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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4)화 (24/228)
  • 24화

    “저리 꺼져! 씹새끼야!”

    “으악!”

    바짝 다가온 강수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확 밀었다. 그러자 어딘가 넋을 놓고 있던 강수현이 뒤로 확 밀렸다.

    “너무해요.”

    힘을 줘서 밀었기 때문인지 강수현의 볼 한쪽이 빨갛게 물들었다. 뺨을 붙잡고 우는소리를 하는 강수현을 보며 이를 갈았다.

    “헛짓거리하지 마라.”

    저 새끼, 저번에도 그러더니. 진짜 생긴 게 개 같아서 그런 건지 하는 짓도 개 같았다. 기분 더럽게 냄새는 왜 맡아?

    “아, 진짜…… 좋은 향 나는데.”

    “안 나거든?”

    “무슨 패시브 스킬이라도 쓰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고!”

    순간 한이진의 쓸모없기 그지없는 패시브 스킬들이 떠올랐다. 그중에 냄새 풀풀 풍길 만한 스킬? 없다.

    몸을 움직일 때 기척을 좀 줄여 준다든가 혀에 기름칠한 듯 말을 좀 매끄럽게 할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지나가다가 100원 정도 발견할 만큼 재물운을 조금 올려 줄 뿐이라고. 대놓고 말하니 정말 빡치는 패시브 스킬들이네!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닥쳐, 이 S급 새끼야.”

    너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B급의 마음 따위는 모르겠지. 더러운 S급 놈들.

    물론 나도 시스템 오류인지 뭔지 S급 스킬이 하나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급 자체가 올라가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좀 열이 받았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강수현에게 흥분한 감도 없지 않았다.

    “아, 같이 가요!”

    “빨리 와!”

    괜히 더 화를 내면서 발걸음을 빨리했다. 강수현은 말로는 너무하다고 툴툴거렸지만, 입은 실실 웃고 있었다. 나쁜 새끼.

    ***

    결론적으로 강수현을 기자 회견에 데려간 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강수현을 알고 있는 오딘 길드 관계자가 우리를 바로 대기실로 안내해 줬기 때문이었다.

    “안녕? 강유현.”

    “…….”

    “…….”

    “음, 오랜만?”

    하지만 이 얼어붙은 분위기는 좀 에바다. 나를 보는 두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강유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남자도 있었다. 누구지? 흘끗 그를 보는데 강유현의 시선이 조금 무서워졌다. 음, 역시 에바다.

    “……한이진.”

    “한이진이라고요?”

    나직한 강유현의 말에 이름 모를 미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나를 아는 건가? 진짜 누구지?

    당황해서 대놓고 남자를 쳐다보는데, 왜인지 강유현의 눈빛이 더욱 살벌해지는 것 같았다.

    음, 진짜 에바. 삼진 아웃 에바다. 시발.

    “아, 일단 들어오시죠.”

    회색이 약간 섞인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살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저런 머리카락 색을 뭐라고 하더라. 애쉬 브라운? 이런 오묘한 머리카락 색이 잘 어울리는 남자는 처음 봤다.

    안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보면서 흘끗거리던 차였다. 나는 강수현과 함께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눈빛이 형형한 강유현과 눈을 마주칠 생각도 못 하며 애쉬 브라운 머리의 미남과 얼굴을 마주했다.

    “전 오딘 길드의 마스터, 박윤성이라고 합니다.”

    “헉……!”

    맙소사, 진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싱긋 웃는 박윤성의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사 같았다. 뒤에서 그를 비추는 후광이 반짝이는 것 같다.

    박윤성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소설 인물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쌍스급에서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라 그런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강유현이 먼치킨 사이다패스 주인공이었다면, 박윤성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외유내강형의 리더였다. 차갑고 무뚝뚝한 강유현과 상반된 이미지를 가져서 독자들 사이에서도 은근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물론 같은 남자니까 이상한 의미는 결코 아니고 단순한 호감일 뿐이다. 거기다 실제로 보니 소설에서 언급한 대로 부드러운 인상에 청량한 미소! 완벽한 박윤성 그 자체였다!

    “아, 저는 로키 길드……의 한이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자기소개에 현타가 밀려왔다.

    저 바른 생활 사나이 박윤성이 가장 증오하는 게 바로 빌런 짓을 하는 헌터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빌런들이 일으킨 사고로 가족들을 잃어 누구보다 범죄자들을 혐오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가 세운 오딘 길드는 소설 내에서 어떤 길드보다 정의로운 편에 서서 권선징악이 뭔지 몸소 보여 주곤 했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대놓고 빌런 길드 소속이라고 한 거다. 하하, 인생 참…….

    “네, 반갑습니다. 한이진 능력자.”

    “……!”

    천사인가?

    내 소속을 알고도 박윤성은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보여 주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넋 놓고 쳐다봤다.

    “흠, 흠.”

    “……?”

    부자연스러운 기침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왜인지 불편하다는 듯이 인상을 쓰고 있는 강유현이 보였다.

    왜 저래. 사레라도 들렸나? 의아하게 쳐다보자 강유현의 시선이 제 동생에게 향했다.

    “왜 둘이 함께 온 거지?”

    “아.”

    강유현의 물음에 순간 몸이 굳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강수현의 존재가 도움 되긴 했지만, 지금은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또 자기 동생한테 해코지한 줄 알고 달려들면 어떡하지? 강유현은 츤의 지분이 상당히 높은 츤데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누가 강수현 건드리면 눈이 뒤집힌단 말이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강수현을 흘끗 쳐다보는데, 이놈은 심각해진 분위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실실 웃고 있었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이진 형이랑 데……!”

    “아, 그냥! 앞에서 우.연.히! 만났어. 우연히!”

    특정한 단어에 유독 강조하며 외쳤다. 그리고 강수현에게는 조용히 하라며 눈을 부라렸다. 조용히 좀 해라.

    “……우연히?”

    “응, 맞아.”

    나는 결코 댁의 귀한 동생분에게 해코지하려고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결백한 눈으로 바라보며 스스로의 무해함을 피력했다. 그리고 오늘 강수현을 만난 건 정말 우연이기도 했다. 설마 센터에서 각성자 등록을 마치고 나온 강수현이랑 역 앞에서 딱 만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사실이야?”

    “……응.”

    강유현의 물음에 다소 시무룩하게 대답한 강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얘는 왜 갑자기 의기소침한 거야? 그런 표정을 지으면 오해하잖아.

    조금 당황했으나, 다행히 강유현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대신 천사 같은 박윤성 길드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혹시 강유현 능력자를 찾아오신 겁니까?”

    “아, 네.”

    스윗한 박윤성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마음속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윤성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왜 찾아오신 거죠?”

    “아.”

    원래는 강유현에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우연찮게 박윤성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어차피 오딘 길드 마스터인 그가 승인해 줘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실은, 오딘 길드와 계약하고 싶어서요.”

    “계약이요?”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박윤성을 보며 손가락으로 뺨을 살짝 긁었다.

    “제가 곧 길드를 나올 거라서…….”

    물론 그냥 나올 생각은 없고, 장태산 개새끼에게 되도록 빅 엿을 날리고 나올 생각이다.

    뒷말은 삼키고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박윤성의 얼굴에 혼란한 기색이 스쳤다. 그에 나는 황급히 뒷말을 붙였다.

    “아, 물론 정식 계약이 아니고 임시로요. 용병 계약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임시…….”

    “강유현 능력자에게 들으면 아시겠지만, 제가 S급 보조 스킬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던전 등급 이상 현상으로 난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던전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는 강유현을 흘끗거리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박윤성은 의심 한 점 없는 눈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예, 그 스킬에 대해선 이미 말씀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다행이다. 그러면 계약하기 더욱 수월하겠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순간 박윤성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네?”

    “혹시 왜 길드를 나오려는 건지, 이유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

    박윤성의 물음에 나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그가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자기 빌런이 와서 계약하자고 하면 당연히 의심하겠지. 나는 그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할 의무가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내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동안은 장태산이 아픈 동생을 데리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협력했던 겁니다.”

    “……!”

    “그런데 이제야 겨우 동생의 행방을 알아냈거든요. 계약 조건에 저와 동생의 신변 보호도 요청하고 싶군요.”

    “…….”

    잠시 동안 대기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 사람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응시하자 점점 식은땀이 났다.

    뭐야, 왜 저렇게 쳐다봐? 설마 이것도 믿기 힘들다는 건가?

    “아, 진위 여부가 의심되면 아이템 사용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겨우 입을 뗀 박윤성이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은, 이미 스킬로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박윤성 스킬 중에 그런 게 있었지. 뒤늦게 떠올린 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쾌하다기보단 번거롭게 두 번 말할 필요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요. 번거롭지 않아서 좋네요.”

    “…….”

    진심으로 한 말인데 박윤성의 표정이 어딘가 미묘해졌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스킬을 쓰는데도 믿어 주지 않으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무해한 미소를 짓기 위해 입가는 계속 파들거리고 힘들어 죽겠구만, 확 때려치울까. 거센 충동이 느껴질 무렵 박윤성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더 추가할 조건이 있으십니까.”

    “음, 그게…….”

    뭐, 오딘 길드니까 보상은 후하게 해 줄 거고. 던전 들어가면 아이템 분배에 좀 힘써 달라고 할까? 한두 가지 정도는 우선권을 가진다든가. 일단 돈이 많아야 한이진 동생도 치료하고 마음 편히 살 테니까.

    그러나 아직 초면인데 그런 말을 하기는 좀 껄끄러웠다. 어차피 용병은 던전 들어갈 때마다 추가 계약서를 작성하니, 내 스킬이 쓸 만하다는 걸 인식시키고 난 후에 슬쩍 말해 보면 될 것 같았다.

    아, 그나저나 그 망할 개박하 스킬. 발동 조건이 좀 거시기한데…….

    나는 괜히 강유현 쪽을 힐끔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저기…….”

    “네, 말씀하십시오.”

    “음, 제 보조 스킬 말인데요.”

    “예, S급 보조 스킬 말씀이시죠?”

    “근데 그게, 좀…….”

    “……?”

    자꾸 말을 질질 끄니 박윤성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말하려고 할수록 어째 점점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흠, 그게 발동 조건이 있는데, 그게 사실…….”

    와, 근데 이거 말하고 나 변태로 찍히는 거 아닌가?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자는 강유현이었지. 가만, 그러고 보니 나 왜 아직도 목이 붙어 있지? 만나자마자 강유현이 내 목부터 비틀어 버리지 않을까 했었는데.

    불현듯 스친 생각에 얼떨떨해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강유현이 별안간 입을 열었다.

    “한이진 보조 스킬은 내 전용으로 하죠.”

    아니, 시발. 이게 무슨 개소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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