 찍어 댔다. 나는 또 억지 미소를 짓느라고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살려 줘, 제발.

내 바람과는 달리 기자 회견은 빨리 끝나지 않았다. 이 정도 퍼포먼스면 충분하지 않겠니. 나 좀 제발 놔주라.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

파들거리는 내 얼굴을 흘끗 내려다본 강유현이 별안간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어깨가 잡혀 있던 나도 덩달아 같이 일어나 버렸다. 그리고 반항할 새도 없이 그에게 이끌려 회장을 벗어났다.

“잠시만요. 강유현 능력자!”

“좀 더 대답을……!”

어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유현은 거침없었다. 소설로 읽고 있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옆에서 겪으니 심히 당황스러웠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강유현의 품 안에 갇혀 있었다.

“강유현 능력자.”

“……!”

성큼성큼 걷던 강유현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이미 기자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이런 곳까지 쫓아오다니.

누군가하고 봤더니 성유빈이었다. 하긴, 세계 랭커인데다 S급인 그녀를 감히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강유현의 얼굴을 흘끗거렸다. 성윤재를 꼭 닮은 성유빈을 본 강유현의 눈이 조금 커져 있었다.

‘어휴.’

이다음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근데, 다 좋아. 다 좋은데.

제발 나는 고이 보내 주고 계속하면 안 될까?

SS급과 S급 사이에 낀 B급은 등이 터지기 전에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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